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36화 (13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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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눈에 보이는 기녀 효연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각화무염刻畵無鹽, 경성지색傾城之色, 만고절색萬古絶色 등등.

미인을 칭하는 사자성어들이 내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천천히 내 왼쪽에 앉는 효연은 벌린 입을 다물기 어려운 미인 중 미인이었다.

명모호치라는 말이 떠오르는 맑고 동그란 눈동자와 정갈하고 단안한 자태.

단순호치라는 말이 생각나는 붉은 이불과 하얀 잇몸.

옥모선자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우아하고 신선 같은 자태와 옥 같은 얼굴.

왼쪽 가슴에 살며시 보듬어 안은 생황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최향이 앉는 효연에게 정신을 빼앗긴 내게 농을 걸었다.

“저런, 저런. 이보시게. 내 말이 들리시는가?”

좌우에 앉은 두 기녀가 장단을 맞추듯 은근 슬쩍 최향에게 자신의 몸을 기댔다.

“호호호. 나리. 저 분이 효연 언니에게 첫 눈에 푹 빠지셨는가? 봅니다.”

“아마 나리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귀에 들어오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최향은 두 기녀를 돌아보았다.

“예끼. 이 년들.”

“아잉. 나리.”

“신첩들이 뭘 잘못 말했사옵니까?”

두 기녀가 눈을 흘기며 아양을 떨었다.

“으하하하하. 아니다. 아니야. 니들 말이 맞다. 으하하하하.”

최향은 고개를 들며 파안대소했다.

시선이 은근 슬쩍 날 향했지만, 난 미처 최향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다.

기녀 효연에게 모든 신경이 다 간 탓이다.

‘크크크. 송절의 말대로군. 그래.’

최향은 유송절의 계책을 생각하며 심중 득의양양했다.

‘놈!’

덫에 걸려든 한 마리 짐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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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연이 날 향해 돌아앉으며 공손히 인사했다.

“효연이라 합니다.”

“아, 예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효연은 스물여덟아홉쯤 돼 보였다.

각종 곡물이나 한약재를 이용해 화장한 탓에 정확한 나이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잔. 받으시지요.”

효연이 자신의 왼쪽에 생황을 내려놓고 상에 놓인 술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난 술을 권하는 효연의 말에 부지불식간 잔을 들었다.

쪼르르.

낮은 소리와 함께 잔이 채워졌다.

흠칫.

난 귀에 들린 낮은 소리에 내가 무슨 실책을 범했는지, 뒤늦게 알아챘다.

‘아차!’

미인계.

내 머리에 그런 계책이 떠올랐다.

‘하지만 보통 미인이 아니야. 21세기에도 이 여자만한 미인은 본 적이 없어.’

효연은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가만!’

뭔가 좀 이상하다. 아귀가 안 맞는 그런 기분이다.

내가 잠깐 정신을 놓을 정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인이라면, 최향이 벌써 자신의 집에 들여앉혔어야 한다.

아니 굳이 최향이 아니더라도 한다하는 문벌 귀족 가문이 이들이 효연을 그간 가만히 놔두었을까?

‘뭔가 있다!’

그런 확신에 난 내심 신중해지려 노력했다.

최향이 말이 귀에 들렸다.

“이보게.”

“예, 참지정사 나으리.”

난 손에 든 잔을 상에 내려놓고 최향을 쳐다보았다.

최향은 눈짓으로 효연을 가리켰다.

“저 아이는 개경 제일의 예기일세. 생황에 있어 아마 고려제일일 게야. 이 자리에 불러내기 위해 적잖은 정성을 쏟았다네.”

“그러십니까? 덕분에 제가 오늘 크게 호강을 한 것 같습니다.”

최향은 날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리석은 놈! 자고로 사내의 무덤은 미인이라는 말이 있지. 흐흐흐.’

공을 들인 보람이 있다.

효연이란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계집을 이용하여 맞은편에 앉은 이민호와 조카 최송이의 혼사를 파토내리라.

최향은 심중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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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가 흥을 더하며 차츰 나와 최향은 술에 취했다.

자연스레 취한 여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잉. 나리.”

