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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좌우의 군병들이 포구 중앙을 목전에 두었을 때쯤, 포구 중심을 기준으로 좌우로 듬성듬성 자리한 망루에 서 있던 서너 명의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이 좌우를 번갈아보았다.
“…….”
그들은 입을 찢어져라 크게 벌렸다.
그 때문에 입 안쪽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자그마한 살덩이인 목젖이 한 눈에 다 보였다.
눈을 왕방울인 양 크게 뜬 타이라노 가병들은 황망해했다. 시야에 보이는, 대략 100여 명은 될 듯한 좌우의 군병은 매우 빠르게 포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복색의 군병들에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은 영문을 몰라 했다.
어리벙벙한 얼굴로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들이 뒤늦게 이상함을 알고 망루에 달려 있는 종을 쳤을 때는, 이미 200여 명의 군병이 포구 중앙에 다다른 후였다.
데데데데데뎅.
다급히 치는 종소리가 포구에 메아리쳤다.
그 사이.
검병대장 이웅의 수하인 두 백인장 변재일과 맹우가 이끄는 200여 명의 군병, 검병들은 신속히 흩어졌다.
200여 명의 검병은 20여 명씩 나뉘어 각자 부여받은 명령에 따라,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포구에 정박 중인 몇몇 배들에 뛰어올라, 신속하게 포구에 정박 중인 배들을 점거하는 한편. 곧 포구로 들어올 우군의 배를 댈 정박지를 확보하려 하였다.
맹우가 이끄는 100여 명의 검병은 곧바로 포구 너머에 있는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그 사이.
변재일이 이끄는 100여 명의 검병은 포구 곳곳으로 흩어져 번을 서거나 순찰 중인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을 공격했다.
“크아아악.”
“으아악.”
곧바로 교전이 벌어졌다.
검병들은 눈에 띄는 족족 타이라노 가의 가병들에게 내달렸다.
가병들에게 이르자마자 단번에 맹공을 퍼부어 척살했다.
채채채챙.
병기가 부딪치는 울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잠깐 울리고 이내 잠잠해졌다.
변재일은 몇몇 검병들을 거느리고 포구 곳곳으로 뛰어다녔다.
“최대한 빨리 포구를 장악해야 한다. 포구가 장악된 즉시 마을로 진입해라. 만약을 대비해 마을을 2차 방어선으로 삼아야 한다. 서둘러라.”
“예에에.”
“알겠습니다.”
검병들은 타이라노 가의 가병들을 일소하며 매우 빠르게 포구를 장악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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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소리야?”
나리시몬은 낮잠 자던 방을 나와 마루에 섰다.
뜰에 서 있는, 포구에서 급히 뛰어온 한 가병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허, 헉. 나리시몬님. 생전 처음 보는 군병들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포구가 그들 때문에.”
가병을 기습을 받았고, 포구를 잃고 있으며, 조만간 파악되지 않은 적들이 마을로 들어설 것이라는 걸 알렸다.
“뭐라?”
나리시몬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영문을 몰라, 진한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나리시몬님.”
가병은 빨리 출전해야 한다는 것을 나리시몬에게 알렸다.
나리시몬과 주변에 서 있는 몇몇 가병들은 몹시 황망해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난데없는 사태에 대응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나리시몬은 급히 주변에 서 있는 가병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집합시켜라. 포구로 갈 것이다.”
“예에.”
가병들이 일제히 머리 숙여 대답했다.
나리시몬은 급히 뒤돌아서며 방으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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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시몬은 갑주를 입고 다시 나와 토성의 성벽에 올랐다.
한편.
토성의 성문 앞으로 남아 있던 30여 명 남짓의 타이라노 번의 가병이 모여들었다.
가병들이 대열을 갖추는 사이, 성벽에 올라 포구를 주시하던 나리시몬은 크게 놀랐다.
“허억. 저, 저 배들은.”
시야에 바다에서 포구로 들어오는 백여 척이 넘을 듯한 선박들이 보였다.
못해도 수백여 척은 될 것 같아 말을 잊었다.
“…….”
평소 숱하게 봐온 배들보다, 눈에 보이는 배는 그 크게 현저히 차이가 났다.
더 컸다.
수면을 가르며 쾌속하게 포구로 들어서며, 앞쪽으로 흩어지는 선박들은 질서정연했다.
