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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난감한 것이 맨땅이 고르지 않아, 갈린 자잘한 돌 알갱이 때문에 등이 몹시 배긴다는 점이다. 게다가 밤에 비라도 올라치면 그야말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한다.
밤비에 몸이 홀딱 젖으며 가만히 있어도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몸이 덜덜 떨린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음 날이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전투력을 상실한다.
지휘권자는 그와 같은 사정에 어둡다.
휘하에 있는 수하 군병들의 처우에 대한 관심은 지휘권자에게는 의무와 같다.
수하 군병 한 명 한명이 최적의 체력을 가지고, 유지하고 있어야 전력이 상승 또는 유지된다.
단순히 물자만 풍족히 내어준다고 해서 전력이 상승하거나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수하 군병들이 먹고 자는 일련의 모든 것을 다 챙겨야 하는 것이 지휘권자다.
이민호는 두 개의 대나무 장대를 수레 앞뒤 지면에 꽂아 군막을 쳤다.
비가 와 땅이 질퍽질퍽하게 젖어도 수레는 뽀송뽀송해 그야말로 달디단 잠을 잘 수 있다.
더욱이 먹는 음식들이 전장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들이라, 때아닌 입 호강에 이민호에 대한 가병들의 호감은 급상승했다.
닭고기에다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그리고 말린 생선까지.
가병들은 끼리끼리 모여 작은 무리를 이뤘다.
모닥불에 둥글게 둘러앉아, 배터지게 저녁을 먹은 기쁨을 서로 나눴다.
“내 생전에 이런 호사를 누릴 줄은 정말 몰랐어.”
“편하게 자지. 배불리 먹지, 1년에 한 번 먹기도 힘든 음식들을 먹지.”
“하하하하. 이런 여정이라면 전쟁도 할 만해. 그치?”
“아암. 이렇게 잘 먹여주고, 잘 재워주면 골백번이라도 전장으로 가겠어.”
가병들은 좋아라. 했다.
전장戰場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곳이라, 전장으로 향하는 여정은 힘들기 짝이 없다.
다들 꿀 먹은 벙어리인 양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고, 머리를 숙여 땅을 보며 묵묵히 걷기만 한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고, 즐거움과 흥겨움과는 거리가 멀어도 엄청 먼 전장으로 향하는 노정은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곧 전장에 선다는 긴장이 가병들 사이에 만연해, 죄다 우울한 낯짝들이다.
전장으로 향하는 여정을 함께 하는 동료들.
전투戰鬪가 끝나면 동료들 중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사상자들이 나올 것이고, 다시는 검을 잡을 수 없는 중상을 입는 자들도 나올 것이다.
가병들 개개인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전장으로 향하는, 전장에 대한 몹시 두근거리는 긴박과 긴장감은 절로 가병들을 저 깊은 곳으로 착 가라앉힌다.
다들 침울 이라는 감정을 공유한다.
전장으로 향하는 가병이나 군병들은 우중충하고 말수가 줄어든다.
분위기가 우울해지고 죽음이란 감정에 대한 꺼림과 두려움은 종종 가병과 군병들의 사기를 무참히 떨어뜨리곤 한다.
그런데 자신들을 지휘하는 이민호는 그 모든 것을 한 눈에 꿰뚫고 있는 듯, 전장으로 행하는 여정에 설렘과 흥겨움이란 기운을 불어넣었다.
내일 아침에는 어떤 음식이 나올까? 내일 정오 점심에는 어떤 음식이 나올까? 등등.
일종의 기대감이 가병들 사이에 만연했다.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전장으로 향한다는, 무언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지 가병들은 웃는 얼굴로 서로 잡담을 주고받았다.
가만히 수레 바닥에 앉아, 시야에서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광을 음미하는 기분이 꽤나 좋다.
가병들의 얼굴에서 밝은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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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님.”
승조가 오용섭을 불렀다.
오용섭은 우측 두 번째 자리, 맨땅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승조를 보았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주변에 승조 외에 배후, 대문을 비롯한 몇몇 가병들이 원을 그리며 땅바닥에 앉았다.
다들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 제법 쌀쌀한 밤의 추위를, 피운 모닥불의 열기로 몰아냈다.
두런두런.
낮은 목소리로 서로 잡담을 주고받았다.
승조는 오용섭이 쳐다보자, 진한 의구심을 얼굴에 띠었다.
“이민호라는 그 나리. 대체 어떤 분입니까?”
강한 궁금증이 서린 물음이었다.
주변에 앉아 있는 배후, 대문을 위시한 가병들은 승조와 오용섭을 번갈아보았다.
그들의 귀에 오용섭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잘 모르겠다. 얼핏 집사 어른께 듣기로는 지방 호족인 광주 이가…… 추밀원 부사 어른 댁에서 묵는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오용섭은 개인적인 판단을 더해 이민호에 관한 것을 입에 올렸다.
승조는 오용섭의 말에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듯 가만히 오용섭을 바라보았다.
“형님. 저.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노정은 생전 처음입니다.”
배후는 기막히다는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내사 마. 이민호. 그 나리의 말에 무조건 따르랍니다. 지금껏 우리를 이렇게 잘 먹이고 잘 재워준 나리가 있었습니까? 다들 자신들만의 군막을 치고 그 안에서 잘 먹고 잘 잤지. 우리네. 가병들 사정을 봐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잖습니까?”
대문은 이민호에게 홀딱 반한 모양이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열심히 이민호를 칭찬하며, 가슴에 품은 강한 호감을 내비쳤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형님.”
“이제까지 많은 나리들을 모시고 전장에 나가 봤지만 이민호 나리처럼 우리에게 잘해 준 양반은 없었습니까?”
