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76화 (7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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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두와 뒷골목에서 고용한 자들은 입맛을 다셨다.

“쩝.”

돈 받은 값을 화끈하게 하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상황이 요상하게 변해버렸다.

“까짓.”

혹두는 피를 보지 않아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서 받은 돈을 돌려줄 필요를 느끼지 않아, 소리 없이 웃었다.

‘큭큭. 돈 굳었어.’

공돈이다.

한편 묵은 이민호가 오용섭을 쓰러뜨리고 손을 마주 쥐며 일으키는 일련의 광경을 모두 다 지켜보았다.

작은 눈빛을 반짝였다.

‘역시.’

섬기는 주인 서양헌이 잘 지켜보라고 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무술만 강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는 욕심이 두드러진 이민호다.

‘위험해.’

묵은 이민호가 여주 서가의 적이 되었을 경우를 염두에 두었다.

서가에 치명적인 적이 될 것이 분명하다.

묵은 이민호를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시야에 이민호가 오용섭과 함께 가병들에게 다가가 서는 모습이 보였다.

이민호는 가병들에게 소리쳐 무엇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가병들은 이민호의 말에 흠칫흠칫거리며 당황하는 기색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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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

고려 8목의 하나로 연산, 목주의 2군과 진주, 전의, 청천, 동안 등의 7 현을 속현으로 거느린 지방 행정의 요충지다.

그런 이유로 보승, 정용, 일품군을 비롯한 다수의 군사가 배치되어 있었으나 난데없이 나타난 왜구로 인해 죄다 지리멸렬해 버렸다.

총병력 약 2천여 명에 이르는 주현군은 죄다 뿔뿔이 흩어져 지리멸렬하고 말았다.

숫자만 많았을 뿐, 전력으로서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주현군의 괴멸이란 어처구니없는 전과를 올린, 200여 명의 료닌을 거느린 시노다 야스하루는 단숨에 광주목을 점령했다. 점령과 거의 동시에 대대적인 약탈에 나서, 인근 속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별 쓸모없는 남자들은 눈에 띄는 대로 마구 죽였다.

어린 남녀들은 몽땅 노예로 팔아먹기 위해 강제로 끌고 왔다.

치마를 두른 여자들은 눈에 띄는 그 즉시 맨땅에 눕히어 강간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저항하는 여자들은 불문곡직 본을 보이듯 잔혹하게 죽였으며, 남편과 자녀들이 있음에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녀자들을 욕을 보였다.

그 처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라, 도처에서 비명과 통곡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마을 곳곳에 불을 질러, 화마가 무려 하루하고도 반나절 내내 꺼지지 않았다.

가난한 양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초옥들을 닥치는 대로 뒤져, 제사를 위해 보관 중인 양곡을 비롯하여 눈에 띄는 모든 곡식들을 싸그리 빼앗았다.

기와지붕만 보이면 우르르 몰려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값져 보이는 물건들을 거리낌 없이 들고 나왔다.

실로 그와 같은 도적떼가 이제껏 없었음이니.

청주목 인근이 폐허가 되는데 불과 며칠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인근 양민들이 왜구를 피해 피난 가는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그 피해가 얼마나 막심한지 능히 유추해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시노다 야스하루와 200여 명에 이르는 왜구의 수뇌들은 청주 목사의 거처에 모여,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매일 술판을 벌렸다.

“으하하하하.”

야스하루는 술이 그득 담긴 잔을 손에 들고 고개를 쳐들었다.

마음껏, 호탕하게 웃어 제겼다.

그와 함께 옆에 앉은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입은 복색으로 보아 제법 신분이 높아 보이는 여인의 치마 속에 왼손을 집어넣어 쉼 없이 놀렸다.

그 때마다 여인은 웅크린 몸을 움찔움찔거렸다. 얼굴 표정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잔뜩 겁먹은 모습이었다.

나이와 머리의 장식구로 미루어보아 이미 혼인을 한 여인인 듯 한데.

‘흑흑.’

여인은 머리를 숙이고 낮게 흐느꼈다.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시부모의 목숨이 야스하루의 수중에 있어, 우측에 앉은 야스하루에게 유린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비단 그 여인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몇몇 왜구들의 옆에 앉은 다수의 여인은 모두 동일한 처지였다.

겁먹은 모습,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공포, 자신이 어찌되든 친인들을 살리고자 하는 절박함.

기타 등등.

비탄에 잠긴 여인들의 얼굴에 다수의 감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녀들의 모습에서 외적의 침략을 막지 못하는 무능한 나라가 얼마나 민초들에게 극악하고 최악의 존재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무능한 조정은 백성들에게는 악인 것이다.

왜구들은 강제로 끌고 온 양가의 여인들을 옆에 끼고, 약탈해온 술과 온갖 음식들로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우며, 질퍽한 술판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술판은 며칠 동안 내내 이어졌다.

