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66화 (6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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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이 아무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고생고생해서 판을 다 끝내려는데. 파토를 내도 정도가 있지.

‘니이!’

입에서 욕이 나오기 직전이다.

그렇다고 겉으로 그런 감정을 드러낼 수도 없고, 심중에서 울화가 치솟았다.

아울러 스트레스도.

오상근은 이민호를 쳐다보며 최우의 명으로 중단시킨 것임을 밝혔다.

난 흠칫했다.

“부사 어른이 말이외까?”

“그렇소.”

오상근 탐탁지 않다는 속내를 은근 슬쩍 드러냈다.

최우의 명이라니 어쩌겠는가? 받아들일 수밖에.

‘제기랄.’

난 속이 편치 않았다.

뭔가 꼭 도둑맞은 듯한, 내가 엄청 손해 본 기분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살 때는 싸게 잘 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장사꾼에게 속아 엄청 큰 손해를 본 그런 느낌이다.

“알겠습니다. 부사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응당 따라야지요.”

최양백은 공손하게 오상근에게 말하며 날 돌아봤다.

“아쉽지만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세.”

“체. 알겠습니다. 술 한 잔 얻어먹기가 이리 어려워서야.”

난 아쉽다는 속내를 내비치며 툴툴댔다.

최양백이 날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나중에 내가 한 잔 사지.”

뜻밖이었다.

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최양백을 쳐다보았다.

“어쩐 일이십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 죽일 듯이 격구 채를 휘두른 양반이.”

삐친 척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최양백은 날 보더니 조금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사람하곤. 나중에 내가 한 잔 사다니깐.”

“됐습니다. 그 술 먹다가 목에 걸리겠습니다.”

최양백을 힐금거리며 툭 쏘아붙였다.

“격구를 할 때와 술 마실 때가 어디 같은가? 이 사람아. 승부를 결할 때는 진지하게. 술 마실 때는 파탈. 알겠나.”

최양백은 미소 지었다.

‘훗.’

난 최양백을 흘낏거리며 마음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내 의도가 어느 정도 최양백에게 먹혀든 것 같다.

천천히 최양백에게 돌아섰다.

“나중에 술 산다는 말.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알겠네. 알겠어.”

최양백은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서 날 차갑게 대하던 이전의 태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난 내심 쾌재를 부르며 은근 슬쩍 눈을 반짝였다.

‘사람 참. 순진하긴.’

죄를 짓는 기분이다.

가책을 느꼈다.

내가 무슨 엄청 나쁜 놈이 된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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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의 저택으로 조정 문무 대신들이 줄기차게 찾아들었다.

그들의 방문은 끊이지 않았다.

다들 저택 내부 심처에 있는 교정도감으로 향했다.

높다란 담장으로 주위와 단절된 교정도감 주변에는 경장 갑주를 걸친 하급 무장들이 서서 엄중한 경계망을 폈다.

정 8품의 군관인 산원散員들.

형형색색의 의식용 각종 수술로 투구를 장식하고, 일부러 햇빛이 반사되라고 공을 들여 갑주에 붙인 각종 장식물이 산원들을 돋보이게 했다.

뭐랄까?

마치 천장이나 천병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별히 체구가 장대하고 건장한 이들만 뽑아 초哨를 세운 듯 산원들의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교정도감으로 이어진 솟을 대문을 등지고 선 한 상급 무장.

상급 무장 중랑장中郞將 이상평.

정 5품의 무관인 중랑장은 각 영營에 2명씩 배속 되었다. 현대 군 개념으로 보면 소령이나 중령 정도 되는 영관급 장교라고 할 수 있다.

이상평의 뒤, 좌우에는 두 명의 무장이 나란히 서 있었다.

정 7품의 무관 별장別將.

두 별장은 행여 허락받지 않은 자가 교정도감에 들까? 엄히 경계하는 듯 사나운 안광을 번득였다.

솟을 대문 안팎으로 산원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서 사방을 둘러봤다.

“흠.”

