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69화 (69/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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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랑하게 말하며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일부러 미소 짓는 것 같다.

최충헌은 여유로웠다.

탁자에 앉아 있는 문무 대소 신료들 중 일부가 말하고 나섰다.

“합하.”

“듣도 보도 못한 자입니다.”

“관직에 오르지 못한 자 같사온데.”

그들은 내가 나서는 것이 싫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최충헌은 좌중을 둘러보며 낮으나 힘이 실린 목소리로 불만을 눌렀다.

“들어나 봅시다.”

문무 대신들은 최충헌의 말에 찍소리로 하지 못했다.

“허, 험.”

무안한지 잠깐 헛기침하더니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최향은 흠칫하더니 부친 최충헌을 돌아보았다.

“아버…….”

일순.

움찔.

최향은 몸을 움츠렸다. 시선이 마주친 부친의 눈동자에 역정이란 감정이 깃들었다.

‘이크.’

말 한 마디라도 꺼냈다가는 크게 경을 칠 것 같아, 최향은 조심스러웠다.

최충헌이 그새 돌아가는 분위기를 살피는 날 보았다.

“하게.”

“네, 감사합니다.”

최충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들며, 내가 생각하는 바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탁자에 앉아 있는 신료들은 날 주시하며, 내 말에 움찔움찔거렸다.

다들 당혹스러워했다.

그들이 생각한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자칫 심각한 국면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죄다 얼굴을 경직하며 안색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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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은 심각이라는 상념에 얼굴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살며시 시선을 숙여 단상 아래를 보았다. 조금 전에 왜구들에 대한 대처가 안일했다는 상념에 최충헌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으음.”

무거운 신음이 최충헌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어떻게?’

지금이 중요하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향후의 일이 달라진다. 이미 자신이 다스리는 고려는 한계치에 와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끝없이 반복되는 변란과 강제 진압.

그 과정에서 적잖은 군사력 낭비가 있었다. 권력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 모든 군권을 교정도감을 중심으로,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물론 최근 들어 차자次子 최향이 그 군권을 야금야금 빼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고려 땅에서 자신의 명을 무시할 수 있는 자나 세력은 없다.

‘어쩌면.’

최충헌은 눈을 반짝였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이번 일을 장자 최우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발판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최충헌은 머리에 떠오른 상념에 심중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싱긋.

시선을 바로 하며, 최충헌은 단상 아래를 보았다. 시야에 탁자에 앉아 있는 문무 대소 신료들이 들어왔다.

최충헌은 여유로운 얼굴로 신료들을 응시하며 작은 이채를 띠었다.

느긋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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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와 최향은 부친 최충헌의 말에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뜻밖도 이런 뜻밖이 없다.

탁자에 앉은 신료들과 서윤, 서풍 형제는 살며시 입을 벌리고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제법이신데. 그래.’

내가 알기로, 예전에 읽은 기록에 최충헌의 가병은 3,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충헌의 가병은 고려 최강이다.

2군6위의 중앙군보다 질적으로 월등하다. 무엇보다도 최정예 병이라는 것이 마음에 쏙 든다.

최충헌의 권력 기반이 교정도감과 가병인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거지만.

‘암튼.’

최충헌의 가병을 동원하면 굳이 중앙군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일련의 전비와 군량미는 교정도감이 맡게 된다.

‘뭐, 어때서.’

난 속으로 씩 웃었다.

교정도감은 각 지방에서 조세를 거둘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사실상 고려의 부가 교정도감으로 몰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번대로 왕실과 조정은 쪽박 차지만.

일단 양민들의 부담이 없다는 점에 난 최충헌의 결정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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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의 말에 교정도감에 든 이들은 기겁할 정도로 크게 놀랐다.

“합하!”

최충헌을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다들 당황했다.

최충헌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 장자 최우와 차자 최향을 보았다.

