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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접한 우측.
오용섭은 휘하 가병들이 팔랑크스를 응용한 예의 전술을 펼치는 것에 어리둥절했다.
“뭐야. 저거.”
옆에 있는 선임 백인장이 오용섭을 돌아보며 귀띔해주었다.
“용섭 형님. 저건 광주목을 공략할 때 나리가 일러주신 겁니다.”
오용섭은 선임 백인장 이웅의 말에 놀랐다.
“그런 일이 있었어?”
“네. 장창병 뒤에서 궁병이 엄호하면 천하무적입니다. 왜구들이 저 진형을 뚫고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돌파에 있어 저만한 진형도 없습니다.”
선임 백인장 이웅은 자신만만했다.
“흠.”
오용섭은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시야에 휘하 가병들이 왜구와 교전하는 광경이 들어왔다. 왜구들은 매우 당황하며 대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용섭에게 이민호가 내준 병력은 450여 명이었다.
그들은 광주목에서처럼 각 100명씩 소무리로 나누어 왜구들을 향해 저속 전진했다.
남은 50여 명은 오용섭, 이웅의 곁에 서 있었다.
네 무리가 상대하는 왜구는 혹두가 상대한 왜구와 동일한 수였다.
100여 명.
네 무리는 전후좌우에서 왜구들을 둘러싸며 조금씩 진격했다.
왜구둘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차근차근 줄이며, 왜구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했다.
왜구들 중에서 호기에 찬, 제법 용맹을 뽐내는 듯 보이는 대여섯 명의 왜구가 날뛰었다.
그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무리를 향해 뛰어갔다.
“우와아아아아.”
소지한 검과 창을 머리 높이 쳐들며 호기에 찬 함성을 질렀다.
하나, 그리 오래되지 않아 소무리의 앞에 다다르자마자 창병들이 내미는 다수의 장창에 대여섯 명의 왜구들은 무참히 몸이 꿰뚫리고 말았다.
“크아아악.”
“커허억.”
왜구들은 길이 2.5미터의 장창이 가진 공격 범위를 미처 가늠하지 못했다.
공격 반경으로 들어서자마자, 고슴도치인 양 가병들이 동시다발로 내지르는 장창들에 허무하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말았다.
앞뒤를 재지 못하고 자신의 용맹만을 믿고 함부로 날뛴 필부지용匹夫之勇의 대가를 대여섯 명의 왜구는 자신들의 목숨으로 치렀다.
왜구들은 당황했다.
네 개의 소무리가 자신들에게 접근하기 전에 외곽으로 빠지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타당한 대처였는데.
왜구들은 미처 그와 같은 대처를 행하지 못했다.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하기 짝이 없는 진형과 전술에 당황한 나머지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죄다 쩔쩔맸다.
죄다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사이.
각 100여 명의 가신으로 이루어진 네 무리는 100여 명의 왜구를 완벽하게 포위망에 가두었다.
“쏴라!”
각 네 무리의 가병을 통솔하는 네 백인장의 명에 궁병들이 왜구를 향해 활을 쏴댔다.
티티티티틱.
시위를 놓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빗발치는 다수의 화살에 왜구들 맨 앞에 있던 여남은 명이 비명을 지르며 맨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끄아아악.”
“커어억.”
그새 네 무리는 차근차근 거리와 공간을 줄이며 왜구들에게 접근했다.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장창병들이 예의 장창을 거의 동시에 내질렀다.
최소 50여 개가 넘는 장창들이 사방에서 왜구들을 향했다. 창날 하나마다 왜구 하나가 당했다.
“크아악.”
“우왁.”
왜구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휘청거렸다.
창날이 배로 들어가 등을 뚫고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창날에서 진홍빛 선혈이 줄줄 흘러내렸다.
뚝뚝.
창날 끝에 맺힌 핏방울들이 하나둘 맨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사이.
창병들 뒤에 서 있는 궁병들이 왜구들에게 활을 쏘았다.
시위를 놓는 소리에 이어 화살이 날아가는 나지막한 파공이 연거푸 울렸다.
화살들은 장창에 몸이 꿰뚫린 왜구들을 노리지 않았다. 서 있는 왜구들 틈새와 사이사이를 지나 아직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다른 왜구들을 향했다.
퍽.
화살 하나가 한 왜구의 오른쪽 눈동자에 박혔다.
“으아아아.”
왜구는 손을 들어 눈에 박힌 화살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그러는 사이.
뻐억.
다른 한 화살이 긴 파공을 흘리며 주변에 서 있는 다른 왜구의 목에 박혔다.
“끄륵.”
왜구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양손을 들어 목에 박힌 화살을 붙잡았다.
비틀거리더니, 왜구는 맥없이 지면에 드러누웠다.
주변 곳곳에서 유사한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와 함께 다수의 소리가 범람하듯 메아리쳐다.
