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24화 (1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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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한다면 제 2의 장보고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자개는 망설이는 기색을 띠었다.

내심 갈팡질팡하는지 눈동자에서 동요라는 감정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난 천천히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오지 않는다면 나와 함께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알고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이자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내리감으며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었다. 마음속으로 매우 갈등하고 있을 것이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서책은 이 사람이 두고 가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럼.”

말하며 뒤돌아선 후, 눈에 보이는 방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잠시 뒤.

탁.

문이 닫히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이자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얼굴이 굳을 대로 굳어, 보기에 무슨 거북이 등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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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은 일직선으로 뻗은 탁자 중앙에 앉아 있었다.

좌측에는 아들 최우가, 우측에는 며느리 정 씨와 장손녀 치송이가 앉아 눈을 부릅떴다.

“아버님.”

“어, 어찌 그런 말씀을.”

최우와 아내인 정 씨 부인은 소스라칠 정도로 놀랐다.

최충헌은 아들과 며느리를 보지 않고, 정 씨 부인의 우측에 앉은 장손녀 최송이를 보았다.

“네 생각은 어떠느냐?”

최송이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조부 최충헌을 보았다.

“할아버님.”

“말해보려무나.”

“그것이 아버님을 위해서 입니까?”

“그렇다.”

최충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들 최우를 흘낏거렸다.

“네 아비 곁에는 사람이 없다.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없고.”

아들 최우의 곁에 인재가 없음을, 즉각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없음을 넌지시 지적했다.

“반면!”

최충헌은 힘주었다.

최우, 정 씨 부인, 최송이의 이목은 자연스레 최충헌을 향했다.

“네 숙부의 곁에는 유송절, 지윤심, 최준문처럼 전쟁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있다. 내 측근인 김덕명마저 오래전부터 네 숙부의 사람이 되었다. 더욱이 중앙군의 8할을 네 숙부가 수중에 쥐고 있다.”

최우는 잔떨림을 흘렸다.

정 씨 부인은 시부 최충헌의 말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매우 당황했다.

시부가 자신의 남편에게 지금 권력을 물려주려 한다.

한데 위험하다고, 자칫 동생 최향이 병력을 동원할 경우 꼼짝 없이 당한다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 씨 부인은 머릿속이 혼미했다. 어지러운 것이 정신을 차리기가 너무 어려웠다.

의외로 최송이는 태연했다.

전혀 흔들림이 없는 몹시 냉철한 모습이라, 최충헌은 내심 웃었다.

‘껄껄껄.’

자신의 피를 가장 진하게, 가장 많이 받고 태어난 것 같다.

두 아들 최우, 최향보다 더 자신에게 가까운 장손녀 최송이다.

‘참으로 아깝구나. 저 아이가 남아로 태어났더라면.’

최충헌은 몹시 애석해했다.

최송이는 최우나 최향보다 더 뛰어난 정치 감각과 남다른 배포를 가지고 있어, 자신의 후계자감으로 더할 나위가 없었다.

아들 최우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최송이 때문이다.

차자 최향이 형 최우를 죽이고 그 일가족까지 모두 다 죽일까? 마음속으로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권력을 안정시키고 흔들리지 않게 다지려면, 권력을 잡은 최향은 형의 가족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

어설프게 살려두었다가는 훗날 심복지환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우 부부가 죽고 최송이만 살아남았다고, 시간이 흘러 최향의 권력이 심하게 흔들리고,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경쟁자는 틀림없이 장손녀 최송이를 전면에 내세워 최향의 도덕성을 깎아내리는 한편, 최향을 죽이는 명분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딸.

최향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다르겠지만 아차 하는 사이 권력을 손에서 놓칠 경우, 최향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잡은 권력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모든 요소를 사전에 철저히 없애는 것이 좋다.

그것이 현명하다.

최충헌은 장자 최우와 차자 최향, 두 아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었을 경우와 최우에게 주었을 경우 그리고 최향에게 주었을 경우를 그 동안 남몰래 따져보았다.

세 경우 모두 일장일단이 있었다.

고심에 고심을 한 끝에 택한 것이 바로 장자 최우였다.

그 사이.

최송이는 생각하더니 조부 최충헌에게 결심한 바를 말했다.

“소녀는 할아버님의 뜻에 따르겠어요.”

“그래.”

최충헌은 반색하며 기쁜 낯빛을 띠었다.

정 씨 부인은 급히 입을 열어 서풍과 서녀의 혼사가 오가고 있음을 밝혔다.

최충헌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거리낌 없이 대꾸했다.

“여가와 그 사람이 무슨 관계더냐? 서로 인척이냐? 아니면 달리 이유가 있는 것이냐?”

“그, 그건.”

정 씨 부인은 다소 언성을 높이는 시부 최충헌의 말에 당황했다.

화난 것 같다.

서둘러 말했다가 시부에게 미운 털이 박힐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정 씨 부인은 맞은편에 앉은 남편 최우로 보았다.

‘어보.’

마음속으로 최우를 부르며 어떻게 해보라는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한편.

최우는 부친 최충헌과 아내 정 씨 부인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아내의 시선에 어린 속뜻을 이내 알아챘다.

최우는 부친을 돌아보며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양백이 그 자를 추천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 곁에 두라…… 제 사람으로 만들 때 만들더라도 일단 한 번쯤은……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최충헌은 아들 최우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쯧쯧.”

혀를 찼다.

최우는 움찔거리며 부친의 눈치를 보았다.

“내 말 잘 듣거라.”

“네. 아버님.”

최우는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여서는 네게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자를 얻지 못한다. 사람을 얻고자 한다면, 그 자를 반드시 네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 설혹 그것이 네 목숨이라도 말이다.”

“아, 아버님.”

최우는 당황했다.

최충헌은 화난 듯 언성을 높였다.

“내 말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네.”

최우는 대답하며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최충헌은 말을 이었다.

“유비가 왜 자신의 아들을 구해온 조자룡의 앞에서 아들을 땅에 왜 내팽개쳐는 줄 아느냐?”

“…….”

최우, 정 씨 부인, 최송이는 최충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면 조자룡이 죽음을 불사하며 자신의 사람이 될 것을 알기에 그리한 것이다. 유비가 가진 것은 대의명분과 인의 밖에 없기에 그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여, 제갈공명, 관우, 장비, 조자룡이라는 걸출한 인재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자신에게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충신은 그렇게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란 말이다. 너처럼 머릿속으로 계산하여서는 결코 인재를 곁에 둘 수 없다. 알겠느냐?”

“네, 아버님.”

“송이가 승낙하였으니. 내 그 사람이 개경에 오면 일간 자리를 만들어 의향을 물어볼 것이다. 내 뜻에 그 사람이 따르고자 한다면 너흰 두 말하지 않도록 해라.”

최충헌은 눈을 부라리며 아들 최우와 며느리 정 씨 부인을 매섭게 응시했다.

그에게서 위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무럭무럭 일어났다.

움찔.

최우와 정 씨 부인은 최충헌의 기세에 주눅이 들어 뭐라 말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권력을 넘겨주려는 최충헌이다 보니, 감히 반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행여 밉보였다가 최충헌이 최향으로 하여금 자신의 권력을 승계 받게 하는 날에는 자신들은 물론 식솔들까지 모두 죽은 목숨이라, 최충헌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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