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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켄이 이끄는 1천여 명의 가병은 미츠이 시게노부가 통솔하는 1천여 명에 이르는 모리나가 번의 가병들의 기습에 지리멸렬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해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방어선을 치고 기다릴 것이라는 류켄의 예상을 깬 미츠이의 대담무쌍한 병력 운용에, 류켄을 수장으로 하는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은 허무하게 진중을 내주고 말았다.
모리나가 번의 가병들은 타이라노번의 가병들이 진을 친 영내 깊숙이 치고 들어갔다.
그와 함께 눈에 띄는 족족 타이라노번의 가병들에게 달려들어 무자비한 손속으로 척살했다.
“으아아악.”
방심하고 있었던 터라, 기습에 대한 대비가 충실하지 못한 까닭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미츠이의 가병 운용에, 타이라노번의 가병들은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끄아아악.”
“꺼어억.”
곳곳에서 타이라노번의 기병들이 죽어나갔다.
류켄은 그 광경에 걷잡을 수 없는 떨림을 흘렸다.
와들와들.
떨림으로 인해 오른손에 쥔 검 역시 떨렸다.
험악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한 류켄의 주변에는 타이라노번의 가신들이 모여 있었다.
“도노.”
“피하셔야 합니다.”
“속히 가병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야스라가 성으로 어서 돌아가셔서, 공성전 채비를 하셔야 합니다. 도노.”
가신들은 류켄에게 퇴각을 건의했다.
류켄은 이를 악물고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노라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왼손을 말아 주먹 쥐었다. 팔오금을 굽히며 가슴에 가까이 붙이며 상체를 슬쩍 숙였다.
“이…… 으아아아아아아!”
류켄은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며 광인인 양 거친 고성을 질렀다.
딱 미친 사람이었다.
타이라노번의 가신들은 류켄의 모습에 몹시 황망해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가신들은 혼란을 느꼈다.
혼란은 비단 가신들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모리나가 번 가병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타이라노번의 가병들 역시 공히 동일하게 느끼고 있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 우어어억.”
“끄륵.”
곳곳에서 타이라노번의 가병들이 죽어나갔다.
기습으로 전열을 갖추지 못했으며, 진중 내부 깊숙한 곳까지 적인 모리나가 번 가병들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 여파는 실로 컸다.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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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탄 얄팍한 인상의 사내 미츠이 시게노부는 오른손에 쥔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공격하라.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외치며 탄 말의 말머리를 이리저리 좌우로 돌려 방향 전환했다.
미츠이는 안장에 앉아 달려드는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을 검으로 내리쳤다.
서걱, 스아아악.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은 베여 죽어가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으아악.”
주변에서는 말을 탄 모리나가 번의 가신인 무장들이 타이나노 번의 가병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미츠이님. 미츠이님.”
자신을 부르는 연이은 외침에 미츠이는 흠칫거리며 말머리를 왼쪽으로 돌렸다.
시야에 말을 몰아 자신에게 달려오는 중년 무장이 보였다.
측근인 아노 요코바시였다.
미츠이는 말을 몰아 덤벼드는 타이라노의 가병들을 떨치며 검을 휘둘렀다.
그 광경을 본 두어 명의 무장이 미츠이에게 다가왔다.
두어 명의 무장은 총대장인 미츠이를 보호하며 타이라노의 가병들을 상대했다.
채, 채, 챙.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성小聲이 연거푸 들렸다.
그 사이.
“미츠이님.”
아노가 미츠이의 규보跬步에 이르며 말을 세웠다.
히힝.
말은 낮은 울음을 흘렸다.
“무슨 일이냐?”
미츠이는 궁금하다는 속내가 밴 목소리로 아노에게 물었다.
아노는 황급히 대답했다.
“류켄이…… 타이라노 류켄이 가신들과 함께 저쪽에 있습니다.”
아노는 말하며 우측 뒤로 고개를 돌려, 눈짓으로 갑방甲方을 가리켰다.
“류켄이!”
미츠이는 깜짝 놀랐다.
“네에. 속히 가병들을 모아.”
아노는 어서 빨리 류켄을 잡자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요시よし!”
미츠이는 시원스레 대꾸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들 날 따라라. 타이라노 류켄을 잡으러 간다!”
목청이 터져라 크게 소리쳤다.
“하!”
“예에에.”
미츠이 주변에 있는 모리나가 번의 무장들이 대답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미츠이는 아노를 보았다.
