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65화 (16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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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형형한 눈빛을 번뜩였다.

쪽발이는 감당할 수 없는 적에게는 어이없을 정도로 순종한다.

마치 전후 일본을 점령한 미국처럼 말이다.

반면 고만고만하고 한 번 붙어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적에게는 기가 막힐 정도로 오만하게 군다.

“이참에 왜놈들 씨를 한 번 말려봐.”

가슴 속에서 한 충동이 일었다.

여자들.

왜에서 여자들의 씨가 마르면 왜놈들은 이 세상에서 멸종한다.

왜냐 하면 여자들이 아이를 낳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여자들을 없애버리면.

‘기왕이면 팔아먹어야지. 그냥 죽여 버리면 힘은 힘대로 들고 손에 쥐는 것이 없잖아. 팔아치워 버리면 적어도 돈은 돈대로 벌고 여자들은 죽이는 효과를 볼 수도 있으니.’

확 이는 충동대로 한 번 해 버려.

“쩝.”

난 입맛을 다시며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요동, 만주.

머릿속에 두 지역이 떠올랐다.

요동은 대 중원 공략에 있어 필수 거점이자 전략 요충지다. 그리고 지금 여진이 장악한 만주를 사전 병탄해 둘 필요가 있다.

만약 여진이 몽고와 손을 잡고 고려의 측면이나 배후를 우회 공격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으음. 갈 길은 멀고 해야 할 것은 많은데.’

답답하다.

최충헌, 최우.

이 둘로는 안 된다. 두 부자는 자신들의 권력 강화와 유지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설혹 몽골과 일전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어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그건 곤란해.’

난 공격적 개면에서의 대 몽골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나저나 의외네. 철광과 은광이 있을지도 모른다? 흐으음.”

당연히 내가 가져야지. 그 아까운 것을 왜놈들이 가지게 그냥 내버려둘 수야 있나.

“암튼.”

우선은 무사히 타이라노 번의 하바카에 배를 대는 것이 중요하다.

각 선박에 승선한 3,000여 군병을 타이라노 번에 풀어놔야 뭘 해도 해 볼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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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으아아아아아.”

류켄은 라쿠난 산맥의 코와산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비보에 치미는 분을 이기지 못했다.

“바가아아아. 키노시타아아아!”

류켄은 키노시타 아이치를 목 놓아 불렀다.

미치기 직전이었다.

방 좌측에 있는 서너 갸의 검을 걸어둔 나무 거치대에서 한 장검을 빼들었다.

촤앙.

당장이라도 퇴각한 키노시타가 있는 라쿠난 산맥으로 향하려했다.

광인인 양 미쳐 날뛰는 류켄의 난동에 시녀들과 시종들은 소스라치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도노.”

“지, 진정하십시오.”

“이러시면 안 되십니다. 도노.”

다들 류켄을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휘이이이.

류켄은 손에 쥔 왜검을 마구 휘둘렀다.

“비켜라. 막는 자는 그게 누구든 베어 죽여 버릴 것이야.”

“꺄아아악.”

“히이익.”

시녀와 시종들은 비명을 지르며, 검을 휘두르는 류켄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우왕좌왕하며 최대한 류켄에게서 멀어지려했다.

멀 경冂자 형태의 난간은 류켄을 피해 뛰는 남녀들로 매우 소란스러웠다.

일부 시녀와 시종들은 중앙에 있는 작은 화원으로 뛰어들었다.

“도노.”

“도노.”

류켄을 부르는 외침이 그칠 새가 없었다.

그 누구도 수습할 수 없는 극심한 혼란이 난간을 뒤덮었다.

다들 미친 광인인 양 검을 휘두르는 류켄에게서 멀리 떨어지려했다.

“우와아악.”

“도노. 이러지 마십시오.”

몇몇 시종이 류켄에게 소리쳤다.

류켄의 귀에 그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현실에 류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억압될 대로 억압된 감정이 있었다.

감정은 지속적인 억압으로 분노라는 형태로 변질되었다.

변질된 감정은 키노시타의 패전으로 인해 마음 깊은 곳에서 의식이라는 수면 위로 분출되고 말았다.

