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회: 7-3 -->
@
순간.
쉬이잇.
하야마가 움직였다.
날렵하게, 껑충 뛰며 양손에 쥔 검을 머리 높이로 쳐들었다.
단숨에 내 면전에 이르러, 단칼에 날 베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담아 검을 내리쳤다.
힘찬 기세였다.
난 재빨리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쉑.
나지막이 검날이 바람을 베는 파공이 일렀다.
검은 부드러운 호선弧線을 그리며, 내리치는 하야마의 검을 측면에서 때렸다.
따아앙.
검이 검을 때리는 긴 울림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우욱.”
하야마가 충격에 얼굴을 찡그리며 급히 검을 자신의 가슴으로 당겼다.
난 재빨리 하야마에게 다가가며 검을 우 사선으로 올려쳤다.
파공과 함께 검첨劍尖이 하야마의 가슴을 스쳤다.
스앗.
하야마의 가슴을 보호하는 갑주가 검첨에 긁히며 신경에 거슬리는 미성微聲을 흘렸다.
까가가각.
하야마는 대경한 표정을 지었다.
낯빛이 변하는 것이 엄청 놀란 모양이다.
난 살며시 웃으며 하야마의 좌측으로 움직였다.
게처럼 옆으로 오른발을 크게 내딛으며 하야마를 흔들기 위해 말을 걸었다.
“영감. 아직 밤일은 거뜬히 하겠어. 힘이 장난이 아닌데 그래. 하하하하.”
의도적으로 하야마의 부아를 돋으려했다.
“칙쇼!”
하야마는 크게 화내며 날 향해 돌아섰다.
그와 함께 내 얼굴을 향해 걸음 휘둘렀다. 파공이 세찼다. 홧김에 검에 꽤 힘이 실린 것 같다.
난 잽싸게 머리를 숙였다.
“가로이니.”
말하며 쥔 검을 하야마의 목을 향해 내질렀다.
하야마는 흠칫거리며 급히 목을 좌측으로 젖혔다.
검첨이 하야마의 우측 귓불을 스치자, 몇몇 자그마한 핏방울이 튀었다.
“딸이나 손녀 같은 계집 서넛은 거느리겠지.”
하야마에게 던지듯 말하며, 하야마의 우측으로 몸을 돌렸다.
“이야아아.”
하야마는 부아가 돋는지 거친 외침을 내뱉으며 내게 가까이 다가서려 했다.
검을 우 하단으로 내리쳐, 내 우측 허리를 베어왔다.
휙.
난 검을 내리며 거꾸로 돌렸다.
일순.
따앙.
내 검을 하야마의 검이 때렸다.
진동이 일고, 검과 검 자루 그리고 손목을 타고 손아귀로 충돌의 진동이 흘러들었다.
검 자루를 움켜쥔 손아귀에 힘주어 진동을 이겨냈다.
“밤마다 손녀 같은 소실을 만족시키려면 진땀깨나 흘리겠어. 영감.”
하야마의 검이 내 검을 때린 힘을 이용해, 난 매끄럽게 하야마의 우측으로 움직였다.
시야에 하야마의 등, 일부가 보였다.
“차핫.”
일부러 하야마가 들으라는 듯 기합을 지르며 한 발을 내디뎠다.
수중에 쥔 검을 무의미하게, 날 향해 돌아서는 하야마의 얼굴로 휘둘렀다.
내 움직임을 따라 우측 뒤로 돌던 하야마는 화난 표정을 짓다가 흠칫했다.
얼굴로 날아드는 내 검에, 하야마는 오른손에 쥔 검을 들어올렸다.
하야마는 한일자로 검을 세우고, 내 검을 밀어 올렸다.
그로인해 검날과 검날이 서로 붙어, 긁히는 불쾌한 소리가 울렸다.
키키키키킥.
난 상체를 우측으로 틀며 왼손을 말아 주먹 쥐었다.
그 상태로 하야마에게 바짝 다가서며, 왼 주먹으로 하야마의 우측 겨드랑이를 가격했다.
퍼, 퍼, 퍽.
삽시간에 연달아 세 번 가격했다.
“컥.”
하야마는 겨드랑이에서 이는 고통에 얼굴을 살며시 들었다.
상당한 통증을 느끼는 듯 얼굴이 이지러졌다. 잇몸을 드러내며 이를 악문 모습이 고통을 이겨내려는 눈치다.
그 와중에도 하야마는 나에 대한 공격 의지를 잃지 않았다.
몸을 내게 밀착시키며 뒤로 밀어내려했다.
‘흐윽.’
난 조금 놀랐다.
나이답지 않게 하야마의 미는 힘이 상당했다. 계속 겨드랑이를 주먹으로 때리며, 오른발을 뒤로 빼어 지면을 힘주어 밟았다.
하야마의 미는 힘을 오른발로 버티며 겨드랑이에 충격을 주려했다.
대부분 오른손에 검을 쥔다.
겨드랑이는 몸의 여느 부위에 비해 부드럽다.
가격당할 경우 느끼는 충격과 아픔이 다른 부위에 비해 강하고 크다.
오른팔을 놀리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이 가해진다면, 하야마는 마음먹은 대로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두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유리해질 것은 불문가지.
“크아아아아.”
겨드랑이를 계속 가격당하던 하야마가 힘을 내는지, 기합을 내지르며 엄청난 힘으로 날 밀어냈다.
