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회: 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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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뭐가 저래. 오래갈 줄 알았는데.”
“너무 싱겁잖아.”
건달과 궁병들은 이민호와 다카요시의 허무한 공방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크.”
“아주 사람을 죽일 작정이신 것 같은데.”
“자근자근 밟아 죽이겠다는 심산이셔.”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말리긴 왜 말려. 왜구 놈들 때문에 우리 고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거나 다쳤는데. 게다가 저 놈들이 약탈해간 재물이 다 누구 거야.”
“맞아, 맞아.”
건달과 궁병들은 고개를 돌려 좌우에 있는 동료들과 잡담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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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두는 옆에 서 있는 묵을 돌아보았다.
“야아. 묵아.”
“네, 아저씨.”
“나리.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
혹두는 다카요시를 아주 패죽일 듯 심하게 폭행하는 이민호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묵은 이민호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입맛을 다셨다.
“놔두세요. 나리가 지금 화 엄청나신 것 같은데. 거기에 대고 뭐라고 말했다간 불벼락이 떨어질 거예요.”
“하긴.”
혹두는 머리를 까닥였다.
그간 이민호와 함께 한 덕분에 일부나마 이민호의 성격을 엿보았다.
“그런데 말이다. 대체 저 왜구 놈을 나리가 어떻게 하실 요량이신지, 너 무슨 눈치챈 건 없냐?”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묵은 혹두를 돌아보며 대답했다.“그래.”
혹두는 중얼거리며 이민호를 보았다.
‘아주 사람 잡네. 잡어. 저 양반. 한 번 홱 돌아가면 눈에 뵈는 것이 없어. 사람이 변한 것처럼 너무 무시무시해진단 말이야.’
조심스러웠다.
명석하기 짝이 없는 이민호지만 한 번 화내면 엄청 무서웠다.
그럴 때는 입을 꾹 다물고 이민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하는 것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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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개경의 정문이라 할 장패문을 최우, 서풍, 지방 호족들이 휘하 가병 800여 명을 대동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얼마간 걸어가자 십자대로가 나타났다.
대로 양쪽에는 개경에 사는 양민들이 잔뜩 몰려나와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추밀원 부사 어른 만세.”
“상국 어른 만세.”
“우와아아.”
양민들은 이기고 돌아오는 이들을 향해 환호를 보냈다.
최우는 환한 얼굴로 밝은 미소를 머금었다.
말안장에 앉아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흔들며 환호하는 양민들을 돌아보았다.
개선장군이라는 것이 바로 지금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 심중 매우 기꺼웠다.
‘허허허허.’
그런 감정은 서풍과 지방 호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래대로라면 자신들은 최우와 헤어져야 한다. 하지만 최우가 함께 황도로 가자고 제의한 것을 빌미로 동행했다.
다들 속으로 저마다의 꿍꿍이가 있었다.
최우, 서풍, 호족, 가병 800여 명은 십자대로를 지나 남대가로 향했다.
남대가를 조금 더 지나가면 좌측에 각 관청이 있는 거리가 있고, 예의 관청 거리를 따라 쭉 걸어가노라면 곧 멀리에 있는 황궁이 보인다.
우람하고 위풍당당한 황궁의 정문 광화문까지.
최우를 비롯한 이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양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걸어갔다.
최우는 말을 천천히 몰며 좌측 뒤에서 따라오는 서풍을 돌아보았다.
“그 사람은 지금쯤이면 충주목에 당도했겠지.”
“네. 아마 지금이면 한창 왜구들과 교전 중일 겁니다.”
서풍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최우는 시선을 바로 하며 안타깝다는 얼굴빛을 띠었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서풍은 최우의 중얼거림에 흠칫하며 빠르게 말을 건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부사 어른.”
“하긴. 향이가 크게 패하였으니.”
최우는 말하며 입매를 살며시 비틀었다. 득의라는 감정이 엿보이는 얼굴이었다.
‘좋구나. 좋아.’
최우는 의기양양했다.
길 좌우에 몰려나와 있는 양민들이 자신을 환호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환호는 받아본 적이 없다.
‘아버님.’
부친 최충헌을 생각했다.
이번 일로 부친의 의중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후계자로 자신을 심중에 두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최우는 가능한 미소를 자제하며 근엄하지만 정이 묻어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방 양민들을 돌아보며 손을 들어 양쪽으로 흔들어 화답했다.
곧 황궁에 다다를 것이다.
