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84화 (84/247)

<-- 84 회: 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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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섭은 이끄는 400여 명이 남문을 공략하는 것을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쩝.”

별달리 명령을 내릴 여지가 없었다.

성벽에는 불과 90여 명쯤 되어 보이는 왜구가 서 있었다. 하지만 석포와 궁병들의 집중적인 공격에 성벽에 재대로 붙어 서 있지 못했다.

몸을 숙였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성벽을 오르는 가병들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행이군. 저 놈들이 활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용섭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평이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내심 안도했다.

오용섭은 상대하는 왜구들이 떠돌이 낭인이라고 할 수 있는 료닌이라는 것을 몰랐다.

료닌들 중에 활을 쏠 줄 하는 자는 극히 드물다.

그 사이 계단과 사다리를 이용해 가병들이 꾸준히 성벽으로 올랐다.

그리 오래지 않아 성벽이 수중에 들어올 것 같아, 심중 너무 쉽다는 상념을 떨치지 못했다.

“대단한 양반이야. 철저한 준비로 이리 쉽게 공성전을 이끌다니.”

오용섭은 내심 감탄했다.

이제까지 적잖은 전장을 전전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일련의 모든 전황이 쉽게, 쉽게 풀리는 것은 생전 처음이다.

공성이 이리 쉬운 것이었나?

심중 그런 의문이 일었다.

눈에 들어오는 일련의 공성에서 다치거나 죽는 가병들은 거의 없었다.

가병들은 기운이 넘치는지 펄펄 날았다.

사기가 매우 높았으며, 공성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수레를 타고 옴으로서 체력을 보전했고, 음식을 풍족하게 만족스럽게 먹어 다소 들떴으며, 편안한 잠자리 탓에 다들 기력이 왕성했다.

“다 이긴 공성전이야.”

오용섭은 중얼거리며 남문 성문을 보았다.

판자를 좌우에 겹치고, 그 위를 가죽으로 덮은 충차가 연방 성문을 때렸다.

충차에는 여남은 명의 가병이 매달려 있었다.

그 주변에는 방패를 든 20여 명 남짓한 가병이 성벽을 노려보았다.

2미터쯤 떨어진 좌우에는 30여 명의 궁병이 자세를 잡고, 성벽 위를 향해 빠르게 화살을 쏘았다.

여남은 명의 가병이 충차에 달린 커다란 나무기둥을 앞뒤로 움직였다.

사찰의 범종을 치는 듯 보이는 광경이었다.

나무기둥은 경사진 바닥을 오가며, 가속도라는 힘을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성문을 때렸다.

쿠, 쿠, 쿠웅.

그 때마다 큼지막한 울림이 울렸다.

성벽에서 뜨거운 물이나 기름을 부을 법한데, 그와 같은 공격은 없었다.

왜구들은 공성전에 무지했다.

설혹 있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장인들이 충자를 대상으로 한 공격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도록 충차 내부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훗.”

오용섭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좌우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심심하다.

계속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하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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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동문.

성벽에 서 있는 왜구들은 눈을 말똥말똥거렸다. 다들 성벽 아래를 보았다.

황곤이 100여 명의 가병을 이끌고 서서, 손에 든 병기를 치켜들기를 반복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얀마. 나와. 나오라고.”

“한판 붙자고. 이 자식들아.”

“야아아아. 이 겁쟁이들아.”

왜구들은 가병들이 외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어감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욕을 하는 것 같아 다들 성난 표정을 지었다.

“고노.”

“공격하자고.”

“성문을 열고 나가자.”

왜구들 사이에서 호전적인 외침이 나왔다.

“닥쳐.”

“저 놈들 수가 우리보다 많다는 걸 몰라.”

“저 뒤를 봐. 깃발이 좀 많아.”

“저 놈들은 우리를 성 밖으로 끌어내려는 거야.”

“성 밖으로 나가면 뒤에 있는 고려군이 합세할 거야. 그럼 우린 다 죽는다고.”

대다수의 왜구는 성벽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황곤과 함께 서 있는 100여 명의 가병들 뒤에 있는 수많은 깃발이 매우 신경 쓰였다.

황곤과 100여 명의 가병은 자신들을 성 밖으로 꾀어낼 미끼라고 생각했다.

동문 성벽에 서 있는 왜구들은 의견 충돌로 서로 옥신각신하며 다투었다.

10 장

황곤은 성벽을 올려다보며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참.”

