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35화 (13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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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최충헌을 올려다보며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사옵니다. 적의 물자를 획득한 자에게 더 큰 상을 주셔야 합니다.”

“하하하하. 재미있군. 재미있어. 북의 오랑캐에게 맞설 전비를 남의 오랑캐에게서 얻는다?”

“저희 고려에는 득이 되면 되었지 실은 없습니다. 합하. 다만 그 일은 몇몇 상인을 통해 자발적으로 그들이 하는 것으로 처리하심이 좋을 듯 하옵니다. 행여 도당都堂의 명망이 떨어질지도 모르오니.”

“그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었다. 나 역시 그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간 왜구들이 이 나라 고려가 세워진 이래, 아니 그 이전부터 우리 삼한을 침노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주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단 한 번도 왜구들을 징치하지 못했었다. 내 왜 그대가 말한 것을 진작 생각하지 못했는지 실로 한탄스럽기 짝이 없다. 하고자 하는 대로 하라. 다만 그로인해 들어오는 모든 재물은 모두 전비로 돌려야 함을 잊지 말라.”

“지당하신 분부이시옵니다.”

대답하며 속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젠장. 팔자에도 없는 아부를.’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최충헌의 비위를 맞추고 입안의 혀처럼 굴 수밖에.

“좋다. 그대에게 그 일을 모두 일임함은 물론, 겉으로 드러내놓고 도와주지는 못하지만 뒤로는.”

최충헌은 말을 흐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띠었다.

“감사하옵니다. 합하.”

난 머리를 숙였다.

“일간 다시 부를 것이니. 돌아가 편히 쉬도록 하라.”

“예.”

답하며 머리를 들었다.

최충헌은 날 보더니 넌지시 주의를 주듯 말을 흘렸다.

“내 따로 우에게 이른 말이 있으니. 우의 곁을 함부로 떠나지 말라. 알겠는가?”

“네?”

난 어리둥절하며 반문했다.

최충헌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작은 이채를 반짝였다.

‘뭐지?’

난 의아해 최충헌을 빤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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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도감을 나오는데 뜻밖의 사람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잠시 나 좀 봅시다.”

김덕명이었다.

“아, 네.”

난 제법 놀라 대꾸하며 돌아서서 걸어가는 김덕명을 보았다.

‘뭐지?’

호기심이 동했다.

김덕명 뒤에는 최향이 있음을 잘 안다. 혹 최향이 김덕명에게 따로 무슨 언질을 준 것은 아닐까?

“어서 따라오시오.”

“아, 갑니다.”

난 대꾸하며 김덕명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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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장소이자, 뜻밖의 사람과의 조우였다.

김덕명이 날 안내한 곳은 기방이었고, 이미 술상이 차려진 방안에는 최향이 앉아 있었다.

“그럼.”

김덕명이 머리를 끄덕여 최향에게 인사한 후 방밖으로 나갔다.

“앉으시게.”

“네.”

최향의 권유에 난 맞은편 방바닥에 놓인 비단 방석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앞에는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듯 온갖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최향은 손수 상에 놓인 술병을 들더니 내게 술을 권했다.

“받으시게.”

“아니, 참지정사께서 먼저.”

“난 괜찮네. 받으시게.”

“그럼.”

최향이 강권하는 터라,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잠시 두어 순배巡杯의 잔이 돌았다.

최향은 호방한 기상을 떨치며 이런 저런 잡담을 꺼냈다.

난 적당히 말장단을 맞춰주었다.

‘곧 본론을 꺼내겠지.’

아니나 다를까?

최향이 넌지시 이자개에게 들은 최송이와의 혼담에 관해 말을 꺼냈다.

“축하하네. 아버님이 자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신 모양일세. 자네가 송이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면 내게는 이제 조카사위가 되지 않는가?”

“얼떨떨합니다. 금시초문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난 부러 크게 당황해 혼란스러워하는 의중을 내비쳤다.

최충헌은 그런 날 보며 미소 지었다.

“하하하하. 사람하곤.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세. 이제 자네와 난 한 집안사람이 되는 것이라네.”

