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54화 (15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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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절을 부르는 최향의 음성에서 언짢다는 감정이 엿보였다.

“네.”

유송절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시선을 앉은 원탁에 놓인 찻잔에 두었다.

차마 최향의 시선을 마주볼 수 없었다. 귀에 최향의 강한 책망이 들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유송절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합하의 의중을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하였습니다.”

선선히 자신의 잘못을, 자신이 놓친 것이 있음을 시인했다.

최향은 언짢은 기색을 띠며, 손을 들어 앉은 원탁을 강하게 내리쳤다.

탕.

동시에 거센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것인 가아아아.”

최향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유송절은 시선을 들어 최향을 보았다.

“주군.”

시야에 성난 기색이 완연한 최향이 보였다.

“할 말이 있는가?”

최향은 여전히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라 송구한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합하께서 그리 나오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지만.”

유송절은 최우의 부인 정 씨 부인과 여주 서가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을 입에 올렸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이!”

최향은 화를 참으며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주군. 좀 더 추이를 보시지요.”

유송절은 거듭 기다릴 것을 말했다.

최향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

유송절의 말대로 할 수 밖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최향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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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밖, 중원의 북방은 바야흐로 칭기즈칸이라는 일대 영걸로 말미암아 난세로 접어들고 있었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며 전쟁의 기운 전운이 무르익어갔다.

1210년 경오년庚午年.

금나라는 강성해지는 몽고가 공물을 바치지 않자, 이를 금에 대한 적대의사로 간주하여 군사를 일으키려했다.

그 일환으로 하북에 소재한 만전현 서북에 오사보烏沙堡에 몽고 정벌을 위한 일종의 전진 기지를 세웠다.

“용납할 수 없음이다!”

원 태조 칭기즈칸 달리 성길사한成吉思汗이라 불리는 테무친은 노해 전격적으로 군병을 동원, 오사보를 기습 공격했다.

그 다음 금에 대한 분노에 정벌에 나서려 하였다.

“감히!”

칭기즈칸은 금의 행태에 매우 분노했다.

오사보에 설치된 전진 기지가 몽고 초원을 공략할 의도에서 세워진 것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본래 칭기즈칸은 금나라에 공물이라고 할 수 있는 세폐歲幣를 바쳤다.

몽고는 칭기즈칸이 초원을 일통하기 전까지 금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매년 막대한 말과 재물 그리고 여자를 금에 공물로서 바쳐왔다. 하지만 칭기즈칸이 초원을 일통하고 세력을 크게 일으키기 시작하며 그와 같은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

세폐로 대변되는 공물을 바치지 않자 당시 금나라 황제 장종은 위소왕衛紹王 윤제允濟로 하여금 정주靜州, 지금의 내몽고 호화호특으로 가서 해당 세폐를 받도록 하였다.

위소왕 윤제는 훗날 금의 제7대 무평황제武平皇帝가 된다.

윤제의 제위 기간 동안 금은 무서울 정도로 빠른 시간 내에 국운이 크게 기울고 만다.

몽골군의 침략으로 만주를 잃고, 기운 금나라의 형편을 말하듯 서하西夏와 남송으로부터 집중 공격받는다.

모두 훗날의 일이다.

호화호특에 이른 윤제, 완안윤제完顔允濟는 칭기즈칸과 대면한다.

하나 칭기즈칸이 신하로서 예를 행하지 않았다.

엄연히 완안윤제는 금의 황제를 대신한 흠차대신이라 할 수 있고, 칭기즈칸은 명목상 금의 신하임에도 말이다.

그것은 더 이상 몽고가 금에 세폐를 보내는 속국이 아니라는 천명이었다.

윤제는 대노해 금나라 수도 중도로 돌아가 버린다. 중도에 이르러 알현한 황제 장종에게 이르기를.

“폐하. 몽고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응당 군사를 일으켜 정벌함이 가한 줄 아뢰옵니다.”

“옳도다.”

장종은 몽고가 세폐를 바치지 않고, 신하를 예조차 갖추지 않음을 금에 대한 항명으로 간주, 윤제의 말을 받아들인다.

이에 오사보에 전진 기지를 세우고 몽골 정벌을 준비하나, 중도에 그만 죽고 만다.

그 뒤를 이어 윤제가 황위에 오르고, 제위의 계승을 알리는 조서를 주변 여러 나라로 보낸다.

몽고 또한 제위 조서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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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다른 파오보다 화려하고 넓은 한 파오.

