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04화 (10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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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

결국 최양백과 김인준이 죽었다.

두 사람은 입관되어 숙영지 인근 야산에 묻혔다. 땅을 파는 몇몇 가병 외에 나와 최우만이 가매장에 참석했다.

겉으로 보기에 최우는 냉정했다. 하지만 속은 아닐 것이다. 성난 기운이 팽배해 있을 것이 뻔하다.

가노라고는 하지만 최양백과 김인준은 최우의 수족 중의 수족이었다.

1천여 명에 이르는 부친 최충헌의 가병을 거느리고도 불과 300여 명의 왜구를 어쩌지 못하고 700이란 가병을 잃었다.

700은 죽거나 다친 이들을 모두 포함한 숫자다.

군사적 식견이 없음이 한 눈에 드러나는 결과라 최우는 심중 암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내게 모든 지휘권을 넘겨준 것은 1, 800여 명에 이르는 병력을 지휘할 명분이 없고, 자신에게 군사적 식견이 없음을 인지한 탓인지도 모른다.

난 슬쩍 우측에 서 있는 최우를 곁눈질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일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직된 것이 보기에 심상치 않다.

슬픔이든, 분노든, 노기든.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위험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자는 비로소 타인의 머리 위에 설 수 있다!

그와 같은 말이 있음을 유념해 볼 때 확실히 최우는 여느 사람과 다르다.

‘응?’

최우가 양손을 말아 주먹 쥐는 것이 보였다.

부르르.

주먹 쥔 손이 잔떨림을 흘렸다.

‘역시.’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치미는 울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흠. 경계를 흐트러뜨리면 안 되겠군.’

최우가 내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마냥 마음 놓고 있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허점을 드러낸다면, 최우나 아니 다른 사람이 그 허점을 파고들어 날 죽이려 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권력의 속성이 아니던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그 가능성만 보여도 제거함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은 탄탄한 반석에 올려놓으려는 권력자들의 속내.

무조건 최우를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고 나서, 땅을 치고 통곡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무엇보다는 최우는 한 번 크게 패하였고, 나는 이미 청주목에서 대승이라고 할 수 있는 승리를 하였으니.

어쩌면 그것이 초우에게는 일종의 열등감 내지는 강한 꺼림으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최우가 나와 함께 할 사람으로서 배포와 그릇이 된다면.’

잠시 최양백이 내게 한 부탁을 상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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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는 잠시 이를 악물고 물끄러미 정면에 있는 두 봉분을 보았다.

사지가 잘려나간 기분이었다.

‘내 어쩌다가.’

보무도 당당하게 개경을 떠나 광주목으로 왔다.

불과 300명에 지나지 않은 왜구에게 대패하리라고는 아예 생각 자체도 하지 않았다.

문득 죽어가던 최양백이 남긴 말이 생각났다.

‘주군. 이민호를 곁에 붙잡아 두십시오. 상국 어른의 뒤를 이어 이 나라 고려의 모든 것을 수중에 넣으실 때까지 절데 곁에서 내치셔서는 안 됩니다. 설사 내치시더라도 주군의 보좌가 굳건해진 다음에 그리 하십시오. 그 전까지는 이민호를 주군의 곁에 두시고, 베풀 수 있는 모든 것을 베푸시어 이민호로 하여금 주군께 절대 충성하도록 만드십시오.…… 이민호는 지략과 무력을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자입니다. 무력으로는 저에게 뒤지지 않고 지모로는 인준이를 능가하는 인재입니다. 양광도 호족들이 왜구에 대비해 하나로 뭉치려는 중심에 이민호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주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시고 이민호의 충성을 이끌어내십시오. 주군께서 죽어라 하시면 죽는 시늉도 하는 주군의 충견으로 만드십시오. 그래야만 주군께서 참지정사를 제치고 교정도감의 주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최우는 천천히 이민호에게 고갤 돌렸다.

최우의 시선에 난 흠칫거리며 머리를 살며시 숙였다. 귀에 최우가 내게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정녕 이리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최우의 물음에 난 머리를 들어 마주보았다.

