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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난 속으로 중얼거리며, 김경손의 오른팔에 건 암바에 더 힘을 실었다.
두둑.
김경손의 오른팔에서 낮은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더 나가면 팔이 부러진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패배를 인정하십니까?”
“아니이이. 으아아아악.”
김경손은 고집을 피웠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팔을 부러뜨리는 수밖에.
막 내가 힘을 더 주려는 찰나.
“그만 하면 됐다. 경손이의 패배다.”
난 귀에 들린 강무한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몹시 당혹스러워하는 강무한의 얼굴이 보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얼빠진 듯 멍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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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이었다.
강무한은 이제까지 이민호가 김경손을 제압하는 것과 같은 수법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상대와 몸이 완전 밀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세에서, 단순히 팔을 옮아 매고 비트는 동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환 수법이 매우 생소했다.
'어디서 저런 수법을 배웠을꼬.’
강무한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 아는 한 고려 아니 중원을 통틀어도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수법은 없다. 확신한다.
강무한은 이민호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라는 두 감정을 느꼈다.
‘과연…….’
마음 한구석에서 진한 꺼림이 일었다.
의도하지 않은, 본능적인 거부감.
알지 못하는 것이 주는 막연한 두려움.
부정적인 꺼림칙함.
등등.
강무한은 다수의 감정이 일어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것에 안색을 흐렸다.
김경손의 오른팔에서 손을 떼고 일어나는 이민호를 가만히 주시했다.
김경손은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땅에 드러누운 채 상체를 틀었다. 왼손을 들어, 오른팔로 뻗었다.
꾹꾹.
왼팔로 오른팔을 누르며 마사지했다.
김경손이 마사지를 알 리 없다. 그저 고통을 덜기 위한 손놀림이었다.
김경손의 얼굴이 이지러진 것이 고통이 매우 컸음을, 아직 고통이 가시지 않았음을, 무언으로 말하고 있었다.
강무한은 이민호와 김경손을 지켜보며, 눈동자에 고민이라는 한 감정을 담았다.
과연 자신이 이민호를 가르친 것이 잘한 일일까?
혹시 가르쳐서는 안 되는 이를 그만 가르치고 만 것은 아닐까?
이민호에 관한 것을 일부밖에 모르는데, 이민호의 놀라운 능력(?)에 그만 자신의 눈이 먼 것은 아닐까?
이대로 좋을까?
이민호를 가르치는 것을 이쯤에서 접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강무한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각종 상념에 고심했다.
‘으으음.’
속으로 꽤나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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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쯤 지났을 때다.
“나리, 나리이이.”
묵이 소리쳐 부르며 초옥의 마당으로 뛰었다.
몹시 다급한 기색이 완연해, 김경손에게 손속이 심했음을 넌지시 사과하던 나는 흠칫거리며 뒤돌아섰다.
“나리이이이.”
내게 뛰어오는 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일인데. 리 호들갑을 피우는 게냐?”
일부러 화난 목소리로 묵을 야단쳤다.
묵이 뛰어와 내 앞에 섰다.
난 부러 눈을 부릅떴다.
나, 엄청 화났어. 이 녀석아.
그런 무언을 묵에게 보냈다.
그런데 묵이놈이 고개를 숙여버렸다. 주눅이 든 모습이라, 난 내심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적잖게 당황하는데.
“킥킥.”
“큭큭.”
뒤에서 강무한과 김경손의 낮은 고소가 들렸다.
‘망할.’
슬쩍 강무한과 김경손을 째려보았다.
내 눈초리가 매서웠는지 강무한과 김경손이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사이 묵이 뛰어오느라 흐트러진 숨을 골랐다.
“허, 헉.”
가쁜 숨을 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시선을 돌려 묵이를 보았다.
마침 묵이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 놈이.’
날 약 올리는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묵이 그러려는 의도가 없는 것을 알지만, 상황이 그런 생각이 들게끔 만드니.
참!
‘썩을.’
