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18화 (118/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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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따르던 두 번째 배가 선두의 배 를 따라 불타기까지 채 반 각이 걸리지 않았다.

이토는 그 광경에 급히 나머지 배들을 움직이려하였다.

“공격해. 공격하란 말이야. 뚫지 않으면 우린 꼼짝없이 여기에 갇혀.”

다카요시에게 보고를 하고 명령을 받을 겨를이 없었다.

불타오르는 배가 자칫 다른 배들의 진로를 가로막을 수 있어, 다카요시에게 보고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무조건 빨리 길을 뚫고 여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토는 몹시 조급해했다.

다카요시는 두 배가 불타는 것을 보고는 분통을 터트렸다.

“빌어먹을!”

손을 들어 주먹 쥐고는 갑판의 난간을 내리쳤다.

콰앙.

다카요시와 이토는 미처 한 가지를 알아채지 못했다.

에구골은 강폭이 좁다!

수면 아래는 V자 형태였다. 배가 오갈 수 있는 최적 수심이 강 정중앙에 국한되어 있었다.

한편.

두 배가 불타면서 중앙의 진로를 가로막아버렸다.

다른 배가 이동하려면 강의 좌우 측면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동하는 배를 일직선으로 여강의 수면을 지나갈 경우, 배 우측은 이동에 아무 문제가 없으나 배 좌측은 강바닥이나 강기슭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끼, 끼이이이.

배의 아래, 선저船底와 좌우 측면에서 긁히는 소리가 났다. 몇몇 소리는 을씨년스러웠다.

배를 움직이는 왜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려며 진한 꺼림의 얼굴빛을 띠었다.

이동하던 몇 척의 배는 중심이 틀어져 좌우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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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난 이동하던 배가 멈칫거리더니 흔들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깜빡하고 말았다.

“왜에에! 내가 진작 그걸 몰랐을까?”

땅을 치고 통곡하고픈 심정이었다.

나는 뒤돌아서며 황황급급히 정상모와 오승록을 불렀다.

두 사람은 흠칫거리며 날 돌아보더니 황급히 면전으로 뛰어왔다.

난 뛰어와 서는 정상모와 오승록에게 급히 명령했다.

“지금 당장 석포와 궁병들을 반으로 나눠. 너희 두 사람이 각기 지휘해서…… 좌우에 포진한 오용섭과 혹두에게 가서 합류해…… 좌우 양쪽 강변에 뚫을 곤 자로 석포와 궁병들을 배치해서 배를 공격해. 그리고…….”

난 빠르게 몇몇 지시사항을 전하며 고함쳤다.

“어서 서둘러.”

“네. 나리.”

정상모와 오승록은 어리둥절했다.

내가 몹시 급한 모습이라 그런지 의문을 뒤로 하고 정상모와 오승록은 뒤돌아섰다.

황급히 뛰어가는 정상모와 오승록을 일별하고 난 묵이를 향해 돌아섰다.

“묵아!”

“네에에. 나리.”

“통을 앞쪽으로 굴려. 이쪽으로 이동해에에에.”

닌 소리치며 손을 들어 다급히 사래질했다.

“네에에.”

묵은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기름통들을 이쪽으로 옮기라고오오.”

난 재차 소리쳤다.

묵은 멀뚱멀뚱거리며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시가 급하고 또 급한 몹시 다급한 상황인데. 묵의 모습에 절로 울화가 치밀었다.

“야아아아아. 인마아아아아!”

성난 목소리로 묵을 향해 고성을 질렀다.

“힉.”

묵은 내 모습에 깜짝 놀라더니 몸을 움츠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돌아가시겠다. 정말.

난 묵을 향해 뛰었다.

후다닥.

전력을 다해 뛴 탓에 얼마 되지 않아 묵에게 다다랐다.

난 묵이 데리고 있던 가병들을 지휘하던 세 명의 십인장을 불러 지시했다.

“지금 당장 기름통들을 앞쪽으로 굴려. 이동하는 즉시 마개를 열고, 통을 그대로 강물에 띄워 보내. 그리고 도끼로…… 배를 향해 떠내려 보내. 빨리 움직여. 아주 급하니깐 어서 서둘라고.”

“네에.”

세 십인장은 대답하며 흩어졌다.

난 우측에 서 있는 묵을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너어.”

묵은 겁먹었다.

“죄, 죄송합니다. 나리. 저는.”

“시끄러워. 지금은 너랑 말할 겨를도 없어. 당장 나 영감에게 가서 장인들과 함께 이곳을 떠나.”

버럭 소리치며 노인 나식과 장인들을 일별했다. 죄다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서둘러.”

“네.”

묵은 대답하며 뒤돌아섰다.

노인 나식과 장인들을 향해 뛰어가는 묵을 힐끔 본 후, 왜구들의 배를 바라보았다.

불에 타 강에 주저앉은 두 배를 피해 좌우 측면에서 움직이려하였다. 한데 여의치 않은 듯 용쓰며 전후좌우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지금 잡아야 하는데.”

난 안타까움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3 장

묵과 함께 움직이기로 되어 있던 가병들이 기름통의 주둥이를 열고는, 통째 강물에 흘려보냈다.

열어둔 주둥이에서 기름이 강으로 콸콸 흘러나왔다.

그 광경을 보며 난 눈을 반짝였다.

