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79화 (79/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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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정오가 반 시진쯤 지났을 때다.

가병들은 한수에 이르렀다.

시야 저 멀리에 5 리 어림의 폭을 가진 한수가 들어왔다.

불어오는 바람에 출렁이는 한수의 강물.

가병들 사이에서 작은 쑤군거림이 일었다.

“하이고. 또 배타고 한수를 건너야 하는 갑네.”

“지겨운데.”

“얼매나 걸릴꼬.”

가병들은 자증의 얼굴빛을 띠었다.

강을 건너자면 사공이 끄는 돛배에 타야 한다. 한두 명이 아니다.

무려 1천여 명이다.

게다가 가지고 가는 짐도 엄청나다. 사람과 짐을 강 너머로 옮기자면 못해도 사나흘은 족히 걸릴 것이다.

배가 아마 수백 번은 강 건너를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강을 건너지 못한 자나, 강을 건넌 자 모두 길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강을 건너는 것은 상당한 찌증과 신경질을 유발한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것을 다들 아는 탓에 싫다는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윽고 가병들의 선두가 한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다다랐다.

“컥.”

“허억.”

가병들은 걸음을 멈추고 언덕에 서서 한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눈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보였다.

“저, 저게 뭐야?”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야.”

“마, 말도 안 돼.”

가병들 중 몇은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잘못 봤나?

그런 의심이 들만큼 놀라운 광경이 시야 가득히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가병들은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쩍.

입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크게 벌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이 가병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대경한 얼굴들.

난 가병들을 힐긋 돌아보며 소리 없이 고소를 머금었다.

싱그레.

좌측 뒤, 한 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묵은 놀란 얼굴로 넋두리 하듯 말을 흘렸다.

“나, 나…… 리.”

난 묵을 돌아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으하하하하핫!’

속으로 크게 웃고 또 웃었다.

8 장

조선은 유달리 기록에 집착한 왕조였다.

정조 대왕이 수원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갈 때다.

일련의 모든 일정은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로 남겼다.

의궤를 보면 한강을 오가는 장사치들의 배 35척을 모아 배다리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리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부분에 홍살문을 세워, 다리를 건너는 이들이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그 위치를 쉽게 알게 하였다고 한다.

가병들은 35척에 이르는 배가 만들어내는 장관에 말을 잃었다.

“…….”

놀라 입을 떠억 벌렸다.

다들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장관에 얼이 반쯤 빠져, 우두커니 한수를 바라보았다.

난 좌측으로 비켜서며 선두의 가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들 하느냐? 당장 움직여라.”

“아, 예에.”

“네.”

선두의 가병들은 대답하며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내 곁에 착 붙어 있는 묵이 날 돌아보며 궁금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리. 저게 다 무슨.”

묵은 놀라 그런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난 묵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그런 게 있어.”

황곤을 미리 보내며 각 지방관에게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는. 이호가 내준 서류를 내주었다.

저 멀리 배다리로 진입하는 앞쪽에 서 있는 세 가병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황곤이 청주목으로 이동하며 남겨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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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병들은 배다리를 건너며 쉼 없이 좌우를 보았다.

둘레둘레.

두리번거리는 가병들의 얼굴에 경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이기 다 뭐꼬.”

“내 생전에 한수를 다리로 건널 줄을 몰랐어.”

“저 나리. 사람이여. 귀신이여. 우리가 한수를 건널 줄 어찌 알고 미리 이렇게 다리를 놔?”

“그러게 말이여.”

가병들은 신기해하며, 마치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돛배로 한수를 건널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새 배다리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용섭은 말을 잊고, 내심 경악했다.

‘이, 이럴 수가.’

한수에 다리를 놨다는 것은 태어나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이 지금 다리를 건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새삼 이민호에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앞뒤에서 나란히 걷는 승조, 배후, 대문은 주변을 돌아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게 믿겨져?”

“세상에.”

“귀신이 놓은 다리 같아.”

승조, 배후, 대문은 심중 이는 대경이란 감정에 눈을 치떴다.

