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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을 공격하는 최향은 매우 당황했다.
“어떻게!”
청주목을 점한 왜구 500여 명을 한창 밀어붙이며 맹공격 중이었다.
유송절이 지휘하는 부친 최충헌의 기병 1천여 명은 원기 왕성하게 청주목을 둘러싼 석성으로 내달렸다.
세이츠 이토가 이끄는 500여 명의 왜구는 제법 공성전에 익숙한 듯 완강하게 버텼다.
공성전이 정점에 이른, 치열하다 못해 처절한 그 순간.
“우와아아아아.”
난데없이 배후에서 중무장한 300여 명이 나타났다.
요시미츠 다카요시가 이끄는 요시미츠 가의 가병 300여 명은 엄중한 대열을 형성, 최향이 이끄는 가병들의 배후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주군. 피하십시오.”
호위장 권호렴이 몇몇 측근 무사를 대동하고 배후로 향했다.
최대한 배후에서 치고 들어오는 요시미츠 가의 가병들을 막으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공성 중이던 유송절이 배후에서 난데없이 나타나 치고 들어오는 요시미츠 가의 기병을 보고 퇴각을 명했다.
“물러나라. 속히 본진으로 물러나라.”
가병들이 공성전을 중단하고 물러나려는 그 시점에, 이토가 성문을 열고 쏟아져 나왔다.
결국 앞뒤에서 협공당한 최향은 분루를 삼키며, 유송절의 호위 하에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호위장 권호렴을 포함해, 무려 600여 명을 잃고 남은 400여 명을 데리고 충주목 서쪽에 있는, 3리 남짓 떨어져 있는 이풍현으로 물러났다.
유송절이 황황히 전열을 정비, 이풍현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구축했다.
요시미츠 다카요시와 이토가 이끄는 약 800여 명에 이르는 병력이 이풍현을 맹렬히 들이쳤다.
“막아라. 밀리면 우린 다 죽는다.”
유송절은 필사적으로 400여 명을 독려하여 800여 명을 막으려 하였으나 대패한 탓에 사기가 떨어져, 의기소침한 가병들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병력의 열세로 인해, 서너 번에 걸친 다카요시의 맹렬한 공격에 방어진 곳곳이 뻥뻥 뚫렸다,
유송절은 어쩔 수 없이 최향을 데리고 전라도 방면으로 도주하였다.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만.”
다카요시는 추격을 멈추라 명하며 이토에게 전장 정리를 명했다.
“주군. 이대로 놈들을 쫓으시지요. 겨우 100여 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추적하여 몰살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다카요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다. 청주목과 광주목이 고려군 수중에 떨어졌다. 이미 만족할 만큼 전리품을 충분히 챙겼으니 충주목에 있는 세곡을 배에 옮겨 싣고 속히 하바카로 돌아가야 한다.”
“네에에.”
이토는 자세한 전황을 몰라 다카요시의 말에 크게 놀랐다.
“고려군에 우리가 몰랐던 유능한 무장이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빠르게 내 군략을 망칠 줄은.”
다카요시는 말을 흘리며 몹시 아쉬워했다.
이토는 입을 다물고 물끄러미 다카요시를 바라보았다.
‘타치바나.’
마음속으로 가만히 오랜 동료인 미나토 타치바나를 불러보았다.
전사하였으니 이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심중 슬픔이란 감정이 일어, 이토의 얼굴빛은 몹시 어두웠다.
다카요시는 물러나야 할 때와 공격해야 할 때를 명확히 분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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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광주목.
전장 정리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왜구가 상당한 기간 동안 점한 광주목은 복구가 매우 힘들 정도로 크게 황폐화되었다.
서풍을 대표로 지방 호족들은 젯밥이라 할 수 있는 전리품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난 최우에게 전리품과 왜구들을 상인들에게 넘겨 전비를 보충하자고, 광주목을 복구하는 비용으로 쓰자고 건의했다.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최우는 말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왜구라고는 하지만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을 팔자니.
최우는 허무맹랑하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사로잡은 왜구들은 황도로 보내야 하네.”
최우의 말에 난 강경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부사 어른.”
왜구들로 말미암아 고려 백성들과 양광도가 크게 피해를 입었다.
복구비용이 엄청나다.
