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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동안 미나토 타치바나는 몇몇 호위병을 대동하고 각 방어 거점을 숨 쉴 틈도 없이 일일이 방문, 세심히 허실을 살폈다.
그런 한편으로 방어 거점을 맡은 료닌들을 다독이며 사기를 올리려 애썼다. 곧 고려군이 공격해 올 것이니 주의에 주의를 다하라 신신당부했다.
“얼마 전에 정탐병들이 우리 진형을 살펴보고 돌아갔으니. 조만간 고려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 알겠느냐?”
“네, 타치바나님.”
“심려 마십시오.”
료닌들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최우가 이끄는 가병들을 대패시킨 전력이 있는 탓에 사기가 높았다.
료닌들은 다들 자신만만했다. 자신들이 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타치바나는 사기가 왕성한 수하 료닌들의 모습에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항시 경계를 늦추지 마라. 고려군이 언제 기습해올지 모르니.”
타치바나는 끝까지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각 방어 거점을 세밀하게 점검하며 심중 이는 초조감을 달렸다.
그렇게 사흘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 기간 동안 타치바나는 초조와 자신감이란 두 감정에 상당히 시달렸다.
이제나 저제나 쳐들어 올 고려군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쳤다.
그런 한편으로 마음속으로 ‘그래. 어디 한 번 쳐들어 와 봐라’ 라고 중얼거렸다.
자신이 있다.
평생 동안 전전한 전장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둔 각 방어 거점은 난공불락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타치바나는 내심 그런 확신에 차 있었다.
자신의 필생 성과가 바로 료닌들이 맡은 각 방어 거점인 까닭에, 그리 쉽게 방어 거점이 뚫리지는 않는다.
그리 여겼다.
“무조건 최대한 오래 동안 이곳 광주목에서 버티기만 하면.”
타치바나는 섬기는 주군 요시미츠 다카요시를 생각하며, 받은 명을 죽는 그 순간까지 지키리라.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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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 새벽녘.
밤과 낮이 공존하는 짧은 미명이 사위를 뒤덮었다.
각 방어 거점을 맡은 료닌들 중 번番을 선 료닌들은 지루한 얼굴로 연방 하품했다.
“하암.”
“끄응.”
번을 서는 료닌들의 경계는 흐트러져 있었다.
밤이 끝나고 낮이 시작되는 짧은 시각.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계심과 몸이 흐트러진다. 그것은 번을 서는 료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밤새 선 번이 이제 곧 끝난다는 안도감,
곧 교대하는 동료 료닌들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 등등.
내면에서 이는 몇몇 감정에 료닌들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을 풀고는 지루하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여봐라는 듯 겉으로 드러냈다.
“응?”
“왜 그래.”
“뭔가 이상한 소리 안 들려?”
“무슨 소리?”
번을 서던 두 료닌은 얼굴을 돌려 서로 쳐다보았다.
처, 처, 척.
정면에서 절도 있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아닌 다수가 동시에 발로 땅을 강하게 내리밟는 소리는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두 료닌은 흠칫거리며 정면을 쳐다보았다.
“뭐, 뭐야?”
“고려군이닷!”
두 료닌은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에 놀라 소리쳤다. 재빨리 뒤돌아서며 급히 뛰려는 찰나.
슈, 슈, 슈우우우.
뭔가 다수의 묵직한 것이 날아오는 파공이 들렸다.
두 료닌은 뛰어가려고 하다가 멈칫거리며 섰다. 부지불식간에 고개가 뒤돌아갔다.
“뭐, 뭐야?”
“이 소리는?”
두 료닌은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무엇인가가 매우 빠른 속도로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속도가 너무 빨리 미처 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두 료닌의 눈이 소리를 따라 뒤로 움직였다.
찰나.
쿠, 쿠우웅.
묵직한 소리가 울리자마자, 뒤이어 동료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악.”
“크아악.”
비명을 컸다.
두 료닌은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방어 거점 중 하나인 무더기에 입을 쩌억 벌렸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야에 보이는 방어 거점은 폭삭 내려앉듯 무너져 내렸다. 주변에 있는 돌담과 가옥을 부셔, 그 잔해를 높이 쌓은 방어 거점은 삽시간에 직격한 큼지막한 돌들로 엉망이었다.
돌들은 여느 장정 머리의 2배 크기였다.
슈, 슈, 슈우우우.
예의 파공이 다시 들렸다.
두 료닌의 얼굴이 사색으로 급변하며, 고개가 다시금 뒤돌아갔다.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두 료닌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컥.”
“허어억.”
수없이 많은 돌이 혜성인 양, 새벽하늘을 가로지르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없이 많은 돌이 만들어내는 궤적들이 허공에 나타났다 일순 사라졌다.
