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49화 (149/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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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스승님.”

중년인은 강무한을 부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찌 그러셨습니까? 능엄검선결은 그리 쉽게 가르쳐서는 아니 되는 사문의 극의가 아닙니까?”

말도 안 된다.

중년인은 그런 속내를 드러냈다.

총 3천여 자로 이루어진 능엄검선결에서 수월암명류의 모든 것이 나왔다.

강무한은 양손에 각기 술병과 닭고기를 쥐고 마시고 뜯어 먹었다.

연방 입을 놀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너도 알다시피 익힌 내공과 성질이 다른 것을 운공하면 그 즉시 몸에 이상 반응이 오지 않느냐? 해서 가르쳐 봤는데. 이놈이 황당무계하게도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외우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찌!”

중년인은 강한 불신의 얼굴빛을 띠었다.

자신도 능엄검선결을 모두 외우고 기초를 다지는데 무려 3달이 걸렸다.

3달 동안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단 한 번에 외웠다?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천하기재라고 해도 단 한 번은 불가능해.’

중년인은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스승님이 능엄검선결을 가르칠 정도라면.’

아마 스승 강무한은 문하에 들인, 자신에게는 사제가 되는 이의 자질에 크게 반한 모양이다. 그러니 능엄검선결을 가르쳤겠지.

중년인은 그리 여기며, 내심 긴가민가했다.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강무한은 그 사이 술병과 닭고기를 번갈아 입으로 가져갔다.

술을 마시고 닭고기를 뜯으며 한창 씹었다.

“글쎄. 그 놈이 한 번에 다 외우고는 가부좌를 한지 불과 두 시진 만에 운공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강무한은 한 모금 마신 후 입에서 술병을 뗐다.

“크으으.”

설상가상인 스승 강무한의 말에 중년인은 할 말을 잊었다. 만약 스승의 말이 맞다면 그야말로 공전절후의 초 기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스승님. 그게 가능합니까?”

“나도 너처럼 안 믿기지만 어쩌겠느냐? 그게 사실인데.”

강무한은 제자 중년인을 쳐다보며 반쯤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물오물.

입에 넣은 닭고기를 씹으며 강무한은 슬며시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강무한과 중년인은 이민호의 몸과 머리가 변이를 일으켜, 여느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중년인은 흠칫거리며, 스승 강무한이 바라보는 저수지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스승님.”

강무한은 중년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저수지 수면을 향해 버럭 고함쳤다.

“이놈아. 적당히 해. 네놈 때문에 붕어가 몽땅 다 도망가잖아. 이 썩을 놈아.”

중년인은 강무한의 말에 움칫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스승님. 혹시.”

그제야 강무한이 중년인을 상대해주었다.

“그래. 물속에서 수련 중이다. 회류검回流劍을 가르쳐 줬거든.”

“스승님. 회류검은 저도 겨우 전반부 밖에 못 배운 겁니다.”

“나도 전반부 밖에 안 가르쳤어.”

“스승님도 참.”

중년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재차 저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면 아래는 지상보다 여러모로 움직임에 제약이 많다.

호흡도 그렇고, 몸놀림도 그렇고, 휘두르는 검의 속도인 검속도 그렇고.

그 모든 제약을 이겨내면 수월암명류의 극의를 수련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다져진다.

중년인은 스승 강무한을 곁눈질하며 넌지시 물었다.

“스승님. 문하에 정식 제자로 들이실 겁니까?”

제자 명부에 가문과 이름이 등재되는 제자를 기명제자라고 부른다. 사실상 공식적으로, 정식으로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무한은 제자의 말에 언성을 높였다.

“들이긴 뭘 들여! 그 놈이 처음 날 찾아왔을 때 뭐라고 한 줄 알아. 사람 죽이는 검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알겠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년인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 사람을 죽이겠다고 말한 자를 지금 제자로 삼으셨다. 그 말씀이십니까?”

“왜 안 돼?”

강무한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스승님!”

중년인은 강무한의 말에 정색하듯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말도 안 된다.

그런 감정이 진하게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중년인은 상대가 스승이라 차마 언성을 높여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다소 목소리를 높였다.

“스승님!”

강무한은 중년인을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지금 네 마음을, 네 말을 모른다. 그리 생각하느냐?”

언짢다는 속내가 드러나는 말이었다.

중년인은 움칫했다.

행여 자신이 스승에게 무례를 범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워졌다.

중년인은 스승 강무한의 신색을 살피며 신중히 입을 열었다.

“그것이 아니오라…….”

말끝을 흘렸다.

강무한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 놈이 말하기를.”

이민호가 의검을 언급한 것을 입에 올렸다.

중년인은 강무한의 말에 눈가를 흠칫거리며 의외라는 눈빛을 띠었다.

“스승님. 하면.”

“그래. 그 놈은 너처럼 무장인 것 같아. 내 몇 수 가르쳐 주었다.”

“스승님. 몇 수 가르쳐 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중년인은 말하며 잔미소를 머금었다.

스승 강무한이 왜 이민호를 거두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장은 나라를 지키는 간성干城.

무장을 키우고 양성함은 곧 나라를 지키는 길.

스승 강무한은 그런 맥락에서 이민호를 받아들인 것 같다.

“누굽니까? 스승님.”

중년인은 궁금하다는 속내가 밴 목소리로 스승 강무한에게 물었다.

“그 놈이 자신에 대해 잘 말하지 않았지만, 내 알아본 바로는 이번 왜구의 준동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

강무한은 이민호에 관해 입에 올렸다.

자신은 바보가 아니다. 혹두가 찾아왔을 때, 이민호가 검을 가르쳐 달라고 할 때, 나름 알아보았다.

그런 까닭에 선선히 이민호를 받아들였다.

이미 제자 중에 상당수가 군부의 무장인 터라, 고려의 무인으로서 간성을 키우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과감히 이민호를 받아들였다.

가르쳐 보니 이민호가 물건 중의 물건이었다.

무섭도록 놀라운 오성과 탁월한 자질로 지금까지 가르친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가르쳐 주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경이로울 정도로 말이다.

강무한은 제자인 중년인에게 그렇게 말하며 슬쩍 미소 지었다.

중년인은 스승 강무한의 모습에 내심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훗.’

스승이 기뻐하고 있다는 것이 한 눈에 보인다.

뛰어난 제자를 가르치고, 키워내는 것은 세상 모든 스승들의 기쁨이니.

‘그 자!’

중년인은 눈을 반짝이며 이민호를 머리에 떠올렸다.

들은 바가 있다.

이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기묘하기 이를 데 없는 무기들과 진형으로.

수레를 이용하는 기발한 생각으로 매우 빠르게 이동하여.

희생자를 거의 내지 않고 왜구를 섬멸하는 놀라운 전공을 올렸다.

그리 들었다.

이민호는 몰랐지만, 군부의 무장들 대다수는 남몰래 이민호를 주목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나, 고려 최고의 권력가인 최충헌의 전례 없는 총애를 받으며, 단숨에 왜구들을 격멸하는 놀라운 전공을 세운 신진 무장 이민호.

무장들 대다수는 이민호에게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이민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당사자인 이민호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지만.

3 장

촤아앗.

수면을 뚫고 누구가가 머리를 내밀었다. 그에 물방울이 주위로 튀고 낮은 물결이 쳤다.

머리를 내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완만한 경사에 앉아 있는 강무한과 그 옆에 있는 중년인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누구지?’

눈가를 흠칫거리며 궁금하다는 눈빛을 띠었다. 사지를 놀려 경사에 앉아 있는 강무한을 향해 헤엄쳤다.

촤, 촤악.

양손이 수면을 좌우로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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