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72화 (17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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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병들은 머리를 숙여다 들며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에게서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퇴각도 유연하게 명령하는 나리시몬에게 신뢰라는 감정을 느꼈다.

“움직여라.”

나리시몬은 휘하 가병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일부러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힐긋 고개를 돌려 맹우와 그가 거느린 1백여 명의 검병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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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맹우는 맞은편에 있는 나리시몬과 그가 이끄는 30여 명의 타이라노 번의 가병을 보고는 의구심의 표정을 지었다.

검병들 역시 맹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재들 뭐야?”

“금방이라도 치고 들어올 것 같더니.”

“어, 어. 뒤돌아서는데.”

“저거 도망치는 거 아냐?”

“셋으로 나뉜다!”

검병들은 셋 무리로 나뉘어 뛰어가는 30여 명의 가병을 보고는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맹우는 당혹스러웠다.

“뭐야? 안 싸워. 그럴 거면 뭐 하러 달려왔어?”

시야에 보이는 30여 명의 가병이 움직이는,  셋으로 나뉘어 우르르 뛰어가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몇몇 검병이 맹우를 쳐다보았다.

“백인장님. 놈들이 도망칩니다.”

“공격하죠.”

“단숨에 쓸어버리시죠. 네에.”

검병들은 자신만만했다.

수적으로도 앞서고, 지난 몇 년 동안 매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터라, 개개인의 무력과 사기가 높다.

맹우는 귀에 들린 검병들의 외침에 잠시 고민했다.

칠까?

말까?

선뜻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병들이 세 무리로 나뉜 것이 신경 쓰였다. 쫓는다면 휘하 검병들을 가병들처럼 셋으로 나누거나, 셋 중 한 무리를 뒤쫓아야 한다.

비록 10여 명을 통솔하는 십인장들이 있긴 하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다.

행여 검병들을 셋으로 나누어, 동일하게 셋으로 나눈 가병들을 추적하다가 막심한 인적 손실을 입는다면.

한 무리를 뒤쫓다가 다른 두 무리가 좌우에서 매복 공격을 해온다면.

맹우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몇 가지 경우의 수에 고심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하급 지휘관이 절실했다.

‘젠장! 이래서 나리께서 그토록 하급 무장들을 챙기신 거구나.’

맹우는 지난 몇 년 동안 이민호가 십인장을 비롯한 하급 무장들이 중요하고 중요한 인적 자산이라는 것을 귀가 따갑도록 언급한 이유를 깨달았다.

맹우는 몰랐지만, 이민호는 부사관 격인 십인장과 백인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당한 신경과 관심을 쏟았다.

예의 몇몇 검병이 재차 맹우에게 소리쳤다.

“공격 안 하십니가?”

“이대로 놈들이 달아나는 것을 마냥 두고만 보실 겁니까?”

“백인장님.”

맹우는 검병들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우린.”

“…….”

“배가 포구에 정박할 동안,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우리의 임무야.”

검병들이 움칫하더니 반박했다.

“백인장님. 그렇다고 적이 눈앞에서 달아나는데. 가만히 있습니까?”

“까짓 얼마 되지 않는데. 그냥 치죠.”

“우리가 꿀릴 것. 없잖습니까? 백인장님.”

“시끄러워.”

맹우는 검병들을 돌아보며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검병들은 움찔거리며 맹우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 임무만 달성하면 돼. 어설프게 공을 탐하다 자칫 큰 손실이라도 입는 날에는 나리가 가만히 계실 것 같아!”

맹우의 말에 검병들은 몸을 움츠리며 심중 공감했다.

‘하긴.’

‘나리라면 가만히 안 계시지.’

‘불필요한 인명 손실은 극도로 싫어하시지. 게다가 임무도 완수하지 않은 채 손실을 입는다면.’

‘모, 목이 열 개가 있어도 모자라.’

검병들의 얼굴에 두려움이란 감정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들의 모습에서 이민호가 평소 어떻게 수하들을 대했는지 그 일면이 엿보였다.