“송구합니다. 부사 어른.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이 죽은 것을 밝히면 가병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가득이나 가병들 사이에서 광주목에 있는 왜구들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한 터라.”

난 말끝을 흐렸다.

광주목에 있던 왜구들을 상대했던 최우의 지휘하에 있는 300명의 가병이 내가 대동한 1천여 명의 가병과 서풍을 비롯한 지방 호족들이 데리고 온 가병들과 어울렸다.

그 과정에서 광주목에 있는 왜구들이 귀신처럼 무섭게 싸운다며, 나와 서풍을 위시한 호족들이 데리고 온 가병들에게 입방아를 찧었다.

그 바람에 알게 모르게 사기가 저하되었다.

서풍과 지방 호족들 그리고 패한 전력이 있는 최우의 가병들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데리고 있는 가병들은 달랐다. 청주목에서 별다른 희생 없이 가볍게 왜구들을 일방적으로 이겨 사기가 높았다. 그 때문에 내 직속의 그들 1천여 명만 띠로 빼내어 훈련시켰다.

난 최우의 우측으로 비켜섰다.

최우는 날 스쳐 지나가며 재차 내게 물었다.

“호족들 중에 자네에게 적잖은 불만을 가진 이들이 몇 있네.”

난 걸음을 떼는 최우의 우측으로 붙으며 즉시 대답했다.

“무슨?”

아무 것도 모르는 척했다.

최우는 걸으며 날 힐긋거렸다.

“우리 병력이 1,800이네. 광주목을 점하고 있는 왜구들은, 그간 싸우다가 죽거나 다쳤을 터이니. 아마 기껏 해 봐야 250에서 300어림일 것이네.”

최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공격하기에는 왜구들을 이끄는 자가 범상치 않습니다. 며칠 전 광주목으로 숨어들어 왜구들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그런가?”

난 건성으로 대꾸하는 최우를 돌아보았다.

“방어물과 방어 진형이 탁발합니다. 무턱대고 병력을 투입했다가는 큰 피해가 불가피합니다. 무엇보다도 병력을 대규모로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차례대로, 소수로 나누어 축차 투입했다가는 금세 왜구들에게 포위되어 지리멸렬하고 말 것입니다. 저에게 왜구들의 방어물과 방어 진형을 무력화할 비책이 있습니다. 부사 어른.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흠. 그렇다면야.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네만. 호족들은 기다리기 어려울 것이네. 어젯밤 호족들이 날 찾아와 즉각 광주목을 공격하자는 의견을 내놨네.”

“그렇습니까?”

난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우는 걸으며 말없이 날 보았다.

“부사 어른. 사흘. 사흘만 말미를 주십시오.”

“사흘이라.”

최우는 말을 흘렸다.

“네. 사흘 후에는 반드시 광주목을 쳐, 부사 어른을 광주 목사의 거처로 모시겠습니다.”

“자신 있는가?”

“네, 자신 있습니다.”

“좋네.”

내 말에 최우는 고개를 까닥였다.

“사흘이네. 사흘이 지나도 자네 말과 달리 광주목을 우리가 점하지 못한다면 호족들의 의견대로 총공격할 것이네.”

“네.”

나는 일부러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사이 최우가 두어 걸음 앞서 걸어갔다.

난 최우의 우측 뒤에서 따라 걸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망할.’

전술이 뭔지도 모르는 호족들이 무모하리만치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누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줄 아나.

만약 호족들의 주장대로 했다가는 1,800여 명 중 최소 1천여 명 이상은 죽거나 크게 다칠 것이다.

불과 300여 명의 왜구들을 전멸시키는데. 최우가 입은 피해까지 합치면 못해도 1,700이다.

그건 이긴 것이 아니라 진 것이다. 패배란 말이다.

‘서둘러야겠어.’

내가 생각하는 전술을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할 것 같다.

어렵사리 확보한 사흘.

광주목 공략의 승패는 사흘이란 시간이 이제 그 성패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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