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09화 (109/247)

<-- 109 회: 4-24 -->

@

잠시 후, 탁자에 양발을 올려놓고 머리 뒤에 양손을 돌려 깍지를 꼈다.

눈을 내리감고 생각했다.

‘최우.’

생각 외로 욕심이 있다.

‘흐음. 재물에 대한 집착이 남달라. 역시 기록대로야.’

내가 알고 있는, 문헌에 남아 있는 최우의 사치욕에 관한 것을 상기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최우가 집안사람들과 조정 문무 대소 신료들을 불러 모아 연회를 열었다.

산더미 같은 비단으로 장막을 치고, 장막 한가운데에 그네를 매었다.

온갖 꽃으로 장막을 장식하고 은 단추와 자개를 붙였다.

악공들이 호화롭게 단장하고 앉아 풍악을 연주하니 거문고, 북, 피리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연회를 파하고 최우가 악공들에게 은덩어리를 주고 기생, 광대들에게 비단을 주었다.

한 번 연회에 들인 비용이 수만이 다다라, 그 사치스러움이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빌어먹을이다. 그러니 재물 욕심을 내지.

‘집권자감은 아니야.’

권력을 잡은 집권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극기克己다.

스스로를 관리, 통제하는 자제력이 없으면 집권자로서 자격 미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지. 나도 종종 극기에 실패하곤 하니깐.’

최우가 조금만 남다른 면모를 내게 보여주었더라면, 아쉬움이 남는다.

문득 머릿속에서 죽은 최양백이 내게 최우를 부탁하던 말이 떠올랐다.

‘승낙하지 않길 잘했지.’

최우는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나라고 권력을 잡지 말란 법이 있는가?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내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라면 충분히 현 고려를 내 수중에 넣을 수 있다.

‘그러자면 사람들이 필요해. 수족처럼 내 말에 따라 움직여 줄 수 있는 이들이.’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고 세력을 만들어야 내가 뜻하는 바를 현실에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흠.’

난 마음속으로 나직한 외마디 침음을 흘리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다음 날.

최우를 좌장으로 서풍, 각 지방 호족, 내가 한 자리에 모여 향후의 일을 논의했다.

전리품과 사로잡은 왜구들에 관한 안건이 나오기 전까지 논의는 무난하게 이어졌다.

그렇게 좌중이 평온하게 이어지다 전리품이 안건으로 나오자, 대번에 좌중에 앉은 지방 호족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다들 흥미가 있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최우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제일 먼저 사로잡은 왜구의 처리 방침을 언급했다.

서풍과 지방 호족들은 움칫했다.

예상과 달리 사로잡은 왜구들의 처리 방안을 먼저 입에 올린 최우의 속내를 살피려 다들 여념이 없었다.

…….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최우는 날 쳐다보며 왜구들을 황도 개경으로 보낼 것임을 입에 올렸다.

‘아주!’

속이 편치 않았지만 달리 도리가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번 왜구들의 준동은 전쟁이라면 전쟁이다. 전쟁에서 없는 전공도 만들어내는 것이 상례이고 보면, 최우는 모처럼만의 전공을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친 최충헌의 후계를 두고 남동생 최향과 다투고 있는 처지이고 보면, 게다가 광주목을 단독으로 공격하여 크게 패했다고 봐도 무방한 피해를 입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할까?

속이 뻔히 보이는 최우라 나는 가타부타 입을 열지 않았다. 날 흘낏거리는 최우의 시선이 내심 거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난 짐짓 모른 척하며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최우는 내 동태를 살피다가 서풍과 지방 호족들을 돌아보았다.

“전리품 중 반은 황도로 보낼 생각이오.”

서풍과 지방 호족들은 움찔했다.

최우가 언급한 황도가 의미하는 바는 교정도감, 즉 최충헌이다.

전리품 중 정확히 절반을 부친 최충헌에게 바치겠다는 최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응당 황도로 보내야지요.”

