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69화 (169/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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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공격하는 자보다 수비하는 자가 유리하다는 것을, 전쟁이 일어날 경우 자국 내에서 징병이 원활함을, 치고 들어온 왜구가 고려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백아셈은 제장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우리가 철광과 은광을 차지하려면 점령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타이라노 번을 우리가 차지하고 들어앉아야 하는데. 현재 우리 병력으로는 타이라노 번을 점령하고 방어하는 한편…… 병참선이 너무 길어집니다. 고려에서 타이라노 번을 잇는 병참을 유지하기에는, 우리에게 그럴 여력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해서.”

백아셈이 제장들에게 몇몇 어려움을 설명하는 사이, 난 슬그머니 옆으로 돌아서며 선실 문으로 향했다.

살며시.

발걸음 소릴 죽이고, 다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묵의 왼쪽을 지나쳤다.

“나. 소피 좀.”

넌지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나리.”

묵은 대수롭지 않게, 별 것 아니라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 사이.

“애초에 우리가 지난 몇 년 동안 출정을 준비한 이유가 타이라노 번을 점령하기 위해섭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와 같은…….”

몇몇 제장들이 애초 들은 것과 달라진 전술 변경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백아셈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닙니다. 뭔가 잘못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 출정의 전략戰略은 해랑적입니다.”

백아셈의 말에 대두분의 제장들은 당황하며 눈을 치떴다.

“뭐요?”

“그럼, 우리가 왜구처럼.”

“우리더러 해적질을 하라 그 말이오.”

반발했다.

무장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와 백하셈이 말한, 내가 하고자 하는 바 사이에는 꽤 괴리가 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출정의 목적인 전략을 적당히 둘러댔다.

“나…….”

“나리.”

오용섭을 비롯한 제장들은 이민호를 쳐다보았다.

?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 있었던 이민혼데.

“어라.”

“언제?”

“어디 가신 거지?”

제장들은 당혹스러워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모습에 묵이 말하고 나섰다.

“조금 전에 소피보러 나가신다고 하셨어요.”

오용섭과 이웅은 단번에 알아챘다.

이민호가 곤란한 상황을 미리 알고는 내뺐다가는 것을.

혹두는 선실 문을 돌아보며 고함쳤다.

“얍삽한 나리이이이이.”

그 고함에 제장들은 얼굴을 이지러뜨리며 서로 고갤 돌렸다.

“치사한데.”

“젠장. 여기까지 와서 뭘 어쩌겠어?”

“완전 당했어.”

“쩝. 별 수 없지 뭐.”

제장들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현실에 자신들을 맞추려했다.

“끄응.”

오용섭은 앓는 소리를 냈다.

이웅은 슬쩍 오용섭을 곁눈질하며 잔미소를 머금었다.

“어째. 나리다우신데요.”

“체.”

오용섭은 가볍게 대꾸하며 제장들을 돌아보았다.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다들 이젠 알 거다. 그러니.”

제장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의중을 밝혔다.

백아셈은 돌아가는 분위기에 난감해했다.

‘이게 다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차분하고 무거운 군략 회의는 찾아볼 수 없다. 마치 무슨 애들 전쟁 놀음을 하는 듯 장난기가 만연했다. 그에 여간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9 장

군략 회의가 있던 날 아침.

타이라노 번의 번주 류켄이 가병 1천여 명을 이끌고 본성 야스라가やすらか를 나섰다.

가로 하야마를 비롯한 몇몇 가신들이 만류하였으나 류켄은 듣지 않았다.

“철광과 은광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오시마 번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이대로 모리나가 번에 철광과 은광을 빼앗긴다면 우리는 호조 오시마와 협상도 못해 보고.”

종국에는 우리 타이라노 번이 사토시, 키소, 모리나가. 이 세 번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흡수될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모리나가 번에 먹힐 것이다.

류켄의 그와 같은 말에 하야마는 반박하지 못했다.

일련의 모든 일의 배후에는 오시마 번이 있다.

