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66화 (16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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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난 가볍게 웃었다.

“나리. 사람을 사고파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못 됩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에?”

백아셈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은 듯, 멀거니 앉은 이민호를 보았다.

척.

이민호는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양손을 가슴으로 들어 팔짱을 꼈다.

“나도 계획을 짤 때 그 점 때문에 몇날 며칠 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고민했었어.”

“나리. 그런데 왜?”

백아셈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더니, 탁자에 있는 서책을 힐긋 쳐다보았다.

난 오른손을 들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자네. 당한 자의 분노가 뭔지 아나?”

“네?”

백아셈은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느냐? 그럼 무언의 물음이 담긴 눈으로 이민호를 보았다.

“쯧쯧. 봐하니 그게 뭔지 모르는 모양이군.”

난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얼굴빛을 띠었다.

“나리!”

백아셈이 음성을 높였다.

난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지.”

눈을 반짝이며 날 쳐다보는 백아셈에게 설명해주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두 집이 있네.”

백아셈은 설명을 시작하자 흠칫했다.

난 백아셈을 마주보며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강 건너에 있는 집은 왜고, 강 이쪽에 있는 집은 고려라고 치세. 어느 날 강 건너에 있는 왜에 흉년이 들어 그 집 식구들이 굶주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 집의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고려라는 집에 있는 가족들을 죽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먹을거리를 빼앗아 돌아갔네.”

“…….”

“고려라는 집의 가장은 그 사실을 알고 분노해 사람을 모아 강을 건넜지. 그리고 자신이 당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왜라는 집의 가족들에게 되돌려 주었네. 그럼에도 그 누구도 가장에게 손가락질 하지 않았네. 왜 그런 줄 아나?”

“나리.”

“고려라는 집의 가장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복수는 그 누구도, 세상 그 무엇도 막을 수도 막아서서도 안 되는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다. 이 말일세. 피해자의 복수는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란 말이네.”

백아셈은 뻥 찐 얼굴이었다.

“나, 나리.”

말을 더듬었다.

나는 씩 웃었다.

“우리 고려의 백성들이 지난 수백여 년 동안 왜구들에게 당한 것을 말과 글로서 표현할 수 없네. 너무 엄청나게 당했지. 그럼에도 역대 그 누구도 정당한 권리이자 신성한 의무인 복수를 하지 못했어. 그것은 역대 왕조와 왕들이 무능하고 멍청하며 띨띨했던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애민의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봐. 하지만 난 달라.”

백아셈은 강렬한 안광을 폭사하기 시작하는 이민호를 바라보며 가늘게 몸을 떨었다.

나는 힘주어 외쳤다.

“우리 고려가 당한 것을 왜에 그대로 되돌려 준다. 백배 천배 만 배. 그 이상으로 놈들에게 돌려줄 생각이야. 철저하게! 무자비하게! 말이야. 고려의 고자만 들어도 무서워 벌벌 떨며 경기를 일으키게. 나는 그리 만들 생각이야.”

백아셈은 내 말에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끼는지 한층 더 몸을 떨었다.

부르르.

몸의 떨림이 조금 전보다 거세졌다.

나는 백아셈을 응시하며 험악한 인상을 썼다.

“복수는 피해자의 권리이지 가해자의 권리는 아니야! 당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보복하는 것은 당한 선조의 후손인 우리의 권리이자 신성한 의무란 말이야!”

난 고함쳤다.

백아셈은 잠시 날 쳐다보더니 머리를 숙였다.

“휴우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도리가 없다는 속내가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8 장

잠시 뒤.

백아셈은 넌지시 계획을 입에 올렸다.

“무립니다. 나리. 철광과 은광이 탐나시는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현 전력으로 미루어 충분히 철광과 은광은 점거할 수 있습니다.”

“그래.”

난 다소 반색했다.

‘말한 보람이 있네.’

현대로 따지면 백아셈은 작전참모라고 할 수 있다.

작전을 짜, 최고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한편 관련 조언을 하는 참모 중 참모가 바로 작전 참모다.

