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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기-115화 (11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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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장은 옆에 선 혹두를 힐긋거리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씨익.

미소에서 혹두를 밑으로 보이는 우월의식이 다소 엿보였다.

백인장은 흠칫하며, 뭔가 잊고 있었다는 기색을 띠었다. 급히 정면을 돌아보는 모습에서 화급함이 묻어났다.

그새 백여 명 남짓 되는 왜구들이 부쩍 가까이 다가왔다. 대략 70미터 어림이었다.

백인장은 미터법을 모르는 까닭에 눈대중으로 거리를 쟀다.

‘흠 이, 삼십여 장은 될 것 같은데.’

눈을 반짝이더니.

“쏴아아아아!”

버럭 소리쳤다.

순간.

티티티티팅.

바짝 당긴 활시위를 놓는 작은 소리들이 연이어 울렸다.

그와 함께 시위를 떠난 화살들이 사선으로 공간을 가르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쉬쉬쉬쉬쉬이익.

비가 오는 듯한 다수의 파공이 주위로 메아리쳤다.

궁병들은 2열 횡대로 서서 순차적으로 활을 쏘았다.

화살을 쏜 후, 다시 시위에 화살을 재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일련의 궁사는 창졸간에 서너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25명씩.

도합 50여 명의 궁사가 차례대로 쏜 화살은 채 1분分이 되지 않는 동안 무려 200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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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하늘로 치솟은 화살들은 고도高度의 정점에 다다랐다.

서서히 화살촉이 숙여지기 시작하더니, 지면을 향해 쏜살같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무슨 세우細雨라도 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떨어지는 속도라는 힘에 힘입은 화살들은 곧장 내달리는 100여 명의 왜구를 덮쳤다.

퍼퍼퍼퍼퍽.

화살들은 감정이 없는 까닭에, 무심히 닿는 모든 것을 거침없이 꿰뚫었다.

달리는 왜구들, 딱딱한 마른 맨땅바닥.

일부 화살은 전혀 표적을 맞추지 못하고 맨땅바닥을 깊이 파고들었다.

다른 일부 화살들은 왜구들을 스치며 역시 맨땅바닥에 내리꽂혔다.

또 다른 일부 화살들은 왜구들의 몸에 명중, 깊이 박혀들었다.

화살은 표적을 가리지 않았다.

한 왜구는 단 한 발의 화살에 맞았지만, 재수 없는 왜구는 서너 개의 화살에 자신의 몸을 내주고 말았다.

그보다 더 불운한 왜구는 자신이 무슨 고슴도치인 양, 몸에 박힌 수없이 많은 화살에 맨땅바닥으로 힘없이 꼬꾸라졌다.

화살에 당한 왜구들은 대개의 경우 대동소이한 반응을 보였다.

달리던 속도 때문에 앞으로 엎어지거나 모로 또는 뒤로 나 떨어졌다.

“끄아아아악.”

“아아악.”

화살에 당한 왜구들이 내지른 다수의 비명이 사위로 메아리쳤다.

대번에 100여 명의 왜구 중 반 수 이상이 즉사하거나 맨땅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내리쏟아지는 화살을 피할만한 은폐물이 주위에는 없었다.

탁 트인 개방된 공간을 내달리던 중이라 고스란히 궁병들의 공격에 당할 수밖에, 선택의 여지란 찾아볼 수 없었다.

“빨리이이이!”

100여 명의 왜구를 이끄는 자로 보이는 중년의 왜구가 손을 들어 맞은편에 있는 궁병과 뒷골목 건달들을 가리켰다.

“멈추지 말고 달려. 거리를 죽여야 우리가 살 수 있다아아아.”

중년의 왜구는 직면한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제시하며 내달렸다.

그 사이.

2열 횡대로 서 궁병들이 쉼 없이 활을 쐈다.

그들이 쏘는 화살은 내달리며 거리를 줄이는 왜구들을 직격했다.

전통에서 화살이 떨어지는 속도에 반비례하여 왜구들이 맨땅으로 쓰러졌다.

그와 함께 거리가 매우 빠르게 가까워졌다.

궁병과 건달들의 혼성 병력.

왜구들.