“이러심 안 되시어요.”

두 기녀가 몸을 틀며 은근히 거부했다.

최향은 그 행동에 몸이 단 듯, 내가 앞에 있음에도 두 기녀를 희롱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안 되긴 뭐가 안 된다는 것이냐? 크큭.”

양손이 좌우에서 부지런히 오갔다.

‘아주 지랄을 하세요.’

난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반쯤 마신 잔을 상에 내려놓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효연이 술병을 들었다.

‘참 의아한 여자야. 자리에 앉은 후부터 지금까지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아서. 화가 났기 때문일까?’

궁금했다.

통상 예기라 함은 시서화예詩書畵藝와 가무음곡歌舞音曲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기녀를 말한다.

그런 까닭에 다른 일반 기녀와는 다소 다른 대우를 받는다.

재주는 팔지언정 몸은 팔지 않는다!

그것이 예기의 자존심이다.

소싯적 조선 기생들에 관한 논문을 쓰다가 우연찮게 조금 상식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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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연은 어리둥절했다.

서너 차례 생황을 불어 술자리의 흥을 돋우고, 술병을 들어 이민호에게 술을 권했다.

한데, 이민호는 잔을 들지 않았다.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겠다. 아니면…….

효연은 술병을 든 채 최향의 좌우에 있는 기녀를 힐긋거렸다.

시야에 최향이 두 기녀를 희롱하는 것이 보였다.

왼손은 앉은 기녀의 치마 속을 바삐 오갔고, 오른손은 기녀의 허리를 둘렀다.

얼굴은 좌우를 번갈아 오기가 바빴다.

앉은 두 기녀의 앞섶은 훤히 풀어져, 탱탱한 탄력 있는 두 봉우리가 훤히 드러났다.

부끄러워 할 법도 하거만, 두 기녀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직면한 상황에 대한 경험이 적잖음을 알 수 있는 태연함이었다.

질끈.

효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최향이 협박했다.

‘내가 며칠 내로 데리고 올 이민호라는 자를.’

자신에게 이민호가 푹 빠지게 하라는, 미인계의 재물로 자신을 쓰겠다는 노골적인 최향의 말에 거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최향의 보복도 보복이지만, 자신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당하게 될 대가(?)가 실로 뼈아프기 그지없었다.

자신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면 달게 받겠으나, 자신이 아닌…….

효연은 손에 든 술병을 상에 내려놓았다.

이민호가 생각 중임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효연은 살며시 입을 열어 말을 붙였다.

“제가 혹 무례한 짓이라도 하여 언짢으신 겝니까?”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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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효연의 말에 흠칫했다.

고개를 돌리며 싱그레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잠시 제가 딴 생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일순.

파르르.

효연의 눈가가 미미하게 위아래로 떨렸다.

‘이 사람.’

처음 본다.

기방에 온 이들 대다수가 반말을 하기 일쑤이고, 기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며,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으로 치부한다.

깔보고 얕잡아보며 하대를 서슴지 않고 희롱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기녀를 사람으로 치부한다면 그리 민망한 작태들을 연출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으로 보지 않기에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주태를 거리낌 없이 벌이는 것일 터.

효연은 기적에 이름을 올리고 이제까지 상대한 이들과는 완연히 다른 이민호의 말투에 심중 당혹감을 느꼈다.

자신을 정중히 대하고, 숨김없이 솔직히 말한다.

예기가 기방에서 술자리에, 사내 옆에 앉았다는 의미를 알고 있다면.

효연은 힐긋 최향과 양쪽에 앉은 두 기녀를 보았다.

파탈이었다.

보기에 마음이 불편해도 너무 불편한 터라 곤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때마침 최향이 힐끗 시선을 주었다. 슬쩍 눈짓으로 방문을 가리키는 최향의 다그침 아닌 다그침에 효연은 입을 다물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넌지시 이민호에게 제안했다.

“잠시 바람을 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최향과 두 기녀의 추태에 눈을 어디다 둬야 할 줄 모르던 참이었다. 그리고 미인계의 중심에 있는 효연이 무슨 수작을 부릴지 심중 궁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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