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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기-141화 (141/247)

<-- 141 회: 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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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두와 묵이 돌아간 후, 나는 곧바로 툇마루로 가 벌렁 드러누웠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무한이 끼니는 챙기는 것 같아, 난 살며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따뜻한 봄의 햇살이 내 몸을 살며시 덮었다.

서서히 체온이 올라가고, 온기에 차츰 나는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몰려오는 노곤함이 삽시간에 수마로 화하고 날 깊디깊은 단잠으로 이끌었다.

드르렁드르렁.

나도 모르게 코를 곯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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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한은 그릇을 씻던 손길을 멈칫거렸다.

찡긋.

귀에 들리는 시끄러운 코골이에 얼굴을 찌푸렸다. 심중 황당하다는 옅은 감정이 일었다.

‘대체 어느 집 자식이기에.’

생면부지인 자신의 집에 찾아와 내력을 묻는 말에도 묵묵부답이더니, 이제는 남의 집 툇마루에 누워 자신의 집인 양 편안하게 코를 골다니.

‘허어.’

강무한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 이민호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대체 어느 문벌 귀족 가문의 아들이기에 저렇게 제 멋대로일까?

‘흠.’

머릿속에서 조금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일부러 ‘놈’ 이라 외마디를 내뱉으며 은연중에 내력을 실었다.

여느 사람이라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주눅이 들어,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숙일 것인데.

이민호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참으로 묘한 놈이로고.’

강무한은 이민호의 얼굴을 머리에 떠올렸다.

딱히 이렇다 말할 것이 없는 상相이다.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이 조금 괴이하다.

본디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기운이나 성격 또는 명운이 얼핏 보이는데 이민호에게서는 전혀 그런 것이 드러나지 않았다.

‘참으로 알 수가 없으니. 무슨 죽은 시신도 아니고.’

강무한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진한 꺼림의 눈빛을 띠었다.

이민호에게서 망령의 기운이 물씬 우러났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원귀가 착 달라붙어 있어 필시 많은 피를 뿌릴 운명이다.

그런데 이민호는 전혀 그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성격이 날카롭고 사나우며 작은 일에도 크게 노하고 말과 손속이 거칠 것인데.

이민호는 태연하다 못해 찬 바람이 부는 듯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본시 망령의 기운이 달라붙으면 대부분 반쯤 미친 광인이 되거늘. 허허허. 어젯밤 꿈자리가 그리 사납더니. 저 놈이 날 찾아오느라 그랬군.’

강무한은 중얼거리며 고갤 돌려 밖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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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한은 부엌에서 가지고 나온 조촐한 밥상을 툇마루에 내려놀았다.

힐긋.

시선을 돌려 왼쪽을 보았다.

이민호가 코를 골며 잘도 자고 있었다. 그것이 보기에 안 좋아 얼굴을 찡그렸다.

‘이 놈이!’

의도적이다.

자신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수작질일 터다.

강무한은 짐짓 못 본 척하며 우측으로 돌아섰다. 막 툇마루에 앉으려는데.

발딱.

이민호가 날렵하게 일어서더니. 냉큼 밥상에 놓인 나무로 만든 수저와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밥상을 돌리고는,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재빨리 왼손에 밥 그릇을 들었다.

머리를 숙이고는 며칠 굶은 사람마냥 꾸역꾸역 입에 밥을 마구 넣기 시작했다.

그런 한편으로 젓가락을 돌려 몇몇 나무 반찬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맨손으로 자신이 갓 잡아와 구운 맛깔스러운 민물 생선을 통째로 오른손에 들고 와구와구 뜯어먹었다.

흔한 말로 걸신이 들린 모습이었다.

강무한은 어처구나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입을 벌리고 멍하니 이민호를 바라보았다.

‘이, 이놈이!’

일부러임을 다 안다.

여가서 화내면 이민호의 속셈대로 자신이 놀아나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강무한은 이민호를 보며 마음속으로 갈등했다.

쩝쩝.

