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62화 (16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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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쩌고 어째.”

난 붉으락푸르락하며 도망치는 혹두를 쫓았다.

“너. 거기 안 서. 잡히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그러니 제가 설 수 있겠습니까? 돈 주십시오. 돈 주시라고요오오.”

혹두는 뛰며 길게 말을 뺐다.

이 와중에도 악착 같이 돈을 챙기는 것이 기막혔다. 확실히 돈 벌레다.

“이 망할 자식아. 내가 사준 개경 남대가의 점포들만으로도 니들 뒷골목 악소패들 평생 먹고 사는 것은 걱정 없어. 이 개놈의 자식아. 내가 니들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날 열 받게 해.”

“누가 그러고 싶어 그랬습니까? 아닌 말로 나리 혼자 열 받으셔서 화내시는 거 아닙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너 이 자식.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야.”

“억울하니깐 그렇죠.”

“이!”

난 얄밉기 그지없는 혹두의 답변에 험악하게 인상 썼다.

묵은 이민호와 혹두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양쪽으로 흔들었다.

“애들도 아니고. 쯧쯧.”

아무리 성인 티가 난다고는 하지만 묵이 할 말은 아닌 듯 한데.

게다가 혀까지 차다니.

어딘가 모르게 애늙은이 티가 물씬 풍겼다.

이민호, 혹두.

두 사람과 비교하면 묵이의 나이는 한참 어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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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왜에서는 가마쿠라 막부를 연 초대 쇼군 미나모토 요리토모 사후, 매우 혼란스러웠다.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죽자, 불가에 출가한 아내 호조 마사코가 전격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호조 마사코의 행보는 한 고조 유방의 정실부인 여치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호조 마사코는 죽은 남편의 다른 아내들을 핍박하지는 않았지만 장자이자 2대 쇼군인 아들 요리이에를 폐하고, 차자 사네토모를 3대 쇼군으로 옹립했다.

사네토모는 허수아비였다.

모친 호조 마사코가 13 명의 고위 가신인 고케닌御家人들을 등용, 막부의 모든 권력을 넘겨주었다.

그 중심에는 호조 마사코의 부친이자 요리이에와 사네토모의 외조부인 호조 도키마사가 있었다.

바야흐로 왜는 쇼군 사네토모의 외가인 호조 가의 수중에 떨어진 형국이었다.

1205년 도키마사는 외손자 사네토모를 폐하고 자신의 사위인 히라 가문의 도모마사를 쇼군으로 옹립하려는 반역을 꾀한다.

그것을 알게 된 호조 마사코는 아버지 도키마사에게 강하게 반발, 모녀간에 권력 쟁탈이 일어났다.

승자는 호조 마사코였다.

호조 마사코는 차마 아버지를 죽일 수 없어 불가에 출가시키는 한편, 조카인 도키마사의 아들 요시토키를 싯켄執權으로 등용한다.

오늘날 일본 수상 격이라고 볼 수 있는, 쇼군 대신 막부를 운영하는 싯켄이 된 요시토키는 정국을 장악, 여전히 호조 가의 시대를 이어나갔다.

한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2대 쇼군 요리이에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승려가 사네토모를 암살하고 사건이 있었다.

그로 인해 잠시 쇼군의 자리가 공석이 되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 때 고도바後鳥羽 천황이 이를 막부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로 보고, 첨예한 대립의 각을 세웠다.

그로 말미암아 왜 전체는 막부파와 천황파로 갈라져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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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라노 번은 매우 열악한 지형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산악지대로 가파르고 험준하기가 왜국 그 어디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았다.

좌우에는 각기 사토시 번과 키소 번이 있었다.

울창한 삼림이 우거진 험한 산악지대가 타이라노 번의 좌우에 위치해, 사토시와 키소 두 번의 경계를 이뤘다.

사토시와 키소 두 번은 해안을 낀 지형이지만 어느 정도는 농작물이 생산되었다.

타이라노 번의 남쪽에는 사토시와 키소 두 번의 경계를 이루는 삼림 못지않은 험한 지세의 산악지대였다.

