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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막으로 돌아오자, 묵이가 남경에서 돌아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리.”
“왔냐?”
툭 말을 던지고는 탁자로 걸어가 중앙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쪼르르.
묵이 뒤따라와 내 우측에 섰다.
난 고개를 돌려 묵이를 보았다.
“활은?”
“네. 최 부사님의 서신 덕분에…… 남경 관아에 있는 활과 화살을 몽땅 다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나리께서 말씀하셨던 것들과 빈 술동이 그리고 기름을 비롯…….”
묵은 남경에서의 성과와 가져온 물자들에 관해 보고했다.
난 손을 들어 사래짓하며 묵이를 군막 밖으로 내몰았다.
“난. 좀 쉬어야겠다. 내일 아침에 보자.”
“네, 나리.”
묵은 대답하며 우측으로 돌아서려했다.
“참. 묵아.”
“네. 나리.”
묵이 돌아서던 것을 멈추고 날 쳐다보았다.
“나가면서.”
난 묵에게 몇몇 심부름을 시켰다.
“그렇게 전하기만 하면 돼.”
“네에, 나리. 말씀하신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래. 너도 수고가 많았으니. 오늘은 푹 쉬어라.”
“네. 그런데 나리.”
“왜?”
“저어기. 오늘은 거의 다 가지 않았나요? 지금이 자정인데.”
난 묵의 말에 뻥 져,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시각이 자정이 되긴 했다.
여태 그걸 깜빡하고 있었다니.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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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내 군막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내 휘하에 있는 각 백인장과 십인장이 들어왔다.
그들과 차를 마시며 한담하는 사이 노인 나식이 들어왔다.
“그럼.”
“수고 많으셨습니다.”
난 인사하는 노인 나식에게 말하며 고마워했다.
나식은 들고 온 바구니에 든 각종 목각인형들을 탁자에 와르르 쏟아놓고는 휑하니 군막을 나가버렸다.
백인장과 십인장은 일련의 행동과 대화에 어리둥절했다. 그들의 시선이 탁자에 쏟아진 각종 목각인형으로 향했다.
“나리. 이게 다 뭡니까?”
“생김새로 봐서는 병사들인데요.”
“이것들을 왜?”
다들 영문을 몰라 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손 검지를 들어 탁자에 펼쳐둔, 어제 정탐한 것을 표기해 놓은 종이를 가리켰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도록.”
간략하게 말하며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전술 교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와 최우가 이끄는 이들은 최충헌의 가병들로, 2군 6위의 고려 중앙군을 능가하는 고려 최강이다.
그런 이유로 별다른 훈련을 시키지 않아도 활과 창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물론 평소에 중앙군을 능가하는 강도 높은 수련을 한 결과일 태지만.
하나, 현대전 개념이 아예 없어, 가병들을 데리고 내가 생각하는 전술의 구현은 불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내가 가병들을 어떻게 운용하려고 하는지, 중간 지휘자인 각 백인장과 십인장에게 미리 설명해두려 하였다.
그들을 이해시켜야 내가 원하는 바대로, 전체 병력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용이 가능해지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는 전술의 구현은 사실상 어렵다.
그것은 전술 교리의 이해 없이는 전술이 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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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난 종이 주변에 목각인형을 둥글게 세워 놓았다.
모두 여섯 개의 원진圓陣.
제일 앞에는 창병들이 2열로, 중간에는 궁병들이 2열로, 제일 뒤에는 석포를 운용하는 포병이라고 할 수 있는 2열의 석포가 섰다.
내가 생각하는 전술을 위한 진형이다.
각 백인장과 십인장은 지도와 목각인형들에 이목을 집중했다.
상체를 내밀어 종이와 목각인형들을 세세하게 살폈다.
난 그들을 둘러보며 정탐한 것을 설명했다.
“왜구들의 방어 진형은…… 모두 5명씩, 도합 15명이 각기 대각으로 서 있다고 가정할 경우.”
왜구들이 구축한 1, 2, 3차 방어선을 언급하며 손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선線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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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형태로 왜구들의 둔덕이 형성되어 있었다.
난 각 백인장과 십인장을 힐긋힐긋거리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길은 다수가 지나가기에는 지나치게 좁다. 게다가 급격히 꺾이는 각도도 크고.”
난 상체를 숙였다.
오른손을 종이로 내밀어 최우가 광주목 내부로 가병들을 들이밀며, 막심한 피해를 입은 이유를 각 백인장과 십인장에게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가병들은 잘게 쪼개 소무리로 나누어 차례대로 투입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1, 2, 3차 방어선에서 길에 들어선 기병들을 향해 세 방향에서 동시 합공이 가해진다. 그와 같은 파상 공세에 소수로 이루어진 소무리는 필연적으로 괴멸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내가 아는 바로는 왜구들에게는 활이 없다.”
난 왜구들이 료닌임을 각 백인장과 십인장에게 말해주었다.
“그들은 대개의 경우 검과 창을 쓰지. 활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대처는.”
각 백인장과 십인장은 내 말에 눈을 반짝였다.
난 생각하는 바를 입에 올렸다.
“제일 선두에서 왜구들을 공격하는 것은 바로 창병이다. 뒤에 있는 궁병들이 창병들을 확실히 엄호해줘야 한다. 무엇보다도 창병들이 진형을 완벽하게 유지해야 하고, 궁병들이 창병들 사이사이에 서서…….”
각 백인장과 십인장은 내 말에 이목을 바짝 모았다.
“나리. 나리의 방법이라면 각 방어선을 돌파하긴 하겠습니다만.”
“궁수의 역할과 석포가 핵심인 것 같은데.”
“무엇보다도 창병, 궁병, 석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줘야 할 듯 보입니다만.”
