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31화 (13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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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

개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잠시 늦춰졌다.

가병과 건달들은 그 이유를 아는 터라 별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기하는 동안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반기는 눈치들이었다.

이자개와 만난 다음 날 저녁.

혹두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찾았습니다.”

희희낙락하며 내게 말하는 혹두에게서 충만한 자신감이 그득 풍겼다.

“그래. 누구야?”

내 물음에 혹두가 상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장헌영이라고 이곳 벽란도에서.”

혹두의 말에 난 자연스레 2인자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간 이자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입니다. 다들 이자개보다 한 수 아래로 보고. 무엇보아도 이자개에게 가로막혀…… 얼마 전부터는 최향과 접촉이 빈번했다 합니다.”

“최향과?”

“네. 뒷골목에서 돌아다니는 정보로는 오래전부터 최향이 상인들에게서 뒷돈을 적잖게 받아 챙겼다는.”

혹두는 말을 이었다.

‘정치 자금!’

난 눈을 반짝였다.

‘참 시대를 막론하고 그 놈의 정경 유착은.’

마음에 안 든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돈은 일정 선과 규모를 넘어서며 그 때부터는 급격히 권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힘과 가까워진다.

그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여, 예부터 큰 상인은 부가 일정 규모와 선을 넘지 않도록 가진 것을 세상과 사람들에게 통 크게 베풀곤 했다.

“흠.”

난 낮은 침음을 흘리며 혹두에게 몇몇 당부를 건넸다.

혹두는 놀란 기색을 띠며 반문했다.

“나리. 괜찮겠습니까? 최향과 연결되어 있는 상인입니다. 관에서도 쉬이 건드리지 못하는 잔데. 어설프게 건드려 놨다가는 오히려 역으로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려의 목소리에 난 피식 싱겁게 웃었다.

“그 정도도 내가 모를 것 같아. 이제 이자개는 내 사람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에?”

혹두는 다시금 놀라며 눈을 치떴다.

“흐흐흐.”

난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혹두는 날 마주보면 진한 꺼림의 얼굴빛을 띠었다.

난 혹두에게 몇몇 지시를 하며 단단히 입조심을 시켰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네.”

혹두가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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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달 밝은 야심한 시각에 난 복면을 하고 야행복 차림으로 상인 잔헌영의 상가商家 담을 넘었다.

확실히 혹두는 정보에 있어 발군이었다.

“가장 중심부에 있는, 다른 전각들보다 큰 전각으로 가시면 됩니다.”

간단했다.

장헌영의 상가에는 호위 무사가 십여 명 남짓 있고, 두 명씩 번갈아가며 장헌연의 거처를 밤낮으로 지킨다고 혹두가 말해주었다.

주변을 살피며 신속하게 장헌영의 거처로 향했다.

전각과 나무가 땅바닥에 드리운, 달빛이 만들어내는 그늘과 그림자를 징검다리마냥 옮겨 다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시야에 서 있는 두 무사가 보였다.

난 한 전각 모서리에 몸을 숨기고 고개를 내밀어 동정을 살폈다.

두 무사는 지루한 듯 자세를 풀고는 서로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듯 연방 낄낄거렸다.

난 허리춤에서 엄지 손톱만한 작은 쇠구슬 두 개를 꺼내, 손에 쥐었다.

쇠구슬은 혹두를 시켜 구했다.

흔히들 암기라 부르는, 투척 무기의 일종인 쇠구슬은 무척 유용하다.

소지하기도 간편하고 비 살상무기로서 그만한 것도 없다.

난 쇠구슬을 손에 쥐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에 두 무사가 멈칫하더니 날 돌아보았다.

“누구냐?”

경계심이 배인 목소리로 한 무사가 내게 물었다.

난 태연히 대답하며 빠른 걸음으로 두 무사에게 걸어갔다.

“나야 나. 소피보러 나왔다가 이쪽으로 뭔가가 지나가는 것 같아 와 봤어.”

“응?”

“누구지?”

두 무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서로 바라보았다.

“처음 듣는 목소리 같지 않아?”

“글쎄.”

그 사이.

나와 두 무사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며 가까워졌다.

두 무사는 날 보더니 홀연히 기함할 듯 놀라 외쳤다.