두 무리 사이의 거리가 20여 미터 어림이 되었을 때, 왜구들의 수는 겨우 2, 30여 명 밖에 되지 않았다.

백인장은 전방의 왜구들을 둘러보며 고함쳤다.

“공격 중지!”

급히 옆에 서 있는 혹두를 돌아보았다.

“이제 당신들 차례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엄호나 잘 해주십시오.”

혹두는 정중하게 대답하며 뒤돌아섰다.

백인장은 말없이 고개를 까닥였다.

궁병들이 도와줘야 휘하 건달들이 덜 죽는다. 그 때문에 혹두는 백인장에게 저자세를 취했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희생을 최소한으로 하려면 어쩔 도리가 없다.

혹두는 시야에 들어오는 수하 건달들을 응시하며 우렁찬 외침을 질렀다.

“내가 한 말 명심해. 그리고 내가 알려준 대로 싸워. 지 맘대로 설치다가 디지는 놈은 죽든가 말든가 내버려두고.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겨야지. 남이 챙겨주지 않는다. 알간!”

“네에에에. 혀어엉니이이임!”

건달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가자!”

혹두는 말하며 뒤돌아섰다.

꽈악.

도끼 자루를 쥔 오른손아귀에 힘주었다. 자루가 으스러지도록 힘껏 움켜잡았다.

혹두를 선봉으로 400여 명의 건달이 왜구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우르르르.

그들은 창졸간에 일어나 대열을 가다듬는 궁병들 곁을 신속히 스쳤다.

“나중에 잘 부탁혀.”

“이따 내가 꼬불쳐 둔 술 한 잔 줄 것인 게. 확실히 엄호만 잘해줘 부러.”

“나는 니들만 믿어.”

건달들은 궁병을 지나치며 다들 한 마디씩 남겼다.

피식피식.

대열을 가다듬는 궁병들은 뛰쳐나가는 건달을 흘낏거리며 실웃음을 흘렸다.

백인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민호가 건달과 왜구의 개인 무력차를 염두에 두고 50여 명의 궁병을 붙였다. 더불어 왜구들을 이리저리하게 상대하라고 싸우는 방법까지 일러주었다.

건달들은 궁병들의 무서움과 그들이 자신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100여 명쯤 되는 왜구들이 20미터의 거리까지 접근할 동안 7, 80명이 궁수들에게 당해버렸다.

건달들은 몸에 생채기 하나 없이, 그저 서 있기만 하면 되는 터라, 궁병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손쉽게, 수월하게 왜구들과 싸울 수 있게 된 상황이라 다들 궁병들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다.

더욱이 잠시 후에 궁병들이 엄호까지 해 주기로 되어 있는지라, 궁병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건달들은 궁병들을 등에 업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궁병들에게 간이라도 빼주고 싶을 정도로 몹시 고마워했다.

2 장

2, 30여 명의 왜구와 400여 명의 건달이 어울렸다.

건달들은 각기 8명씩 무리를 이루어 한 명씩 왜구들을 상대했다.

8:1

그러고도 수가 남아, 어떤 왜구는 무려 10명 이상의 건달에게 에워싸여 엄청 당황했다.

건달들은 왜구를 에워싼 채 공격하지 않았다.

다들 고함쳐 왜구의 정신을 빼놓을 작정인지, 일부러 원색적인 욕을 곁들여 왜구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었다.

“18!”

“저 쇠끼. 대갈통 봐 바.”

“허이고. 딱 중이네. 땡중이여.”

8명의 건달에게 에워싸인 한 왜구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급히 고개를 좌우로 돌려 에워싼 건달들을 쳐다보며 은연중에 우왕좌왕했다.

다들 얼굴빛이 매우 어두웠고, 초조한 속내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어느 쪽에서 에워싼 건달들이 자신들을 공격해 올지 몰라 쉴 새 없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불안해하는 것이 한 눈에 다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그 때 정면에 있는 세 건달이 재빨리 좌우로 움직였다. 그 바람에 정면 공간이 탁 트였다.

돌연한 변화에 왜구는 흠칫거리며 부지불식간 정면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쒜에에에에에.

날카로운 파공과 함께 빛줄기인 양 몇몇 화살이 날아들었다.