“우는 1,000여 명의 가병을 이끌고 광주목을 치고, 향이는 역시 1,000여 명의 가병을 이끌고 충주목으로 가도록 해라. 그리고.”

최충헌이 날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난 흠칫했다.

씩.

최충헌은 날 보며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자네에게 1,000여 명의 가병을 주지. 그러니 청주목을 치도록 하게.”

“네?”

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일천의 가병.

쉽게 볼 수 없는 무력이다.

2군 6위보다 강한 최충헌의 가병이지 않은가? 게다가 인구가 현대와 현저히 차이가 나는 고려 시대다.

현 고려의 군병을 모두 합치면 대략 5, 6만이 한계치임을 감안하면 약 0.2 %에 해당하는 군세軍勢다.

그런 힘을 몇 번 본 적도 없는 내게 준다?

놀랄 노 자다.

‘뭐지?’

난 머리를 빠르게 돌렸다.

최충헌의 의도가 무엇인지, 내 어디를 보고 가병 일천을 맡기려고 하는지, 알고자 하였다.

최우, 최향, 문무 대소 신료들.

그들 모두 나와 최충헌을 번갈아보았다.

모두의 시선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속애가 그득 담겼다.

최향이 부친 최충헌을 돌아보았다.

“아버님.”

막 입을 열어 자세한 연유를 물으려하는데.

“내가 그리 하고 싶다.”

최충헌이 무거운 어조로 말하자 최향은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마주보고 부친의 눈동자.

바르르.

최향은 몸을 가느다랗게 떨었다. 내심 말을 잊었다.

‘아직!’

부친은 여전히 고려의 모든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지배자였다.

그 어떤 도전이라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강렬한 의지가 부친의 눈동자에서 살아 숨 쉬었다.

만약 반하는 말을 한 마디라도 내뱉을 경우 부친이 크게 경을 칠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새삼 부친이 친동생과 조카를 죽이며 권력을 지켰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바, 반하는 자라면 설사 자식이라고 해도.’

최향은 가슴이 서늘했다.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자식이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형 최우가 있다.

최향은 입을 다물고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차마 부친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없었다. 맹호 앞에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서 있는 듯한 기분에 최향은 등골이 싸늘했다.

꿀꺽.

최향은 마른 침을 삼켰다.

부친 최충헌으로부터 모든 권력을 넘겨받기 전까지, 머리를 숙이고 복종해야 한다.

부친에게 밉보여 권력을 넘겨받지 못한다면 형 최우가 후계자가 된다.

권력 투쟁에서 패한 자의 말로는 ‘비참’ 그 말밖에 남지 않는다.

신료들은 최향의 모습에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눈치 빠르게 입을 다물며 머리를 숙였다.

당신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무언으로 말하는 듯한 태도를 견지하며 최충헌의 결정에 모든 것은 맡긴다는 속내를 은연중에 밝혔다.

최우는 남동생 최향과 문무 대신들을 힐긋 돌아보며 살며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꾹.

이를 악물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친을 향해 돌아섰다.

최우는 용기를 내어 주시하는 부친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생각하는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합하.”

최충헌은 움칫했다.

장자 최우가 차자 최향처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공적인 호칭 ‘합하’ 라는 호칭을 입에 올렸다.

그것은 공과 사를 가리고자 하는 것이라 최충헌은 내심 역시 장자라 생각하였다.

‘형만 한 아우 없다더니.’

마음속으로 기꺼워하며, 겉으로는 냉정하게 대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추밀원 부사.”

“예. 합하. 저 사람은.”

최우는 말하며 서 있는 나를 힐긋거렸다.

“관직에 오르지 못한 자입니다. 하옵고 안면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이이기도 합니다. 또한 1,000여 명의 가병을 이끌 능력이 있는지도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연치도 어립니다. 아울러.”

최우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날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어 난 당혹스러웠다.

‘저 양반이.’

최우를 째려보았다. 무시당한 듯한 기분이 들어 불쾌했다.

최충헌은 장자 최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언 내렸다.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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