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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기-152화 (15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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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있는 손금 보듯 중화의 공성전이나 공성 병기를 본다면,

김경손은 내심 확신했다.

‘성은 난공불락일 터!’

형형한 안광을 번득였다.

난 그런 김경손을 직시하며 알아보기 어려운 작고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씩.

그 모습을 강무한이 지켜보며 의미심장한 작은 이채를 발했다.

‘괴이한지고.’

납득이 되지 않는다.

병학과 무공은 양립하기 매우 어렵다.

간단히 말하자면 병학은 군병들을 통솔하여 전쟁을 하는, 대단위 회전會戰이다.

반면 무공은 홀로 싸우는 일인전이라 할 수 있다.

천하제일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닌 고수 중의 고수가 무장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고, 산천을 벗 삼아 수련하는 이들 사이에서 나온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이민호가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이 보기에 여느 사람이 따를 수 없는 깊이와 역량을 가진 듯 한데.

‘허허허.’

강무한은 마음속으로 너털웃음을 흘렸다.

조국 고려에서 크나큰 인재가 났음을, 고려가 지금보다 더 강성할 것이기에, 내심 기뻤다.

지난 세월 동안 몇몇 무장을 길러낸 것보다 이민호를 가르치는 것이 나라에 더 큰 도움과 힘이 될 것이기에,

강무한은 심중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심중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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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녘 하늘에 해가 걸렸다.

저녁놀이 온 산천을 붉게 물들였다. 서서히 날이 저물어가는 시각.

나는 강무한의 초옥 뜰에서 김경손과 마주섰다.

“한 번.”

김경손이 격검을 청했다.

그 동안 강무한으로부터 수련을 받은 성과를 알고 싶어, 나는 거리낌 없이 김경손의 청을 받아들였다.

나와 김경손이 손에 목검을 쥐고 6미타 남짓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데.

“빨리 싸워봐.”

툇마루에 앉은 강무한이 나와 김경손을 다그쳤다.

강무한의 앞에는 그가 지난 가을에 담은 머루주와 안주인 대추가 놓여 있었다.

난 강무한은 힐끔거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쳇!’

싸우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얄밉다고 강무한이 그렇다.

“훗.”

귀에 김경손의 실소가 들렸다.

난 김경손을 마주보며 오른손에 쥔 목검을 얼굴 높이로 들었다.

천천히 몸을 우측으로 돌려 비켜섰다.

꾸욱.

양손으로 목검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김경손을 노려보았다.

“시작하시죠.”

“얼마든지.”

김경손은 우측 옆으로 비켜서며 양손으로 목검을 쥐었다. 쥔 목검을 천천히 우 사선으로 늘어뜨리며 매서운 눈빛을 띠었다.

난 발을 떼어 김경손에게 다가가려했다.

김경손 역시 나를 향해 걸음을 떼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차츰 줄어들며 가까워졌다.

난 계속 거리를 줄이며 김경손을 예의주시했다. 김경손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이목과 신경, 감각을 모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김경손이 움직일지 모른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상대가 돌출 행동을 할 경우 대처하는 순간 방응 속도가 느려진다.

상대가 움직이는 속도는 별 차이가 없다. 문제는 맞상대하는 나다.

거리의 멀고 가까움은 대처 속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거리가 멀면 대처에 여유가 있겠지만, 거리가 가까우면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상대가 내게 다다른다.

상대가 날 공격하는 상황이라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그런 이유로 각종 무술 도장에서는 대련 할 때 늘 상대와 일정한 거리를 확보, 유지하라고 가르친다.

“차핫.”

기합을 내지르며, 난 발로 땅을 강하게 눌렀다.

휘익.

가볍게 60cm 남짓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목검을 머리 높이 치켜들었다.

그 자세로 마주한 김경손에게 짓쳐들었다.

흠칫.

김경손은 눈가를 미미하게 실룩이며 침착하게 우측으로 이동했다.

움직임이 매끄러웠다.

나무랄 데가 없었고, 군더더기도 없었다. 깔끔했다.

‘역시.’

예상한 대로다.

