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56화 (156/247)

<-- 156 회: 6-14 -->

고려를 근대화시켜야하고 과학 기술을 비롯한 일련의 교육 체계를 세워야 한다.

“그 전에!”

난 마주 쥔 양손을 힘주어 쥐었다.

꽈악.

한 가지가 없으면 모든 것이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그것은 바로 의식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그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롤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비스마르크가 국가 권력을 쥐었던 프로이센이다.

과거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나치가 전 유럽을 집어삼킬 수 있었던 배경의 근원과 뿌리를 따져보며 필연적으로 비스마르크에게 이르게 된다.

“비스마르크야 말로 진정한 독일을 건국한 건국의 아버지.”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올려놓은 것과 같은 예는 우리의 역사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호태왕 광개토 경.

달리 광개토대왕이라 불린, 고구려를 사상 최강의 국가로 이끄는 일세 영웅.

그가 개인적으로 탁월하고 출중한 군주이기도 하였지만, 그  이전에 소수림왕이 고구려의 율령을 반포, 정비하는 등.

일련의 국가 체계를 잡지 않았다면, 제 아무리 광개토 대왕이라고 해도 그런 엄청난 영토를 확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라 역시 율령을 반포하고 국가 체계를 정비하였기에 백제, 고구려, 당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한반도의 남부와 중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국가 체계의 정비 없이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불가능해!”

중얼거리며 내가 살던 현대의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멍청이들!”

국가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그 필요성과 절대성을 몰랐던, 아예 관심 자체도 없었던 이들.

그러니 영원한 중진국에 머물 수밖에.

“국가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체제 정비가 필요해.”

난 중얼거리며 단단히 마음먹었다.

강력한 법 체계, 치우침이 없는 공평무사한 법 적용 및 집행.

국가와 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정비라고 할 수 있는 개혁.

그 이전에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국민들의 의식 구조와 사고방식의 전환 및 개선.

그것을 난 고려에 적용시킬 생각이다. 그래야 내가 바라는 새로운 고려가 탄생한다.

내가 바다를 바라보며 향후의 밑그림을 그리는 바로 그 때.

“나리이이이. 나리이이이이.”

뒤에서 애타게 날 부르는 외침이 들렸다.

“훗.”

가볍게 실소하며 고개를 뒤돌렸다.

시야에 이젠 어엿한 청년이 된 묵이 보였다. 묵은 암반을 조심조심 내려오며 날 불렀다.

“한참을 찾았습니다. 나리.”

난 묵을 향해 돌아섰다.

“녀석.”

이젠 제법 한 사람의 상인 역할을 한다.

5 장

묵이 내게 이르렀다.

“무슨 일이냐?”

물었다.

“네. 나리. 명하신 출정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그리고 각 제장들이 포구에 모두 당도하였습니다.”

“그래.”

난 조금 들뜬 얼굴빛을 띠었다.

“가자.”

서둘렀다.

묵이 발을 떼는 내 좌측으로 다가서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저어 나리.”

“응?”

걸음을 멈추고 묵을 돌아보았다.

묵은 난처해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 것이냐?”

“그것이 저어 마님께서 크게 성내셨습니다.”

“어느 마님?”

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큰 마님 말씀입니다.”

묵이 최송이를 언급했다.

“또 돈 문제냐?”

이미 전력이 있는 까닭에 난 언짢은 얼굴빛을 띠었다.

“죄송합니다. 나리.”

묵이 송구하다는 속내를 나타내듯 머리를 숙였다.

“녀석.”

살며시 미소 지었다.

“네가 죄송할 게 뭐냐? 다 내가 시켜서 그러는 것을. 암튼. 네가 마음 고생이 심했겠다.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그러려니 해라.”

“하지만 나리. 큰 마님은?”

“됐다. 그 얘기는 하지 마라.”

“나리. 큰 마님이십니다.”

묵은 최송이가 내 정실임을 강조했다.

정략혼을 염두에 두고 최송이를 내 여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크고 작은 잡음을 일으켰다.