화산이 폭발하듯 터지는 분노에 류켄은 잠시 이성이라는 줄을 놓고 말았다.

머리는 텅 비었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가슴을 가득 채운,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고 싶을 뿐이다.

몸도 마음도 자신의 감정에 지배당하는, 일시적인 심신상실rresponsibility 상태였다.

결국 류켄이 휘두른 검에 한 시녀가 베임을 당하며 선홍빛 선혈을 주변으로 흩뿌렸다.

“아아악.”

시녀가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내지른 비명이 주위를 떨어 울렸다.

다른 시녀와 시종들은 그저 한 가지만 생각했다.

번주 류켄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자!

가까이 있으면 죽임을 당한다!

대부분 두 상념 중 하나에 몰두했다.

그 때.

사르르.

옷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나직한 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몇몇 여인이 나타나 곧장 검을 휘두르는 류켄을 향해 걸어갔다.

맨 앞에는 이제 2, 3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은 여인.

이전에는 요시미츠 나나에로 불렸고 지금은 타이라노 나나에로 불리는 여인을 서너 명의 여관이 뒤따랐다.

여관들은 은연중에 겁먹은 기색을 띠며 류켄을 예의주시했다.

아차 하는 순간.

이성을 잃은 번주 류켄이 휘두르는 검에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여관들 심중에 짙게 깔려 있었다.

나나에는 대범했다.

흔들림 없이, 매우 차분하게 류켄을 향해 걸어가 면전에 이르렀다.

일순.

까르르르.

나나에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가 자지러지듯 웃었다. 주변으로 퍼지는 아기의 웃음에 류켄은 멈칫거렸다.

천천히 나나에를 향해 돌아서는 류켄의 얼굴에 매우 온화한 기운이 흘렀다.

“아키마루.”

가슴에서 인 부정父情이라는 감정이 류켄에게 이성을 되찾아주었다.

류켄은 미미하게 몸을 떨었다.

서서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무슨 난동을 부렸는지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무슨 추태이십니까?”

나나에의 외침이 류켄을 때렸다.

흠칫.

류켄은 잔떨림을 흘렸다.

“나, 나나에.”

“도노!”

나나에는 언성을 높였다.

류켄은 민망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나나에는 그런 류켄은 쳐다보며 매서운 눈초리를 번쩍였다.

실망이다.

자신이 선택한 남자가 이리 한심하다니.

나나에는 류켄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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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이 지났다.

수백여 척의 선박들은 타이라노 번의 하바카를 향해 넘실거리는 대해를 갈랐다.

제일 앞.

선두에서 봉황기를 휘날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지휘선에서는 연일 군략 회의가 이어졌다.

난 황산해가 제공해 주는 가장 큰 선실을 거부하고, 선실 중 가장 작은 선실을 거처로 사용했다.

“나 한 사람이 그렇게 넓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치야. 엄청 비효율이라고.”

난 그렇게 거절의 이유를 붙이며 예의 선실을 회의실로 삼았다.

기실은 내가 군에 있을 봐온, 한심하기 그지없는 한국군 장성들의 행태를 본받고 싶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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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의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로 돌아갔다.

백아셈은 자그마한 탁자에 앉아 정신없이 서책을 읽고 있었다.

난 탁자 우측에 있는, 엄지 높이의 상층 바닥에 가로누워 백아셈을 보았다.

난 오른손을 들어 머리를 받치고 다리를 뻗은 자세로 눈을 반짝였다.

심중 무척 궁금했다.

내가 이번 정벌의 목적인 전략과 획득해야 하는 전술 등등.

지난 몇 년 동안 생각하고 생각하며 적어 놓은 것을 백아셈이 보고 어떤 의견을 내놓을지, 내심 흥미진진했다.

전략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며, 전술은 그 목적에 이르는 일련의 방법이다.

꽤 시간이 지났다.

탁.

백아셈이 서책을 덮고 날 향해 돌아앉았다.

난 일어나 자세를 고치며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았다.

“나리.”

“아셈. 말해봐.”

백아셈은 날 보며 얼굴빛을 흐렸다.

“아무리 적중에서 군량미를 얻어, 아군을 배불리 먹이며 적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손자병법 중 하나라고 해도, 대상자들이 모두 양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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