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61화 (6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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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앗.”

난 기합을 지르며 우측으로 몸을 기울였다. 몸이 금방이라도 땅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휘익.

손에 쥔 격구 채를 휘둘렀다.

따악.

경쾌한 일성一聲과 함께 공이 떠올랐다. 공은 무지개처럼 공중 높이 치솟으며 계방癸方으로 향했다.

계방에는 해심이 있었다.

왼쪽으로 돌아서며 고개를 들어 공을 보는 해심.

난 해심을 힐긋 본 후, 건방乾方으로 향했다.

“핫.”

말은 내 의도대로 잘 움직여주었다. 그 동안 함께 마상 무예를 연마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마상 무예의 기본기 중 하나가 말고삐를 쥔지 않고 두 다리로 말을 모는 것이라, 격구에서 상당히 유용했다.

난 귀를 쫑긋거렸다.

쉐에에.

귀에 공이 공기를 가르는 파공에 들렸다.

난 파공에 신경을 모았다.

소리로서 공의 위치와 나와의 거리를 감각으로 재었다. 고려로 타임 워프하며 얻게 된 육체적, 정신적 변화에 잠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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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백은 말을 모는 이민호를 보곤 어리둥절했다. 얼굴에 이상하다는 속내가 떠올랐다.

“보지를 않는다?”

의문이 일었다.

이민호는 공을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어디쯤 공이 떨어지는지 다 안다는 듯 거침없이 말을 몰았다.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최양백은 진한 의아함을 띠며 유심히 이민호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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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딜.”

김인준은 이민호의 우측으로 말을 몰았다.

탄 말이 격구를 위해 고르고 골라 조련한 준마인 까닭에 창졸간에 이민호에게 이르렀다.

눈에 보이는 이민호는 우측으로 몸을 기울이며, 쥔 격구 채로 공을 조금 앞쪽 공중으로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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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누군가가 나를 향해 말을 몰아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마치 3차원 입체 그래픽처럼 내 주변 상황이 그려졌다.

환상은 환상인데. 매우 입체적이라 일련의 모든 것이 확연히 보이고 느껴졌다. 다시금 내 몸의 변화에 경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격구 채를 빙글 돌렸다.

‘이래보여도 이 몸이 당구 점수가 300이 넘는다고. 가끔 예술구도 친다 이거야.’

상아로 만든 당구공이나 대나무로 만든 공이나 둥글긴 마찬가지.

‘단지 차이가 있다면 당구 큐대와 격구 채 밖에 없어. 얼마든지!’

당구공처럼 격구 공에도 스핀을 비롯한 일련의 변화를 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막 내가 공중에 띄운 공을 격구 채로 치려는 찰나.

쉬이이.

공기를 가르며 격구 채가 내 머리를 향해 다가왔다.

‘우라질.’

공을 때리면 다가오는 격구 채에 당한다. 공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난감했다.

일종의 골문이라고 할 수 있는, 멀 경자 형태의 상대방 구멍이 지척이다.

이대로 포기하자니 너무 아까웠다.

난 머리를 뒤젖혔다.

휘릭.

다가오던 격구 채가 코앞을 스쳤다. 간격이 겨우 새끼손가락 한 마디라 실로 아슬아슬하기 그지없었다.

일련의 상황은 겨우 한 호흡 남짓한 짧은 시간에 일어났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젖히지 않았다면 머리를 강타 당했을 것이라 가슴이 서늘해졌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상체를 뒤로 눕혔다. 그와 함께 안장에 매달려 있는 발받침에서 오른발을 뺐다.

휙.

오른발로 내개 격구 채를 휘두른 김인준의 우측 옆구리를 찼다.

퍽.

짧고 강렬한 격타음이 들렸다.

“컥.”

김인준은 옆구리를 차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충격이 이만저만 센 것이 아니다. 늑골이 대번에 부러진 양, 극렬한 통증이 일었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아픔에 김인준은 인상을 쓰며 몸을 휘청거렸다.

“크흐윽.”

입술 사이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배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김인준은 상체를 숙이며, 나와 거리를 벌리려했다. 그와 함께 급히 왼손에 쥔 고삐를 옆으로 당겼다.

그 광경을 보고 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몸을 바로하는데.

난 흠칫했다.

좌측 뒤에서 말이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그 때문에 급히 상체를 숙였다.

