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20화 (120/247)

<-- 120 회: 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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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두와 오용섭이 이끄는 도합 900여 명의 가병은 여강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귀신이여. 싸움 귀신이랑게.”

“내 살다, 살다 나리처럼 전쟁에 통달한 사람은 첨 봤어.”

“저게 지옥이지. 달리 지옥이겠어. 그런데 우리들 중에는 다친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거의 없잖아.”

“암튼. 난 나리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겨. 무조건 나리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이기잔여.”

“하모. 나도 마찬가지야.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우리 나리에게는 안 될 거야.”

“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리 같은 사람은 정말 듣도 보도 못했어. 연전연승이라니.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고.”

가병들은 너나없이 혀를 내둘렀다.

이민호.

가병들의 머리에 그 이름이 선명하게 각인되며, 가슴 속에서 무조건 이민호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맹목적인 추종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희생이 거의 없다시피 최소화 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며, 먹고 자는 것은 최대한 잘 돌봐주니.

가병들은 이민호에게 절대 복종하기 시작했다. 그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혹두와 오용섭은 각기 450여 명의 가병을 이끌고 여강 강변을 훑었다.

강변으로 기어 올라온 왜구들을 나포拿捕하고 배에서 유출되어 수면을 둥둥 떠다니는 각종 물자를 수거했다.

다들 불타는 배들을 쳐다보며 배에 실린, 아직 남아 있을 물자를 생각하며 아까워했다.

“하이고. 저 아까운 것들이 죄다 잿더미가 되네.”

“저게 다 우리 고려 사람들 것인 디.”

“썩을 놈의 왜구.”

가병들이 쳐다보는 여강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수면에 뜬 기름이 불타며 모두 없어지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듯 보였다.

“대체 얼마나 기름을 들이부은 겨.”

“저 기름도 다 돈인데.”

“하지만 저렇게 안 했으모 별다른 희생 없이 왜구들을 물리칠 수 있었단가?”

가병들은 강변을 수색하며 끼리끼리 그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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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묵이 급히 다가와 보고한 것에 긴급히 움직였다.

“왜구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몇몇 수하와 함께 움직이다가…… 지금 교전 중이라고 혹두 아저씨가 급히 알려왔습니다.”

요시미츠 다카요시 같아, 난 황황급급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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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 좌측에서 다소 떨어진 송림 인근에서 혹두가 이끄는 뒷골목 건달 수십여 명이 7명을 에워쌌다.

긴박감이 물씬 풍기는 대치였다.

주변 땅바닥에는 9구의 시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아무렇게나 드러눕거나 엎어져 있었다.

봐하니 7명의 왜구에게 당한 뒷골목 건달들인 듯 하다.

왜구들의 맞은편에는 잔뜩 성난 혹두가 양손으로 쥔 도끼를 머리 높이 들고, 짙은 살의가 담긴 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칼 버려. 이 시방 새들아.”

에워싼 건달들은 9명의 동료가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 시신이 되는 것을 본 탓에 함부로 치고 들어가지 못했다.

은연중에 꺼림의 얼굴빛을 띠며 왜구들을 위협했다.

“항복해.”

“니들은 이제 죄다 죽은 목숨들이야.”

“까불면 그냥 이 자리에서 뒈지는 수가 있어.”

건달들은 7명의 왜구를 주시하며 살의를 머금은 목소리로 연방 고함쳤다.

난 다다라, 혹두의 등으로 걸어가며 소리쳤다.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발만 묶어둬!”

혹두와 수십여 명의 가병 그리고 7명의 왜구가 거의 동시에 흠칫하며 날 보았다.

“나리.”

혹두가 날 돌아보며 크게 반색해 외쳤다.

난 혹두에게 다가가며 뒤에서 따라오는 묵을 돌아보지 않고 지시했다.

“인근에 장갑윤과 그가 이끄는 공병들이 흩어져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그들을 불러와라.”

“네. 나리.”

혹은 대답과 함께 뒤돌아섰다.

내 귀에 묵이 급히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

“나리.”

혹두가 날 돌아보며 안도의 얼굴빛을 띠었다.

피식.

싱거운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혹두와 좌우에 있던 몇몇 가병이 옆으로 비켜서며 내게 길을 터주었다.

난 걸어가며 중앙에 모여 있는 7명의 왜구를 위아래로 훑었다.

“응?”

한 놈이 낯이 익다.

