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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여느 사람보다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지. 여느 사람을 고문하는 방법으로는 네 입을 열지 못할 테니. 고문하는 방법을 달리 해야겠지. 안 그래. 흐흐흐.”
“아아아아악.”
“버티고 싶으면 얼마든지 버텨. 널 고문하는 방법은 널리고 널렸으니깐 말이야. 아마 못해도 백 가지는 넘을 거야. 아, 물론 그 과정에서 네가 감당해야 할 고통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지는 않을 거야.”
“그, 그…… 우아아아악.”
“걱정하지 마. 난 널 쉽게 죽일 생각은 없으니깐 말이야. 죽을 것 같으면 의원을 불러 널 치료할 거야. 치료가 끝난 다음에는 또 고문해야겠지. 응. 넌 적어도 앞으로 3, 40년은 충분히 살 수 있을 거야. 그 동안에 뭐 고문은 계속 당해야겠지만 말이야. 아……. 한 가지 깜빡했군. 도중에 고문에 굴복해서 입을 열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주지 않았네. 난 지금 네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것이 필요해. 그런데 필요한 때를 놓치게 된다면 난 아마 엄청 화날 거야. 그래서 널 더 괴롭힐지 모르지. 때를 놓치면 네가 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난 꼭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 그리고 그 화풀이는 몽땅 다 네 몫이야. 그러니깐 잘 생각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야스하루는 내 말을 듣는지 듣지 않는지, 앉은 의자에 결박된 몸을 위아래로 마구 들썩이고 좌우로 뒤흔들었다.
두 인두가 주는 고통이 감당하기 벅찬 모습이었다.
“어라. 인두가 그새 식었네.”
난 장난치듯 중얼거리며 혹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인두.”
혹두는 실실 쪼개듯 웃으며 내가 내민 두 인두를 받아들었다.
“예, 예에에.”
내 눈치를 살피는데 여념이 없는 혹두를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나리.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재깍 새 인두를 가져오겠습니다.”
겁먹은 듯, 혹두가 사근사근하게 내 입안의 혀처럼 움직이려 하였다.
난 일부러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니 됐어. 그보다 비수 가지고 있는 거 있음 하나만 줘봐.”
“네.”
혹두는 대답과 동시에 민첩하게 허리뒤춤으로 손을 돌려, 비수를 하나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 모습이 빠릿빠릿해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풉.’
내심 실소했다.
‘짜아식이. 겁먹었네.’
훤히 다 보인다.
힐끔.
우두커니 서 있는 두 건달을 보았다.
멈칫.
주춤.
내 시선에 두 건달이 급히 머리를 숙였다.
‘어쭈.’
군기가 엄청 잡힌 듯 보여 내심 절로 웃음이 나왔다.
‘큭큭큭큭.’
난 야스하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 눈에 보이는 야스하루는 앉은 몸을 축 늘어뜨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악, 하악.”
난 야스하루와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미소 지었다.
씨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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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하루는 마주보는 이민호의 미소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부르르.
진한 꺼림이 심중에서 강하게 일었다.
잔인한 자다.
자신에게 한 말이 위협임을 잘 안다. 하지만 마냥 허세는 아닌 듯 보인다.
적어도 십에 팔구는 진실인 듯 하다.
자신을 고문하는 것을 보며, 기필코 자신의 입을 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자신이 당해야 할, 감당해야 할 고통이란 이름의 무게에 절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머릿속에서 번주라는 나름 청운의 꿈이 슬며시 떠올랐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한 나라의 주인이 되는 꿈을 꾸었던 자신이 이역만리 타국이라 할 수 있는 고려에서 죽음을 맞아한다는 것에 야스하루는 깊고도 깊은 비애를 느꼈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해.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야스하루는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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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차 없이 야스하루에게 고통을 주었다.
“크아아아악.”
야스하루의 오른 팔뚝에 비수를 대고 살며시 살을 한 꺼풀 벗겨냈다.
혈관을 건드리지 않고 살을 벗겨내는 것이 의외로 고난이도라 내심 바짝 신경 썼다.
야스하루는 미칠 것처럼, 격렬하게 몸을 요동쳤다.
그 모습에 혹두와 두 건달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외면했다.
“으아아아아아.”