난 속으로 툴툴대며 날 쳐다보는 묵을 마주보았다.
4 장
여주 서가의 좌장인 서양헌 내외가 개경에 왔다고 한다.
차자 서풍과 최우의 서녀 최여심과의 혼인. 그리고 서혜와 내 문제로 최우에 이어 최충헌과 자리를 함께 할 예정이라고 묵이 말해주었다.
묵이는 내게 속히 묵는 최우의 빈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채근했다.
“기다려 봐.”
묵이에게 그렇게 대꾸하고 난 되돌아섰다.
서 있는 강무한과 김경손에게 다가가, 일련의 사정을 설명했다.
내가 양해를 구하자 강무한과 김경손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난 묵이와 함께 초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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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묵과 나란히 걸으며 최우의 장원으로 향했다.
왼쪽에서 걷는 묵이 간간히 날 곁눈질하며 걱정스런 기색을 띠었다.
“나리.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서 장자님이 서혜 아가씨와 나리의.”
묵은 내 눈치를 보며 말을 흐렸다.
서양헌이 날 싫어한다.
묵은 은근히 그런 속내를 내비쳤다.
“풋.”
난 외마디 실소를 흘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저벅저벅.
슬쩍 양손을 허리뒤춤으로 돌려 맞잡았다. 지그시 앞을 보며 묵에게 물었다.
“난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나저나 내가 시킨 것은 어떻게 됐어?”
“아, 네. 조자개 어른의 도움을 받아 접촉 중입니다. 나리. 그리고 이번에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난 묵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입을 열었다.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상인들과 꾸준히 접촉해서…… 최고의 장인들을 고용해. 물론 노임도 최고로 쳐주고, 아참. 혹두 그 놈은 요즘 뭐 하느라 코빼기도 안 비쳐.”
“혹두 아저씨는 나리가 시키신 대로 여기저기 사람들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고려에서 한다하는 고수들이 그리 쉽게…… 게다가 책사 역할을 하거나 문사로서 나리를…….”
묵이 제법 말이 많아졌다.
“됐다.”
난 가볍게 말하며 서양헌을 생각했다.
‘푸훗.’
웃었다.
최충헌이 직접 나서서 진행하는 일이다. 서양헌이 반대해 받자다.
전체 상황에 지장을 주지는 못한다.
아닌 말로 최충헌이 노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서가의 식솔들 모두 떼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서가가 멸문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러니 서양헌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서는 척하며, 서가의 앞날을 위해 일종의 양보를 얻어내려 할지도 모른다.
‘흠.’
그럴 경우 서양헌이 과연 무엇을 원할까?
‘서가를 위해서인 것은 틀림없는데. 혹 양광도 지방 호족들의 연합체를.’
난 눈을 반짝이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완만한 보행步行으로 최우의 장원을 향해 걸어갔다.
머릿속에서 여주 서가가 중심이 된 양광도 지방 호족들의 연합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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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찻잔이 놓인 큼지막한 원탁에 앉아 있는 최향은 영 못마땅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은 유송절을 보았다.
전날 이민호를 대상으로 건 모략이 별 이득이 없었다.
애초에 소문을 퍼트릴 때 염두에 둔, 이민호와 최송이의 혼사 결렬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최충헌이 소문을 듣고는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으하하하하하하. 아암. 사내라면 능히 그 정도는 돼야지. 개경 제일의 예기를 꺾었다? 하하하하하.”
부친이 이민호를 이전보다 더 크게 보는 것 같아, 최향은 알게 모르게 심사가 꼬였다.
그에 앉은 유송절을 쳐다보는 최향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유송절은 기대 이하의 결과에 적잖은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뭐라 말하지 못하고 맞은편에 앉은 최향의 눈치만 보았다. 낸 계책이 무위로 돌아가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게다가 최향이 알게 모르게 심기불편하다는 것을, 매우 실망했다는 속내를 내비쳐, 앉은 자리가 좌불안석이었다.
“송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