산악 지대는 작은 산맥이라고 말해도 하등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초목이 무성했으며 지세가 험준하기 짝이 없었다.

험한 지형과 울창한 수림이 사람의 발길을 거부했다.

작은 산맥 너머에는 모리나가 쿠란도가 다스리는 모리나가 번이 있었다.

2년 전 모리나가 번과의 경계를 이루는 산악 지대에서 뜻하지 않게 철광과 은광이 발견되어, 모리나가 번과 타이라노 번은 상당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몇 번의 소소한 무력 충돌이 빈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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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뒷짐을 지고 천수탑의 창가에 서 있는 타이라노 류켄.

뒤에 있는 나무 바닥에는 가로 노부스케 하야마가 무릎을 꿇고, 양 허벅지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다.

하야마는 류켄의 등을 바라보았다.

“이젠 방법이 없습니다. 도노との. 오시마 번에.”

처연히 머리를 숙이며, 하야마는 츄코쿠中國의 맹주이자 호조가의 일원인 호조 오시마를 입에 올렸다.

츄코쿠 제일의 번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하는 세력을 떨치는 오시마 번의 그늘로 타이라노 번이 들어가야 한다.

하야마는 그 점을 번주 류켄에게 알렸다.

꽈악

류켄은 뒷짐을 진 양손을 힘주어 잡았다.

“몇 해 전 다카요시가 고려에서 죽은 후 우리 번은 패망 직전에 몰렸다. 그런 번을 살린 것이 번의 남쪽에 있는 라쿠난 산맥의 철광과 은광이었다. 찰과 은으로 사토시 번과 키소 번에서 양곡을 들여와 간신히 번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을 알고 모리나가 번이 기습적으로 몇 십 번이나 철광과 은광을 공격, 장악했었다. 번의 가용 가능한 병력을 동원해 다시 되찾기를 벌써 수십여 번에 걸쳐 반복했다. 모리나가 번의 뒤에 오시마 번이 있음을 모르지는 않겠지. 하야마.”

하야마는 류켄의 말에 흠칫했다.

모리나가 번 뒤에 오시마 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토시와 키소가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사토시와 키소 두 번이 움직였다면 이미 오래 전에 타이라노 번은 왜에서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오시마 번은 타이라노 번처럼 척박하고 생산되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한 번은 관심이 없었다.

오직 철광과 은광을 원할 뿐이다.

타이라노 번을 오시마 번이 흡수한다면, 타이라노 번의 백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철광과 은광을 제외하면 타이라노 번은 투자하는 것에 비해 수익이 거의 없다.

그런 이유로 오시마 번은 타이라노 번의 병합에 무관심했다.

관심이 만약 있었다면 사토시와 키소 번을 움직여 진작에 타이라노 번을 자국 오시마로 편입시켰을 것이다.

그것을 하야마는 잘 알고 있었다.

“도노. 지난 몇 해 동안 모리나가 번과의 무력 충돌로 가병이 2천여 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타이라노 번은 멸망하고 맙니다. 모리나가 번은 오시마 번의 도움으로 손실을 빠르게 만회하고 있음을 상기해 주십시오.”

“으음.”

류켄은 신음을 흘렸다.

하야마 말따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리나가 번과의 오랜 전쟁 아닌 전쟁으로 인해 번의 무력이 빠르게 소진되어 간신히 명맥만 잇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살아남고자 한다면 오시마 번에 철광과 은광을 넘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오시마 번의 번주 호조 오시마의 처분에 자신과 번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하야마는 류켄을 보았다.

“도노. 번과 도노의 앞날을 위해서는.”

미처 하야마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류켄이 뒤돌아섰다.

“정녕 모른다 말이냐? 하야마!”

류켄은 고성을 질렀다.

“철광과 은광을 빼앗기면 번의 백성들은 굶어 죽는다. 지날 날처럼 가병 5천을 두 번 다시는 양성할 수 없다. 천천히 말라죽어가는 고목처럼 우리 타이라노 번은 결국 사토시, 키소, 모리나가. 이 세 번 중 한 번에 흡수될 수밖에 없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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