몇몇 호족이 최우의 말에 찬동하고 나섰다.

난 그 광경에 속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아부도 좀 적당히 해라. 으응. 자고로 아부란 알게 모르게 은근짜하게 하는 거지. 니들처럼 주변에 이목이 많은데서 대놓고 하는 건 아니거든.’

속으로 툴툴댔다.

그 사이 최우가 날 힐긋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남은 절반 중에.”

최우는 자신이 이끄는 가병들이 많은 피해를 입어 남은 50%의 전리품 중 20%를 나누어준다는 핑계로 가지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호족들은 최우의 말에 불만이 없었다. 고개를 다시금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서풍은 근엄한 자세로 앉아 침묵이 금이라는 것을 실천에 옮겼다.

최우는 눈을 빛내며 가장 큰 공을 세운 내게 자신과 똑같이 20%를 주고 지방 호족들에게는 10%를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순간, 좌중에 앉은 호족들의 낯빛이 급변하며 모든 이목이 앉아 있는 내게 쏠렸다.

난 흠칫하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호족들과 내 사이를 갈라놓겠다는, 만약을 대비한 반목의 씨앗을 뿌리려는 최우의 의도가 눈에 훤히 들어왔다.

‘얄팍하게.’

나는 최우의 의도를 눈치채고 얼굴빛을 흐렸다. 재빨리 좌중에 앉아 있는 호족들을 살폈다.

다들 날 쳐다보며 적대적인 의사를 얼굴에 내비쳤다.

‘제기랄!’

난 힐긋 서풍을 보았다.

마주보는 서풍의 태도는 냉랭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풍이 왜 나를 냉랭하게 바라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난 답답했다.

‘저 사람이. 왜 저래?’

서풍이 내게 경쟁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심중에서 야망이란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까맣게 몰랐다.

호족들은 불쾌한 얼굴빛을 띠며 최우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차마 최우에게 뭐라 대놓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어, 죄다 날 보았다.

아주 잡아먹을 듯 쳐다보는 눈초리가 여간 매서운 것이 아니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마 나는 이미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난 재빨리 말하고 나섰다.

“제 몫은 모두 황도로 보내겠습니다.”

내 말에 호족들과 최우가 움찔거렸다.

“호오. 자네가.”

최우는 뜻밖이라는 얼굴로 날 보았다.

난 침묵했다.

공연히 전리품에 욕심을 냈다가는 호족들과 반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과감히 포기했다.

‘어쩌면.’

최우가 호족들로 하여금 날 견제하려고 포석을 까는 건지도 모른다.

‘이거.’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하는, 매우 조심스런 상황이었다.

서풍은 날 힐긋 쳐다보더니, 이내 최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희도 황도로 보내겠습니다.”

몇몇 호족이 서풍의 말에 반발하고 나섰다.

“서공.”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전리품입니다. 전리품. 아시겠습니까?”

“어찌! 서공의 독단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서풍은 반발하는 호족들을 돌아보았다.

“이 공은 자신의 몫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습니까?”

호족들은 서풍의 말에 움칫거리며 고갤 돌려 서로 쳐다보았다.

다들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을 띠었다.

서풍의 말처럼 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전리품에 욕심을 부린다.

그리 생각할 상황인 터라 내심 난감해했다.

그런 이유로 호족들은 입을 다물고 은근 슬쩍 최우의 눈치를 보았다.

최우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서풍을 쳐다보았다. 대견하다는 시선이었다.

“자아.”

최우는 좌중에 앉아 있는 이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의 협조에 상국 합하를 대신해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전리품은 일괄 황도로 보내겠습니다. 아울러 여러분들의 노고와 전공 역시.”

최우는 황도에 호족들이 수고한 바를 알려 그에 합당한 상을 받게 할 것임을 슬쩍 내비쳤다.

그 말에 호족들의 얼굴빛이 조금 밝아졌다.

‘그래.’

‘전리품은 못 건졌지만.’

‘상이라도 건져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