귀에 들리는 비명에 혹두와 두 건달은 몸을 움찔움찔거렸다.
듣기 싫다는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몸짓이었다.
“잘 들어. 이제 네게 새로운 고문을 가할 거야. 이건 그 전에 잠시 맛보기야. 화로에 내 두 다리를 담가 아주 푸우욱.”
야스하루에게 말하며 혹두와 두 놈을 은근히 곁눈질했다. 잔떨림을 흘리는 것이 내심 기겁하는 모양이다.
“자아, 그 전에 네 의사를 한 번 물어보지. 내가 묻는 말에 공손히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나?”
야스하루는 고개를 쳐들며 버럭 고성을 내질렀다.
“やっつけろ.”
“그럴 수야 있나?”
난 야스하루에게 친근함을 그득 담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넌. 내 허락 없이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어. 뭐, 편하게 죽고 싶다면 내가 묻는 말에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죄다 말하면 돼. 싫다면야. 뭐.”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야스하루는 날 보며 진저리를 치듯 잔떨림을 흘렸다.
난 혹두 옆에 있는 두 건달을 돌아보았다.
“너희들. 이리 와 봐.”
“예?”
“저, 저희들 말씀이십니까? 나리.”
“빨랑 안 와.”
내가 재촉하자.
“갑니다.”
“네에에. 가고 말 굽쇼.”
두 놈이 쏜살같이 내게 다가왔다.
혹두는 두 건달과 나를 번갈아보며 돌아가는 분위기를 살피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난 가까이 다가온 두 건달에게 화로를 야스하루의 발치에 놓으라, 단단히 야스하루의 두 발목을 붙잡으라, 명령했다.
“네에에.”
“네.”
두 놈은 겁을 집어 먹고는 꽤 빠르게 움직였다.
야스하루는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채고는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얼굴에 공포라는 감정이 어렸다.
두려움이 그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난 야스하루를 응시하며 입매를 비틀었다.
히죽.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듯 고문에도 장사가 없다.
고문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십만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응시하는 야스하루의 입이 열리는 것은 금방이다.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야스하루에게서 보이지 않아, 난 확신한다.
야스하루의 입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종국에는 고문에 굴복, 입을 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고문에는 영.’
적에게 사로잡혔을 때를 가정한 모종의 훈련 프로그램 과정이 있다.
그 과정은 지금 생각해보다도 소름이 쫙 끼친다. 두 번 다시 그 과정을 겪고 싶지 않다.
아주 몸서리가 쳐진다.
4 장
야스하루에게서 정보를 획득한 즉시, 광주목으로 이동하기 위해 급히 서둘렀다.
가병 200과 고용한 뒷골목 사람 200.
그렇게 도합 400여 명을 청주목에 남기며. 오용섭을 400여 명의 지휘자로 명했다.
다행히 여주 서가에서 전령이 와 곧 서혜가 이끄는 가병 수십여 명이 도착한다. 알려왔다.
서풍은 가병 50여 명을 대동하고 광주목에 있는 최우에게 갔다고 한다.
“오면 서혜, 그녀에게 청주목을 맡기고 뒤따라오도록 해.”
오용섭에게 그와 같은 명을 덧붙였다. 따로 황곤을 광주목으로 보내며 단단히 일렀다.
“가서 최 부사 어른께 내 말을 꼭 전해라. 절대 광주목 내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외곽에서 광주목을 에워싸며 포위하는데만 집중하라고 해. 내가 갈 때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현 상황을 유지해달라고…… 섣불리 광주목 내부로 들어갔다가는, 들어간 가병들 모두 다 죽을 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전해!…… 최양백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내가 준 서신을…….”
신신당부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현대전 개념의 원형을 구사하는 왜구들의 수장이 매우 마음에 걸린다.
백전노장 같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최우의 진영에 왜구들의 수장을 상대할 만 한 자는 내가 보기에는 없다.
그마나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김인준인데, 김인준은 무장이라기보다는 정치가에 가깝다.
무력보다는 머리를 많이 쓰는 김인준이 현대전 개념인 시가전에 관해 알 리 만무다.
그렇다고 대단위 군병 단위가 맞부딪치는 전쟁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왜구들의 수장에 비해 김인준은 상당한 손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