화살이 날아가는 파공, 독전하는 수뇌들로 보이는 몇몇 왜구의 외침, 장창과 화살에 당한 왜구들이 죽어가며 내지르는 비명들.
그 모든 소리가 한데 버무려지듯 뒤섞여, 장내는 몹시 소란스러웠다.
바로 옆에서 누가 소리친다고 해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왜구들은 장창과 화살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다들 왜에서 자유롭게 전국을 돌아다니는 낭인들이었다. 그런 관계와 정규군처럼 뚜렷한 명령 계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형아우하며 개인적인 친분으로 상하를 구분했다. 그런 까닭에 혼란한 상황에서 왜구들을 냉정하게 지휘할 자가 없었다.
왜구들이 오용섭이 이끄는 가병들에 의해 몰살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사실상 승기는 오용섭이 이끄는 가병들에게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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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해. 정말 대단해.”
오용섭은 감탄하며 놀란 낯빛을 띠었다.
밀어붙이는, 돌파력에 있어 공전절후空前絶後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진형에 크게 감복했다.
최충헌의 가병으로서 지방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반란 진압에 적잖게 참여했었다. 가병이 되기 전에는 떠돌이 무사로서 고려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보는 것과 같은 진형은 단연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용섭은 이민호를 생각했다.
‘나, 나리.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어떻게 저런 진형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놀람이라는 감정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백인장 이웅은 오용섭을 쳐다보지 않았다.
휘하 가병들이 왜구들을 서서히 격멸시키며 수를 줄여나가는 광경들을 지켜보았다.
‘끝났군.’
자신이 보기에 승기는 휘하 가병들이 잡았다. 왜구들이 기울어진 승기를 다시 돌리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백인장 이웅은 득의라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얼굴에 다 드러냈다.
씨익.
이웅의 입가에 한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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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 삐이이이.
좌우에서 하늘을 향해 두 효시嚆矢가 치솟았다. 화살에 달려 있는 소리통에서 긴 울림이 메아리쳤다.
난 고갤 돌려 두 효시를 보았다.
“후후.”
낮은 웃음을 흘렸다.
혹두와 오용섭이 왜구들을 섬멸했다는 신호가 바로 두 효시라, 난 좌우에 서 있는 노인 나식과 묵을 돌아보았다.
“준비해라. 곧 놈들이 우리를 공격해 올 테니깐.”
묵에게 말했다.
“네. 나리.”
묵은 대답하며 뒤돌아섰다.
빠른 걸음으로 궁병들 뒤쪽에 있는 일부 가병들에게 다가갔다.
난 노인 나식을 보았다.
“어르신. 석포의 수평을 다시 살펴봐 주십시오.”
“예. 나리. 그런데…… 저 그냥 나식아. 그리 부르시면 안 됩니까?”
노인 나식은 거북하다는 기색을 띠었다.
난 소리 없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제안했다.
“그러면 나 영감님이라고 부르죠. 달리 좋은 호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어이쿠. 나리. 말씀이라니요. 저와 나리의 신분은 하늘과 땅 차입니다. 그러니 말을 놓으십시오.”
“그럴 수야 있나요. 제보다 한참이나 연배가 위이신데.”
“나리. 그래도 다른 사람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노인 나식은 주변에 서 있는 가병들을 곁눈질했다. 부담스러워하는지라 난 넌지시 다시 제안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말을 놓겠습니다만. 저와 단 둘이 있을 때는, 아시겠죠.”
“네에에. 나리.”
노인 나식은 날 보며 웃었다.
난 고개를 끄덕여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슬며시 알렸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석포들이 견딜 수 있도록 손을 봐 주십시오.”
“예에. 맡겨주십시오. 이 늙은이의 재주를 몽땅 다 발휘하겠습니다.”
“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뒤돌아보며 석포와 궁병들을 맡은 두 백인장을 향해 불렀다.
“정상모. 오승록.”
“예.”
“네, 나리.”
두 백부장이 날 향해 뛰어왔다.
죽은 최양백이나 김인준처럼 성을 가지고 있었다.
최충헌의 가병 백여 명을 통솔하는 백인장이라는 지위가 상당한 지위라는 것을 암암리에 반증하는 성 씨였다.
난, 이른 정상모와 오승록에 빠르게 몇몇 지시를 내렸다.
“만전을 기해라. 배들이 석포의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즉시 술동이를 날리고, 궁병들은 활의 사거리에 배들이 들어오는 즉시 불화살을 날리도록 철저히 채비를 해둬라. 내 신호가 있기 전까지 공격해서는 안 된다. 알겠지?”
“예에에.”
정상모와 오승록은 동시에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돌아가서 맡은 가병들을 단속해. 괜히 긴장해서 오발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일러.”
“네, 심려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나리.”
정상모와 오승록은 충만한 자신감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난 두 사람을 응시하며 고개를 까닥였다.
정상모와 오승록은 뒤돌아서더니, 각기 맡은 가병들을 향해 뛰어갔다.
다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