난 슬며시 웃었다.
‘역시!’
머리 하나는 기차게 좋다. 한 번 상세히 설명해주었더니 재깍 알아들었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머리가 좋긴 하지.’
난 각 백인장과 십인장을 돌아보며 시일이 빠듯함을 알렸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가병들에게 해당 공격 전술戰術을 익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왜구들의 방어 진형을 최소한의 희생으로 돌파할 수 있다. 알겠나?”
“네. 나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실하게. 가병들에게 나리께서 생각하시는 것을 익히게 하겠습니다.”
각 백인장과 십인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들을 돌아보며 흐릿한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잠시 뒤.
난 백인장과 십인장들과 더불어 심도 있게 전술에 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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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정오가 지난 시점부터 강도 높은 훈련이 실시되었다.
“똑바로 안 움직여!”
“대형을 흐트러뜨리지 말란 말이야.”
“어깨!”
“간격 유지해. 줄을 맞추라고.”
십인장들이 이리 저리 뛰며 가병들을 닦달했다.
가병들은 생전 처음 보는 대형을 형성하고 하나의 진형을 구축했다.
처음 하는 터라 훈련은 쉽지 않았다.
각 백인장은 자신이 맡은 가병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우거지상을 지었다.
“망할!”
다들 이민호의 전술을 처음 접한다. 그 때문에 전술 훈련은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
조만간 광주목을 공격해야 한다.
그 전에 가병들에게 해당 전술을 충분히 숙지시켜놔야 하는데. 그것이 마음과 달리 여의치가 않다.
눈에 보이는 가병들은 하나 같이 서툴기 짝이 없었다. 오합지졸도 저런 오합지졸이 없다.
밀집대형을 이루고 유지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가병들이 서 있는 진형 곳곳에는 눈에 확 들어오는 몇몇 틈이 벌어졌다.
한 백인장이 왼손을 들어 훈련받는 가병들의 진형 곳곳에 나 있는 틈들을 가리켰다.
“메워! 이 자식들아. 그렇게 틈을 벌리면 너희들은 죄다 죽은 목숨들이야.”
성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가병들을 훈련시키는 십인장들은 움찔움찔거리며 고함친 백인장을 돌아보았다.
‘젠장.’
‘우라질.’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가병들이 포진한 진형에 다수의 틈이 벌어진 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전날 이민호가 해당 전술을 설명할 때 분명히 언급했다.
‘왜구들은 진형의 틈새를 죽자고 파고들어 진형을 흩뜨려놓으려 할 것이다. 빈틈을 만드는 것 자체가 해당 전술의 실패를 의미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당 진형은 철저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진형의 유지가 해당 전술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창병이 이번 전술의 핵심임을 명심하도록 해.’
이민호가 단단히 당부하며 밀집대형의 중요성을 거듭 주지시켰다.
십인장들은 가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고함쳤다.
“붙어! 빈틈을 만들지 말고, 좌우 옆 사람과 바짝 붙으란 말이야.”
“뭐들 하는 거야? 진형. 똑바로 유지하지 못해,”
“니들 죽고 싶어. 대형을 흐트러뜨리면 니들 죄다 죽는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십인장들은 거의 미치기 직전인 사람인 양 연방 고함치며 광분하듯 방방 뛰었다.
백인장은 자신이 맡은 100여 명의 가병을 보고는 낙담해 고갤 푹 숙였다.
“휴우. 어느 천 년에.”
시일이 촉박하다.
가병들이 대형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전술 진형에 충분히 숙달되어야 비로소 공격에 나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왜구들의 방어 진형에 진군이 막혀, 막대한 피해를 입고 공격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
이민호가 그 점을 누누이 입에 올렸다.
“가병들이 내가 생각하는 전술을 이행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공격은 없다. 해당 전술의 성공 여부는 가병들이 얼마나 주어진 대형을 빨리 숙지하느냐에 달렸다. 다들 가병들의 훈련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각 백인장과 십인장에게 가병들의 훈련이 일정 성과를 내지 않으면 광주목을 점한 왜구들을 공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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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병들의 훈련 강도는 매우 높았다.
각 백인장과 십인장은 어떻게 해서든지 가병들에게 주어진 대형을 숙지시키려 애썼다.
며칠 동안 가병들이 훈련받는 것을 서풍을 비롯한 지방 호족들이 암암리에 지켜보았다.
“저게 다 무슨 짓거리인지 모르겠소이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가병들을 저리 바짝 붙어 서게 하여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이대로 시일을 끄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병들이 저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합쳐 1,800여 병력이지 않습니까? 광주목에 있는 왜구들을 몽땅 다 합쳐봐야 겨우 300이 될까? 말까? 입니다. 그냥 치고 들어가면 우리가 이기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인데.”
“맞습니다. 이리 마냥 차일피일 시일만 끄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호족들 대부분은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광주목을 하루 속히 공격하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들은 거느린 가병들이 얼마나 죽건, 다치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민호는 최대한 죽거나 다치는 희생자들을 줄이려 했다.
그런 이유로 직속이라고 할 수 있는. 청주목에서 함께 이동해 온 1,000 명만 집중 훈련시켰다.
서풍과 호족들이 휘하에 거느린 가병들과 분리하여, 나중에 서풍과 호족들의 가병을 따로 써먹으려했다.
공격과 수비에 있어, 아니 전쟁 자체에 있어 예비 병력이란 무조건 확보해두어야 한다는 현대전 개념에 입각한 조치였다.
“흠.”
서풍은 물끄러미 가병들이 훈련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늘 밤.’
아무래도 호족들과 함께 최우를 찾아가 한 번쯤은 논의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잘하면.’
서풍은 이민호가 가지고 있는 지휘권이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을까?
마음 한구석으로 기대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