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92화 (92/247)

<-- 92 회: 4-7 -->

이민호가 당대 고려의 집권자인 최충헌의 기병들을 이끌고 있다.

즉 측근이라는 말이 된다.

시조모 오 씨 부인은 자신을 매개체로 최충헌의 측근으로 보이는 이민호를 엮어, 장차 기운 가문을 디시 세우는 기둥으로서 이민호를 쓰려 하였다.

가문을 위해, 현재 처한 현실에서 가장 확실한 패를 쥐려는 시조모 오 씨 부인의 그와 같은 고심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도 받아들였다.

처음에 시조모 오 씨 부인의 명에 자결하겠다고 말하며 항거하였으나, 그런 자신의 손을 시조모 오 씨 부인이 쥐고 간곡히 일렀다.

“아가.”

“할머님.”

“네겐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는 이 할미의 마음을 헤아려다오. 그리 하지 않는다면 우리 이가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음이니. 가문을 위해 그 아이에게 가거라. 이 할미가 이리 머리 숙여 부탁하마.”

“할머님.”

자신에게 말하며 머리를 숙이는 늙은 시할머니 오 씨 부인에게 못하겠다고, 죽으면 죽었지 그리 할 수는 없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왜구들로 인해 집안 가솔 태반이 죽고 가문이 십년 동안 절치부심해도 회복키 어려운 큰 피해를 입고 보니.

현실을 돌이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르르.

이세연은 잠시 이민호를 응시하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꼬옥.

아랫입술을 힘주어 깨물며 천천히 양손을 들었다. 천천히 몸에 걸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발치로 상의와 하의가 차례대로 스르르 떨어졌다. 이어 나신이…….

@

불 꺼진 방을 나란히 선 두 여인이 바라보았다.

오 씨 부인, 이 씨 부인.

두 여인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어머님.”

이 씨 부인은 방을 응시하며 여전히 반대라는 속내를 피력했다.

오 씨 부인은 고개를 살며시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난들 이러고 싶겠느냐? 저 하늘에 있는 문홍이가 이 할미를 무척이나 원망하고 있을 게야. 하나.”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님.”

이 씨 부인은 왼쪽으로 돌아서며 서 있는 오 씨 부인을 보았다.

오 씨 부인은 여전히 밤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

“가문을 위해서니라. 왜구 놈들만 아니었더라면.”

입술을 깨무는 오 씨 부인의 눈가에 옅은 수막이 꼈다.

“어머님…….”

이 씨 부인은 나직이 오 씨 부인을 불렀다.

“나나 너나 아들을 잃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이가는 계속 이어져나가야 한다. 남은 혈손이라고는 하늘의 도우심으로 큰 아이 내외 밖에 없으니. 어찌 하겠느냐? 이렇게 함으로서 가문의 후대를.”

오 씨 부인은 도저히 말을 이을 수가 없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이 씨 부인은 말없이 머리를 깊이 숙이고 말았다. 양손을 꼬옥 쥐며 잔떨림을 흘렸다.

3 장

할마씨에게 당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제기랄!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방으로 스며들어 훤했다. 청량한 아침 기운이 방 곳곳에서 일었다.

난 침상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이건 아니지.’

남자인 내가 여자에게 당해버렸다.

슬쩍 내 왼쪽에 누워 자고 있는 이세연을 흘낏거렸다. 머릿속에서 어젯밤이 생각났다.

‘아, 염병!’

남자를 아는 여자는 그 짓을 할 때 엄청 대담해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그만…….

아, ×팔려.

‘이건 완전히 내가 거시기 당한 그런 기분이야. 아우. 진짜.’

내가 투덜대는데.

“나리이이이. 나리이이. 나리.”

밖에서 묵이가 다급히 나를 부르는 외침이 들렸다.

난 흠칫하며 급히 왼쪽에 누워 있는 이세연을 보았다.

‘이크.’

깨기 직전이다.

“으응.”

나는 듯이 일어나, 침상 아래 방바닥에 흩어져 있는 옷들을 집어 들었다.

