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96화 (9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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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최우가 광주목으로 휘하 가병들을 밀어 넣을까? 조마조마하다.

밀어 넣는 가병들은 광주목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죄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최우에게 불리하다.

시가전은 수비하는 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며, 수비하는 측을 압도할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을 완비하지 못하는 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궁지에 몰리는 것은 공격하는 측이다.

수비하는 측은 아쉬울 것이 없다.

그저 느긋하게 참고 적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단 보급이 문제인데.

최우가 광주목을 공격하기 전에 왜구들이 광주목에서 대대적인 약탈을 통해 장기간 버틸 수 있는 물자를 축적해놨다면.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어. 그렇게 되면 최우는 궁지에 몰려.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패배할 수밖에,’

전쟁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의 노련한 지휘를 받는 왜구들은 강하다.

그저 단순히 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관건은 그 자가 왜구들을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단결시키느냐? 하는 건데.”

왜구들의 수장이 왜구들을 정규군처럼 만들 수 있느냐? 가 내 주요 관심사다.

난 입을 연 야스하루에게서 알아낸 정보를 상기했다.

“만약!”

머리에 떠오른 한 상념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만에 하나 광주목을 점거한 왜구들이 왜구로 가장한 정규군들이라면.

순간, 소름이 끼쳤다.

불과 300여 명의 왜구가 있는 광주목이 어쩌면 전체 전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핵심 승부처가 될 수도 있다.

야스하루가 그랬다.

요시미츠 가의 가신으로 이름은 자신도 잘 모른다고.

전쟁 아닌 전쟁인 이번 왜구들의 준동이 광주목의 승패에 의해 좌주우지 되는 상황이라면.

‘안 좋아.’

난 그 상황을 극도로 우려했다.

이번 왜구의 준동이 예상외의 상황으로 진행되는 것은 내겐 이롭지 않다.

‘빌어먹을. 최대한 빨리 염전을 개발하고 곧 치고 들어올 몽고군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데.’

군사력 증강은 경제력 증강이란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경제력이 없으면 군사력 역시 없다!

불안한 마음에 따로 은밀히 혹두를 불러 한 가지 명을 내렸다.

“필히!”

“알겠습니다. 나리. 그런데 헤헤. 돈만 많이 주신다면야.”

순간 내 앞에서 돈 얘기를 꺼낸 혹두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빌어 처먹을 인간 같으니라고.’

난 혹두에게 버럭 소리쳤다.

“일이나 제대로 하고 나서 돈 얘길 꺼내!”

혹두는 내 고함에 몸을 움찔거리며 움츠렸다.

아주 스트레스를 만 빵으로 안겨주는 놈이다.

썩을!

@

덜컹덜컹.

관도를 내리 질주하는 몇 백여 대에 이르는 수레가 내는 울림으로 주변이 매우 시끄러웠다.

길이 험해 뱀처럼 꾸불꾸불 길게 늘어선 수레는 몹시 흔들렸다.

불특정한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졌고, 크게 위아래로 들썩였으며, 사방으로 좌충우돌 하듯 흔들렸다. 그 때문에 수레에 탄 가병들은 중심을 잡기가 매우 어려워 불안해했다.

“이크.”

“잘 잡아.”

“어, 어.”

가병들은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탄 수레의 요동이 지나쳐 중심을 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마냥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어어어어,”

수레에 탄 한 가병이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예의 가병은 이내 수레에서 관도로 떨어졌다.

콰당탕.

가병은 맨땅바닥을 두어 번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관도의 바닥, 맨땅바닥은 고르지 않았다. 울퉁불퉁 했으며 크고 작은 돌부리가 곳곳에 박혀 있어, 다치는 것은 필연이다.

한데 가병은 용케 크게 다치지 않았다.

재빨리 몸을 둥근 공처럼 웅크리며 빠르게 바닥을 구른 덕에 경미한 타박상만 입었다.

이민호가 사전에 수레를 급히 움직이며 가병들이 중심을 잃고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것을 예측한 덕분이다.

“땅에 떨어지면 최대한 몸을 둥글게 말아 맨땅을 굴러. 땅에 부딪치는 충격은.”

이민호는 간단한 낙법을 가병들에게 일러주었다.

“지금은 천천히 갈 수 없는 상황이야. 너희들의 동료인, 추밀원 부사 어른이 이끄는 가병들이 적의 간계에 빠져 큰 피해를 입었어. 우리가 늦으면 늦을수록 너희의 동료들이 죽어. 우리가 일각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면 할수록 너희의 동료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남아. 그런 형편이니 어떻게 해야겠어? 너희가 편하게 광주목으로 가기 위해,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모른 척 할 거야. 아님 너희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한시라도 빨리 광주목에 당도하여, 단 한 명이라도 더! 너희의 동료들을 살릴 거야?”