몇몇 화살은 단숨에 서너 명의 왜구에게 날아갔다.

“허억.”

“히이익.”

왜구들은 당황했다.

시야에 날아오는 화살들이 보였다. 피해야 한다는 것은 아나, 피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시간상 너무 늦고 말았다.

화살들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퍼, 퍼억.

왜구들은 가슴에 박히는 화살이 주는 충격과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왜구들은 맨땅바닥으로 나가자빠졌다.

“죽여.”

“아작을 내버려.”

8명의 건달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가자빠진 왜구들에게 몰려갔다.

우르르르.

건달들은 삽시간에 나가자빠진 왜구에게 이르러 각자 손에 쥔 무기를 내리쳤다.

인정사정이 없었다.

무슨 철천지원수들이나 되는 듯 매정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검, 봉, 도끼, 죽창, 몽둥이 등등.

건달들이 든 무기는 참으로 다양했다.

그와 유사한 상황이 장내 곳곳에서 벌어졌다.

사전에 미리 말이 된 터라, 다수의 건달이 조금 전처럼 화살에 맞아 쓰러진 몇몇 왜구들에게 뛰었다.

건달들은 신속하게 원을 그리며 스러진 몇몇 왜구를 둘러쌌다.

“뒈져.”

“죽어. 이 개 자식들아.”

건달들이 진한 살심이 어린 외침을 내지르며 각자의 무기를 쓰라진 몇몇 왜구에게 내리쳤다.

퍼퍼퍼퍼퍼퍽.

왜구들은 미처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즉사하고 말았다. 몸이 아주 난도질당하듯 눈 깜짝할 시이에 입은 옷과 몸이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그 사이.

나가자빠진 왜구들을 격살한 8명의 건달은 재빨리 뒤돌아섰다.

일련의 행동이 매우 신속했다.

그들은 새로운 희생자(?)를 물색하기위해 주위를 빠르게 돌아보았다.

“저 놈.”

“가자.”

“잡아.”

건달들은 한 동료가 손짓으로 가리킨, 창을 든 한 왜구를 향해 떼로 몰려갔다.

잠시 뒤, 건달들은 예의 수순을 밟았다.

창을 든 왜구를 주의력을 흐트러뜨린 후, 궁병들이 활을 쏠 수 있게 양 옆으로 움직여 공간을 텄다.

그렇게 공간이 확보되자 어김없이 궁병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을 날렸다.

“크아악.”

화살에 맞은 왜구는 손에 쥔 창을 놓고 바닥으로 엎어졌다.

8명의 건달은 엎어진 왜구에게 동시에 달려들어, 소지한 무기로 무자비하게 쳐 죽였다.

일련의 공격 형태는 건달들이 부상을 입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전술戰術이었다.

건달의 개인 무력이 왜구에게 딸린다는 점을 감안한, 수적 우위와 궁병이란 병과를 최대한 활용한 협공 전술은 매우 효과적이라, 지켜보는 혹두와 백인장은 혀를 내둘렀다.

백인장은 자신이 지휘하는 궁병이란 병과가 이렇게 유용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라,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단해. 대단하다고.”

백인장은 경탄이란 감정에 푹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혹두는 자신이 별로 할 일이 없는 상황에 입맛을 다셨다.

“쩝.”

2, 30명 어림이던 왜구들은 그새 18명 남짓으로 수가 확 줄었다.

시간이 그리 지나지 않았는데. 수하 건달들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압도적으로 왜구들을 상대하는 광경들이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무슨 천하무적의 군대를 보는 듯한 기분에 혹두는 나직이 뇌까렸다.

“나리가 괴물이여. 괴물.”

혹두는 이민호를 생각했다.

머리털 나고 이민호 같은 사람은 생전 처음 보았다. 대체 어디서 뭘 하던 사람인지, 왜구들은 손바닥에 올려놓고 아주 갖고 놀았다.

“끝까지.”

혹두는 죽어도 이민호의 바짓가랑이를 꼭 부여잡고 늘어지리라.

그렇게 마음먹었다.

이민호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돈도 벌고 죽지도 않을 것 같아, 심중 크게 고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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