그러니 왜구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몸으로 그 비용을 충당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전리품은 왜구가 백성들에게 약탈한 것들이니, 주인에게 돌려주기 어려우면 모두 국고로 넣는 것이 타당하다.
아무리 이번 싸움에 참전했다고는 하나 지방 호족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내 의견에 최우는 가타부타 아무 말하지 않았다.
눈치가 지방 호족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고 싶은 모양이다.
지방 호족들에게 조금 전리품을 나누어 주고 보나마나 태반의 전리품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챙겨 넣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자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이었다.
‘이런 망할!’
나와 최우 사이에 간격이 벌어졌다는 것을.
나와 최우는 생각하는 바, 사고방식이,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내심 확인했다.
“좀 더 심사숙고해서, 여러 호족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고 나서 정하도록 하세.”
“부사 어른.”
“그만!”
최우는 더는 내가 말하지 못하도록 말에 힘주었다.
난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행여 최우의 눈 밖에 나는 날에는 내가 염두에 둔 일련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에 별 수 없이 입을 다물고 최우의 군막을 나왔다.
내 군막으로 돌아왔을 때, 묵이와 혹두가 기다리고 있다가 날 보며 반색했다.
“나리.”
“어떻게 됐습니까?”
둘 다 궁금하다는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묵은 상인들 때문에, 혹두는 받을 돈 때문에 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난 탁자로 걸어가 정중앙에 턱 앉았다.
“휴우.”
한숨을 쉬는 사이, 탁자 좌우로 묵이와 혹두가 다가와 앉았다.
“나리.”
거의 동시에 두 녀석이 날 불렀다.
난 말없이 고개를 들어 군막 천장을 보았다.
“나리.”
“뭐라고 말씀 좀 해 보십시오.”
묵이와 혹두가 궁금하다는 속내가 그득 깃든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난 고개를 바로 하며 묵이와 혹두를 번갈아보았다.
“최 부사가 호족들과 전리품을 나눠 먹으려는 모양이다. 사로잡은 왜구들도 일종의 전리품으로 황도 개경으로 보내 전공을 자랑할 속셈인 것 같다.”
“예에에.”
“그럼?”
묵은 놀라 반문하듯 외마디 음성을 길게 뺐다.
심중 난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래하는 상인들이 싸움이 끝난 것을 귀신처럼 알아내고는 찾아와 지금 기다리고 있다.
상인들과 거래할 것이 수중에 없는 터라, 난감해도 이만저만 난감한 것이 아니다.
혹두는 약속한 두당 백금 한 냥을 못 받게 될까? 무지 겁냈다.
“나리. 주신다고 하신 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썩을!”
난 거친 어조로 말을 내뱉으며 혹두를 쏘아보았다.
“줘! 준다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백금을 몽땅 다 털면 니놈들에게 주기로 한 돈은 맞출 수 있어. 됐어?”
“쩝.”
혹두는 입맛을 다시며 내 눈치를 보았다.
슬그머니 머리를 숙이며 날 힐끔거리는 것이 조금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그런 혹두에게 물었다.
“내가 일전에 명령한 것은 어떻게 됐어?”
“아, 그거 말입니까?”
혹두가 정색을 하듯 얼굴 표정을 바꾸며 날 쳐다보았다. 입에서 내가 알고자 하는 정보가 술술 흘러나왔다.
“흠.”
난 낮은 외마디 침음을 흘리며 눈을 반짝였다.
‘예상대로군.’
청주목에 이어 광주목이 떨어졌다.
그러니 왜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충주목으로 집결하는 것 밖에 없다. 아울러 최향이 대패할 것이라 생각, 혹두를 통해 뒷골목 인간을 좀 풀었다.
혹두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묵을 돌아보았다.
“지금 즉시 이동 준비를 하라고 해.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알겠지.”
“나리. 그럼.”
“그래. 우린 충주목 방면으로 간다. 가서 재빨리 왜구를 섬멸하고 충주목을 장악, 그 곳에서 전리품과 왜구들을 획득하여 돈을 마련한다다. 이곳에서는 영.”
얻을 것이 없다.
내가 내비치는 속내에 묵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상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충주목에서 보자고 하겠습니다.”
“둘 다 나가봐. 난 혼자 있고 싶으니깐.”
“네.”
묵과 혹두가 동시에 대답하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서며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내가 엄청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