내가 도약할 경우 김경손이 내 공격을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옆으로 이동하여 내 공격을 피한 후, 측면에서 내게 역공을 가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김경손은 일신 무위를 믿고 용맹을 떨치는 맹장이 아니라, 지력을 발판으로 냉정하게 주어진 현실을 풀어나가는 지장 타입이라 분석, 판단 내린 것이 맞아 떨어졌다.

김경손이 맹장이라면 살리타이에게 절망이란 감정을 안겨주지 못했을 것이다.

냉정하게 살리타이가 이끄는 공성을 지켜보며 시의적절한 대응을 한 덕분에, 장시간에 걸쳐서 몽골군의 치열하기 짝이 없는 공격을 버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리 보았다.

쉿.

김경손이 목검을 내쳤다.

목검은 내 좌측 옆구리를 향해 횡으로 그어졌다. 재빨리 몸을 왼쪽으로 틀며 오른손에 쥔 목검을 거꾸로 세워 막았다.

따앙.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목검을 김경손의 목검이 때렸다. 충격이 진동이란 형태로 내 손아귀로 전해졌다.

‘흑.’

셌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일순 나도 모르게 오른손에 쥔 목검을 놓을 뻔했다.

왼손을, 목검을 쥔 김경손의 오른 손목으로 뻗었다.

김경손은 내가 오른 손목을 잡자 움칫거리며 놀란 기색을 띠었다.

서둘러 몸을 왼쪽으로 비틀며 오른발로 내 왼 발목을 후려치려했다.

난 눈을 반짝였다.

고려 무인들이 수박을 즐겼다는 것이 생각났다. 수박은 오늘 날 택견이나 태권도와 유사하다.

그러니 유의해야 한다.

일순간.

빠악.

왼발에서 지독한 통증에 이어 아픔이 일었다. 절로 내 입이 벌어지고 비명이 튀어나왔다.

“아악.”

난 왼발을 구부리며 휘청거렸다.

씩.

김경손이 소리 없이 미소 지으며 재빨리 목검을 머리 높이로 들었다.

일검에 내 머릴 박살내겠다는 작정인지.

‘이 인간아아아.’

마음속으로 고성을 질렀다.

섬뜩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다. 소름이라는 기운이 등골을 훑어 내렸다.

무장이라 그런지 힘이 여느 사람을 압도하고 또 압도하는 김경손이다.

맞았다가는 고대로 내 머리가 수박이 터지듯 터질 것 같아 가슴이 서늘했다.

황황급급히.

냅다 발로 땅을 박차며 김경손에게 몸을 내던졌다.

콰앙.

고拷라 부르는 몸통 박치기로 김경손에게 충격을 주었다.

“커헉.”

김경손은 당황하며 헛바람을 삼켰다.

쿠당탕,

내가 몸을 던진 탓에 김경손은 뒤넘어갔다. 김경손의 몸이 딱딱한 맨땅에 닿고, 난 김경손의 가슴에 몸을 얹었다.

내 체중이 더해진 상태라, 땅과 충돌한 김경손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크으으으.”

난 목검을 우측으로 버리듯 던졌다.

서로 몸이 착 붙은 상태에서는, 검이 움직일 공간이 없다. 그 점을 감안하여 김경손에게 이종 격투기의 기술 암바arm bar를 걸었다.

관절기의 하나인 암바는 상대와 내 몸이 열십자 모양이 된다고 하여 달리 십자꺾기라고 한다.

암바는 힘이 약한 사람도 충분히 거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관절기다.

암바를 걸기에는 지금이 최적이다.

지금처럼 내 몸과 상대의 몸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붙어 있어야 암바를 걸기 쉽다.

암바는 팔 힘이 아닌 엉덩이를 들어 올려 허리의 힘으로 꺾는다.

상대의 팔을 꺾는데 집중하기보다는 내 다리를 바짝 조여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암바는 상대의 팔을 부러뜨려 제압하는 기술로 실재로 당해보면, 무엇보다도 느껴지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깊은 부상을 입게 된다.

김경손은 머리를 젖히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악.”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암바라는 기술이 주는, 가중된 고통이 뇌리를 엄습했다.

난 김경손의 오른팔을 잡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패배를 인정하십니까?”

내 물음에 김경손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양쪽으로 거칠게 흔들었다.

“아, 아니. 아아아악.”

“인정하지 않으시면 팔이 부러집니다.”

“부우우우우.”

김경손은 부不를 길게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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