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64화 (16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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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시타는 고개를 뒤돌려, 눈에 보이는 서른 중반의 무장 이노치를 보았다.

하급 무장들의 선임으로서 현대로 따지면 일종의 총참모장 격이다.

“이노치.”

“하.”

이노치는 힘차게 대답하며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들었다.

“원군을 청한 것은 어떻게 되었느냐?”

키노시타는 교전이 있기 전 2배의 병력 차이를 보고 급히 반으로 전령을 보냈다.

험한 지세에 기대 몇 번 현저한 병력 차이가 나는 모리나가 번의 가병군을 막아냈다. 하지만 상대가 교활한 너구리 미츠이이고 보니, 병력 차이가 2배나 나는 터라, 타이라노 번의 가로 하야마에게 원군을 청했다.

“아, 아직…….”

이노치는 대답하며 얼굴빛을 흐렸다.

“고노오오!”

키노시타는 크게 성내며 능선 아래를 돌아보았다.

시야에 모리나가 가병군에게 형편없이 밀리는 타이라노 가병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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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능선.

가장 앞쪽에 서 있는 키노시타와 동년배로 보이는 무장 미츠이 시게노부.

“큭큭큭.”

미츠이는 득의양양한 고소를 흘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전황은 사실상 모리나가 가병군의 승리였다.

그리 오래지 않아 방어선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타이라노 가병군의 후방 깊숙이 치고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아노.”

미츠이는 뒤돌아보자 않고 고함쳤다.

“하.”

모리나가 가병군에서 이노치와 유사한 위치에 있는 중년 무장 아노 요코바시가 대답하며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키노시타가 타이라노 번으로 보냈을 전령은 어떻게 됐나?”

아노는 미츠이의 물음에 즉각 대답했다.

“하. 그렇지 않아도 야츠이가 조금 전 전령을 모두 척살했다는 전언을 보내왔습니다.”

“요시.”

미츠이는 좋다고 대꾸하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야츠이는 자신의 조카로 이제 겨우 18살이다. 전장 경험은 이번 교전까지 3번 밖에 안 된다.

“아노.”

“하.”

“키노시타는 죽이지 말고 산채로 내 앞으로 데리고 와라. 그 놈의 면상을 내가 직접 보고 싶으니깐.”

“하.”

미츠이는 아노의 대답을 들으며 싱글벙글거렷다.

가만히 타이라노 방어선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키노시타…….”

동일한 전력이라면 병력이 많은 쪽이 이기게 되어 있다. 게다가 자신이 지휘한다.

그러니 키노시타가 당해낼 재간이 있겠는가?

“으하하하하하.”

미츠이는 고개를 하늘로 쳐들며 득의가 가득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뒤쪽에 서 있는 모리나가 번의 하급 무장들은 미츠이를 쳐다보며 잔미소를 머금기 시작했다.

이겼다!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전황은 세상 누가 와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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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 촤아아아.

수백여 척의 선박이 물살을 가르며 츄코쿠로 향하고 있었다.

제일 앞에서 다른 선박들을 선도하는 지휘선 돛에는 큼지막한 봉황기가 걸려, 불어오는 해풍에 이리저리 휘날렸다.

이층 갑판에 서서 선단을 지휘하는, 이민호가 잠시 지휘권을 위임한 황산해는 아래 갑판을 보았다.

이민호가 다른 무장들과 함께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단해.’

심중 감탄했다.

고려가 건국된 이래 왜를 정벌한다는 것은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다.

과감하고 치밀하며 담대한 자다. 그런 한편으로 걱정스러웠다.

“불과 3천으로.”

무엇보다도 군병이 너무 적다.

“으음.”

황산해는 이민호를 보며, 3천이라는 군병으로 과연 왜를 정벌할 수 있을지 심중 무척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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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에게 물었다.

“아직까지 다들 모르지.”

“네, 나리, 다들 왜를 정벌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네. 돌아올 대 탐라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좋아.”

난 묵에게 말하며 좌측을 돌아보았다.

서 있는 혹두가 움찔거리며 급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식 웃었다.

“삐졌냐?”

“죽도록 고생했는데. 손에 뭐라도 쥔 것이 없으니까요.”

혹두의 대꾸에 난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난 이번에 니들에게 전답이라도 좀 만들어줄까? 했는데. 땅이 있으면 뒷골목 애들이 배 곪을 일은 없을 테니깐 말이야. 아무리 남대가에 점포를 냈다고는 하지만 그걸로 뒷골목 식구들 모두를 먹이기에 좀 부족하지.”

