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67화 (167/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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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셈은 날 보며 웃었다.

빙긋.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제 아버님은 고려에 정착하신 상인이십니다.”

“그래서?”

“상인은 상인과 친합니다.”

“응?”

난 눈을 위아래로 껌뻑거렸다.

‘아하.’

조금 알 것도 같다.

예를 들며 미국 해병대는 자국 육군보다, 그러니깐 해병대라고 할 수 있는 소련 육전대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유사시 서로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워야 하는 적이지만, 평화 시에는 동종의 업무에 종사하는 동료로 여긴다.

동일한 해병대이기에 애환이라고나 할까? 서로 일종의 동질감을 공유하는 까닭에 사이가 남다르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 상인이 다른 상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백아셈은 날 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장인이신 조자개 어른을 잘 압니다. 그 분을 통해…….”

난 오른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체.’

전날 조자개에게 준 책을 백아셈이 읽은 눈치다.

“그런데 어떻게 김경손 장군과 연결된 거지?”

“제 아버님이 상인이셨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가만. 그럼 자네도.”

“네.”

백아셈이 머리를 끄덕였다.

“고려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먹고 살려면 생계 수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고만고만한 장사를 하게 됐죠. 그 덕분에 김경손 장군과 작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 인연에 기대 나리를 만나게 된 겁니다.”

“됐어.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 안 해도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 잡았어. 그건 그렇고 이번 출정의 전술 말인데.”

“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네 의견을 한 번 말해봐.”

“네.”

백아셈은 대답하며 사견을 전제로 심중 생각하는 바를 입에 올렸다.

난 가만히 백아셈이 말하는 것을 귀담아들었다.

‘크큭.’

괜찮다.

간만에 좋은 부하 하나 건졌다.

최고 지휘관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사람인 까닭에 결점이 있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으며 부족한 점이 있다.

그것을 참모들이 채워주고 메꿔줘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조직이 하나의 유기체로 녹아들어야 최적의 지휘 체계가 형성된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생사를 걸고 승패를 결하는 전장에 설 수 있다.

지휘부 하나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전장에 서면…….

백전백패 밖에 없다.

백아셈의 말이 끝났다.

난 거침없이 말했다.

“좋아. 이번 출정의 모든 전술적인 부분은 자네에게 일임하지. 어디 마음대로 3천여 가병군을 운용해 봐.”

“예에에에에!”

백아셈은 크게 놀랐다.

난 웃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자네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한 번 발휘해 보란 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가, 감사합니다. 나리.”

백아셈이 머리를 숙였다.

난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쩝. 빌어먹을. 여주 서가가 가진 5천여 가병이 있었음 얼마나 좋아.”

내 중얼거림에 백아셈이 머리를 들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주군. 그렇지 않아도.”

백아셈은 내게 세 가지를 제안했다.

난 그 중 한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두 가지는 거부했다.

“안 돼!”

내가 강경해서인지 백아셈이 재차 말했다.

“주군. 가장 현실적인 방안입니다.”

“서풍은 내게 처남이 돼. 그런 식으로는.”

난 대꾸하며 머리를 가로 내저었다.

쩔레쩔레.

이어.

“절대 안 돼. 안 되고말고. 내가 아무리 병력 부족으로 속이 타들어가는 상황이라고 해도 결코! 왜놈들을 내 부하 장졸로 받아들일 수는 없어. 난! 왜놈들과는 이 세상에서 공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알겠나? 두 번 다시는 그런 말하지 말라고.”

난 엄청 화났다.

어디서!

뭐, 점령전으로 전술 방향을 수정하여, 왜놈들을 양성하여 내 가병군에 소속시키라고?

에라이.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 것이 낫지.

백하셈은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군. 제가 말씀 드린 것을 실행하면 단기간에 많은 가병을 휘하에 둘 수 있습니다.”

“하셈.”

“네. 주군.”

“상인이지?”

“네. 그렇습니다만.”

“그럼. 내가 하나 묻지.”

“말씀하십시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말이야.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이나 딸을 죽인 자와 거래할 수 있겠어.”

“그, 그건…….”

백하셈은 당황했다.

난 눈을 반짝이며 백하셈을 다그치듯 말을 이었다.

“그것과 똑같…… 아니지 그 이상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휴우. 알겠습니다. 주군. 그리 완강하게 거부하시니.”

