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11화 (11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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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심 장자 최우를 걱정하고 있었으나 차마 그 속내를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전날 장자 최우가 광주목을 여러 차례 공격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되레 큰 병력 손실을 입었다 하여 내심 크게 걱정했었다.

다행히 아들이 이민호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용단을 내려, 마음속으로 기꺼워했었다.

‘확실히 범상치가 않아.’

최충헌은 전날 자신과 면담하며 북방이 수상하다고, 조만간 국운을 건 큰 전쟁이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한 이민호를 회상했다.

‘한미하다고는 하나 엄연히 지방 호족 가문이니 신분이 미천하다고는 할 수 없지. 그 정도 비범한 자질을 가진 자라면. 우. 그 아이 곁에 붙여주면 내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을 터이지만.’

최충헌은 이민호가 최우를 배신하거나, 최우가 이민호를 꺼려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있어야 해. 아울러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있어야하고.’

최충헌은 마음속으로 눈을 번득이며 모종의 수를 생각했다.

그 사이 한진형이 양광도의 전황을 모두 설명하고 머리를 깊이 숙였다.

“수고하셨소이다. 한 상서. 그만 가셔서 쉬시구려.”

“네, 그럼. 합하.”

한진형은 머리를 숙였다 든 후, 우측으로 돌아섰다.

눈에 보이는 출입문을 향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완만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규보는 최충헌을 돌아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하 드리옵니다. 합하. 이제 곧 양광도에서 준동하였던 왜구는 다 섬멸 될 듯 하옵니다.”

최충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들었던 한진형이 충주목에 웅거한 왜구들의 수가 겨우 800여 명이라며 이제 다 끝났다 말했었다.

김덕명은 얄밉상스러운 이규보를 노려보았다.

‘저 놈이.’

눈동자에서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마냥 매서운 빛이 반짝였다.

경쟁자에 대한 강한 적의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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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 중류 에구골隘口谷.

기암준봉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날 지세였다. 가파른 절벽이라고 말해도 곧이곧대로 믿을 깎아지른 암벽들이 병풍인 양 펼쳐졌다.

맞은편에는 급경사의 산자락이 도도히 흐르는 여강을 향해 뻗어 내렸다.

난 오용섭, 혹두를 대동하고 능선에 서서 주변 지형을 살폈다.

“용섭.”

“네. 나리.”

“애들이 불평을 꽤 하지.”

“아닌 게 아니라 다들 입이 대빨로 나왔습니다. 지난 나흘 동안 죽자 살자 이곳으로 와서는, 당도하자마자 무슨 나무냐며 다들.”

“훗.”

난 실소하며 우측 뒤에 서 있는 혹두를 보았다.

“혹두.”

“네, 나리.”

“왜구들의 동태는?”

“나리께서 짐작하시는 대롭니다. 오는 도중에 보고 드렸다시피 지금 한창 출항 준비 중입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혹두의 보고에 충주목으로 향하던 경로를 이곳 에구골로 꺾었다.

이민호의 좌측 뒤에 서 있는 오용섭은 혹두를 돌아보았다.

‘썩을 놈.’

오용섭은 혹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가 무슨 이민호의 오른팔인 양 굴고, 지나치게 돈을 밝혀, 진한 꺼림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흠.”

난 나직한 침음을 흘리며 에구골을 세심히 둘러보았다.

여강에서 가장 강폭이 좁고 수심이 낮은 곳으로 며칠 내로 다카요시가 이끄는 800여 명의 왜구와 일전을 결할 승부처다.

눈을 반짝이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머리에 담으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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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 쾅.

도끼로 나무를 내리치는 소리가 쉼 없이 울렸다.

상체를 벌거벗은, 가볍게 수백이 넘을 가병들이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벌목 중이었다.

“여기 물.”

승조는 도끼질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시야에 양손에 물통을 들고 숲을 오가는 몇몇 동료 가병이 보였다.

그 중 한 가병이 승조의 말을 듣고 뛰었다.

승조의 좌우에서 벌목하던 배후와 대문은 잠시 도끼질을 멈추고, 이마와 뺨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닦았다.

“후우,”

“아이고 허리야.”

간만에 허리를 바로 펴는 터라 옅은 통증이 일었다.

그 사이 승조는 곁에 이른 동료가 내미는 나무 국자를 받아들었다.