타이라노 번이 살아남고자 한다면 오시마 번의 번주 호조 오시마의 밑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럴 경우 타이라노 번의 번주 류켄의 가문, 타이라노 가의 미래를 위해 몇몇 보장을 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오시마 번에 내놓을 수 있는, 협상 조건에 해당되는 철광과 은광은 필수다.

하야마는 그 점을 은연중에 언급한 류켄의 출정에 머릴 숙일 수밖에 없었다.

빠드득.

노구의 하야마는 이를 갈았다.

몇 해 전 타이라노 번은 다카요시가 이끌고 간 1,300여 명의 전멸로 활기를 잃고 절망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 때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비쳐 희망이라는 불씨를 지폈다.

철광과 은광의 발견은 이젠 살았다는 안도와 타이라노 번을 왜국 제일의 번으로 키워보자는 뜨거운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사토시와 키소. 두 번과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었어,”

하야마는 코와산을 향해 떠나가는 류켄과 가병 1천여 명을 바라보며 진한 후회에 가슴이 미어졌다.

운송비의 절감과 손쉽게 번의 백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양곡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만 철과 은으로 사토시, 키소 두 번과 거래했다.

츄코쿠를 지배하는 맹주 호조 오시마.

사토시, 키소, 모리나가.

세 번이 이미 오래 전에 호조 가에 굴복, 머리를 숙이고 호조가의 그늘로 들어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호조 가와 천황 가의 암투에 양측을 오가며 유리한 측에 붙으려 잔머리를 굴린 대가가 실로 너무 뼈아팠다.

“진작. 우리가 호조 가의 그늘로 들어갔더라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야마는 땅을 치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야마님. 저쪽을.”

곁에 서 있는 한 중년 가신의 낮은 말에 하야마는 흠칫거리며, 좌측을 돌아보았다.

멀리 성벽에 딸 나나에가 류켄의 아들 아키마루를 가슴에 안고 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보였다.

‘나나에.’

하야마는 마음속으로 딸을 부르며, 가구한 딸의 삶에 아버지로서 안타까워했다.

타이라노 가에 남아 있는 가병은 불과 500여 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 200여 명이 영지 각지로 흩어져 질사와 치안 유지에 임하고 있다.

키노시타가 패배함으로서 분노한 류켄이 가병 1천여 명을 이끌고 코와산으로 이동하며, 가신인 대부분의 무장을 데리고 갔다.

번주의 친정인 까닭에, 타이라노 번의 미래를 위한 일전이기에 가진 모든 것을 코와산에 있는 철광과 은광에 쏟아 부은 것이다.

진정한 위험은 바다에서 오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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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카.

타이라노 번에 있는 몇몇 포구 중 가장 규모가 큰 포구다.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이 아무 지장 없이 포구 내로 들어올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군선과 상선을 막론하고 모든 배가 하바카 포구로 모여든다.

포구의 지세가 우측으로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져 있는 덕분에 풍랑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게다가 포구 안쪽 지형이 완만하고 새가 날개를 앞쪽으로 편 듯 하여 배를 정박시킬 공간이 넉넉했다.

다수의 선박이 정박하기에 왜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최적의 조건을 가진 하바카 포구는 갓 정오가 지나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포구의 치안과 질서를 담당하는, 돌아가며 번과 순찰을 반복하는 50여 명의 가병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일정에 안일이라는 감정에 젖어 있었다.

50여 명의 가병을 통솔하는 타이라노 번의 가신 이쯔모 나리시몬은 거주지이자 가병들의 진지인,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토성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토성 성벽에서 포구를 내려다보며 한 눈에 포구와 너머에 있는 마을이 들어온다.

포구 좌우는 바다를 향해 늘어진 사선의 능선 형태로 해송림이 잔뜩 들어서 있다.

한데…….

난데없이 해송림을 뚫고 일단의 군병이 포구 좌우에 나타났다.

“…….”

군병들은 일절 소리내지 않았다.

입에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만든 방어레를 물고 미친 듯이 몇몇 배가 정박한 포구를 향해 내달렸다.

타다다닥.

좌우에서 포구를 향해 내달리는 군병들의 존재를 알아챈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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