“앞장서라.”
“하!”
아노는 대답하며 말머리를 우측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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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라가 성.
타이라노 번의 본성으로 번주 타이라노 류켄이 가신들과 함께 기거하는 곳이다.
평소 수많은 가병과 가신들 그리고 시녀를 비롯한 다수의 이들이 상주하는 야스라가는 아비규환이었다.
번주 류켄이 1천여 가병을 데리고 출전하였다. 남아 있던 가병 300을 하야마가 데리고 간 탓에 야스라가는 텅텅 비었다.
무주공산 야스라가로 혹두와 맹우가 이끄는 400여 군병이 내습했다.
외적의 침입과 공성을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축성된 야스라가 성의 방어 기능은 침묵했다.
성을 공격하는 적을 마주 공격하는 여장 또는 타첩이라 불리는 작은 구멍들.
성안으로 들어온 적의 진격을 늦추고, 공격 방향을 외곽으로 돌려, 성안으로 들어온 적을 공격하는 우회로, 내성으로 들어오는 적을 맞아 싸우는 다소 낮은 내부 곽 등등.
일련의 방어물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야스라가 성은 허무하게 혹두와 맹우가 이끄는 군병들에게 속살을 드러내듯 자신을 내주고 말았다.
“으아아악.”
“꺄아악.”
군병들은 성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천수탑과 번주의 거처 등등.
일련의 요충지를 신속하게 공격, 점거했다.
그 와중에서 저항하는 자는 불문곡직 베임을 당했고, 시녀들은 놀라 자지러지는 외침을 내뱉으며 천지사방으로 달아나기 바빴다.
“꺄아아악.”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 타이라노 류켄의 아들 아키마루는 모친 나나에의 품속에 안긴 채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모질게도 나나에는 치욕을 당할 수 없다 하여, 왜의 무가 여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담고 있는 최후를 아들 아키마루와 함께 맞았다.
성이 함락되면 자진한다!
왜의 무가에서 태어나 성장한 여인들은 대부분 그런 결말을 평소 마음 한구석에 두고 살아간다.
혹두와 맹우는 나나에와 아키마루가 죽은 것은 몰랐다.
“성의 창고를!”
혹두는 각종 재물이 있을 것이라고, 코와산의 철광과 은광에서 나온 철과 은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 그리 여겼다.
그런 이유로 모든 것에 우선하여 야스라가 성의 창고들을 점거하려했다.
한편.
“모조리 다 끌고 가라. 저항하는 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자이에서 죽여라.”
맹우는 흥분할 대로 흥분한 목소리로 휘하 군병들에게 명령했다.
“철저히!”
사전에 이민호에게 별도의 명을 들었다.
“우리 고려 백성들이 왜구에게 당한 만큼! 아니 그 이상, 몇 배로 되갚아줘라.”
맹우와 휘하 군병들은 내심 신이 났다.
치가 떨리는 왜구들의 본거지를 공격했으며 무혈입성 했다. 그리고 당한 것을 그대로 아니 몇 배로 되돌려준다는 현실에 크게 들떴다.
전쟁이었다.
방심하면 언제 어디서 죽을지 알 수 없다.
그런 이유로 군병들은 살기를 띠는 한편 주의에 주의했다.
눈에 띄는 야스라가 성에 상주하는 남녀를 강제로 끌고 가려했으며, 저항하는 눈치만 보여도 가차 없이 소지한 무기로 죽였다.
그 바람에 야스라가 성 곳곳에서 진한 피 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불을 싸질러라!”
맹우는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별 쓸모없는, 타이라노 번에 타격을 줄만한 전각과 가옥을 불태우라고 휘하의 일부 군병들에게 명령했다.
“네에에.”
군병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곧이곧대로 였다.
맹우에게 명령받은 대로 횃불을 만들어 손에 쥐고 각 전각과 가옥에 불을 질렀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화마로 화하고, 화마는 전각과 가옥들을 한 입에 집어삼키며 매우 빠르게 잿더미로 만들었다.
불태워지는 전각과 가옥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들이 야스라가 성의 하늘을 먹구름인 양 뒤덮었다.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광경이었다.
맹우는 휘하의 다른 일부 군병들에게 명령했다.
“성에 있는 값비싼 것은 모조리 다 가지고 나와 한 곳에 쌓아라.”
“예에에.”
군병들은 대답하며 야스라가 성 곳곳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