“내일 아침에 휘하 제장들을 불러 모을 테니깐. 그 자리에서 변경한 전술에 관해 설명해줘. 제장들이 이해하지 못한 전술을 절대 실행할 수 없으니깐 말이야.”

“네. 주군. 명하신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난 살짝 웃었다.

“기왕 말하는 거.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쉽게 말해. 알겠지.”

“네. 명심하겠습니다.”

백하셈은 대답하며 머리를 숙였다.

난 백하셈을 보며 흐릿한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굴릴 만한, 일을 뜸쑥 안겨줄만한 자다.

‘히히히. 아주 왕창 맡겨야지.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이 조금은 줄어들겠지. 그렇게 되면 이전보다 내가 더 편해질 테고.’

난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난 힘든 거 싫어. 편한 게 좋다고. 킥킥.’

흥미진진하다.

백아셈이 어떤 전술로 내 전략을 수정할지, 제장들이 백아셈의 전술을 어떻게 받아들이지.

‘어쩜.’

이번 기회에 휘하 제장들의 사고 능력을 훔쳐보는 것도 그리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본래 군인이란 특정 형태에 인간을 맞추어 찍어내듯 대량 생산하는 표준 모델과 같아서 독특하고 특출하며 창의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창 먼 부류다.

그래서 군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소모품으로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시라면 몰라도 전시에 군인은 인간이 아니다. 그저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과 같다.

‘전시에 군인을 인간으로 보면 지휘 따윈 못하지.’

난 시선을 숙여 바닥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매우 부산스러웠다. 오후쯤이면 목적지 하바카에 이르는 까닭에 각 배는 공격 준비로 매우 바빴다.

난 휘하 제장들을 지휘선으로 소집했다.

군략軍略을 논의하는 회의실로 쓰이는 지휘선의 가장 큰 선실에 오용섭을 비롯한 제장들이 모였다.

그들은 선실을 가득 채울 듯 큼지막한 원탁에 빙 둘러섰다.

“이번 출정의 전술이 대거 수정되어, 각 제장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이리 불렀다.”

난 백아셈을 그들에게 소개했다.

“얼마 전에 내가 아는 군부의 무장이 소개해준…… 부친이 대식국 상인이고 모친이 고려 여인이다. 이제 우리와 한 솔밭을 먹는 식구가 되었으니.”

차별하면 내게 디질 줄 알아.

그렇게 살짝 제장들을 협박하며 내 우측에 서 있는 백아셈을 돌아보았다.

눈짓으로 제장들을 가리켰다.

설명해줘.

그런 내 의중을 알아챈 백아셈이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백아셈은 원탁에 둘러 서 있는 제장들을 좌에서 우로 한 차례 둘러보았다.

“저는…….”

간략하게 자신의 내력을 밝히고 뒤이어 바뀐 전술을 입에 올렸다.

백아셈의 설명은 상당히 길었다.

설명이 끝나자, 다들 백아셈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묵, 혹두, 오용섭, 이웅 등.

죄다 날 쳐다보았다.

‘어라? 난 왜 봐.’

당혹스러웠다.

별안간 내게 모든 이목이 몰려, 저어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잠깐 혼란을 느꼈다.

오용섭이 나에게 말했다.

“나리. 저 자는 대체 누굽니까? 나리를 주군으로 부르는 것으로 봐서는.”

오래전부터 내 수하는 아니었느냐? 그런 물음이었다.

난 시치미를 뚝 뗐다.

“내 수하인 것은 맞아. 그리고 니들이 날 지칭하는 나리라는 말보다 주군이라는 말이 어감이 더 좋잖아. 안 그래.”

반쯤은 장난조로 대꾸했다.

오용섭을 포함한 제장들이 일순 흠칫거리며 다소 당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나리, 그리고 주군.

얼핏 듣기에는 비슷한 말로 들리지만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완연히 다르다.

나리는 내게 예속되어 있지 않다는 일종의 존칭어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군이라는 말은 내게 예속되어있다는 것을 무언으로 인정하는 말이다.

제장들은 서로 고개를 돌려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물음이 담긴 무언의 시선을 주고받았다.

단순한 말 한 마디가 제장들에게 상당한 데미지(?)를 주는 것 같아, 공연히 말 한 마디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될까? 저어했다.

제장들을 휘둘러보며 가볍게 툭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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