“하모요. 내사 고마. 저 나리를 콱 믿고 하라는 대로 다 할 랍니다.”
가병들은 이민호에 대한 불만과 경계심을 허물고, 은연중에 마음속으로 이민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은 사람이라면 응당 당연한 일.
오용섭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힐끔거렸다.
이민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심중 서늘한 것이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상념이 절로 일었다.
‘편한 잠자리와 좀처럼 먹을 수 없는 음식들로 가병들의 마음을 사로잡다니.’
무서운 자다.
의식주라는 것을 통해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다.
일전에는 가병들을 자신의 입안에 있는 혀처럼 움직이기 위해 일부러 가병들을 몇 죽이려하였다.
오왕 합려의 두 후궁을 죽인 손무의 고사를 본받으려는 것으로 보아 병서깨나 읽은 자 같다.
‘단순히 그에 그치지 않았어.’
오용섭은 머릿속에 떠오른 이민호의 얼굴에 안색을 흐렸다.
가병들을 조일 때 조르고, 풀어줄 때는 한 없이 풀어준다.
이민호는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자다.
가병들은 무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신들은 대개의 경우 직선적이며 괄괄하다.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뜨거운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이다.
그런 이유로 권모술수나 머리를 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감정적이고 몸을 쓴다. 그런 까닭에 가병들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아 애초부터 일련의 모든 것을 염두에 둔 듯하다.
사전에 철저히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일련의 준비물들이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무언으로 입증하고 있다.
‘몇몇 가병들을 죽이고 의기소침해 있을, 자신과 거리가 벌어진 가병들을 회유하여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기 위해 교묘히 의식주를 이용하려 들다니.’
오용섭은 가슴이 서늘하기 짝이 없었다.
무섭도록 머리가 뛰어난 자다. 섬기는 주군, 최충헌이 가병 1천여 명을 맡길만한 자다.
의식주는 사람의 본성이자 본능이며 심리다.
이민호는 그와 같은 것을 다른 누구보다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쥐도 새도 모르게 귀신처럼 파고들었다.
오용섭은 자신이 생각하는 일련의 것들이 훗날 심리전이란 군사학의 한 분야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용섭은 고개를 바로 하며 모닥불을 보았다.
‘장래에 크게 될 자가 분명해.’
머릿속으로 현 권력 구도를 생각했다.
자신은 최충헌의 가병 중 가병이라고 할 수 있다.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텃세를 부리는 기존의 가병들을 누르고, 가병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일종의 수뇌가 되었다.
그런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은 여느 사람과 다르다. 더욱이 최충헌의 장원에서 숙식한지 햇수로 수여 년이다. 그 동안 보고 들은 바는 자신을 크게 성장시켰다.
오용섭은 심유한 눈빛을 띠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상국 어른의 후계자는 최 부사 나리나 참지정사 나리. 두 분 중 한 분이 될 게 틀림없어.’
세상 어느 아버지도, 어느 권력자도 핏줄이 아닌 타인에게 지신의 권력을 넘겨주지 않는다.
만약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자진하여 피가 이어지지 않은 타인에게 건네준다면 그 자야 말로 큰 사람, 진정한 대인大人이다.
‘흠.’
오용섭은 이민호가 최우의 장원에서 묵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설마?’
오용섭은 이민호가 최우의 사람이고, 최충헌이 이민호에게 자신을 포함한 가병 1천여 명을 맡긴 것이 실은 최우를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얼굴을 경직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광주목 바로 아래가 우리가 향하는 청주목이잖아.’
오용섭은 얼굴을 흠칫거렸다. 서로 지원과 보급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위치다.
‘이 모든 것이 최 부사 어른을 위해서라면.’
오용섭은 이민호가 자신을 포함한 가병 1천여 명을 맡은 것이 최우를 위한 최충헌의 포석일지도 모른다는 상념에 눈을 치켜떴다.
둔기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 내심 역시 상국 어른이라는 상념이 일었다.
“행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조승, 배후, 대문을 비롯한 가병들이 깊은 상념에 젖은 오용섭을 쳐다보았다.
몇 번이나 불렀지만 오용섭이 아무 말이 없어 다들 답답하다는 기색을 띠었다.
“행님. 무신 생각을 하시기에 불러도 말이 없으신 겁니까?”
“뭐라고 말 좀 해 보십시오. 섭이 형님.”
오용섭은 모닥불 주변에 앉아 있는 가병들을 돌아보았다.
“니들 가서 십인 장들 좀 불러와라.”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얼른.”
오용섭은 가병들을 재촉했다.
“행님.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 주십시오.”
“네에, 뭘 알아야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할 거 아닙니까?”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섭이 형님.”
모닥불 주변에 앉은 가병들은 너나없이 오용섭에게 말을 쏟아냈다.
오용섭은 앉은 가병들을 둘러보며 언성을 높였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승조, 배후, 대문을 위시한 가병들은 성난 듯 보이는 오용섭의 모습에 흠칫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몇몇 가병이 주섬주섬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섰다.
“알겠습니다.”
“후딱 갔다 오겠습니다.”
가병들은 오용섭이 언급한, 가병들 사이에서 목에 힘깨나 주는 십인 장 역할을 하는 소수의 가병들을 찾아 주위로 흩어졌다.
타다다.
달음박질치는 소리가 어둠속으로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몇 분分쯤 지났을까?
오용섭이 앉아 있는 모닥불로 중년의 연배에 이른 듯 보이는 소수의 가병이 찾아왔다.
그들이 나타나자, 기존에 앉아 있던 가병들이 하나둘 일어나 자리를 피해주었다.
소수의 가병이 오용섭에게 인사하며 모닥불 주위에 앉았다.
오용섭은 그들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가병은 오용섭의 말에 움칫움칫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