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43화 (14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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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찰나였다.

강무한이 양쪽으로 나뉘듯 갈라졌다.

파, 팟.

한순간에 내 좌우에 두 명의 강무한이 나타났다.

두 명의 강무한은 각자의 손에 쥔 두 자루의 목검으로 동시에 날 공격했다.

양쪽에서 대각의 검로로 날 향하는 목검을, 너무 놀라 미처 막지 못했다.

상식에 어긋나도 크게 어긋난, 놀랍기 그지없는 현실에 난 멍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0.19초.’

내 느낌으론 그 정도의 시간은 걸린 것 같다.

어느새 강무한은 나뉘기 이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난 마주보는, 경이롭다는 감정을 담아 정면에 서 있는 강무한을 바라보았다.

양 옆구리가 욱신거리며 통증을 뇌리로 전했지만, 난 인지하지 못했다.

경악이라는 감정이 내 뇌리를 장악해, 일체의 모든 상념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통각痛覺마저 잊은 채, 멍하니 강무한을 보았다.

툭.

목검을 땅에 떨어뜨리며, 난 머리를 숙였다.

털썩.

힘없이 맨땅에 무릎을 꿇었다.

내 모습에 강무한은 나직이 픽 웃었다.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하며 시선을 들어 강무한의 얼굴을 보았다.

“졌습니…….”

패배를 인정하는 막 내뱉으려 하였다.

‘방심하고 있다!’

난 내심 흠칫거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강무한은 어느새 목검을 쥔 오른손을 지면으로 내렸다.

얼굴에 승자의 기꺼움이 가득 담겼다.

‘지금!’

난 전심전력을 다해 움직였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아직 말을 다 마치지 않았다. 지레 승부가 끝났다고 판단한 것은 강무한이다.

‘비겁하지만.’

허용될 것이다.

상대는 나보다 강한 강자다.

나는 약자다.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첩경 중 하나가 승자의 자만과 오만을 이용하는 것이니.

내가 진심으로 승복하지 않는 한, 내가 죽지 않은 이상, 승부는 끝난 것이 아니다.

강무한이 뭐라 생각하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

황황급급히.

날렵하게 상체를 숙여 맨땅을 한번 구르며 떨어뜨린 목검을 잡았다.

이어.

민첩하게 맨땅에 다시금 몸을 굴러, 강무한의 발치로 향했다.

발치에 이르러, 난 왼발을 땅에 꿇으며 오른발을 세웠다. 세운 오른발에 체중을 실으며 강하게 지면을 밟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오른손에 쥔 목검을 강무한에게 내질렀다.

나와 강무한을 있는 일직선의 최단 경로를 목검이 스쳤다.

그와 함께 귀에 잘 들리지 않는 미성微聲의 파공이 울렸다.

슈왁.

허공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섬전.

섬전이 노리는 목표는 강무한의 가슴과 배의 중심 명치!

일련의 상황이 이루어진 것은 불과 반 호흡 남짓한 시간이었다.

완벽한 기만!

그리 말하는 것이 타당한 깔끔한 기습.

척.

무엇인가가 가슴에 닿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강무한은 의문의 얼굴빛을 띠며 고개를 숙였다. 이민호가 내민, 명치에 검첨이 닿은 목검이 눈에 들어왔다.

기막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강무한은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발치에 있는 날 내려다보았다.

못 믿겠다!

얼굴과 눈동자에 그런 감정이 그득했다.

난 고개를 들어 강무한을 보았다.

“닿았습니다. 약속을 지키십시오.”

말하며 목검을 거두고 천천히 일어나,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강무한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너. 조금 전에.”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상대의 자만을 끌어내기 위한 기만술이었습니다.”

태연히 강무한을 마주보았다.

강무한은 별다른 감정 없이 가만히 날 응시했다.

그러더니 돌연.

“하하…….”

강무한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 하하하하하하.”

무엇이 기쁜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든데 이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으하하하하하.”

강무한은 웃고 또 웃었다.

‘저 영감이 실성을 했나?’

내게 당해서 머리가 홱까닥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에이. 설마.’

명색이 고수라는 양반이 겨우 요까짓 일에 정신줄을 놓을까?

난 만약을 몰라 강무한의 일거수일투족에 유의했다.

이해되지 않는다.

내게 화내야 정상이다.

패배를 인정하다가 비겁한 술수로서 승리를 도둑질해 갔다. 그리 말하며 고래고래 성난 목소리로 날 질타해야 정상인데.

@

강무한은 웃고 또 웃었다.

“으하하하하하하.”

일평생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오히려 너무나도 좋았다.

막혔던 것이, 십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간 듯이 통쾌하고 상쾌했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비겁하다는 상념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이 무공에 있어, 내공인 공력에 있어,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졌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자신의 가슴 명치는 이민호의 검에 꿰뚫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고, 이민호는 살아 두 다리로 땅을 밟고 섰을 터.

죽은 다음에 비겁이니, 졸렬이니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사문의 비기를, 자신보다 서너 수는 아래로 어림짐작하는 이민호에게 펼쳤는데.

그럼에도 지고 말았는데.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 생각들 중 한 생각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세상에서 제 아무리 강한 무공이라도 그 주체는 사람이다!

그것을 이민호가 보여주었다.

검은 사람이 쥐고 휘두르는 무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없으면 검도 없고 무공도 없다.

세상 모든 무공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강무한은 이민호가 검이 아닌 머리로 자신에게 어이없는 일격을 가한 것에 그런 깨우침을 얻었다.

강무한은 깨우침에 웃고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황당하다는 감정을 느낄 정도로 허무맹랑한 현실이지만, 이민호가 이긴 것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은 이민호보다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

무武에 있어 이민호는 자신의 십초지적도 되지 않는다. 전심전력을 다해 본신 무위를 드러냈다면, 이미 이민호는 죽어 맨땅에 너부러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격검에서 패자는 자신이다.

몸이 아닌, 검이 아닌 머리로, 승부수를 띄워 자신의 자만과 오만을 이끌어낸 이민호에게 지고 말았다.

‘완벽한 패배로고.’

강무한은 웃음을 멈추고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속이 쓰디쓴데, 그와 정반대로 기쁨을 느꼈다. 일생 동안 절치부심하며 깨트리고자 하였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이민호와의 격검을 통해 부셨다.

무벽武壁.

무, 일로를 걸으며 극의를 추구하는 무인들이라면 생애 한두 번은 맞닥뜨리는 절대 장애다.

빤히 앞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도전하고 또 도전함에도 벽은 돌파를 허용하지 않는다.

도저히 깨트릴 수 없을 것 같은, 늘 절망만 낳는 그 벽이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그와 함께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 심신心身을 가득 채웠다.

졌으나 이겼다.

그리 말해도 무방하다.

추호도 자신을 허용하지 않는 벽을 깨고, 사람이 무의 중심에 있다는 깨우침을 얻었다.

자신에게는 엄청 남는 장사(?)라고 봐야 할 것이다.

@

강무한은 가만히 서 있는 이민호를 보았다.

“약속대로 널 가르치마. 내일부터 해가 뜨는 새벽…… 시각에 맞춰 날 찾아오너라.”

말한 후, 뒤돌아섰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난 목검을 양손으로 쥐며 가슴 높이로 들었다.

발을 떼어 걸어가는 강무한을 향해 머리를 깍듯이 깊이 숙였다.

싱긋.

난 미소를 머금었다.

그토록 바라던 인명 살상용 검을 배울 기회를 잡았다.

‘앗싸아아.’

기뻐, 마음속으로 크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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