‘기름은 물과 섞이지 않지. 큭큭. 흐르는 강물을 따라 뒤쪽에 있는 배들을 향해 기름이 흘러 들어가면…… 좌우 강변에서 석포와 궁병들이 집중 공격하면.’

머릿속에 일련의 상황이 그려졌다.

씩.

난 소리 없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냉랭한 눈빛을 띠었다.

“재미있겠어. 쿡쿡쿡쿡.”

난 살며시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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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는 마음이 급했다.

여강 좌우 측면에서 움직이던 몇 척의 배가 무엇인가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그 바람에 다른 배가 기동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말았다.

꼼짝없이 강에 갇힌 형국이라, 오도 가도 못하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 이토는 엄청 답답했다.

“앞으로 나갈 수 없으면 뒤로 빠지라고 해. 여의치 않으면 배에 실린 것을 강에 버려서라도 무조건 움직이라고 그래.”

이토는 붉으락푸르락 하며 명령했다.

“예에.”

전령 역할을 하는 수하가 대답하며 뒤돌아섰다.

그 사이.

다카요시가 급히 이토에게 왔다.

“이토.”

이토는 나타난 다카요시를 향해 돌아서며 머리를 숙였다.

“다카요시 사마.”

“어떻게 된 일이냐?”

“그것이.”

이토는 곤혹스러워 하며 다카요시에게 직면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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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의 설명이 끝난 직후였다.

슈우우우우우.

한 화전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화전은 앞서 불타는 두 배를 훌쩍 지났다. 무지개처럼 완만한 호선을 그리며 뒤쪽에 있는 배들의 중간 어림으로 떨어졌다.

상당한 거리임을 감안할 때 놀라운 사정거리였다.

화전은 배에 떨어지지 않았다.

곧장 수면으로 떨어졌다.

배에서 왔다 갔다 하며 분주히 오가던 왜구들 중 몇몇이 화전을 보았다.

처음에는 놀란 기색을 띠더니 강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피식피식.

왜구들은 비웃음이 깃든 낮은 웃음을 흘렸다.

곧 강물에 화전에 붙은 불이 꺼질 것이다.

그들은 심중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예상과 달리 화전을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화전이 수면에 닿자마자 불길이 무섭게 일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앗.

불길은 찰나 화마로 돌변했다.

온 수면이 삽시간에 불바다로 화했다. 그 사이로 기름통들이 둥둥 떠다니며 물길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화마는 일순간 남아 있는 28척의 배를 덮쳤다.

불길이 얼마나 높이 치솟았는지 갑판 난간까지 솟구쳤다. 수면이 온통 화염이라,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모면할 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각 배에 탄 왜구들은 그 광경에 소스라쳤다.

“우와아아아.”

“히이이익.”

왜구들은 화염에 당해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짓눌렸다.

눈동자와 얼굴에 두려움이란 감정이 한 가득 깃들었다. 은연중에 잔떨림을 흘리는 것이 반쯤은 공황 상태에 빠진 듯 보였다.

죄다 멀거니 서서 강의 수면을 바라보았다.

다카요시는 주변을 둘러보며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저 불은…… 화, 화공!”

이토는 다카요시가 놀란 중얼거림에 움칫했다.

“허억.”

질린 얼굴이었다.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강한 꺼림이 눈동자를 뒤덮었다. 무서움이란 감정이 이토에게서 슬며시 우러났다.

“이토!”

다카요시는 화급한 표정을 지으며 이토를 불렀다.

“예, 다카요시 사마.”

“당장 단주端舟를 준비해라. 배를 버린다.”

“예에에에!”

이토는 숨넘어갈 듯 기겁했다.

다카요시는 냉철하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였다.

“우리 적의 화공에 꼼짝없이 걸렸어! 주변이 온통 불바다인 것이 안 보이나. 이대로 배에 있다가는 죄다 타 죽을 수밖에 없단 말이다. 당장 강변으로 가야 살 수 있어.”

“다, 다카요시 사마. 그럼 배에 실린 것은.”

이토는 심하게 말을 떨었다.

타이라노 번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요시미츠 가는 끝장이다.

“이!”

다카요시는 이토를 응시하며 흉신악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 멍청아아. 지금은 우리 목숨도 챙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란 말이다. 배에 실린 물자에 연연하다가는 오도 가도 못하고 강에 갇힌 채 불타 죽어어어!”

다카요시는 화가 나 언성을 높였다.

찢어질 듯 크게 벌린 입 안쪽 상부에 매달린 목젖이 양쪽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매우 흉폭한 기세라, 이토는 크게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저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다카요시는 이토의 모습에 실망한 나머지, 치미는 화에 그만 욕하고 말았다.

“このぼんやりめ!”

말하는 찰나.

휘휘휘휘휙.

슈슈슈슈슉.

다수의 파공이 울렸다.

다카요시와 이토를 비롯한 주변에 서 있던 왜구들은 좌우를 번갈아보았다.

그들의 얼굴에서 공포라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시야 가득히 불붙은 술동이와 화전들이 보였다. 강 좌우에서 날아오는 술동이와 화전들은 자신들을 향했다.

모두의 머리에 조금 전 고려군의 공격에 당한 두 척의 배가 떠올랐다.

일련의 공격 과정.

다카요시, 이토, 주변에 서 있는 왜구들.

그들 모두는 당황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멍하게 정신줄을 놓고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을 잠시 바라보았다.

다들 우두커니 서서, 시야에 보이는 술동이와 화전들의 궤적을 따라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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