마음이 급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묵이 녀석이 방으로 들어오는 날에는.

‘Oh. My God!’

매우 조급한 탓에 마음대로 옷이 잘 입어지지 않았다.

제길!

마음이 급한데 옷이 왜에 말썽이야.

“저어기.”

어느새 깨어난, 뒤에서 이세연이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방문을 열어젖히고 묵이가 방으로 뛰어들었다.

“나리.”

난 입던 바지에 발이 걸려 그만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콰당탕.

그 자세에서 고개를 들어 묵이를 보았다.

순간의 황당함이란 정말이지…….

아, × 팔려!

@

“하아앗.”

황곤은 탄 말을 재촉했다.

손에 쥔 긴 말고삐를 짧게 잡고, 말머리 좌우로 휘젓듯 휘둘렀다.

히히힝.

말은 급하다는 황곤의 무언을 알아들은 듯 매우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두두두두.

말발굽이 지면을 강하게 밟음과 동시에 주변 풍광이 휙휙 뒤로 밀렸다.

황곤은 말을 달리며 조금 전 자신에게 급히 명령한 이민호를 생각했다.

‘즉시 청주목으로 돌아가라. 가서 왜구들을 데리고 가는 상인이 아직 청주목을 떠나지 않았으며 야스하루 그 자를 두고 가라고 말을 전해라. 이미 상인들이 청주목을 벗어났으면 즉시 뒤따라가서 야스하루를 두고 가라, 상인들에게 그리 전해라. 만약 상인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거래는 없다 말하고, 내가 곧 상인들을 뒤따라가 단 사람도 남김없이 도륙 낼 것이라, 그리 위협해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용섭이 상대하던 그 야스하루라는 자를 확보해야 한다. 어서 서둘러라.’

웬일로 이민호가 몹시 급하게 서둘렀다.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어.’

황곤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탄 말을 채근했다.

“이럇!”

말은 낮은 울음을 흘리며 관도를 내달렸다.

히히히힝.

@

난 뜰을 홨다 갔다 했다.

최우가 보낸 전령이 청주목을 거쳐 이가까지 왔다.

매우 급한 전갈을 가지고 온 탓에 묵이 내가 잤던 방으로 뛰어들었었다.

묵의 말에 전령을 불러 전후 사정을 알아보았다.

난 귀에 들린 전령의 말과 전령이 가지고 온 서간書簡에 기절초풍할 뻔했다.

시가전!

도시 게릴라 전술의 백미다.

적을 내부 깊숙이 끌어들여 각 방어 거점을 중심으로 공방을 주고받으며, 적으로 하여금 대량의 출혈을 하게끔 강요하는 전술이다.

감당하기 벅찬 사상자와 중, 경상자를 내어 적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공세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적에게 퇴각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주고받는 공방을 장기간 끌고 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며, 수비 측에 비해 공격 측은 몇 배나 많은 전력의 소모가 불가피하다.

한 마디로 말해 여차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덫에 빠진 형국이 된다.

난 가슴이 서늘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으나 광주목에 있는 왜구들의 수장은 시가전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으음.”

침음을 흘리며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어. 왜구의 수장이 현대전 개념을 알리가 없다고!’

마음속으로 강하게 부정하며 냉정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본래 현대전은 고대부터 있었던 각종 전쟁을 체계적으로 분류, 분석, 체계를 잡아 군사학이라는 하나의 틀로 엮은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시가전의 원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왜구들의 수장이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왜구들의 수장은 전장이란 극악한 환경을 수없이 겪으며 생사의 갈림길을 몇 번이나 넘나든 실전 경험이 풍부한 노장 같다.

난 서둘러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일본의 시가전 관련 기록을 살펴보았다.

일본은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 전쟁을 수없이 겪어본 나라이다.

섬이란 특성상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을 상대했다.

어찌 보면 항시 내분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막부라는 특이하기 이를 데 없는 정권까지 있고 보면 여타의 나라에 비해 전쟁에 특화되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뚫어져라 휴대폰 액정에 뜬 각종 자료를 검색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