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74화 (17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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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와아아아아.”

어디선가 우렁찬 함성이 들렸다.

“응?”

류켄은 흠칫하며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소리는?”

“설마.”

가신들은 어리둥절했다.

개중에 몇몇 가신이 벌떡벌떡 몸을 일으키며 당황이란 감정에 푹 젖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미츠이.”

“전장의 너구리 미츠이닷.”

그들은 함성이 미츠이 시게노부가 이끄는 모리나가의 가병 1천여 명이 내지르는 것임을 대번에 알아챘다.

류켄의 얼굴이 일순 핼쑥해졌다.

예상하지 못한 현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가신들을 둘러보았다.

“어서 움직여라. 어서!”

“예, 도노.”

“네에.”

가신들은 신속히 대답하며 옆으로 돌아섰다.

급히 뛰어가는 가신들의 모습에서 긴박감이라는 감정이 물씬 풍겼다.

류켄은 얼굴을 굳혔다.

“미츠이 시게노부!”

분노 어린 외침을 내뱉었다.

방어선을 돌파, 손에 넣은 철광과 은광을 차지하고 지금쯤이면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선 구축에 들어갔을 것이라 예상했다.

한데 이렇게 전격적으로 타이라노 번 내로 치고 들어오다니.

“이건.”

류켄은 눈을 번쩍였다.

단순히 철광과 은광을 차지하기 위한 무력 충돌이 아니다. 타이라노 번을 한 입에 집어삼키겠다는 의도다.

“그런 것이었느냐? 미츠이 시게노부.”

류켄은 형형한 안광을 번득이며 임전의 각오를 다졌다.

단순히 코와산 인근에 있는 철광과 은광을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참에 타이라노 번을 모리나가 번으로 무력 병합하겠다는 의사가 진하게 풍기는 국지전局地戰이다.

류켄의 얼굴이 경직되며 얼굴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에게서 불안과 불길이라는 두 감정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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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마는 야스라가 성에 남아 있던 가병 300을 대동하고 하바카로 향했다.

300여 가병들에게 하바카로의 고속 행군을 명하자, 가병들은 너나없이 숨이 턱에 차도록 뛰고 또 뛰었다.

따다다닥.

말을 탄 하야마는 가병들과 달랐다.

호흡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음이 조급한 하야마는 최대한 빨리 하바카에 당도하고 싶었다.

조바심은 300여 가병에게 쉴 틈도 주지 않는 무리한 고속 행군을 강요했다.

가병들이 하바카에 도착, 적과 조우하여 싸울 수 있는 체력을 안배해두어야 함에도, 다급하기 그지없는 하야마는 미처 그와 같은 기본적인 배려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하야마는 마음이 급했다.

무리한 고속 행군으로 300여 명의 가병은 부지불식간에 대열을 흐트러뜨리고 말았다.

다들 뛰는데 정신이 쏠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죄다 필사적으로 뛰고 또 뛰었다.

뛰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른 까닭에 앞서 나가는 가병이 있는가 하면, 뒤쳐지는 가병도 있었다.

자연스레 대열이 흐트러지고 무질서해졌다.

가병들은 앞서 움직이는 말을 탄 하야마의 등을 쳐다보며 자개바람이 일듯 발을 바삐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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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하야마와 그가 이끄는 300여 명의 가병은 야스라가 성에서 하바카로 이어지는 지름길,

이소기いそぎ 협로에 다다랐다.

협로는 폭이 매우 좁았으며 좌우에는 울창한 수림이 들어서 있었다.

지름길임에도 지세와 길이 험해 좀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다.

이소기 협로는 때아닌 300여 가병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몸살을 앓았다.

와글와글.

가병들의 움직임에 이소가 협로는 매우 부산스러워졌다.

하야마는 안장에 앉아 말을 몰며 뒤돌아보았다.

“조금만 더 힘내라. 곧 하바카에 도착한다. 너희가 늦으면 늦을수록 포구의 마을 사람들이 더 많이 죽어나간다는 것을 상기해하. 단 한 명의 인질일지라도 우리 타이라노 번의 백성이라면 응당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

“…….”

가병들의 대답은 없었다.

다들 혼신을 다해 뛰는 터라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한여름 무더위에 긴 혀를 내놓고 헥헥거리는 개 마냥, 가병들은 숨을 몰아쉬기에 여념이 없었다.

“헉, 헉.”

“네, 네에. 하악.”

300여 명의 가병은 죽을 둥 살 등 뛰고 또 뛰었다. 그 바람에 죄다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쉬고 싶다!

뛰는 가병들의 얼굴에 그 감정이 물씬 피어올랐다.

그 사이.

하야마는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며 안장에 앉은 자세를 가다듬고자 하였다.

찰나.

쐐, 쐐에에에.

무엇인가가 공기의 저항을 뚫고 날아드는 매서운 파공이 울려 퍼졌다.

수많은 단전短箭이 좌우 수림에서 튀어나왔다.

단전들은 허공을 일직선으로 내지르며, 하야마가 통솔하는 300여 가병을 측면에서 덮쳤다.

퍼퍼퍼퍼퍽.