“군선!”
나리시몬은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선박들이 일반 상선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무엇보다도 배의 모양이 왜국의 배와 달랐다.
특히나 돛의 모양이나 크기 그리고 길이가 차이가 나,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나리시몬은 눈을 깜빡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선가 봤어.’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히 본 적이 있다.
일순.
“허어어어어억.”
나리시몬은 숨넘어가는 음성을 삼켰다.
“고, 고려?”
틀림없다.
예전에 두어 번 고려로 출정했었다. 그 때 보았던 고려의 군선이 틀림없다.
한바탕 해안가 마을을 휩쓸고 약탈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빼앗아 배에 실었을 때, 돌연 나타나 자신과 동료들이 탄 배를 공격했던 고려 군선들.
나리시몬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급히 고개를 뒤돌렸다.
시야에 보이는, 평소 토성 성벽에서 번을 서던 가병들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 가병에게 소리쳤다.
“고려군이 쳐들어 왔다고 당장 야스라가 성에 알려라.”
“예에에에?”
명령을 받은 가병은 기겁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이 엄청 놀란 모양이다.
“이!”
나리시몬은 가병이 멍하니 자신을 보자 지체 없이 고성을 질렀다.
“뭘 하고 서 있는 것이냐? 당장 본성에 고려군이 쳐들어왔다고 알리라는데.”
“예에에에.”
가병은 급히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뒤돌아서며 나는 듯이 뛰어가는 가병을 지켜보던 나리시몬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오래전부터 몇몇 타이라노 번의 가신이 고려에서 군사를 보내올지도 모른다 말하며 약탈 행위의 중단을 전대 번주에게 건의하였다.
하지만 번주는 그럴 경우 번의 백성들이 굶어죽을 수 있음을 들어 거부했다.
“고려는 우리가 있는 이곳까지 몰고 올 배도, 그럴 의지도 없다.”
전대 번주는 나름 확신에 차 그렇게 대꾸했다.
그 이후 고려는 이렇다 할 대처를 하지 않았고, 아닌 말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 형국이 지속되었다.
그런 이유로 고려가 타이라노 번에 군사를 보낼 수도 있다는 의견은 그저 공연한 기우로 치부되었다.
다들 무시해버렸다.
한데 지금 고려가 군사를 보내왔다.
“하필이면 지금!”
나리시몬은 포구로 들어와 그득 채우는 수백여 척의 선박을 보며 안타까움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시마, 사토시, 키소, 모리나가.
그들 모두나 일부가 하바카 포구를 기습 공격, 점거하는 상황을 우려하여 가로 하야마가 자신과 50여 명의 가병을 토성에 배치하였다.
불과 50여 명으로 오시마, 사토시, 키소, 모리나가 번의 가병들을 상대로 싸워 이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0여 명의 가병은 기본적으로 포구와 마을의 질서 유지 및 유사시 본성인 야스라가에서 원군이 올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해 버티는 것이 주 임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사전에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고려군과 맞서 싸우게 될 줄이야.
나리시몬은 황급히 뒤돌아서며 뛰었다.
지금쯤 성문 앞에 30여 명의 가병이 모여 있을 것이다. 포구를 겨우 30여 명으로 지킬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건 적이 쳐들어 온 이상 맞서 싸워야 한다.
성문을 향해 뛰는 나리시몬의 얼굴이 굳은 결의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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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장 맹우와 그가 이끄는 100여 명의 검병은 마을을 일직선으로 가로질렀다.
창졸간에 마을을 빠져나오며, 마을을 등지고 섰다.
사전에 혹두가 전한 정보를 인지한 맹우와 검병들은 토성에서 움직일, 나리시몬이 지휘하는 30여 명의 타이라노 번의 가병을 맞아 싸울 태세를 갖췄다.
맹우는 뒤돌아서서 휘하 검병들에게 일갈했다.
“장사진!”
“예에.”
검병들은 씩씩한 목소리로 소리쳐 대답하며 횡으로 길게 늘어섰다.
맹우는 검병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자, 재차 소리쳤다.
“연발노.”
검병들은 말없이 손에 쥔 검을 땅에 꽂기 시작했다.
푸푸푹.
그리곤 잽싸게 손을 놀려 등에 짊어진 노와 총 6여 개의 작은 단전短箭을 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