이민호는 가병들에게 선택할 것을 요구했다.

죄다 최충헌의 가병임을 염두에 둔 요구였다. 광주목에 있는 최우가 이끄는 가병들은 이민호가 이끄는 가병들과 한 솥밥을 먹으며 지냈던 동료인 까닭에, 선택은 명확했다.

이민호는 그런 선택을 통해 가병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무리한 고속 행군에 대한 협력을 이끌어냈다.

이민호가 이끄는 가병들은 무리한 고속 행군을 왜?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지 잘 아는 까닭에, 의외의 협조가 이루어져 행군 속도는 매우 빨라졌다.

모든 것이 행군 속도에 맞춰졌다.

청주목으로 이동할 때보다 먹는 것이 부실했다. 간단하게, 빨리 먹을 수 있는 것 위주로 끼니를 때웠다.

기병들은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마음 같아서는 밥 먹는, 잠자는 시간도 줄이고 싶구만.”

“누가 아니래.”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구 놈들이 무슨 간계를 부렸기에 그 녀석들이 지금 곤경에 처한 거야?”

가병들은 궁금하다는, 의아하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

“히익.”

난, 붕 뜨는 몸에 놀라 급히 상체를 숙였다.

수레 바닥에 몸을 착 붙이며 엎드렸다. 시야에 수레가 지나가는 관도의 맨땅바닥이 한 가득 들어왔다.

수레가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라 시야에 들어오는 맨땅바닥은 자연스레 멀미를 불렀다.

속이 서서히 메스꺼워지고 머리가 좀 띵한 것이 멀미 증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젠장.’

난 서둘러 몸을 뒤집어 수레 바닥에 누웠다. 시야에 푸른 하늘이 들어왔다.

‘현대나 12세기 고려나 하늘은 다 똑같네.’

투덜댔다.

요즘 들어 부쩍 현대가 생각난다.

‘준상이나 상면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썩을!’

문득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각났다.

두 분 다 새로운 상대와 새 가정을 이루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에이. 18!”

나는 성내면 벌떡 일어나 바로 앉았다.

같은 수레에 탄 묵과 가병들이 깜짝 놀라며 날 쳐다보았다.

“나리.”

묵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보았다.

“괜찮아.”

난 신경질적인 어조로 대꾸했다.

바로 그 때였다.

덜컹.

탄 수레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내 쪽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한순간 수레의 각도가 최소 40°이상 커졌다.

“나리!”

“조심하…….”

묵과 함께 탄 가병들이 내게 소리쳤다.

난 수레 밖, 뒤로 튕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으아아아아아.”

성난 고성을 지르며 튕겨 나가는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상체를 뒤젖히며 경쾌한 몸놀림으로 맨땅에 착지했다.

몸에 속도라는 힘이 아직 남아 있음을 상기하며, 착지하자마자 양발을 모아 맨땅바닥을 가볍게 찼다.

탁.

이어, 몸을 우측으로 돌리며 재빨리 뛰었다.

타다닥.

수레가 속도를 내며 관도를 지나가고 있었으나, 잠깐이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난 그리 생각하며 날렵하게 발을 놀려 수레로 다가갔다. 지척에 이르러 몸을 날렸다.

휘이익.

경쾌한 동작으로 수레 바닥에 안착하며, 엉덩이를 걸쳤다.

“나리. 괜찮으십니까?”

묵이 놀란 얼굴로 날 보며 물었다.

“괜찮으니깐. 어서 속도나 더 올리라고 해.”

“나리. 조금 전에 수레에서 떨어지셨잖습니까? 한데, 속도를 더 올리라 그 말씀이십니까?”

그건 아니지 않느냐?

묵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시꺼.”

본의 아니게 내 입에서 고성이 터졌다.

명색이 내가 최고 지휘관, 일명 왕 두목인데. 체면이 말이 아니다.

수레에서 떨어진 것보다 주변 수레에 탄 가병들이 날 쳐다보는 시선이 더 거시기하다.

묵은 내 고성에 몸을 흠칫거리며 움츠렸다. 내 눈치를 보는 것이 심중 조금 미안했다.

나와 함께 탄 가병들은 슬금슬금 고개를 옆으로 돌려 딴청을 피웠다.

“묵아.”

난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묵을 불렀다.

“네, 나리.”

“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고깝게 생각하지 마라.”

“네에, 나리.”

묵은 고개를 숙였다.

난 힐긋 묵을 보며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웃었다.

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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