머리를 젖히며 단숨에 국자에 담긴 물을 들이켰다.

“하아아.”

승조는 국자를 내리며 길게 숨을 들이 내쉬었다.

옆으로 돌아서며 동료에게 국자들 돌려주었다. 동료는 국자를 받아들고는 나무통에 집어넣었다.

승조의 귀에 나무 물통을 든 동료가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젠장. 이게 다 뭐하는 짓인지.”

승조는 짜증 냈다.

“누가 아니래.”

“그래도 벌목한 나무를 옮기는 놈들보다는 나아.”

배후가 말하며 뒤돌아보았다.

시야에 수십여 명이 어깨에 굵은 줄을 걸치고 끙끙거렸다. 줄이 이어진 굵은 나무가 땅을 파고들며 질질 끌려갔다.

그와 같은 광경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10 장

에구골 강변에 수백여 명의 가병들이 서서, 동료들이 끌고 온 나무에 굵은 덩굴을 얼기설기 엮었다.

덩굴 끝에는, 동일한 덩굴로 만든 그물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물에는 큼지막한 돌들이 그득 들어, 보기만 해도 엄청 무거워보였다.

“영차, 영차.”

“힘내.”

“어여차.”

힘깨나 쓸 것 같은 백여 명의 가병이 덩굴로 묶여진 나무를 강으로 옮겼다.

강에는 이미 적잖은 양의 나무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물에 담긴 돌들은 일종의 추 역할을 하며, 나무를 강바닥으로 가라앉혔다.

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눈을 반짝였다.

‘비버의 집처럼.’

나무들을 강바닥에 가라앉히며 차곡차곡 쌓으면, 나무들 사이의 틈새를 통해 강물은 아무 이상 없이 흐른다. 그러니 유량과는 아무 상관없다.

“그나저나 묵이 녀석이 빨리 와야 할 텐데.”

물자가 몹시 아쉽다.

그 때였다.

“나리, 나리이이.”

우측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는데.

“쯔!”

난 눈살을 찌푸렸다.

혹두였다.

“저 돈만 밝히는 돈 귀신이 무슨 일로 저리 오두방정을 떨지?”

난 뛰어오는 혹두를 향해 돌아섰다.

이윽고 혹두가 내 면전에 이르러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나. 나리.”

호흡 때문인지 말을 더듬었다.

“심호흡해. 깊이 숨을 들이쉬라고. 알겠어.”

내 말이 혹두가 급히 숨을 골랐다. 호흡을 정리하기도 전에 혹두가 급히 말했다.

“왜구둘이 움직였습니다. 충주목에서 배가 떴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난 씩 웃었다.

뒷골목 인간들은 정보 수집이나 정탐 등. 일종의 정보 및 수색대로 서먹기에 제격이다.

“이곳까지 며칠이면 당도하지?”

내 물음에 혹두가 마음이 급한 듯 다급히 대답했다.

“며칠이 뭡니까? 이틀이면 이곳 에구골에 당도합니다. 이틀이요.”

난 흠칫하며 뜻밖이라는 기색을 띠었다.

“그래. 내 생각보다 빠르네.”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왜구들의 빠른 이동에 내심 놀랐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

괜히 당황하다가는 수하들에게 불안이라는 감정을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척하며 수하들을 단속하려 하였다.

“에?”

혹두는 어리둥절했다.

예상과 달리 내가 태연한 것이 이상한 모양이다.

“이리 가까이.”

“네.”

나는 혹두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말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귀.”

“아, 예.”

혹두가 고갤 옆으로 돌리며 우측 귀를 내 쪽으로 돌렸다.

난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와­ 악!”

크게 소리쳤다.

“아아악.”

혹두가 깜짝 놀라며 고성을 질렀다.

급히 머리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이 괘 아픈 모양이다.

“나, 나리이.”

혹두가 인상을 쓰며 날 돌아보았다.

난 혹두를 보며 심중의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양손을 허리뒤춤으로 돌려 마주잡았다.

꽈아악.

빌어먹을!

혹두는 귀를 만지작거리며 이민호를 보았다.

‘허어얼.’

어처구니가 없어 마음속으로 헛바람을 삼켰다. 제 정신인지 모르겠다.

왜구들의 배가 무려 30척이다.

800여 명에 이르는 왜구가 나누어 타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데.

저리 태연하다니.

혹두는 뒤돌아서며 걸어가는 이민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여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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