이민호는 그 사이 입에 마구 넣은 것을 힘차게 씹어댔다. 씩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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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보통 노인네가 아니다.

화를 낼 법도 한데. 철저하게 자신의 김정을 통제, 조율하고 있다.

‘역시.’

범상치 않다.

힐긋.

강무한을 쳐다보며 툭 말을 건넸다.

“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강무한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하지 않았다. 눈가에서 알아보기 어려운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검이 필요합니다.”

난 입에 씹던 것을 꿀꺽 삼켰다.

“왜?”

“조금 전에 실전이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난 대답하며 바삐 오른손에 쥔 젓가락을 놀렸다.

강무한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날 향해 언성을 높였다.

“놈! 내게 사람을 죽이는 살검을 가르쳐달라 그 말이냐?”

화난 것 같다.

난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엄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고?”

강무한은 내 말에 허무맹랑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괴변을 늘어놓으려는 것이야!”

성난 외침을 내질렀다.

난 못 들은 척하며 말을 이었다.

“재물을 탐해 사람을 해치는 검은 하검下劍이요. 명예를 탐해 사람을 죽이는 검은 중검中劍이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임은 상검上劍이나니. 무릇 검劍 중 검은 바로 사람을 살리고자 사람을 죽임이니 이를 일러 의로운 검 의검義劍이라 한다.”

마음속으로 키득거렸다.

‘크크큭.’

회식 자리에서 소주에 취한 검도 사범이 횡설수설하던 것을 지금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강무한은 움찔거리며 당혹스러운 얼굴빛을 띠었다.

“…… 너어.”

살아 생전 자신의 면전에서 의검을 입에 올리는 자는 단연코 본 적이 없다.

의검을 아는 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이 세상에서 사라졌고, 그들이 남긴 흔적 또한 세월이란 이름의 풍화에 휩쓸려 애저녁에 먼지로 화했다.

‘으음.’

강무한은 심중 무거운 침음을 흘리며 뚫어져라 밥을 먹는 이민호를 바라보았다.

생애 처음, 의검이 무엇인지 아는 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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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네 재주를 한 번 보자. 언감생심 의검을 입에 올린 자라면 일신 무위가 범상치는 않을 터.”

강무한은 무슨 날을 잡은 사람마냥 엄청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노인네가 별안간 왜 이래. 다 먹지도 않은 밥 소화 안 되게 스리. 의검은 무슨 의검. 사범이 어디서 한 소리 주워듣고는 취중에 횡설수설한 것이 무슨 엄청 대단한 거라고.’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밥을 다 먹지 못했다.

별안간 강무한이 돌아서더니 초옥 뒤로 갔다 돌아와 내게 지금 손에 쥐고 있는 목검을 던졌다.

그러곤 한다는 말이 격검擊劍 하잔다.

내 어이가 없어서.

‘뭐, 배우는 것이 있겠지. 아마 내가 검술의 기초를 얼마나 닦았는지 볼 요량이겠지. 거 영화 같은 거에서도 종종 이런 장면이 나오잖아.’

난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맞은편에 서 있는 강무한을 보았다.

거리 약 십이 보步.

1미터가 대략 두 걸음 반에서 세 걸음쯤 되니깐. 단순 계산하면 한 4미터가 될라나.

가만히 노인 강무한을 응시했다.

“어?”

변했다.

강무한은 뭐랄까?

무슨 기암절벽 같은 느낌을 주었다.

착각이다.

틀림없다.

그런데 난 아래에 서서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기암절벽을 올려다보는 듯한 환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난 급히 마리를 좌우로 내저었다.

쩔레쩔레.

마주한 환상을 그렇게 떨치려했다.

“놈! 어디서 한 눈을 파는 게냐?”

강무한이 고함쳤다.

휘이잇.

낮은 기척이 들렸다.

난 흠칫했다.

‘공격?’

급히 오른발을 옆으로 내뻗으며 게처럼 이동했다.

스으으.

지면이 꽁꽁 언 얼음으로 되어 있는 듯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피했다고 자신했다.

‘반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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