왜구들은 서서히 방심이란 감정에 젖어 경계심이 흐트러졌다.

그들이 상대해본 고려군은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다.

기습을 할 필요도 없었다. 성난 기세로 돌진하면 죄다 겁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변변한 대항조차 하지 못했다.

지리멸렬하듯 삽시간에 진형이 무너졌다.

그런 탓에 시노다 야스하루를 필두로 200여 명의 왜구는 오만이라는 덫에 스스로 빠져들었다.

7 장

나와 최우 그리고 최향이 이끌기로 되어 있는, 최충헌의 가병 3천며 명.

각기 1천여 명씩 세 무리로 나뉘었다.

가장 먼저 개경을 떠난 것은 내가 이끄는 1천여 명이었다.

“입고 있는 갑주를 모두 벗어서 준비해둔 수레에 실어라. 각자의 병기만 소지하고 수레에 탄다.”

난 수배한 말이 끄는 수백여 대가 넘는 수레들을 십분 활용하려하였다.

갑주와 활을 비롯, 가지고 가야 할 일련의 모든 물품을 수레로 옮길 생각이다.

1천여 명에 이르는 가병을 예닐곱 명씩 수레에 타게 헸다.

수백여 대에 이르는 수레가 일렬로 길게 늘어선 광경은 장관이었다.

덜컹덜컹.

수레바퀴가 울퉁불퉁한 맨땅바닥을 지날 때마다 수레가 위아래로 들썩였다.

오용섭은 측근 동료들과 함께 다소 앞쪽에서 움직이는 수레에 탔다.

다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에 보이는 주변 광경에 신기해했다.

“행님. 이런 거 보신 적 있습니까?”

두어 살 연하로 보이는 가병 승조가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함께 수레에 탄 두 가병 배후와 대문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지금 전쟁터에 가는 거 맞습니까? 용섭 형님.”

“내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까?”

가병들은 너나없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전쟁터까지 며칠 밤을 지새우며 걷고 또 걸을 줄 알았다.

하염없이 관도를 따라 쉴 틈도 없이, 밤을 낮 삼아 걷는 것을 마음속으로 각오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전장으로 이동하는 자는 신분이 높은 몇몇 고위 지위권자 밖에 없다.

대부분 두 발로 걷는다.

정조의 수원 순행에 관한 기록,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환어행렬도를 보면 당시 엿새 남짓한 기간 동안 동원된 말이 대략 780여 필이라고 적혀 있다.

그만큼은 말은 귀한 동물이었다.

정조는 조선 후기에 해당된다. 조선 후기가 그러할진대 고려 중기 말은 더 하지 않겠는가?

최충헌의 집사 이호가 내 요구에 기막혀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병들은 생전 처음 수레를 타고 전장으로 이동하는 것에 심중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 이유로 길게 늘어선 수레 행렬의 앞뒤를 연거푸 번갈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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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였다.

오용섭과 다른 가병들이 탄 수레가 천천히 걷고 있는 두 사람의 좌측을 지나쳤다.

“나리. 말씀하신 그 수렌데요.”

묵이 말하며 우측에서 천천히 걷는 날 보았다.

힐끗.

난 고갤 좌로 돌렸다. 시야에 수레에 앉아 있는 오용섭과 다른 가병들이 들어왔다.

“묵아.”

“예에.”

묵은 재빨리 대답하며 오용섭이 탄 수레로 돌아섰다.

잽싸게 수레로 다가가 손에 든 보자기를 수레 바닥에 놓았다.

그리곤 수레에 엉덩이를 척 걸쳤다.

“응?”

“어?”

오용섭과 다른 낭인들은 묵의 행동에 어리둥절했다.

영문을 몰라 무슨 일인가? 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리벙벙한 모습이었다.

난 재빨리 수레로 다가가, 수레 우측 끄트머리 바닥에 엉덩이를 걸쳤다.

왼발을 기역자 형태로 구부려 수레에 얹고, 오른발을 늘어뜨렸다.

수레가 움직일 때마다 오른발이 앞뒤로 오갔다.

흔들흔들.

오용섭을 비롯한 가병들은 묵과 나를 번갈아보았다.

그 사이.

묵이 보자기를 빠르게 풀었다. 보자기가 펼쳐지자, 수레에 탄 오용섭과 가병들은 움칫움칫했다.

두어 병의 술병과 다수의 잔 그리고 잘 삶은 두 마리 닭.

보자기에 싸여 있던 것들.

말똥말똥.

오용섭과 가병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다들 자신들이 뭘 잘못 봤나? 했다.

“허.”

“이게 다 무슨?”

다른 곳도 아니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수레를 타고 가는 것도 모자라 술판이라니.

다들 황당하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오용섭은 이민호를 쳐다보았다.

“이게 다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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