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71화 (17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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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우는 힐끗 뒤에 있는 마을을 보았다.

조금 불안했다.

뒤에 있는 마을에서 자신이 지휘하는 검병들의 배후를 공격하면 앞뒤에서 협공 받을 수 있다.

그 점을 우려하는 맹우의 시야에 마을을 빠져나오는 변재일과 20명의 검병이 보였다.

변재일은 멈춰 서서 왼손을 머리 높이 들었다.

휘, 휙.

좌우 양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배후는 걱정하지 마라!

마을은 우리가 장악했다!

그런 무언이 담긴 손사랫짓은 사전에 약속된 수신호였다.

맹우는 변재일을 쳐다보며 왼손을 머리 높이 들었다.

꽈악.

힘주어 왼손을 말아 주먹 쥐었다. 그 역시 사전에 약속된 수신호다.

OK.

맹우는 내심 안심하며 일렬로 늘어선 검병들을 쳐다보았다.

씨익.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웃었다.

“아그들아. 점심은 든든하게 먹었냐?”

장난조였다.

검병들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들의 상관이다. 그리고 점심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다른 놈들이 배에서 점심을 먹을 때, 따로 배에서 내린 단주端舟에 옮겨 탔다.

점심을 먹지 못했음은 불문가지다. 졸졸 굶은 채 포구의 좌우로 기동機動했다.

검병들은 입을 꾹 다물고 슬며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어?”

맹우는 어리둥절했다.

수하들이 아무 대답이 없어 재차 물었다.

“야아아아. 밥 든든하게 묵었느냐고?”

맹우의 외침에 수하들은 발끈했다.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우리들이 점신 안 먹은 거. 뻔히 다 알고 계시면서 그렇게 묻는 저의가 뭡니까?”

“백인장님. 어디서 뭘 보고 폼을 잡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러는 거 아니십니다.”

“배고파 디지겠는데. 졸졸 굶은 채 목숨을 걸고 왜놈들과 싸우는 마당에 그런 말이 지금 나오십니까?”

“백인장님. 그걸 개폼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얼른. 싸게 싸개 옆으로 비키십시오.”

수하 100여 명의 검병.

그들의 다소 성난 외침에 맹우는 당황했다.

‘어, 어. 이게 아닌데.’

수하들 대부분 유랑걸식하며 고려 전국을 돌아다니던 유랑민들이다.

대개 천민들로 일자무식이며 성격이 제 멋대로다.

불과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험악하기 그지없는 훈련을 시켜 정예병으로 양성했다고 해도 인간으로서의 본바탕은 어쩔 수 없다.

간만에 그림 한 번 그려보려다 성난 부하들 때문에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맹우는 험상궂은 인상을 썼다.

“빌어먹을 놈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크큭.”

“킥킥킥.”

수하들이 재미있다고 저마다 웃었다.

그 때.

“옵니다. 백인장님.”

한 검병이 맹우의 어깨 너머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 사이.

맹우가 명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검병들은 저마다 손에 쥔 노를 힘주어 잡으며 얼굴 높이로 들었다.

사격 자세를 갖추는 수하들을 보곤, 맹우는 여유롭게 뒤돌아섰다.

시야에 나리시몬이 이끄는 30명의 타이라노 번의 가병이 보였다.

“전투 준비!”

맹우는 목청이 터져 나가라 고성을 지르며 오른손에 쥔 검을 머리 높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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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시몬은 왼손에 검집을 쥐고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정지!”

가병들은 일제히 멈춰 서며 흠칫흠칫거렸다.

시야에 검병들이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추 백여 명은 될 것 같다.

자신들 수가 30여 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한 가병들은 꺼림의 얼굴빛을 띠었다.

주춤주춤.

겁먹은 듯 동요하기 시작했다.

나리시몬은 그 사이 최소 100미터는 넘을 거리에 서 있는 검병들을 보며 얼굴을 경직했다.