혜성우彗星雨!
그리 말하는 것이 타당할 석우石雨에 두 료닌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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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 콰, 콰, 콰앙.
적진, 광주목 내부에서 다수의 굉음이 그치지 않고 들려왔다.
난 최우의 우측에 서서 싱긋이 미소 지었다.
저만치 앞쪽에서 가병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죄다 2열 횡대의 진형을 형성하고 천천히 광주목 내부로 진입하기위해 움직였다.
2.5미터 어림의 장창을 일직선으로 세운 창병들.
창병들과 2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뒤따르는 궁병들.
궁병들 뒤, 5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서 포병이라고 할 수 있는 수십여 대에 이르는 석포들이 광주목을 향해 큼지막한 돌을 날려 보냈다.
난 슬쩍 고개를 들어, 연이어 하늘로 향하는 돌들을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날이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척 봐도 엄청 무게가 나갈 것 같은 돌들이 가로질렀다.
장관이라, 경이롭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차고도 넘쳤다.
“대단하군.”
최우의 중얼거림이 귀에 들렸다.
난 고개를 바로 하며 최우를 돌아보았다.
최우는 조금 전의 나처럼 고개를 들어 새벽하늘을 보고 있었다.
좌측에는 서풍이 서 있었고, 최우의 뒤쪽으로는 지방 호족들이 안장에 앉아 정렬했다.
서풍이나 지방 호족들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너나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석포는 고려 중앙군도 운용하는 병기라 그리 큰 감명을 받지 않은 눈치다.
하지만 난 내심 득의라는 감정을 느꼈다.
‘뭐.’
그럭저럭 서풍과 호족들의 불만은 잠재운 것 같다. 덤으로 최우의 호의와 신뢰를 이끌어낸 듯 보여, 그 정도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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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바나는 황황급급히 뛰었다.
다다다.
뒤쪽에서 다섯 명의 호위병이 타치바나의 뒤를 맹렬히 쫓았다.
타치바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 갑주를 벗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각 방어 거점을 공격하는 석포가 흘리는 다수의 묵직한 울림을 잠결에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자리를 박차고 급히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어 가장 가까이에서 들리는 굉음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뛰는 타치바나의 얼굴에 진한 궁금증과 의문이라는 두 감정이 깔려 있었다.
‘틀림없어!’
고려군의 공격일 것이다.
기습이 있을 것이라 사전에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벽 미명을 노릴 줄은 미처 몰랐다.
고려군 역시 밥을 지어먹어야 하고, 공격하기 전에 병사들이 모여 대형을 형성하리라 여긴 탓에, 공격 준비 시간이 상당하리라. 여겼다.
그 시간이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체 무슨 소리이기에.’
타치바나는 뛰는 와중에도 계속 들리는 울림에 적잖은 불안을 느꼈다.
공격이라면 활이나 단병접전일 것인데, 지금 자신의 귀에 들리는,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울리는 소리의 정체가 심중 몹시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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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군막 밖으로 나오려했다.
군막 입구를 가린 천을 살며시 들추고 밖으로 머리를 쏙 내미는데.
“아서라. 응.”
“나리께서 널 군막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라셨다.”
군막 좌우에 서 있는 두 가병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 툭 말을 던졌다.
묵이 군막 입구를 가린 천을 들추는 기척을 들은 눈치다.
묵은 흠칫했다.
“헤헤. 두 분 형님. 어떻게 안 될까요?”
멋쩍게 웃으며 두 가병을 번갈아보았다.
“안 돼.”
“나리께서 널 군막 밖으로 내보내면 그 즉시 우리 목을 따버리시겠다고 하셨다.”
두 가병은 짐짓 겁먹은 어조로 대꾸했다.
묵은 다시금 두 가병을 번갈아보았다.
“에이 설마 그럴까?”
묵은 아닐 것이라는 의중을 슬며시 내비쳤다.
“살짝 구경만 하고 올게요. 몰래 나갔다 오면 나리도 모르실 거예요. 네에?”
두 가병은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는 어투로 묵에게 대꾸했다.
“걸리면 우리만 죽어.”
“포기해.”
“두 분 형님.”
묵은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두 가병을 둘러보았다.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이민호가 생각해낸 새로운 전술이 어떤 것일까? 그 동안 가병들이 훈련하는 것을 지켜본 까닭에 부쩍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두 분 형님. 보내 주세요. 네에. 나중에요.”
묵은 오른손을 내밀어 손가락으로 술잔을 쥐는 시늉을 하며 나지막한 소리를 냈다.
꼴깍꼴깍.
그 소리에 두 가병이 움찔거리며 서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마주보며 순식간에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풀어줄까?
말까?
망설이는 기색이 두 가병의 얼굴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