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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로 이소기는 때아닌 접전으로 매우 시끌벅적해졌다.
채, 챙
따, 따다당.
각종 병기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크악.”
“으아아아아.”
죽어가는 이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병기가 맞부딪치는 소리의 뒤를 이었다.
이소기 협로는 각기 다른 다수의 소리로 그득 메워졌다.
사방 곳곳에서 군병과 가병들이 서로 어울려, 각자의 생사를 걸고 치열한 교전을 벌렸다.
가병들을 향해 수많은 단전이 단숨에 날아와 덮쳤다.
단전들이 싸우며 몇몇 무리로 나뉜 가병들을 무참하게 꿰뚫고 박혔다.
“끄아아아아악.”
가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비명을 지르며 죽어나갔다.
군병들은 단전이 날아온 정면을 힐끔거리며 환한 얼굴빛을 띠었다.
“우군이다.”
“기마병대가 왔다.”
사전에 약속된 대로 좌우 측면의 기습 공격에 이어 정면 공격이 시작되었다.
군병들의 외침에 가병들은 사색이 되었다.
“히익.”
“저, 적이닷.”
기마병대가 적이라는 현실에 가병들은 하나 같이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황곤이 이끄는 200여 기마병대는 바람처럼 내달려 협로에 다다랐다.
기마병대는 질풍처럼 쾌속하게 협로를 지나가며, 마상에서 눈에 띄는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을 공격했다.
삼연발 노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끊이지 않고 연이어 쏘아대는 단전이 가병들을 일말의 여지도 없이 꿰뚫었다.
“크악.”
“으아아악.”
기마병대는 손쉽게, 차분하게,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을 척살했다.
좌우에 있는 수림에서 튀어나온 군병들이 기마병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함과 동시에 함께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을 협공하며 몰아붙였다.
가병들은 살고자 몇몇 무리로 뭉쳐, 군병들과 기마병들에게 저항하여 하였다.
하나, 미처 뭉치지 못한 가병들은 맹공에 당해, 속절없이 비명을 지르며 붉은 선혈을 협로 바닥에 흩뿌렸다.
무의미하게, 이렇다 할 반격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죄다 죽어나갔다.
하야마는 말을 몰아 사방으로 움직이며 가병들을 독려했다.
“모여라. 흩어지지 말고 모여, 진형을 구축해라. 어서.”
다급함과 긴박감이라는 두 감정이 물씬 배인 하야마의 고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협로에 메아리쳤다.
가병들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하야마의 독려는 무의미했다.
각자의 생사를 놓고 죽고 죽이는 혈전血戰을 이어나가는 군병과 가병들.
두 무리의 이들 귀에는 하야마의 고함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협로에서 이는 다수의 소리가 하야마의 고함을 거침없이 집어삼켰다.
기마병들은 득달 같이 협로를 내달려, 가병들의 후미로 향했다.
하야마는 어떡하든지 전열을 가다듬으려고 하였으나 마음과 달리 여의치가 않았다.
“그만!”
전장戰場 곳곳을 오가는 하야마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흠칫.
하야마는 탄 말의 고삐를 당기며 막아선 자를 보았다.
“응?”
젊다.
이제 갓 스물 후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가 오른손에 검을 쥐고 서 있었다.
거리 30여 보 남짓.
입은 복색으로 봐 고려인 같았다. 갑주를 걸치지 않아 고려군의 군병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하야마는 안장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냐?”
목청을 높여 물었다.
씩.
난 말을 탄 노장을 쳐다보며 가만히 미소 지었다.
“봐하니 당신이 타이라노 번의 가로 같은데.”
혹두가 보고한 타이라노 번에 관한 일련의 정보를 머릿속으로 상기하며 반문했다.
“네 이노옴.”
하야마는 장난조로 반문하는 이민호의 말에 발끈했다.
“후후.”
나직이 실소했다.
하야마는 내 실소에 화가 나는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놈!”
말의 배를 발로 차며, 내게 말을 몰아왔다.
히이잉.
말이 울며 날 향해 다가왔다.
난 느긋하게 서서 하야마가 모는 말을 주시했다.
거리가 가깝다.
30여 보.
난 눈을 반짝이며 말이란 동물이 가진 특성을 생각했다.
말은 거리가 있어야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동물이다. 달리려면 완보, 속보 등 일련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
곧바로 내달릴 수 없다.
하야마가 몰아오는 말은 가볍게 걷고 있었다. 물론 차츰 속도를 내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촤앙.