“으음.”

다문 입술 시이에서 묵직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수적으로 열세야.’

나리시몬은 마주한 맹우가 이끄는 검병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수적 열세라는 약점을 극복할만한 것이 자신의 수중에는 없었다.

이대로 공격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휘하에 거느린 가병 30여 명이 모두 몰살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수적 열세를 만회할만한 것이 없는 한, 정면 승부는 패배를 자초하는 것이다.

나리시몬은 냉정하게, 빠르게 생각했다.

‘현시점에서 최선은? 아니 차선은?’

돌격과 같은 승부는 걸 수 없다. 휘하에 거느린 수하 가병은 겨우 30여 명이다.

가로 하야마님으로부터 받은 명은 포구에 적이 상륙하면 본성 야스라가에 알리는 것이며, 최대한 버텨 시간을 버는 것이다.

나리시몬은 후회했다.

‘망할!’

토성에서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적이 나타났다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 가장 유리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토성을 텅텅 비워두고, 이렇게 나와 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가진 장점을 버리고, 단점으로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하는 우,

‘자기 과신이야.’

나리시몬은 멍청한 졸장들의 전형적인 행보를 자신이 밟았다는 후회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토성으로 퇴각한다. 토성에 기대 적을 상대한다!’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형형한 안광을 번득였다.

퇴각!

나리시몬의 머리에 그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 뒤돌아서서 뛰어가면 보나마나 마주한 검병들이 바짝 뒤따라 붙어,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대형을 갖추고 서서히 물러날 경우 적들이 수적 우세를 염두에 두고, 퇴각하는 자신들을 일거에 섬멸하기 위해 총공격해 올 가능성이 있다.

‘가장 좋은 퇴각 방법은?’

나리시몬은 냉철하게 생각하며 차가운 한광을 반짝였다.

실로 탁월하기 그지없는 판단력이었다.

타이라노 번에도 사람은 있었다.

지위 고하를 따지고,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진다면 인재라 불리는 사람은 얻지 못한다.

인재가 어디 나 인재요. 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던가?

하급 무장 중에서, 일개 병졸 중에도 인재는 있는 법이다.

그 인재가 빛을 발하려면 인재의 진가를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이가 반드시 필요하다.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탁월한 눈을 가진, 용병술의 대가.

타이라노 번의 가로 하야마가 가신들 중 젊은 축에 속하는 나리시몬에게 가병 50여 명을 주고, 타이라노 번의 대외 통로이자 숨통이라고 할 수 있는 하바카를 맡겼다.

출중하고 뛰어난 인재 등용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나리시몬은 그런 하야마에게 부응했다.

아직 젊어 경험이 일천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리시몬은 인재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리시몬은 뒤돌아섰다.

시야에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르는 가병들이 보였다.

‘이런.’

나리시몬은 입술을 깨물며 양손을 힘주어 쥐었다.

꽈악.

고개를 뒤돌려 서 있는 검병들을 흘낏거렸다.

‘빨리.’

마음이 급했다.

나리시몬은 가병들을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토성으로 돌아간다. 모두들 세 무리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어라. 최대한 빨리 토성으로 돌아가 집결한다. 무질서하게 뛰면 적이 곧바로 뒤쫓아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세 무리로 나뉘며 적은 의아해 우리를 뒤쫓는 것을 늦출 것이다. 그 사이 우리는 이곳을 벗어나 토성으로 간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하!”

가병들은 소리쳐 대답하며 안도의 얼굴빛을 띠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검병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심적으로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나리시몬이 토성으로 퇴각하라. 명령했다. 그 때문에 가병들은 구사회생의 기쁨에 옅은 안도의 얼굴빛을 띠었다.

나리시몬은 행여 이 일로 사기가 떨어질까? 염려했다.

“우린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수적 열세에 토성으로 퇴각하여 적을 맞아 분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알겠느냐?”

“하! 나리시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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