용상처럼 큼지막한 의자에 위맹한 기운을 내뿜은 한 사내가 오연히 앉아 있었다.

좌우에는 몽고 특유의 복장을 한 여남은 명이 서서 험악한 눈빛을 번득였다.

그들 중에는 훗날 사서에 사준사구四駿四狗라 불린 여덟 명의 몽골 무장도 있었다.

사준은 내정과 전력에서, 사구는 일련의 정복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몽골의 사서 원조비사元朝秘史를 보면 사구사준을 일러 ‘4마리 준마와 4마리충견dörben külü'üd, dörben noγas’ 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준은 다음과 같다.

칭기즈칸이 유년 시절 타우치우토 족에게 쫓길 때 도움을 준 티라운.

쥴킨부 토벌 당시 전장에서 발견되어 칭기즈 칸의 어머니 호에룬이 키운 보로클.

젊은 시절 테무친이 말을 도둑맞았을 때 아무 조건 없이 말을 빌려주고 도와준 보오르추.

칭기즈 칸의 친우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쟈무카 휘하의 장수였다가 귀의한 무카리.

사준은 훗날 원 제국이 성립하고 틀이 잡히자 4대 권문세족이 되어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사준과 대비되는 사구는 다음과 같다.

나이만 족과의 싸움에서 형 제르메와 함께 싸웠던 수부타이.

궁술의 달인이었던 제베.

원 세조 쿠빌라이와 동명이인인 자무카이 부하였던 쿠빌라이.

수부타이의 형인 제르메.

파오에는 강성한 몽고의 현실을 반영하듯 위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팽배했다.

사신이 앉은 칭기즈칸 가까이 다가가, 금나라에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였음을 알렸다.

칭기즈칸은 응당 배례를 하여야 함에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어이없어 하는 사신에게 물었다.

“새로운 황제가 누구인가?”

사신이 답하기를.

"위왕衛王 윤제 전하이십니다.”

라고 했다.

돌연.

홱.

칭기즈칸이 남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침을 뱉었다.

카악.

퉤.

일순간 사신과 좌우에 선 몽골의 무장들이 흠칫거리며 놀란 기색을 띠었다.

칭기즈칸은 호쾌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나는 여태껏 중원 황제란 하늘의 사람 천인만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알고 있었다. 한데 완안윤제와 같이 용렬하고 속이 좁은 소인이 황제가 되다니. 자아, 이제 내가 황제보다 높다 할 수 있으니. 내게 절하라.”

사신은 칭기즈칸의 말에 기겁했다.

자신이 황제보다 위에 있다고 말하는 칭기즈칸의 오만무례한 언동에 할 말을 잃었다.

매우 놀라워하는 사신을 비웃으며 칭기즈칸은 파오를 나가버렸다.

몽골 무장들이 그 뒤를 따랐다.

사신이 할 수 없이 중도로 돌아가 새 황제 완안윤제에게 이를 고하자.

“더는 몽고와 연을 맺지 않으리라.”

윤제는 크게 노해 몽골에 대한 강한 적의를 표출했다.

1211면 신미년辛未年 봄.

칭기즈칸은 몽골의 군세軍勢를 몰아 금나라 공략에 나섰다.

금나라는 가까스로 막대한 공물로 칭기즈칸을 달래 화의를 맺었다.

이전까지의 관계가 역전되어 버렸다.

1213년 계유년이 될 때까지 몽골은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금을 공격, 금주金主 위소왕 완안윤제는 골머리를 앓았다.

그 해 완안윤제의 무능함에 호사호胡沙虎가 들고 일어났다. 완안윤제는 동해군후東海軍侯로 추폐追廢 되었다.

황위를 둘러싼 상당한 혼란을 겪은 후에 금나라는 장종의 형인 선종 황제 풍왕豊王 순珣을 제위에 올렸다.

이에 칭기즈칸은 다시금 일으킨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연남燕南, 산동山東, 하북河北 등. 인근의 50여군을 점령한다.

다음 해 1241년 갑술년甲戌年.

칭기즈칸은 금의 수도 중도中都, 현 북경 인근에 거느린 군사들을 주둔시키며 중도 공략을 준비하였다.

금제 선종은 칭기즈칸을 달래기 위해 기국공주岐國公主와 동남동녀 각각 5백여 명, 말 3천 필과 금은보화를 바쳐 화의를 청한다.

칭기즈칸이 그에 화답하여 철군한 그 해 5월 선종은 변汴, 지금의 하남성의 개봉으로 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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