이상평은 근엄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다수의 무장을 거느린, 신분이 높아 보이는 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인지 한 눈에 알아보았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수시로 최충헌의 사가를 드나드는 차자 참지정사 최향.

최향을 뒤따르는 자들은 죄다 측근이었다.

이상평의 수하인 두 별장과 산원들은 최향을 알아보고는 긴장으로 얼굴을 딱딱하게 경직했다.

소문이 돌았었다.

“참지정사가 상국 어른의 후계자가 될 거야.”

“군부의 무장들이 죄다 참지정사를 따른다며.”

“대세야.”

다들 최향을 유력한 차기 교정도감의 주인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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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최향과 따르는 측근들이 이상평의 면전에 이르렀다.

“어서 오십시오. 참지정사.”

이상평은 담담하게 말하며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두 별장과 산원들은 꼿꼿하게 선 자세로 오른팔을 들어 왼쪽 가슴, 심장 어림에 붙였다.

처, 척.

무기를 쥐는 오른팔을 들어 가슴에 붙임임으로서 적대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복종함을 나타내는 군례였다.

최향은 그 사이 이상평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수고가 많소이다. 이 중랑장.”

최향은 간략하게 말을 건넸다.

일순, 세상을 오시하는 자신감이 물씬 풍겼다. 차기 권력 승계자로서 위험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최향은 곧장 이상평을 지나 솟을 대문으로 향하려했다.

한편.

두 별장과 산원들은 오른팔을 내리며 정자세로 반듯하게 섰다.

그 모습이 정예 중 정예라 절로 탄성이 나올 것 같았다.

이상평은 최향을 향해 돌아섰다.

“잠시 발걸음을 멈춰 주십시오. 침지정사.”

최향은 멈칫거리더니 섰다.

측근들은 최향을 따라 움직이다가 최향이 서자, 일제히 발걸음을 멈췄다.

최향과 측근들은 거의 동시에 이상형을 향해 돌아섰다.

모두들 불쾌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이상평을 응시하는 눈초리에 화기가 그득했다.

무례하다.

다들 그리 생각했다.

최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유가 무엇이오? 이 중랑장.”

심중 이는 불쾌감을 누르며 근엄한 어조로 발걸음을 세운 이유를 물었다.

이상평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상국 어른의 영令이십니다. 오직 참지정사만 도감으로 들이라 하셨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최향의 뒤에 서 있는 측근들 사이에서 몇몇 거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 중랑장.”

“지금 어느 분께 어떤 무례를 범하고 있는지 알고서 그리 말하는 겐가?”

성난 목소리였다.

이상평은 말한 이들을 돌아보았다.

대장군 최준문, 상장군 지윤심, 장군 유송절.

최우가 가장 신뢰하는 최측근들이다.

“하오시면 저더러 언감생심 상국 어른께서 내리신 영을 거역하라 그 말씀이십니까?”

이상평의 반문에 최준문, 지윤심, 유송절은 움칫했다.

이상평의 입에서 최충헌의 영이란 말이 나왔다. 무시하고 솟을 대문으로 들어가 버리면, 이는 최충헌의 영을 어기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최충헌의 성정으로 볼 때 자신들은 죽음을 면키 어렵다.

최향이 재빨리 나섰다.

“이 보시게. 이 중랑장.”

성났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는 높은 언성이었다.

이상평은 최향을 돌아보았다.

“말씀하십시오. 참지정사.”

“나를 이리 괄시하라. 아버님이 그리 명하신 것이다. 이 말이외까?”

“참지정…….”

“닥치시오.”

최향은 고함쳐 이상평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이상평은 최향의 언성에 몸을 움칫거리며 곤혹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당대 고려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자 다음 대 후계자로 유력시 되는 최향이다.

최충헌은 오래전에 나이 예순이 넘어, 지금 당장 노환으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고령이다.

그러나 아직 호랑이로서의 기상과 위엄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온 고려를 일언一言으로 호령하는 당대 제일의 집권자다.

하나!

지는 해 인 것은 불문.

떠오르는 해인 최향의 눈 밖에 나면 후환이 무궁무진할 것은 보나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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