10 장

1백여 척의 배가 포구에 닿을 내렸다.

철그렁철그렁.

무거운 쇳덩이가 수면을 뚫고 해저로 가라앉았다.

첨벙첨벙.

수면에서 크고 작은 물기둥이 치솟았다.

각 배에서 포구에 판자가 내려지고, 1천여 명에 이르는 이민호의 군병들이 차례대로 내렸다.

군병들은 포구에 내리자마자 신속히 대열을 갖췄다.

타이라노 번의 좌우에 있는 사토시와 키소 번으로 오용섭, 장갑윤, 이웅, 정상모를 보냈다.

지금쯤이면 사토시와 키소에 닿았을 것이다.

난 주변에 서 있는 이들을 돌아보았다.

묵, 혹두, 백아셈, 나 영감, 황곤, 오승록. 변재일, 맹우 등.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난, 내가 생각하는 바를 빠르게 설명한 후 명령했다.

“혹두, 황곤, 변재일, 맹우는 각 200여 명의 군병을 거느리고 나와 함께 간다. 무장은 검과 노를…….”

“예.”

황곤, 변재일, 맹우가 동시에 대답하며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남은 400여 군병 중 300명은 오승록이 이끈다. 오승록.”

“예, 나리.”

“포구와 마을을 이 잡듯이 뒤져, 값이 나가는 것은 몽땅 다 빼앗아 배에 실어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나리.”

오승록의 대답을 들으며 난 묵, 백아셈, 나 영감을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남은 1백여 명의 군병을 데리고 보급을…… 언제든지 출항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춰라.”

“예에. 나리.”

“네에.”

묵과 나 영감의 대답을 들으며 난 백아셈을 보았다.

“아셈.”

“예, 주군.”

백아셈은 머리를 숙였다.

“지금은 물러나지만 장차 내가 하고자 하려는 일을 하려면 이곳 왜에 교두보가 필요하다. 그러니 다시 올 때를 염두에 두고 배를 정박시킬만한 곳이 있는지 주위 지형을 살펴라. 그 때는 이곳에 일정 군병을 상주시킬 것이니. 그 점을 염두에 두도록 해라.”

“예에에. 주군. 반드시 거점으로 삼을만한 곳을 찾아내겠습니다.”

“좋아. 모두들 신속히 움직여라. 곧 타이라노 번이 우리의 상륙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전에 핵심 요충지와 군사상 필요한 지형을 우리가 선점해야 한다.”

“예에에에에.”

난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뒤돌려 정박한 배들을 보았다.

머릿속에서 황산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저는 배만 책임집니다.’

얄미운 작자 같으니라고.

화가 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거느린 자들 중 가장 필요하고 아까운 자를 꼽으라면 단연코 황산해다.

배를 운용하고 수전에 능한 수군 장수 출신인 황산해는 내게는 금쪽이나 마찬가지다.

최충헌의 사람이라 내 말이 잘 먹혀들지 않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려, 포구 너머에 마을을, 그 너머에 있는 토성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공격해서 점거해야 할 곳이다.

‘아까워. 정말 아까워.’

포구와 마을 그리고 토성을 꼭 갖고 싶은데. 장기간 있을 채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계속 상주하며, 차지한 곳을 방어할 여력이 없다.

‘휴우우.’

괜한 욕심은 항시 탈을 부르는 법.

냉정하게 버려야 할 때는 버려야 한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그 미련이 결국 내 발목을 잡고, 날 패배라는 이름의 늪으로 끌어당길지도 모른다.

“으음.”

난 무거운 신음을 흘리며 작은 이채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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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카에서 타이라노 번의 본성, 야스라가 성까지의 거리는 말을 달릴 경우 한 시진 남짓이다.

나리시몬이 토성에서 보낸 전령은 야스라가 성에 당도하자마자 가로 하야마에게 안내되었다.

일자의 긴 툇마루에 우뚝 선 하야마는 발치에 무릎 굻은 전령의 말에 소스라쳤다.

“뭐, 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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