수백여 대의 수레가 배다리를 통과하여 한수를 건너는 사이.

나는 황곤이 남겨둔 세 명의 가병에게서 모종의 정보를 보고 받았다.

“즉시 황곤에게 가라.”

“네, 그럼.”

세 가병은 머리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그들은 이전과 달랐다. 나에 대한 일종의 숭배와 유사한 감정이 엿보였다.

‘후후.’

난 마음속으로 실소하며 배다리 너머를 보았다.

한수를 건너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청주목으로 향할 것이다.

그 중간, 중간 가병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공성전에 대한 경험이나 관련 훈련을 받았는지 의심스럽다.

내가 원하는 대로 가병들이 움직이려면 공성 관련 훈련은 필수다.

나는 눈을 반짝였다.

“앞으로 최소 닷새.”

청주목에 도착하는 기일을 머릿속으로 더듬으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나를 묵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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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시일이 지났다.

가병들은 연이어 충격을 받았다.

“저게 뭐여.”

“계단이디.”

“누가 그걸 몰러, 세상에 저리 큰 계단이 있다니.”

가병들은 때아닌 구경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렸다.

공색 역할을 하는 300여 명의 가병은 죽을 맛이었다.

최소 몇 높이의 나무로 만든 계단을 만들었다가, 즉각 다시 해체해야 했다.

무한 반복되는 노동 아닌 노동에 다들 입에서 단내를 풀풀 풍겼다.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가병들도 함께 일한다면 불만이 덜 할 것인데. 자신들만 일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로인해 불만이 생겼다.

“공색 하는 가병들에게는 매 저녁 술을 제공하겠다. 아울러 공색 관련 일을 할 때마다 일당을 쳐, 이틀에 면포 한 필씩 주겠다.”

나는 공병 역할을 하는 공색 가병들에게 사탕을 주었다.

다른 가병들이 공색 가병을 부러워했다.

“좋겠네. 매 저녁때마다 술이라니.”

“면포도 준다고 하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공색을 하는 건데.”

다른 가병들이 쉴 때, 공색 가병들이 일하는 것이 부러웠다.

전장에서 술은 이겼을 때만 마실 수 있는 먹거리다. 죄다 사내들이라 술에 항상 고파 있었다.

백금 한 냥 외에 이틀에 면포 한 필씩 준다고 하니 일부 가병과 혹두가 이끄는 뒷골목 사람들 중에서 넌지시 공색을 자원하는 자들이 나왔다.

꽤 수가 많았다.

“안 돼!”

난 단호하게 거부하며 혹두에게 제안했다.

“목숨이 위태로울지는 몰라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는데 말이야.”

혹두는 흠칫했다.

“전장에 서는 거라면 사양입니다. 나리.”

“싫음 말던지. 백금은 넉넉히 챙겨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혹두가 말하고 나섰다.

“일단 들어나 봅시다. 나리.”

“아니. 먼저 수락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어. 기밀을 요하는 일이라서 말이야.”

“끄응.”

혹두는 앓는 소리를 내며 고민했다.

‘크크크.’

난 혹두를 보며 내심 고소를 흘렸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고 했다. 혹두와 고용한 뒷골목 사람들을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다.

돈이란 미끼로 살살 물고기라 할 뒷골목 인간들을 낚을 참이다.

고용한 뒷골목 인간들은 돈이라면 눈에 불을 킨다.

그런 인간들이 돈을 주겠다는데, 목숨이 아까워 전장에 서지 않겠다?

‘웃기고 있네. 결국에는 돈 때문에 전장에 설 거면서.’

혹두를 위시한 뒷골목 인간들이 군침을 삼키도록 보란 듯이 공색 가병들에게 돈과 재물을 뿌렸다.

인간이 지닌 부러움, 욕심, 질투 등.

다수의 감정과 심리를 감안한 유혹이었다.

‘넘어온다!’

난 확신한다.

돈 때문에 살인, 강도, 도둑질 등등. 온갖 것을 하는 인간들이 지들 목숨이 아까워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일에서 발을 떼?

허어얼.

지나가는 참새가 웃겠다.

난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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