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02화 (10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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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타다다다.

난 좌우를 오가며 갈지자로 뛰었다. 몇 번 조랑말을 타고 뒤따라오던 무장을 따돌렸다.

주위에서 몰려오던 왜구들과도 상당한 거리를 벌렸다.

“응?”

난 걸음을 멈추고 앞을 보았다.

좌측에서 반원을 그리며 예의 무장이 말을 내달렸다.

“망할!”

확실히 사람이 뛰는 것과 말이 달리는 것 사이에는 현저한 속도 차이가 있다.

무장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푸르르.

탄 말이 서며 머리를 양쪽으로 흔들었다. 말의 코에서 하얀 콧김이 피어올랐다.

무장은 서 있는 날 향해 말을 몰 작정인 듯 천천히 말을 움직였다.

말은 걷듯이 가볍게 날 향해 말발굽을 떼었다.

일순간

“차핫.”

무장이 양발로 말의 배를 찼다.

말은 달리라는 무장의 명령에 충실했다. 말발굽을 앞뒤로 움직이며 지면을 강하게 박찼다.

콰두두두.

말은 일직선의 경로로 서 있는 나를 향해 맹렬히 질주해왔다.

무장은 내가 좌우로 이동할 것을 염두에 둔 듯 검을 머리 높이 들지 않았다.

허리를 꼿꼿하게 편 자세로, 오른손에 쥔 검을 중단에 두었다.

“어쩐다?”

주위를 힐끔거렸다.

왜구들과는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어 두어 번 정도는 마상의 무장과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을 듯 한데.

망설였다.

“쩝. 다음에.”

지금은 돌아가는 우선이다.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적정을 살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그만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무리는 늘 문제를 야기하고, 그 결과는 언제나 부정적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마상에 앉아 있는 무장이 날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마상에 앉은 무장은 오른손에 검을 쥐었다. 그러니 내가 좌측으로 이동할 경우, 원활하게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난 초조한 눈빛을 띠며 빠르게 내게 다가오는 말을 주시했다.

거리가 삽시간에 가까워졌다.

말의 머리와 앞가슴의 울퉁불퉁한 근육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머뭇거리고 있다가는 말에게 부딪쳐, 한없이 뒤로 튕겨나가기 직전이다.

꽈아악.

검 자루를 쥔 왼 손아귀에 힘주었다. 슬그머니 왼발에 체중을 실으며, 시야에 보이는 말의 앞다리에 온 신경을 모았다.

‘미안하다.’

말을 탄 마상의 적을 상대하지면 가장 먼저 말부터 처리해야 한다.

마상이라는 높이.

달리는 말이 내는 속도.

그 두 힘이 말을 탄 채 적을 공격하는 기병의 최대 이점이다. 또한 두 발로 서서 싸우는 보병이 감당할 수 없는, 보병이 기병을 상대할 때 최대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왔다!

휘이이이.

난, 우측으로 움직였다. 마상에 탄 무장의 시점에서는 좌측으로 말이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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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과 동석한 호족들은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 그 사람이 어찌 우리에게 이럴 수가 있소이까?”

“서가에 있을 때와 지금을 돌이켜보니 실로 하늘과 땅이로소이다.”

“그게 다 추밀원 부사께서 싸고 도셔서 방자해진 것이 아니겠소이까?”

“내린 명이라는 것이 글쎄. 나무를 베어 오라는 것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호족들의 불만은 이민호가 내린 명으로 이어졌다.

서풍은 입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아쉬울 것이 없다.

호족들이 최우가 지휘권을 맡긴 이민호에게 강한 불만을 품으면 품을수록 상대적으로 자신에게 힘이 실리니깐 말이다.

“생각들을 해 보시구려. 우리가 1, 800천이오. 1,800! 반면 왜구는 몇 이외까? 겨우 300 남짓이외다. 그 동안 왜구들도 다쳤을 것이니. 최소 250은 될 것이오.”

“맞소이다. 무려 7배에 가까운 병력 차이가 나는데. 어찌 공격을 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답니까?”

“단숨에 광주목으로 쳐들어가 일거에 왜구들을 섬멸하면 되는 일을 마냥 시일만 끌고 있으니. 이거 원 답답해서.”