단전이 가병들의 몸에 깊숙이 박히는, 가병들의 몸을 꿰뚫는 울림이 지속적으로 메아리쳤다.

“끄아아악.”

“우와악.”

죽어가는 가병들이 생애 마지막으로 내지르는 비명이 이소기 협로에 범람했다.

“적이다.”

“어서 몸을 숨겨어어어.”

300여 명의 가병은 돌연한 기습에 원활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허둥지둥거렸다.

다들 사방으로 흩어져, 그 사이에도 꾸준히 날아드는 단전을 피할 엄폐물을 찾았다.

여의치 않았다.

뛰던 길 양쪽은 울창한 수림이라, 몸을 숨길만한 마땅한 엄폐물이 없었다.

가병들은 급공急攻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다들 짚단으로 만든 허수아비인 양 협로 바닥으로 우수수 쓰러졌다.

히히히힝.

하야마는 왼손에 쥔 고삐를 당겨, 탄 말을 세우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 이런.”

척 봐도 기습이다.

하야마는 허리에 찬 검을 빼들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몇몇 단전을 쳐냈다.

티티틱.

황급히 고개를 뒤돌려 대동한 가병들을 보았다.

몸에 화살을 맞은 가병들이 힘없이 협로 바닥으로 쓰러지는 광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이런.”

하야마는 매우 당황했다.

매복 공격에 당해, 가병들이 속수무책이었다.

한편.

양쪽 수림에서 다수의 단전이 쉼 없이 협로로 날아들었다.

쐐, 쐐, 쐐액.

몸이 절로 움츠러들 것 같은 강력한 파공들이 울렸다.

가병들은 이렇다 할 대응 한 번 못해보았다.

날아드는 단전에 자신들의 몸을 내주며 바닥으로 힘없이 피, 픽 쓰러졌다.

“반격해! 반격하라고 말이다!”

고성을 내지르는 하야마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당했다!

하야마는 머리에 떠오른 상념에 짙은 후회의 얼굴빛을 띠었다.

서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매복이 없는지, 주의 깊게 주위를 살피며, 신중하게 행군했어야 했는데.

그만.

급한 마음에 심지 깊은 주의력을 상실하고 무조건 하바카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저질러서는 안 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야마는 서둘러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가병들을 진정시키려 하였다.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상황이었다.

“진정해라. 침착하게 은폐물을 찾아 몸을 숨겨라.”

하야마는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마땅한 은폐물이 없다는 것에 미처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어서 빨리 혼란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절박함에 시급히 소리쳤다.

그 사이.

“와아아아아.”

“쳐라.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우렁찬 함성과 함께 좌우 수림에서 일단의 군병이 튀어나왔다.

일단의 중병은 중무장한 채 정연하게 움직였다. 움직임에서 상당한 시간 동안 남다른 훈련을 받은 정예병임이 절로 드러났다.

하야마는 군병들의 등장에 아연실색했다.

“헉!”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고, 분노로 얼굴이 와락 이지러졌다.

“이!”

분노의 밑바탕에 두 가지가 깔려 있었다.

통솔하는 300여 명 가병을 공격하는 군병들은 누가 봐도 적이다.

매복하여 휘하 가병을 공격하는 일단의 군병을 갈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놈들!”

하야마는 목청이 터져라 고성을 질렀다.

매복 공격을 했다는 것은 적인 군병들에게 자신의 행적과 속내가 간파 당했다는 걸 뜻한다.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고 있지 못하다면 매복 공격을 할 수는 없다.

자신의 다급하고 조급한 속내를 군병들을 통솔하는 지휘관指揮官이 꿰뚫어본 것 같다.

매복 공격하는 군병들을 지휘하는 자는, 자신이 전령의 보고를 받고 야스라가 성과 하바카 사이에 있는 지름길을 택하리라.

훤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자신의 보고 있는 광경은 없었을 것이다,

두두두.

하야마는 귀에 들리는 낮은 말발굽 소리에 흠칫했다.

“이 소리는?”

전방을 쳐다보았다.

하야마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귀에 점점 또렷하게 들리는 소리는 다수의 말이 달려오고 있음을 무언으로 말하고 있었다.

전방을 바라보는 하야마의 시야에 일단의 기마병이 들어왔다.

기마병들의 손에는 각기 노가 들려 있었다.

안장에는 장검과 창 등. 다수의 무기가 걸려 있어 중무장하였음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기마병들은 노를 얼굴 높이로 들어, 안색이 핼쑥해져버린 하야마와 협로에서 우왕좌왕하는 가병들을 향해 다수의 단전을 쏘기 시작했다.

쇄쇄쇄쇄쇄쇅.

단전들이 공기의 흐름을 가르며 공중을 가로질렀다.

“허어억.”

하야마는 전방의 허공을 가득 메우며 날아오는 단전들을 보고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입을 찢어져라 크게 벌리고는 날아오는 단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은 하야마였다.

‘끄, 끝…….’

하야마는 눈앞이 캄캄했다.

매복 공격에 이른 기습에 수하인 가병들은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일단의 군병에 의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노를 쏴대는 기마병은 치명적이라, 하야마는 엄청난 충격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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