“네에에에.”

혹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길게 대답하며 날 보았다.

‘어쭈.’

속이 훤히 보인다.

‘훗.’

난 실소했다.

혹두가 돈을 밝히는 것은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날 따라 다니는 동안 황도 개경의 뒷골목을 평정, 모두 장악했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었다.

아무튼 혹두는 휘하에 거느리게 된 식구가 많다. 그 입들을 모두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혹두가 돈, 돈 하는 것이다.

“나리.”

“응?”

난, 나를 부르는 혹두를 쳐다보았다.

혹두는 주저했다.

“그게 말입니다.”

“뭔데 그래.”

“미처 확인을 하지 못했어.”

혹두가 말끝을 흐렸다.

“뭐냐고?”

난 언성을 높였다.

혹두는 주춤거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진짜 전답을 주시는 거죠.”

“에라이. 싫음 말아. 지금 네 말에 주고 싶은 맘이 싹 가신다. 응.”

내가 미처 말을 다 끝내기도 전, 혹두가 빠르게 말했다.

“확실치는 않습니다. 나리. 상인으로 위장하고 타이라노 번에서 정탐하는 애들이…… 두어 해 전부터 타이라노 번에서 철과 은으로 주변에 있는 사토시 번과 키소 번에서 양곡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더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그게 여의치가 않습니다.”

“철과 은?”

혹두에게 반문했다.

“네.”

“흠.”

혹두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오른손을 들어 턱을 만지작거렸다.

옆에 서 있는 묵이 말하고 나섰다.

“나리. 혹시 타이라노 번에 철광이나 은광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가능성이 있지. 아마 철광과 은광의 존재를 철저히 감추고 있을 것 같은데.”

난 중얼거렸다.

혹두가 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힐긋 혹두를 돌아보았다.

‘훗.’

실소했다.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철광과 은광을 언급하며 내게서 철과 은을 조금이라도 얻어내려는 속내가 적나라하게 엿보인다.

“혹두.”

혹두를 쳐다보았다.

“네. 나리.”

“타이라노 번에 철광과 은광이 있는지, 있으면 어디에 있는지 등. 관련 정보를 모두 다, 최대한 빨리 알아내라. 알겠지.”

“예에에. 그런데 나리.”

난 옆으로 돌아서며 튕기듯 대꾸했다.

“니들에게 얼마간 줄 용의가 있으니. 이번 일은 확실하게. 알겠지.”

“예에에에에.”

혹두가 잔뜩 들뜬, 환하게 밝은 얼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쿠쿡.”

그 모습이 우스운지 묵이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혹두는 웃은 묵을 노려보며 인상 썼다.

“쓰으.”

여차하면 묵에게 다가가 한 대 칠 기세다. 그 때문에 묵은 눈치가 보여 몸을 움칫거렸다.

난 바다를 보았다.

사나흘이면 타이라노 번의 포구 하바카에 도착한다.

도착 즉시 거점을 확보하고 일련의 공격에 나설 것이다. 이번 출정은 정벌이 목적이 아니다.

해랑적海浪賊.

해적질이 주목적이다.

왜구가 고려에 쳐들어와 노략질을 한 것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저 악명 높은 바이킹처럼 왜의 해안가를 싹스리 할 생각이다.

사내란 사내는 모조리 다 사로잡아 중국인 노예 상인에게 팔아넘기고, 각 번의 번주들이 기거하는 성을 점령, 그들이 가진 값비싼 물건을 가져와 상인들에게 팔 작정이다.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많은 자금을 모두 몽고의 침략을 위해 키울 작정인 10만 정예병의 양성에 투입할 생각이다.

‘10만!’

그 정도 군세라면 몽고와 한 번 자웅을 결해 볼만하다. 무엇보다도 몽고는 물에 약하다.

압록강을 경계로 대치하여 강력한 방어선을 형성, 몽고의 침략을 경계하고, 내부적으로 모든 것을 전시로 돌려, 장차 몽골 초원을 병탄할 수 있는 무력을 키울 계획이다.

‘흐흐흐…… 몽고를 막는데 들어가는 전비를 왜구 놈들에게서 얻는다? 곁들여 복수도 하고 놈들에게 두 번 다시 고려로 쳐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아주 진저리를 칠 정도로 잔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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