“그, 그렇습니까?”

최향은 눈을 반짝이며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난 최대한 당혹감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힘드네. 팔자에도 없는 연기를 하려니 참.’

머릿속으로 최향이 은밀히 이렇게 자리를 만든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아직은 최향과 적대관계가 되어서는 곤란해. 만약 최향이 내 일에 딴죽을 걸고 나온다면 이래저래 피곤해지니. 적당히 관계를 조절해둘 필요가 있어.’

최우와 최향 사이에서 일종의 캐스팅 보드 역할을 하며 내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중립적인 포지션을 취하는 것이 좋다.

최향은 마신 잔을 내려놓으며 날 보았다.

“이번에 자네가 큰 공을 세웠으니. 게다가 이제 조카사위가 될 테니. 아버님이 못해도 정 5품 중랑장 자리쯤은 주실 것이네.”

난 최향의 말에 흠칫거리며 놀란 척했다.

‘중랑장?’

재빨리 머릿속으로 중랑장에 관한 기억을 떠올렸다.

2군6위로 대변되는 고려 중앙군에서 장군 다음 가는 직위다.

현대로 치면 일종의 총참모장 정도 된다.

고려의 전시과를 기준으로 보면 전田 70결과 시柴 27결을 지급받았다.

전이 토지라면 시는 임야로 일종의 장작을 위한 벌목 권리다.

2군 6위에는 총 90명의 중랑장이 있었다. 하나 도부외에 1인, 총용위에 12명 등등.

이런 저런 자를 모두 합치면 그 수가 총 103인에 이른다.

난 정중히 입을 뗐다.

“갓 관직에 출사하는 저로서는 너무 큰 직위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닐세. 이번에 자네가 세운 전공이면 차고도 넘치네. 그리고 이젠 자넨 우리 우봉 최 씨 가문의 사람이 되지 않는가? 내 마음 같아서는 자네를 종 3품의 대장군으로 추천하고 싶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이목이 있으니 그게 좀 여의치가 않네. 그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참지정사 어른.”

“별 소리를 다 하시네.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세.”

“네.”

난 대답하며 마음속으로 비아냥거렸다.

‘놀고 있다. 내 속이 훤히 다 보이는데. 체.’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 최향은 제법 공들여 날 포섭할 생각인 것 같다.

9 장

술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최향이 내 뒤에 있는 방문을 쳐다보았다.

“게 누구 없느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다.

드륵.

살며시 열린 문틈으로 곱게 단장한 장년의 여인이 대답했다.

“찾으셨사옵니까? 참지정사 어른.”

“기녀들을 들이거라.”

“예에에.”

장년의 여인은 공손히 대답했다.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훗. 술과 여자라.’

내게 엄청 공을 들일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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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들이 들어왔다.

한데. 조금 이상하다.

최향의 좌우에는 곱디고운 두 기녀가 앉아 있었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양반이. 무슨 장난질을 치려고.’

의심스럽다.

최향이 날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좌우에 앉은 두 기녀는 날 쳐다보며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짓는 미소를 감추려는 손동작이다. 그런데 두 기녀의 눈웃음이 뭔가 이상하다.

잠시 후.

“효연입니다. 참지정사 어른.”

닫힌 문 밖에서 예의 장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최향은 크게 반기며 방문을 쳐다보았다.

좌우에 앉은 두 기녀는 흠칫거리더니 손을 들어 옷매무새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뭐야?’

난 이해되지 않았다.

겨우 기녀 하나 들어오는데 최향과 두 기녀가 어딘지 모르게 긴장하는 것이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드륵.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사르르.

옷자락이 방바닥을 스치는 나직한 소리가 귀에 들렸다.

호기심에 손에 쥔 잔을 술상에 내려놓고 왼쪽을 돌아보았다.

순간.

“허억.”

나는 헛바람을 삼키고 말았다.

귀에 최향이 내 모습에 대소하는 것이 들렸다.

“하하하하하.”

좌우에 앉은 기녀가 최향을 따라 웃었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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