그런 까닭에 난 혹두에게서 들은 철광과 은광에 관한 정보를 백아셈에게 말하며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밝혔다.

백아셈은 냉정하게 내가 놓치고 있는 점을 언급했다.

“나리. 점령과 점령 후 유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철광과 은광을 계속 보유하며 지킬 수 없습니다. 병력이 더 증강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3천의 가병군이 나리가 가지신 무력의 전부라면. 죄송하지만 철광과 은광의 보유 및 유지는 포기하십시오. 욕심은 늘 무리를 동반합니다. 나리. 무리는 의외의 결과를 빚고 후회란 때늦은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나리. 욕심은 늘 탈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난 침묵했다.

“…….”

가만히 백아셈을 바라보며 내심 잔미소를 머금었다.

‘후훗. 김경손이 꽤 쓸만한 자를 보내 줬는걸. 큭큭’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음에도 내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상당히 냉정하다.

자신의 감정에 휘두르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 내게 조언해주었다.

내가 화를 낼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거침없이 내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이 상당히 신선하다.

‘마음에 들어.’

난 백아셈을 응시하며 살며시 입을 열었다.

“자아, 내가 한 가지만 묻지.”

“말씀하십시오. 나리.”

백아셈이 의자에 앉은 채 머리를 살짝 숙였다 들었다.

“자네가 나라면 자네는 어떤 전술戰術을 구사하겠나?”

“예에에!”

백아셈은 크게 놀랐다.

난 느긋하게 재차 물었다.

“말해 보게. 자네가 최고 지휘관指揮官이라면 어떤 전술을 쓰고 싶은가?”

내 말에 백아셈은 상당히 당황하더니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대단하다.

백아셈은 이민호를 그렇게 생각하며 내심 미소 지었다.

이민호가 마음에 든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마치 오래 동안 거느렸던 부하처럼 거침없이 의견을 물었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전술을 밝히는 것 자체가 자신이 가진 능력의 증명이다.

백아셈은 웃음을 그치며 이민호를 보았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나리.”

“그런가?”

난 고개를 양쪽으로 살짝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 사이.

백아셈은 앉은 의자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응?”

난 면전으로 걸어와 서는 백아셈을 올렸다보았다.

백아셈은 천천히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으며, 오른손을 들어 심장이 있는 좌측 가슴에 붙였다.

“주군!”

백아셈은 음성에 잔뜩 힘주었다.

“엥?”

난 영문을 몰라, 멀거니 백아셈을 보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주군. 저를 받아주십시오.”

“흠. 받아 달라?”

“네.”

백아셈이 대답하며 간절한 눈으로 날 보았다.

“이제까지 저는 대식국 상인과 고려 여인 사이에서 태어나…… 차별을 뛰어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군께 저를 의탁하고 싶습니다.”

구구절절했다.

‘하긴 현대에도 인종차별은 엄청 심했지. 썩을!’

나도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의 백인 우월주의와 타 인종에 대한 심한 차별은 구역질이 난다.

사람을 피부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백인과 흑인이 식당에 동시에 들어가면 주인이 백인에게는 미소 짓지만 흑인에게는 인상을 쓴다고 하던가?

천천히 말했다.

“이봐. 자세를 바로 하고.”

“받아주실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주군.”

“풋. 일어나서 편하게 앉아. 난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인간 중 하나가 내 말을 안 듣는 인간이야. 알겠어.”

“아, 예에.”

백아셈은 흠칫하더니 살며시 미소 지었다. 일어나 자세를 고치며 편안하게 의자에 앉았다.

물었다.

“도대체 나와 만난 지가 얼마나 됐다고 덜컥 주군으로 섬기겠다는 건가?”

백아셈은 잠시 날 보더니, 돌연 미소 지었다.

씨이익.

난 백아셈의 미소에 어리둥절했다.

“응?”

뒷머리가 찝찝해지는 것이 뭔가 께름칙했다. 미소는 그냥 미소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염두에 둔 미소 같은데.

“너.”

내 눈치를 읽은 듯 백아셈이 대답했다.

“네.”

“도대체 뭔 꿍꿍이야?”

난 의심스럽다는 속내는 거침없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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