허리춤에 찬 검을 뺐다.
성큼.
크게 한 발을 내딛으며, 난 그새 바짝 다가온 말의 앞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쏘리sorry’
옅은 파공과 함께 검이 초승달의 검로를 그렸다.
“히이이잉.”
말은 앞다리가 베어져 나가는 고통에 구슬피 울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꽈당탕탕.
말은 엎치락뒤치락 하듯 두어 번 맨땅을 굴렀다.
그 바람에 안장에 앉은 하야마는 말과 함께 맨땅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어허억.”
노쇠한 노장답지 않게 하야마는 엎어진 맨땅에서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도 손에 쥔 검을 놓지 않는 집요함을 보였다.
하야마는 자세를 갖추며 날 죽일 듯 쏘아보았다.
“와라!”
침착했다.
분기라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날 응시했다. 그 모습에서 노장의 노회함이 물씬 풍겼다.
난 검을 우 사선으로 늘어뜨리며 천천히 하야마를 향해 걸어갔다.
급하면 체한다.
강무한에게 인명 살상용 검을 배운 후, 첫 실전이다.
상대는 다수의 실전 경험이 있는 노련미가 돋보이는 노장이다.
얕보는 순간 나는 싸우기 전에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분하게.’
심신은 평온하게 유지하며 하야마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모았다.
그새 거리가 줄어들며 나와 하야마는 가까워졌다.
하야마는 살며시 왼발을 내밀었다.
스읏.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밀듯이 내미는 하야마의 행동에서 신중함이 물씬 풍겼다.
난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검을 들어 우측으로 곧게 뻗었다. 그와 함께 왼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하야마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밀었다.
하야마는 내 손짓에 몸을 움칫거리며 뜻밖이라는 눈빛을 띠었다.
생각 외로 빨랐기 때문이다.
하야마는 급히 상체를 옆으로 틀어 내 검을 흘렸다.
홰액.
난 재빨리 검을 거두고 물러났다.
‘만만치가 않아.’
신중해져야 한다.
우리 두 사람은 주변의 혈전으로부터 뚝 떨어진 것처럼 외로이 대치했다.
하야마와 나는 서로에게 집중하며 신경과 감각을 각기 상대에게 모았다.
나는 하야마에게.
하야마는 내게.
숨 막히는 긴장감이 일었다.
알게 모르게 목울대가 위아래로 꿈틀거리며 마른침이 삼켜졌다.
꿀꺽, 꿀꺽.
다듬이질하는 두 방망이처럼 심장이 빠르게 맥동 쳤다.
두근두근.
난 겉으로는 싱글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는 하야마를 경시할 수 없어 신중하게 예의주시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조심하는 것이 좋다.
경험이 풍부한 노장을 상대하는 것만큼 힘들고 피곤한 일도 없다.
패기와 젊음만으로 노장을 몰아붙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적잖다.
풍부한 실전과 전장 경험은 때론 생사결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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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마는 눈가를 찌푸렸다.
‘저 놈.’
보통내기가 아니다.
피가 튀고 살이 베이는 혈전은 언제나 사람을 흥분으로 이끈다.
흥분하면 마음의 평정을 잃고, 급한 마음에 서두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혈전에서 실수는 늘 그렇듯 죽음으로 이어진다.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우는 혈전에서 침착할 수 있는 자는 흔치 않다.
백전노장이라면 몰라도 아직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눈앞의 젊은이가 침착하다는 것은 마음의 수양이 여느 사람을 압도한다는 것을 뜻한다.
‘쉽지 않은 상대야.’
하야마는 주의했다.
혈전에서 경솔한 행동은 치명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다년간에 걸친 전장 경험으로 잘 안다.
하야마는 양손으로 검 자루를 쥐었다.
무릎을 살며시 굽히며 몸을 낮추고, 양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렸다.
양손에 쥔 검을 가랑이 사이로 늘어뜨리며 반개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임전의 자세를 갖췄다.
시선이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민호에게 못 박혀 움직일 줄 몰랐다.
오감이라 불리는 다섯 감각을 개방하고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으음.’
하야마는 마음속으로 긴장감이 밴 신음을 흘렸다.
다년간에 걸친 전장 경험이 감이라는 형태로 자신에게 주의를 주었다.
마주한 자를 경시하지 마라!
경시하는 순간 너는 죽는다!
상대는 충분히 당신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야!
전장 경험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스, 스으윽.
하야마는 발을 놀려 이민호를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