황제에게 승전하였음을 고한 후 부친을 찾아가 돌아왔음을 다시 고해야 한다.
최우는 힐긋 뒤따르는 서풍과 지방 호족들을 돌아보았다.
장차 자신의 무력 기반이 될 이들이다.
여주 서가를 중심으로 자신의 사람들을 모아야 하고 만들어야 한다.
최우는 안장에 앉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이민호를 생각했다.
‘대단한 자야. 그러니 양백이 죽기 전에 내게 그리 곁에 두라 신신당부했겠지만.’
내심 웃었다.
일부러 이민호와 호족들 사이에 틈을 벌여두었다.
권력을 쥔 자가 경계해야 할 것이 휘하에 있는 자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이다.
서너 개의 파벌이나 세력으로 갈라놓아 자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게 하며, 자신이 세력 다툼의 중재자로서 각 세력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힘을 쥐고 있어야, 휘하에 있는 자나 세력을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다.
권력은 오롯이 자신의 수중에 틀어쥐고, 충성하는 자에게만 조금씩 나누어주어야 자신의 위치가 공고히 다져진다.
‘훗.’
최우는 마음속으로 실소했다.
이민호는 자신의 곁에 두기에 족할 만큼 능력이 출중한 자다. 하지만 그 전에 한두 번은 길들여 놓을 필요가 있다.
주인이 누구인지 단단히 일러둘, 자신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조련이라는 과정이 필수다.
서풍은 움직이는 말을 따라 몸을 양쪽으로 미미하게 흔드는 최우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잡아야 한다. 작게는 내 앞날을 위해, 크게는 가문의 영달을 위해.’
서풍은 단단히 마음먹었다.
촌구석 여주가 아니라 황도 개경에, 조당朝堂에 자리 잡으리라.
한편.
지방 호족들은 길을 가며 눈에 들어오는 황도의 모습에 경탄의 얼굴빛을 띠었다.
‘허허허.’
‘역시 황도로다.’
‘사내는 모름지기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
‘잘하면 조당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도 있으렷다.’
호족들은 내심 저마다의 꿍꿍이에 안색이 무척이나 밝았다.
후미에서 5열 횡대로 뒤따르는 800여 명의 가병은 연방 좌우를 번갈아보았다.
“죽이네.”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이야. 하하하하.”
“개선장군이 따로 있나? 우리가 바로 개선장군이지.”
“아암. 그렇고 말고.”
가병들은 의기양양했다.
보무도 당당하게 황성으로 이어지는 대로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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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충주목.
끌고 온 다카요시를 충주목의 백성들에게 내어주었다. 백성들은 왜구에게 당한 분풀이를 다카요시에게 했다.
다카요시는 수많은 백성에게 맞아 죽었다.
묵이 그 점을 입에 올렸다.
“나리. 너무하신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까?”
“너무는 무슨 너무. 백성들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풀어줘야지. 그나저나 전리품은 어떻게 됐어.”
“건진 게 얼마 없습니다. 죄다 배에 실려 있어서.”
묵은 말을 흐렸다.
배는 여강에서 몽땅 다 불태워졌다.
“끄응.”
나는 앓는 소리를 흘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어디 돈 나올 데 없겠냐?”
“지금으로서는 딱히 나올 곳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나리.”
“그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몽땅 다 팔아.”
“네?”
묵은 어리둥절했다.
“네가 남경 상인에게 진 외상을 갚으려면 별 수 없잖아. 수레건 말이든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다 팔아. 그리고 여강에서 건진 것도…… 아무튼.”
“알겠습니다. 나리. 어차피 전쟁도 끝났으니. 더는 필요가 없겠죠. 뭐.”
“참. 세곡은 어떻게 됐어.”
“한 톨도 없습니다.”
“젠장 맞을!”
난 인상 썼다.
묵은 날 보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리. 사로잡은 왜구들이 꽤 되니 어느 정도 돈이 될 겁니다.”
“알았다. 나가 봐라.”
“네. 그럼.”
묵은 대답하며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뒤돌아서며 눈에 보이는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난 의자에 앉은 몸을 뒤젖히며 양발을 들어 앞에 있는 원탁에 올려놓았다.
천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결국 돈이 문제인데. 어디 돈 나올만한 곳이 없을까?”
가만히 중얼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수중에 쥔 돈이 그다지 많지 않아 이만저만 골치 아픈 것이 아니다.
누구처럼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싶지는 않은데.
우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