“그 시가전인가 뭔가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추밀원 부사께서 망신을 당하셔서, 그 망신을 덮기 위해 꾸민 말이 틀림없을 것이외다. 한번 생각들을 해 보시오. 1천여 명으로 300을 어쩌지 못해 700이 죽거나 다쳤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게 다 추밀원 부사께서 군사에 무지하신 까닭이 아니겠소이까?”

호족들의 불만은 최우에게까지 이르렀다.

서풍은 흠칫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호족들의 불만이 최우에게 이르는 것은 좋지 않다. 그 때문에 서풍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자, 자. 그러지들 마시고.”

서풍은 좌우에 앉은 호족들을 다독이려 하였다.

호족들은 서풍의 다독임에 말수를 줄였다.

잠시 뒤 서풍을 포함한 호족들은 무엇인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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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다.

휘익.

무장이 내 코앞에서 말을 세우더니 마상에서 뛰어내렸다.

자신의 이점을 포기하고 나와 맞서 싸우려는 모양이다. 그것이 아니면 마상에서 내 움직임을 쫓기 어렵다고, 날 공격하기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암튼 무장은 오른손에 쥔 검을 늘어뜨리며 천천히 날 향해 걸어왔다.

‘어라? 배짱 한 번 두둑하네.’

무장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힐끔.

난 주변을 돌아보았다.

‘공방을 길게 가져가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날 향해 여전히 뛰어오는, 주변의 왜구들이 신경 쓰인다. 내가 왜구들에게 신경 쓰는 사이, 무장이 소리도 없이 내게 달려들었다.

쉬잇.

무장의 검이 날 우 사선으로 베어오는 파공이 귀에 들렸다.

‘흑!’

난 멈칫거리며 급히 무장을 쳐다보았다.

‘우아아아아!’

무장의 검이 지척에 다다랐다.

난 황황급급히 한 걸음 물러나며 왼 팔뚝에 붙인 소검을 들었다.

순간.

검과 검이 부딪치는 경쾌한 일성一聲이 들렸다.

까아앙.

검격의 충격에 검신이 떨리며 진동했다. 진동을 삽시간에 내 왼 손아귀와 팔뚝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손바닥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으윽.’

난 서둘러 몸을 숙이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그와 함께 무장의 왼 발목을 향해 오른발을 후려찼다.

오른발은 지면을 쓸듯이 스치며 무장의 발목을 때렸다.

빠악.

충격이 상당한 듯 무장은 당황하며 휘청거렸다.

이전에 비해 내 몸이 크게 변했었다. 힘이 엄청 강해졌다.

“크흑.”

무장이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가격당한 왼발을 들며 비틀거리는 것이 상당한 충격과 통증을 느낀 눈치다.

직면한 현실이 무장과 마음 놓고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관계로, 난 몸으로 휘청거리는 무장을 밀쳤다.

보디체크body check!

무장은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부딪친 충격에 뒤로 나뒹굴었다.

“아악.”

무장의 입에서 당황이라는 감정이 밴 짤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난 주저 없이 뒤돌아섰다.

타다다다다.

황곤과 네 가병이 뛰어간 방향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행여 무장이 따라붙을까? 염려해 사력을 다했다. 삽시간에 몇 미터를 달음박질쳤을까?

뒤에서 무장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치는 음성이 귀에 들렸다.

“칙쇼!”

그러거나 말거나 난 무조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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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다.

황곤과 네 가병이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리.”

황곤이 내가 돌아온 것을 반겼다.

“혼자만 살겠다고.”

난 일부러 성난 목소리로 외치며 눈을 부라렸다.

황곤은 움칫했다.

“그, 그 게요.”

네 가병은 내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옆으로 돌아섰다.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었다.

“좋냐? 좋아. 그래. 상관인 날 내버려두고 너만 살겠다고 참 잘도 뛰데.”

장난스레 핀잔을 주었다.

황곤은 민망해하며 슬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허, 험.”

“재주라고는 전령질 밖에 없는…… 참 답다. 다워. 하여간 뛰는 것 하난 알아줘야겠다. 으응.”

황곤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날 곁눈질하며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숙였다.

“허이고. 지 살겠다고 상관을 버리는 부하라니.”

난 중얼거리며 황곤을 스쳐 지나갔다.

‘크큭.’

조금 고소하고 재미있다.

스치며 황곤을 흘낏거렸다. 곤혹스러워하는 황곤의 기색이 보기에 절로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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