오른발에 힘주어 버티기에는 미는 힘이 너무 강해, 난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재빨리 발을 놀려 하야마와 거리를 벌렸다.
“영감. 번의 젊은 가신들이 마누라와 그렇고 그렇다는 추문이 돌지 않았어? 응.”
하야마의 속을 박박 긁었다.
손녀 같이 젊은 여인들을 거느리는 늙은 가로? 당연히 번에 젊은 무장들과 거느린 여인이 얽힌 추문이 돌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하야마가 흉신악살 같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命 がねえぞ!”
죽여 버릴 테다.
그렇게 외치며 내게 검을 휘두르는 하야마의 얼굴에 노기라는 감정이 그득했다.
‘크큭. 맞네.’
내 생각대로다.
추문이 있는 모양이다. 날 죽이려는 살의에 찬 하야마의 검은 매서웠다.
정신없이 내 얼굴, 목, 양팔, 가슴 등. 다양한 부위를 노리고 정신없이 짓쳐들었다.
눈을 바로 뜨기 어려운 거친 바람처럼 하야마의 검은 거칠었다.
난 내심 냉정하게, 하야마의 검을 온몸으로 느꼈다.
눈으로 보고 하야마의 검을 피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귀에 들리는 파공과 본능적인 서늘한 기운의 엄습 그리고 강무한에게 수련받은 감각 등.
일신에 지닌 다양한 재간을 십분 활용, 수중에 쥔 검으로 하야마의 검을 막거나 경쾌하게 발을 놀려 피했다.
땅, 따앙.
신속하게 좌우를 오가며, 상황에 따라서는 뒷걸음질 쳤다.
난 눈을 반짝이며 하야마의 눈동자와 얼굴을 주의 깊게 살폈다.
‘역시.’
자신이 늙었다는 것에, 손녀 같은 여인들을 거느린 것에, 진한 후회와 안타까움이 엿보였다.
어쩌면 치부일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자격지심일지도.
중요한 것은 노장 하야마의 마음이 흐트러졌다는 것이다.
다수의 전장 경험을 가진 노회한 백전노장도 여인 문제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사내였다.
아내와 심하게 나는 나이차이가 주는 괴리감과 불안 그리고 자격지심 등등.
다수의 감정을 떨치기에는…….
격정과 날 죽이려는 강한 살심을 여봐라는 듯이 드러내며 공격하는 하야마.
허점이 보였다.
‘그렇지!’
신속하게 하야마의 좌측 대각으로 빠져나가며 검을 놀렸다.
피잇.
검첨이 옷과 살을 베는 나지막한 소리가 귀에 들렸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
‘베었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하야마를 흘낏거렸다.
“크!”
하야마는 비틀거렸다.
왼발 허벅지에 길게 이어진 검상.
내 검에 베여 위아래로 크게 벌어진 살갗의 틈새에서 진홍색 선혈이 콸콸 흘러나왔다.
“흐으윽.”
격통에 하야마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몸을 가누지 못했다.
비틀비틀.
그 모습이 보기에 안쓰러웠다.
‘미안하오. 당신처럼 실전 경험이 많은 자를 상대로 정면 대결하기에는.’
부담감을 느꼈다.
보다 손쉽게 하야마를 상대 및 처리하기 위해 일부러 하야마의 마음을 흔들었다.
하야마는 보는 내 마음이 착잡하고 침중했다.
당장 검을 들어 하야마의 목을 치기에는,
나도 양심이 있지.
백발이 머리를 온통 뒤덮은,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노인네를.
머리는 마음과 정반대였다.
‘빨리 죽여!’
냉정한 이성이 서둘러 하야마의 명줄을 끊어라!
머릿속에서 내게 소리쳤다.
주저,
하야마를 어서 빨리 죽여야 한다는 결단을 촉구하는 이성,
살려 주고 싶다는 마음 한구석의 작은 온정,
내가 비겁하다는 가책.
등등.
다수의 감정이 내 가슴에서 일어나 소용돌이쳤다.
그 사이.
“으아아아악.”
하야마가 날 쳐다보며 쥐어짜듯이 살기충천한 고성을 질렀다.
오싹한 기운이 느껴지는 살벌한 하야마의 눈초리.
서둘러 수중에 쥔 검을 들어, 죽기 전에 최후의 일검을 내게 날리려는 듯, 하야마는 사력을 다해 내게 다가왔다.
왼쪽 허벅지의 검상이 깊고 엄중한 탓에 하야마의 몸은 심하게 왼쪽으로 휘청거렸다.
그 자세로는 쥔 검에 힘을 실지 못할 뿐더러, 몸을 움직이는 속도 그리고 검으로 날 베는 검속 등.
일련의 모든 것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난 착잡한 눈빛을 띠며 오른손에 쥔 검을 힘주어 움켜잡았다.
꽈악.
형형한 안광을 번쩍였다.
‘고통 없이! 깨끗하게!’
일검에 하야마를 죽여주는 것이 전장에서 생사결을 나눈 내 도리일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중상을 입은, 더는 달릴 수 없는 경주마에게 죽음을 안겨주는 배려라고나 할까?
막 내게 이른 하야마를 향해, 오른손에 쥔 검을 내치려고 하는데.
쒝.
외마디 파공이 들렸다.
그리고…….
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