“악.”

“보, 복면?”

그 순간.

휘, 휘익.

난 두 무사를 향해 손에 쥔 쇠구슬을 던졌다.

쇠구슬은 경쾌한 파공을 흘렸다.

힘차게 쭈욱 뻗는 일직선의 경로로 두 무사를 향해 날아갔다.

일순.

퍼, 퍼억.

둔중한 소리와 함께 두 무사가 휘청거리더니, 맨땅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털썩털썩.

미처 비명을 지를 새도 없는 전광석화 같은 공격이었다.

난 그새 두 무사를 향해 내달렸다.

행여 두 무사가 비명이나 외침을 발해 내가 나타난 것을 주위로 알릴까? 저어했기 때문이다.

전력을 다해 달린 터라, 곧 두 무사에게 이르렀다.

난 신음하며 몸을 일으키려는 두 무사를 단숨에 제압했다.

두 무사는 힘없이 땅바닥에 몸을 뉘였다.

난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

조용했다.

다행히 눈치챈 자는 없었다.

난 두 무사를 차례대로 뒤에 있는 전각의 벽으로 옮겼다.

피로해서 자고 있는 것처럼, 정신을 잃은 두 무사의 자세를 잡아주고는 곧바로 전각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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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비단 휘장을 두른 호사스러운 침대에 세 남녀가 누워 자고 있었다.

중앙에 누운 사내는 장년의 연배에 이른 듯 턱수염이 무성했다.

뺨이 훌쭉 들어가고 눈매가 옆으로 길게 뻗은 것이 보기에 상당히 까탈스러운 성격 같았다.

좌우에 누운 두 여인은 스물 초반으로 보였다. 미인 축에 들만한 두 여자는 세상 모르게 쿨쿨 달게 자고 있었다.

난 침상으로 다가가 휘장을 들췄다.

‘훗.’

눈에 보이는 세 남녀에 마음속으로 실소했다.

‘팔자 좋네. 확실히 돈이 좋긴 좋아. 큭큭.’

중얼거리며 침상으로 바짝 붙으며 두 여인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살며시 턱 아래 목적 좌우를 짚으며 손가락에 감각과 신경을 집중했다.

‘조심, 조심.’

잘못 힘주다가는 두 여인이 즉사할 우려가 있다.

난 손가락에 느껴지는 맥박이 뛰는 경동맥을 지그시 눌렀다.

경동맥을 눌러 사람이 죽거나 기절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질식사다.

두 여인을 죽일 생각이 없는 관계로 매우 신중하게 손을 놀렸다.

이내 두 여인은 몸을 추욱 늘어뜨렸다.

내 손짓 때문일까?

중앙에 누운 남자가 뒤척였다.

“으응.”

난 왼손을 남자 장헌영의 우측 관자놀이로 내밀었다. 살며시 중지와 엄지를 말아, 관자놀이에 딱밤을 먹였다.

딱.

낮은 외마디가 들렸다.

“아악.”

장헌영이 놀란 외침을 내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난 상체를 일으키려는 장헌헌의 목을 오른손으로 부여잡았다.

꽈악.

손가락으로 목을 강하게 압박하며 장헌영은 침상으로 내리눌렀다.

“끄윽.”

장헌영은 숨이 막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장헌영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복명을 쓴 까닭에 장헌영에게 내 얼굴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장헌영.”

딱딱한 목소리로 불렀다.

목표인 장헌영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의도다.

장헌영은 숨이 막히는 옅은 신음을 흘리며 날 뚫어져라 보았다.

“끄, 끄으…… 누, 누구.”

“잘 들어라. 이자개는 건드리지 마라. 네 뒤에 참지정사가 있어, 네 목숨을 거두지 않겠지만. 추후 또 다시 이자개를 건드리면 그 때는 아무리 네 뒤에 참지정사가 있다고 해도 널 살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분하다면 참지정사를 찾아가 네가 당한 것을 알려라. 혹여 최향이 묻거들랑 경성景成! 그 두 글자를 말해줘라. 하면 내가 어느 분의 명으로 움직이는지 잘 알 터이니.”

장헌영은 말없이 날 올려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얼굴에서 죽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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