공격해도 될 것 같은데, 심중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이는데. 이민호가 당부한 것을 생각하면 움직일 수 없고.

황곤은 난감해 얼굴을 찌푸렸다.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눈에 보이는 성벽에 서 있는 왜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겨우 수십여 명쯤 되어 보여 공격하면 곧바로 궤멸될 것 같다.

자신이 이끄는 200여 명의 가병이라면 금방 성벽을 점할 수 있을 듯 보여, 마음속으로 갈팡질팡했다.

‘공격할까? 말까? 아, 정말. 고민되네.’

공격했다가 행여 이민호의 눈 밖에 날까? 주저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황곤은 후회했다.

전날 모닥불에 둘러앉았을 때, 괜히 전령을 들먹였다.

황곤은 고개를 뒤돌려 서 있는 100여 명의 가병을 보았다.

죄다 불만이 그득한 얼굴들이었다. 자신의 눈치를 보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 공격하고 싶어 죽을 것 같은 눈치다.

참다못해 친한 몇몇 가병이 자신에게 말했다.

“형님. 공격합시다.”

“재들 얼마 안 됩니다. 네에에.”

“이렇게 깃발이나 흔들고, 이건 아니죠. 황곤 형님.”

황곤은 곤혹스러웠다.

이민호를 생각하며 함부로 공격해서는 안 된다. 만약 공격했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기다려. 나리께서 다 생각이 있으셔서 우리에게 이렇게 깃발을 흔들라고 명령하셨을 거니깐.”

황곤은 이민호를 들먹이며 가병들의 불만을 누르려 하였다.

그러나 가병들은 쉬이 불만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줄기차게 황곤에게 공격하자고 매달렸다.

“형님.”

“그럼 활이라도 좀 쏩시다.”

“너무 심심하잖아요. 네에.”

가병들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하는 일이라고는 손에 든 깃발을 양쪽으로 흔드는 것이 다다.

한 마디로 말해 왕 짜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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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서문.

혹두가 이끄는 200여 명의 뒷골목 이들은 공성이 시작되고 그리 오래지 않아 성벽에 올랐다.

수리검, 단검 등.

투척 무기를 잘 던지는 이들이 사다리에 몸을 끼우고 성벽을 올랐다.

계단을 성벽에 밀착시키고 몸이 날렵한 자들이 잽싸게 성벽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 사이 석포와 궁병들이 꾸준히 지원 공격을 하여, 성벽으로부터의 공격을 최소화했다.

뭐 성벽으로부터 아래로 공격다운 공격은 거의 없었지만. 기껏 해봐야 돌멩이나 그 외의 무거운 것들을 집어던지는 것이 다였다.

일단 성벽 일부를 점하자, 그 곳을 통해 대두분의 이들이 성벽에 올랐다.

혹두는 성벽에 오르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며 고함쳤다.

“야아아. 두 당 백금 한 냥이야. 확실하게 죽여. 알겠어.”

“예에에. 형님.”

“그런데 형님. 놈들 수가 너무 적은데요.”

“젠장. 돈이 안 됩니다. 형님.”

“마! 비켜. 내 거야.”

“얀마. 건드리지 마. 내 돈이야.”

뒷골목 이들은 돈에 혈안이 되어 왜구들을 향해 맹렬하게 대시했다.

손에 든 다양한 무기를 이용해 왜구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왜구들의 수는 불과 40여 명 남짓이었다. 다 죽여도 백금 40냥 밖에 안 된다.

혹두는 그것을 인지하고는 험악한 인상을 썼다.

“염병.”

이민호에게 당했다!

“야아아. 놈들을 더 찾아봐. 적어도 백 냥은 벌어야지. 겨우 40냥을 벌자고 여기까지 왔는 줄 알아.”

혹두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얼굴에 실망감이 그득했다.

많이 죽여야 많이 벌 수 있는데. 상황이 자신의 바람을 무참히 저버려 화가 치솟았다.

“우라질.”

혹두는 콧김을 내뿜으며 씩씩거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왜구가 없어도 너무 없다. 그 때문에 신경질이 무럭무럭 일었다.

한편 40여 명 남짓의 왜구들은 형편없이 뒤로 밀렸다.

사기가 꺾인 듯 주눅이 든 듯 보였다. 맹렬한 기세로 들이닥치며,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이 흉흉하기 이를 데 없는 사나운 공격을 퍼부었다.

수적으로도, 기세로도 왜구들은 열세에 놓여 자신들도 모르게 계속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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