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58화 (158/247)

<-- 158 회: 6-16 -->

“선부가 없으면 지난 몇 년 동안 배에 쏟아 부은 모든 것이 공중으로 날아간다. 그럼. 난, 눈물을 머금고 너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나…… 리.”

묵은 겁먹은 기색을 띠었다.

책임을 묻는다.

그 말은 곧 군령으로 목을 베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읍참마속 알지.”

묵은 내 말에 얼굴이 핼쑥하게 변하며 부지불식간 침을 삼켰다.

꿀꺽.

난 그런 묵을 보며 내심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크크크.’

다시금 문한성을 보았다.

“누가 각 병대를 지휘할 거지?”

문한성은 내 말에 원탁에 앉은 이들을 둘러보았다.

“네. 장창병대는 오용섭님을. 허, 험.”

말하다가 손을 말아 쥐고는 입에 댔다. 낮은 헛기침을 하며 어색한 기색을 띠었다.

“장창병대장은…… 나리, 명칭을 바꾸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문한성의 말에 원탁에 앉은 이들이 날 돌아보았다.

난 일부러 성난 인상을 스며 목청을 돋웠다.

“내 맘이야. 불만이면 니들이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앉은 다음에 니들 맘대로 명칭을 정해. 알겠어.”

날 쳐다보던 이들이 난감하다는 기색을 띠었다.

난 그들을 향해 일부러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군소리 하지마라. 응. 내 말에 대답 안하지.”

순간.

“아닙니다.”

원탁에 앉아 있는 이들이 동시에 고함쳤다.

난 문한성을 쳐다보았다.

“나머지 두 사람은 누구야?”

“네. 궁병대장은 장갑윤님을, 검병장은 이웅님을.”

난 고갤 쩔레쩔레 가로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내가 누차 말했잖아. 석포나 기마병단이 필요하다고.”

“네. 그래서 후군병단에 속하는 1,500여 명 중…… 나 영감님을 석포병대장으로, 황곤님을 기마병대장으로.”

문한성은 날 보며 빠르게 말했다.

난 화난 척 언성을 높였다.

“조금 전에는 1,500명을 선부로 돌리다고 했잖아.”

“그, 그것이.”

문한성은 내가 화를 내자 당황해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난 오른손을 들어 원탁을 내리쳤다.

타앙.

다시금 언성을 높였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군제 개편이 주먹구구식이잖아. 확실하게 못해.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각 병대가 서로 섞여 혼성병대를 이뤄야 한다고 내가 말했어. 안 했어. 무슨 놈의 보고가 일간성이 없어. 다시 짜서 내게 보고해. 알겠나. 문한성!”

“예에. 죄, 죄송합니다. 나리.”

난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원탁에 앉아 있는 이들이 날 따라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난 문한성과 일어난 이들을 돌아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난 3천여 명을 언제라도 병과를 바꿔도 싸우는데 지장이 없도록 교련시켰어.”

난 휘하 군병이라 할 수 있는 3천여 명을 몽땅 다 멀티플레이어로 만들려 하였다.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진저리가 쳐진다.

“병대는 장창, 검, 궁, 석포, 기병. 치중대인 후군. 이렇게 여섯으로 나눈다. 그 중 내가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것이 후군이다. 후군은 유사시 예비 병단으로 전환됨과 동시에 병참을 책임지는 핵심 중 핵심 병대다. 또한 상황에 따라 각 병대는 혼성 병대로 전환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도록 해!”

난 문한성과 일어난 이들을 돌아보았다.

“기본적으로 장창병대는 오용섭이, 검병대는 이웅이, 궁병대는 장갑윤이, 석포병대는 정상모가, 기병은 황곤이 맡는다. 오승록은 나 영감과 함께 후군병대를 맡도록 해. 알겠나?”

“예에에에. 나리.”

난 머리 숙이는 이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겉으로 나와 너희들은 나주목의 목사와 휘하 군병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니들은 내 개인 사병이라고 할 수 있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에에. 나리.”

다들 머리를 숙인 채 대답했다.

난 머리 숙인 문한성을 보았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병학에 좀 더 신경을 써.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나?”

