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71화 (7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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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

최충헌은 거리낌 없이 대답하는 이민호를 보며 내심 미소 지었다.

‘얼마나 자신만만하기에.’

알고 싶었다.

자신이 보기에 이민호의 식견은 두 아들 최우나 최향과 남다른 데가 있어 보인다.

특히 군사에 있어서 두 아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아, 시험 삼아 가병 1,000여 명을 맡겨보려 했다.

위험한 시도였다.

만약 이민호가 왜구들에게 점령당한 청주목을 되찾지 못한다면 이민호에게 맡긴 최충헌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

최충헌이 사람을 잘못 보았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집권자로서 관련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위험 부담을 안으려는 최충헌의 결정에서 담대한 배포가 엿보였다.

최충헌의 그릇이 여느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면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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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의 집 빈청.

난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원탁에 올려놓으며 양 손을 들었다.

양손을 머리 뒤로 돌려 깍지를 끼고, 원탁 너머에 서 있는 묵을 보았다.

묵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날 보았다.

“네에에.”

전쟁터에 간다는 것에 크게 놀라고 겁먹은 묵.

“짐 잘 싸라. 한동안은 전쟁터에서 먹고 자야 하니깐 말이다.”

“나, 나리.”

묵은 말을 더듬었다.

전쟁터에 가고 싶지 않은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난 속으로 웃으며 묵에게 말을 건넸다.

“참. 너. 싸움 좀 하냐?”

“나…… 리 이이.”

묵은 죽상을 하고 길게 날 불렀다.

‘킥킥.’

난 묵의 언동이 재미있어 놀려먹었다.

“전쟁터에서 널 보호해 줄 사람도, 그럴 정신도 없으니깐. 네 목숨은 네가 알아서 챙겨라. 응.”

“나리. 전. 전쟁터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네에.”

“애가 말하는 게. 마아! 누군 전쟁터에 가 본 적이 있냐? 응. 나도 없어. 죄다 전쟁터에 가본 적이 없잖아. 전쟁터가 무슨 놀이냐? 가 본 적이 있고 없고를 따지게.”

“나…… 리.”

묵은 다시금 날 부르며 말을 길게 뺐다.

“아, 됐고. 얼른 가서 준비나 해라. 짐 잘 싸,”

“…….”

내 말에 묵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것이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매우 힘들었다.

‘크크큭.’

귀여운 녀석.

설마하니 내가 널 죽게 내버려두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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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의 명으로 가병 3,000여 명이 각기 다른 이들 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최우, 최향, 이민호.

중앙군이 움직이지 않는 관계로 조정 대신들은 전비에 대한 부담을 덜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고려 최강의 군병인 최충헌의 가병이 움직이면 대략 천여 명에 이르는 왜구쯤은 삽시간에 섬멸될 것이다.

다들 그리 여겼다.

출전이 있다는, 교정도감에서 결정된 사항이 최충헌의 가병들에게 전해졌다.

가병들은 둘만 모이면 출전에 관한 것을 말하며 사뭇 기대감에 찼다.

전공을 세우면 무신으로 벼슬길에 나갈 수 있기에 다들 설렜다.

그런 한편으로 자신들을 이끌게 된 세 사람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최우님 같으면 편하지. 그 분은 수하들을 잘 챙겨주시기로 유명하잖아.”

“최향님이야말로 섬길 만한 분이시지. 합하의 후계자로 나무랄 데가 없으시니깐. 게다가 무장들이 너나없이 따르잖아.”

“젠장. 듣도 보도 이민호라는 작자의 밑에서 개고생이나 안하면 다행일 것 같은데. 난 그 자 밑으로 들어가기 싫다고.”

가병들은 이민호를 꺼렸다.

본시 가병은 가노. 즉 종의 신분이라 대부분 성이 없다. 개중에는 성이 있는 자도 있는데. 그들은 타고난 용력이나 무술이 뛰어나 가병으로 채용된 경우라 높은 녹봉을 받는다. 아울러 다른 가병들보다 쉽고 빠르게 벼슬길에 오르는 터라 가병들 사이에서 일종의 형이나 선배로 대우한다.

강자이기에 그에 합당한 것을 누리는 것이고, 그 점에 있어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가병들은 이민호에 관해 아는 바가 없어 궁금하게 여기는 한편 그 휘하로 들어가는 것을 께름칙하게 여겼다.