무엇보다도 씀씀이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최충헌의 장손녀이자 최우의 장녀로서 먹고 입는 일련의 모든 것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많은 돈이 지출되었다.

그 때문에 일정한 돈을 제외한, 그 이상의 돈은 지출하지 못하도록, 돈 관리를 맡은 묵이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지출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사후 승인을 받도록 조치했다.

그 외에 각종 말썽의 중심에 늘 최송이가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스트레스 꽤나 받았었다.

난 걸음을 떼며 묵에게 재차 물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냐?”

“그게 말입니다. 이번에 중원에서.”

중원의 북방이 몽고로 어지러운 가운데에서도 남송과 고려의 교역은 중단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남송에서 들여오는 것은 대부분 상류층이 소비하는 사치품이었다.

묵의 말에 난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염병! 또 그 놈의 실크!’

황금 못지않게 엄청난 고가인 중국 비단에 고려 여자들은 늘 목맨다.

그것은 최송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난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돈. 필요하면 친정에서 갖다 쓰라고 해. 내가 준 돈 이상은 절대 주지 마! 주는 순간 넌.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묵을 힐긋 돌아보며 험악하게 인상 썼다.

“나, 나리.”

묵은 화들짝 놀라는 기색을 띠며 걸음을 멈췄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민호와 최송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라,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난 걸음을 멈추고 묵을 돌아보았다.

심중 미안했다.

최송이에게 치이고 내게 다시 치이고 나름 힘들 것이기에. 넌지시 말을 건넸다.

“묵아.”

“네, 나리.”

묵이 잽싸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팔을 들어 다가선 묵의 오른쪽 어깨에 척 올렸다.

“힘들지.”

“나리.”

묵이 감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날 보았다.

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씩.

날 쳐다보는 묵을 향해 넌지시 생각하는 바를 언급했다.

“큰 마님에게 원하는 대로 돈을 줬다가는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너도 봤을 것이다. 한 달에 쌀 한 가마를 준다고 하니 유랑 걸식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왔더냐? 그들을 먹여 살리려면 많은 재물이 들어간다. 큰 마님 옷 한 벌 지을 재물이면 아마 수십여 명이 잡곡밥일망정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나리. 걱정하지 마세요. 큰 마님이 뭐라고 하시면 나리 명이라고 언제나 말하니까요.”

순간 난 상당한 데미지(?)를 입고 잠깐 비틀거렸다.

‘윽.’

묵이놈이 날 팔 줄은 미처 몰랐다. 서둘러 자세를 바로 잡았다.

나쁜 놈.

묵은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큰 마님도 이젠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훤히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냥 화풀이 삼아 막 야단치기만 하세요. 저도 이젠 단련이 되어서 한 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들리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나리 명이라고만 하면 다 되는데요. 뭘.”

묵이.

이 자식이 내 가슴을 그냥 비수로 쫙쫙 긋는다.

날 팔아먹는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혹시 이 자식이 날 팔아서 뒷주머니 챙기는 것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의심이 든다.

돈 관리는 내가 직접 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쩝.

@

포구 주변에 크고 작은 여남은 채의 초옥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초옥 내부.

다수의 사람이 큼지막한 원탁에 앉아 정면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벽면 전체를 수십여 장의 화선지가 뒤덮었다. 각 화선지를 다양한 글과 그림이 가득 메웠다.

벽 좌측.

머리에 유건을 쓴 서른 초반의 한 유사가 서서, 벽과 원탁에 앉은 이들을 번갈아보았다.

유사는 빠르게 무언인가를 설명 중이었다.

문한성.

남평 문 씨로 이세연이 추천한 자였다. 전해 듣기로는 국자감에서 알아주는 수재였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돌연 과거를 앞두고 정처 없는 유랑의 길에 나섰단다.

그 후 5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와 한량으로 살아가던 문한성을 찾아가 만나보았다.

“옆에서 상공을 도울 충분한 능력을 가진 이에요.”

이세연이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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