왼쪽 눈에 안대를 댄, 함께 서 있는 다른 왜구들보다 입은 갑주가 비싸 보인다.

여느 다른 왜구들이 입은 갑주처럼 가죽 끈으로 고정한 갑주인데. 다른 갑주들과 달리 제법 많은 수의 색을 사용했다.

뭐랄까?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가 다른 왜구들보다 높다는 것을 무언으로 말하는 듯한 갑주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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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요시는 잠깐 멈칫하며 고려군의 수뇌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이민호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순.

“あなたは?”

다카요시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치켜떴다. 크게 화내는 모습이었다.

좌측에서 에워싼 고려군의 동정을 살피던 이토가 다카요시를 흘낏거리며,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다카요시 사마.”

“그 놈이다.”

“네?”

이토는 어리둥절했다.

다카요시와 이토의 배후에 서 있는 5명의 하급 무장은 귀에 들린 다카요시와 이토의 대화에 흠칫했다.

다들 에워싼 고려군을 살피며 다카요시와 이토를 힐끔힐끔거렸다.

그 사이.

“내 왼쪽 눈을 앗아간 화살을 쏜 그 놈 말이다.”

“하면?”

이토는 성난 다카요시의 말에 화급히 혹두의 좌측에 서는 이민호를 보았다.

빠드득.

귀에 다카요시의 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카요시 사마.”

침착하십시오.

냉정을 잃으셔서는 안 됩니다.

그런 속내가 서린 이토의 음성에 다카요시는 멈칫거렸다.

심중 두 가지 감정이 일어나 짚을 꼬듯 비비꼬이며 맴돌았다.

당장 가서 죽여 버리고 싶다!

직면한 상황을 유의해야 한다. 냉정하게 당면한 현실에 대처해야 한다!

가슴을 순식간에 꽉 채운 두 감정에 다카요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시선이 이민호에게 못 박혀 움직일 줄 몰랐다. 머릿속에서 이민호가 쏜 화살에 왼쪽 눈을 잃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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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저 놈이 나리를 아주 죽일 듯 노려보는뎁쇼.”

혹두가 날 곁눈질했다.

“풉.”

난 가볍게 웃었다.

“당연하지. 저 놈의 왼쪽 눈을 내가 저렇게 만들었으니.”

“네?”

혹두는 내게 고개를 돌리며 놀란 기색을 띠었다.

난 다카요시를 응시하며 혹두에게 명령했다.

“조금만 있으면 묵이가 장갑윤과 궁병들을 데려올 테니깐. 진득하게 기다려. 멍청하게 덤벼들었다가 아까운 수하들만 잃지 말고.”

난 죽은 9명의 건달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혹두는 움찔거리며 슬며시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놈들이 생각 밖으로 강해 놔 서리. 그만.”

“당연하지.”

난 냉랭하게 대꾸하며 머리를 드는 혹두를 노려보았다.

“나, 나리.”

혹두는 말을 더듬거리며 당황했다.

나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이제까지 저 놈들과 싸워오면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얼마나 피 말리는 애를 써왔는데. 니놈들 열이 달려들어도 왜구 한 명 상대하기 버거워. 왜구 놈들은 밥 먹고 사람 처 죽이는 칼질만 죽도록 한 놈들이야. 지들끼리 걸핏하면 치고받고 싸우며 사람 죽이기를 예사로 하는 놈들인데…… 니들이 1:1로 맞붙으면 무조건 져. 그래서 내가 그토록 단병접전을 피하고, 개인전이 아닌 집단전으로 전체 전황을 몰고 가려고 얼마나 머리를 쥐어 짰는 줄 알아…… 이제까지 내가 싸우면서 사상자는 언제나 10명 이하였어. 니놈처럼 아차 하는 사이에 9명의 수하를 불귀고혼으론 만들진 않았단 말이야.”

난 목청을 돋웠다.

혹두는 몸을 움츠리며 송구하다는 듯 머리를 숙였다.

“죽을죄를 지었스…….”

그 때였다.

“다카요시 사마를 모시고 포위망을 뚫어라!”

난데없이 이토가 고함치며 나와 혹두를 향해 달려왔다.

“으아아아아아.”

다카요시는 돌연한 이토의 맹진猛進에 움칫했다.

“이토!”

5명의 하급 무장은 다카요시를 향해 돌아섰다.

“다카요시 사마!”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하급 무장들은 다카요시에게 소리치며, 검을 쥐지 않은 각자의 빈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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