“죄, 죄송합니다.”

문한성이 사과했다.

마음이 들지 않는다. 국자감에서 이름난 수재였을지는 몰라도 현대의 군사학이라고 할 수 있는 병학에는 현저한 손색이 있다.

난 실망감을 가슴에 안고 옆으로 돌아섰다.

“열흘이다. 열흘!”

“예에에에.”

뒤에서 대답이 들렸다.

@

난 거처를 향해 걸어갔다.

“휴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한성이 영 아니올시다다. 병학에 밝은 참모가 절실하다.

문득 머리에 서혜와 조연이 떠올랐다.

둘 다 무장이라면 몰라도 참모로는 부족함이 많다. 그리고 내 마누란데.

“골머리 아파.”

지난 몇 년 동안 사병을 양성하는 데 서혜와 조연이 나타나 내 속깨나 뒤집어놓았다.

두 마누라가 설쳐도 너무 설쳤다.

군병을 지휘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뜯어 말리는데 머리깨나 아팠다.

“쌓인다. 쌓여. 그 동안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여기저기에 구멍이 뻥뻥 나니. 이거 참.”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어떻게든 병학에 밝은 자를 구해야 할 텐데. 가능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을 곧바로 알아채고, 내 입안의 혀처럼 움직여 줄 수 있는 이가 어디 없을까?”

고민하며, 잠시 뒤 거처에 이르렀을 때다.

“하앗.”

몇몇 기합이 들렸다.

따다다당.

다수의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끄응.”

앓는 신음을 흘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해심과 함께 환속한 8 명의 무승이 한창 수련 중인 모양이다.

죄다 무인 타입이라, 조직과는 영 맞지 않았다. 해심이 군병을 지휘할만한 역량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두어 번 맡겨보았지만, 도저히 군병을 지휘할 재목은 아니었다.

열린 월동문을 지나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우측을 돌아보았다.

시야에 한창 수련 중인 환속한 무승들이 보였다.

‘어휴, 저 식충이 빈대들. 밥을 밥대로 먹는데. 전혀 쓸 데가 없으니. 그나마 군병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일종의 사범 역할로 써먹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서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데 해심이 날 쳐다보았다.

“여어, 목사 나으리.”

해심은 날 부르며, 극구 사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충헌이 억지로 내게 안긴 지위를 입에 올렸다.

가만히 서서 날 향해 걸어오는 해심을 보았다.

“팔자 좋네.”

허심탄회하게 말을 터고 지내는 해심을 비아냥거렸다.

해심은 끄떡없었다.

내가 몇 번 열 받게 해서 단련이 된 듯 침착하게 대꾸했다.

“우린 밥값 했어. 알지.”

군병들을 가르친 것을 입에 올렸다.

“끄응.”

난 앓는 소리를 내며 해심에게 물었다.

“일전에 부탁한 건 어떻게 됐어?”

“뭐?”

해심이 반문했다.

난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죽을래.”

해심은 웃으며 두 걸음 물러났다.

“어이, 어이. 진정해.”

웃으며 양손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날 향해 손바닥을 드러내는 것이 척 봐도 장난치는 모습이라, 난 툭 말을 던졌다.

“나. 힘들다. 응.”

해심이 손을 내리며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하긴. 부인이 네 명이나 되니. 힘들기도 하겠지.”

“그냥 콱.”

난 당장이라도 해심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릴 태세를 갖췄다.

험한 인상을 쓰는 날, 해심이 보고는 한다는 말이.

“방에 자네 부인들이 와 있네.”

난 해심의 말에 움찔거리며 섰다.

고개를 돌려 힐긋 방을 보았다. 아무래도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 같다.

어차피 내 이익을 위해 거둔 여자들이다. 이세연은 조금 경우가 다르지만.

지금은 여자들과 토닥거릴 겨를이 없다. 열흘 후의 출정으로 챙겨야 할 것이 이만저만 많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여자들에게 시달렸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난 뒤돌아섰다.

“하하하하.”

해심이 뒤에서 웃으며 내게 소리쳤다.

“어디 가나? 농이네. 농담이라고.”

난 멈칫거리며 섰다.

홰애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