풍압과 더불어 바람을 일으키는 파공이 들렸다.

‘누가?’

누군가 뒤에서 날 기습했다.

왼손으로 안장 앞부분에 있는, 혹처럼 불룩한 부분을 잡았다. 그리고 받침을 밟은 왼발에 체중을 실으며 벌떡 일어섰다.

휘이익.

오른발을 뒤돌려 찼다.

발끝에 무엇인가가 닿았다. 둔중한 감촉이 뒤돌려차기가 정확하게 들어갔음을 무언으로 말했다.

퍼억.

뒤에서 이민호를 공격한 가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과당탕.

난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고 김인준을 보았다. 뒤쫓기에는 늦었다.

‘젠장.’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치에 떨어져 있는 공이 보였다. 몸을 숙여 오른손에 쥔 격구 채로 공을 가슴 높이로 띄웠다.

눈을 매섭게 뜨며 공에 집중했다.

눈동자 가득 공이 들어옴과 동시에 머릿속 가득히 당구공이 떠올랐다.

정중앙을 종횡으로 가르는 열십十자.

힐긋.

상대방인 최우의 가병들이 지키고 있는 구멍을 보았다.

‘거리 5미터. 각도 약 60°.’

난 눈을 빛내며 격구 채로 공의 좌측을 때렸다. 순간, 강한 힘이 공에 실리며, 공은 빛살인 양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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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는 최우의 가병들은 놀라 눈을 치떴다.

“저, 저.”

“승표가 당했다.”

“어떻게 마상에서 저런 자세가 나와?”

“고삐를 쥐지 않았어, 두 다리로 말을 움직인다고.”

다들 자신들이 본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격구에서 고삐를 쥐지 않고 말을 움직이는 자들은 드물다. 대개의 경우 오랫동안 말을 탄, 이른바 격구의 고수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이민호가 고수인 양 두 다리로 말을 움직이며 멋들어진 동작을 선보였다.

최우의 가병들은 마상 무예에 대해 아는 바가 적었다. 하지만 최양백은 달랐다.

“음…….”

최양백은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이 보았던 조금 전 광경, 김인준이 물러나고 수하인 가병이 말에서 굴러 떨어지는 모습.

‘틀림없어. 저 동작은.’

최양백은 전장을 제 집처럼 누비던,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일부 무장을 회상했다.

그들이 마상에서 선보였던 일련의 시연을 본 적이 있다.

최우가 가병들의 격구 실력이 높아지기를 바라며, 실력을 더 증강시키기 위해 그들 일부 무장을 초빙하여 시연을 부탁한 적이 있어, 견문을 넓혔었다.

그 때 보았던 그들의 움직임과 이민호의 움직임은 흡사하게 닮았다.

‘쉽지 않겠어. 하나.’

최양백은 눈을 반짝이며 해심을 비롯한 서가의 가병들을 둘러보았다. 시야에 보이는 그들은 두 손을 놓고 이민호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씩.

최양백은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격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혼자 잘났다고 독불장군처럼 날뛰어봐야 승패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못한다.

“응?”

최양백은 움칫했다.

시야에 이민호가 격구 공을 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공이 날아가는 궤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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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공이?”

최우의 가병들은 눈에 보이는, 날아가는 공의 움직임에 어리둥절했다.

어리둥절하기는 해심과 세 가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저어.”

해심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광경에 말을 잃었다.

공은 쭈우욱 뻗어나가다가 구멍 가까이 이르러 급격히 우측으로 꺾였다

좌 상단에서 우 하단으로 뚝 떨어지는 공은 툭툭 두어 번 지면에서 튀더니 곧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

잠시 격구장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날아가는 격구 공이 꺾인다는 것은 평생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상상 역시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격구 공은 살아 있는 새인 양 본도 드도 못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구멍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자신들이 헛것을 본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라, 격구장에 있는 이들은 입을 떡 벌리며 망연했다.

충격을 받은 이들 중에는 김인준도 있었다.

“마, 말이 안 돼.”

김인준은 눈을 깜빡였다.

무슨 도술을 본 그런 기분이라, 다소 멍했다. 우두커니 안장에 앉아, 천천히 말을 몰아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이민호를 쳐다보았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김인준은 이민호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경시할 수 없는 상대다.

김인준은 은연중에 이민호를 자신의 상대로 인정하며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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