공을 세워야 하는데. 공을 세우는 것은 고사하고 전장에서 개죽음을 당하지나 않을까? 크게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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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백금 사, 삼천 냥!”

최충헌을 섬기는 집사 이호는 앞에 서 있는 묵을 보며 기함할 듯 놀랐다.

묵은 손에 든 종이와 이호를 번갈아보며 종이에 쓰여 있는 글을 빠르게 읽었다.

“가병 1천 명 중에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7백여 명으로, 나머지 3백여 명은 장색匠色으로 쓰신다고 각종 연장을 준비해 주십사…… 그리고 장인들도 수십여 명이 필요하고 말과 수레 그 밖에 각종 물자들이 필요하시다…….”

묵은 이민호가 필요하다고 한 일련의 것을 줄불 읊어댔다.

숨도 못 쉬고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 것이 꽤 힘든 눈치였다.

1,000여 명의 가병을 재편하는 것과 가지고 갈 각종 물자들을 일일이 말하며, 이호에게 차질 없이 준비해 줄 것을 이호에게 청했다.

“에에. 3백여 개에 이르는 활과 3백여 명이 열흘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화살 그리고 군량미를 비롯하여.”

묵은 쉼 없이 줄줄 말했다.

이호는 기막혔다.

요구 사항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도 백금 3천 냥을 요구하는 것에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백금 한 냥이면 한 사람이 한 두어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물가 가치로 보면 백금 3천 냥은 몇 십억 단위의 거액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작자가.’

이호는 망연자실했다.

이민호라는 작자가 이번 일을 기화로 한 재산 챙기려는 의도 같아 심중 화가 치밀었다.

묵이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중간에 언성을 높여 묵의 말을 가로챘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야.”

묵은 이호의 고성에 흠칫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민호 나으리가.”

이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

이호는 눈을 부라렸다.

“지금 출전이 장난이야. 싸우러 나가는 사람이 무슨 요구가 그렇게 많아. 게다가 말과 수레는 또 뭐고. 지방…….”

지방관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일종의 명령서까지 요구하는 것에 이호는 불 같이 화냈다.

묵은 한참 동안 이호의 고성을 들으며 눈을 깜빡였다.

‘이럴 줄 알았어.’

예상했다.

자신도 이민호의 요구 사항이 적혀 있는 종이를 보고 기막혀했었다.

이호가 불 같이 성내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묵은 이호의 고성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눈치를 봐가며 겁먹은 목소리로 넌지시 말을 붙였다.

“나리께서 다 들어주시지 않으면 곧장 상국 어른께 가서 말하겠다고.”

“니이.”

이호는 오만상을 지었다.

섬기는 주인 최충헌에게서 언질을 받은 것이 있지만, 이민호의 요구는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라 할 말을 잊었다.

최충헌에게 일단 말한 후, 그 가부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묵에게 일단 돌아가라 말했다.

그 후 이호는 최충헌에게 가, 이민호의 요구를 말했다. 그러자.

“풋. 들어줘라.”

“네.”

이호는 최충헌이 실소하며 승낙하자 속으로 툴툴댔다.

어쩔 수 없다.

최충헌이 승낙한 이상, 자신은 반대할 신분이 되지 못하는 까닭에 이민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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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후원 정자에 앉아 10여 명의 가병을 보았다.

내가 지휘하기로 되어 있는 최충헌의 기병 중에서 말을 잘 타는 이들을 따로 불렀다.

다들 영문을 몰라 하며 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난 그들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설명하며 지금 즉시 청주목을 향해 이동하라 명했다.

“나리.”

“지금 뭐라 말씀하신 겁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희더러 하라 그 말이십니까?”

가병들은 내 말에 복종할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이것들이.’

하기야 생전 처음 보는 자를 최고 지휘권자로 덜컥 인정하고 명령에 복종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긴 하지.

난 넌지시 10여 명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내가 이번 출전에 목숨을 건 것을 다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 참, 니들 생사여탈권도 내 손에 있어. 내가 지금 이렇게 장난치듯 말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니들을 지금 죽일까? 말까? 고민 중이야. 어때.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래. 아니면 내 명에 충실히 따를래. 충고 삼아 말하는데, 적당히 내 명을 따르는 시늉을 하다가 일이 그르치기라도 하는 날엔 니들은 제일 먼저 목이 날아간다는 걸 잊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난 씩 웃었다.

10여 명의 가병은 흠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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