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60화 (60/247)

<-- 60 회: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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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격구장 양쪽 끝에 기승騎乘한 두 무리가 마주보았다.

좌측에는 나를 필두로 탱중 해심과 3 명의 서가 가병이, 우측에는 최양백과 김인준을 비롯한 3 명의 최가 가병이 자리를 잡고 서로 대치했다.

모두들 머리에 격구용 투구를 썼고 손에는 격구 채를 쥐었다.

자못 심각한 분위기였다.

격구장 주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최우의 가병 수십여 명이 서 있었다.

다들 격구장 중앙에 서 있는 두 무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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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익.

난 부드럽게 웃으며 왼쪽에 있는 해심을 돌아보았다.

“긴장되지 않습니까?”

연장자라 말을 놓지 않았다.

해심은 싱겁게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잔말 말고 빨리 시작이나 했으면 좋겠어. 히히.”

말하며 손에 든, 나무로 만든 격구 채를 빙글빙글 돌렸다. 즐기는 모습이라 난 소리 없이 히죽 웃었다.

고개를 돌려 해심의 옆에 일렬로 서 있는 서가의 가병들을 보았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공격은 우리 두 사람이 할 테니. 여러분은 방어만 해주시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잘 알겠습니다.”

가병들은 날 돌아보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저 수비만 하면 되는 터라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그 때문에 가병들은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격구에서 공을 가진 자는 채로 방어하는 자를 공격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서가의 가병들은 긴장했다.

상대는 고려의 집권자인 최충헌의 장자 최우의 가병들이다.

보나마나 고려 땅에서 한다하는, 무술깨나 하는 자들을 몽땅 다 불러 모았을 게 뻔하다.

물론 개중에는 가노들도 있을 것이다.

서가의 가병들은 자신들보다 최우의 가병들이 개인 무력에 있어 앞선다고 여겼다.

은연중에 꺼리는 얼굴빛을 띠었다.

“무리하게 방어하지 말고. 안 되겠다 싶으면 공을 넣도록 슬쩍 내버려둬도 됩니다. 괜히 무리해서 다칠 필요는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이 공.”

서가의 가병들은 내가 광주 이가의 사람임을 염두에 두고 존칭어인 공公자를 성 씨 말미에 붙였다.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맞은편을 보며 발로 말의 배를 살짝 찼다.

히힝.

그러자 말이 낮은 울음을 흘리며 천천히 말발굽을 들어 걷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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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준은 걸어오는 이민호는 보고는 우측을 돌아보았다.

“양백.”

“내게 맡겨둬.”

최양백은 대꾸하며 가볍게 말의 배를 찼다.

말은 발차기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채고는 천천히 이민호를 향해 마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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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숫자 11과 같은 형태로 최양백과 엇갈리게 섰다.

푸륵.

내가 탄 말이 머리를 슬쩍 양쪽으로 흔들었다.

“각오되어 있습니까? 양백 형님.”

“풋.”

최양백은 실소했다.

내가 만날 때마다 형님이라고 꼬박꼬박 부르는 것이 익숙해졌는지, 이젠 어느 정도 받아주었다.

“지면.”

“하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양춘원에서 거하게.”

난 대꾸하며 한쪽 눈을 찡그려 윙크했다.

움찔.

최양백은 윙크가 낯선지 몸을 미미하게 양족으로 움직였다.

어색해하는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씩.

최양백은 부드럽게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술값이 꽤 될 텐데.”

“까짓 그 정도쯤이야. 지지만 않음. 되는 거잖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하.”

나는 일부러 조금 과장되게 웃었다.

속으로는 솔직히 걱정된다.

양춘원은 기루였다,

최양백이나 가병들이나 기본적으로 가노의 신분이다. 양춘원은 고관대작들이 자주 가는 이름난 기루가 아니다. 고만고만한 기루들 중 하나로 여자를 품에 안고 잘 수도 있다.

현대로 치면 그저 그렇고 그런 룸살롱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젠장.’

나는 서풍을 생각했다.

형 서윤이야 유학자 스타일이라 별 상관은 없지만 한 무술 할 것 같은 서풍이 격구 시합에 끼려하지 않았다.

최우의 서녀와 혼담이 오가는 것을 은연중에 신경 쓰며 몸조심을 하는지 좀처럼 거처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전력에 도움이 충분히 될 텐데. 제기랄.’

시합은 뭐니 뭐니 해도 이길락 말 락 한 긴장감이 최고다. 그리고 시합을 통해 친해지려면 먼저 최양백과 김인준으로 하여금 나를 인정하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팽팽한 대치와 진행이 좋은데.

망할.

내가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최양백이 말을 걸었다.

“그래. 얼마나 격구를 잘하기에 시합 신청을 했는지 한 번 보기로 할까?”

난 싱긋 웃으며 친근하게 대꾸했다.

“나중에 시합에 져서 울지나 마십시오.”

“뭐?”

최양백은 내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려 땅에서 최우와 최향 형제의 가병들은 격구에 있어 최고다.

왕이 직접 지켜보는 친람 격구 시합 결승에서 늘 맞붙어 승패를 결하는 것이 바로 두 형제의 가병들이다.

그런데 겨우 일개 지방 호족의 가병들을 데리고 도전하다니.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최양백은 다소 성난 기색을 띠었다.

난 왼손 검지를 들어 양쪽으로 살며시 흔들었다.

까닥까닥.

“아니요. 우리가 이길 자신이 있어섭니다.”

“뭐라 이길 자신이 있어?”

최양백은 어처구니없다는 속내가 밴 목소리로 반문했다.

“하하하. 직접 한 번 겪어보십시오.”

“풉.”

최양백은 은연중에 나와 뒤에 있는 동료들을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분 나쁘게 말이다.

“어디 그럼. 붙어보세.”

최양백이 고삐를 오른쪽으로 당기자 말이 돌아섰다.

“우리가 이길 겁니다.”

난 자신만만하게 최양백에게 말했다.

“큭큭.”

최양백은 실소하며 왼손을 어깨 높이로 들더니 좌우로 흔들었다.

휘, 휙.

난 뒤돌아서며 김인준을 비롯한 가병들을 향하는 최양백을 향해 말했다.

“삼판양승입니다. 한판은 일각이고요. 아시겠습니까?”

“…….”

최양백은 왼손을 보다 높이 들며 조금 더 세게 흔들어 알았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난 소리 없이 씩 웃으며 고삐를 우측으로 당겨, 말머리를 돌렸다. 말은 해심을 비롯한 내 동료들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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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두두.

근육이 꿈틀거리는 굵은 말다리가 지축을 힘차게 내리밟았다.

투투툭.

그 때마다 땅에 있는 자잘한 돌 알갱이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앗.”

힘이 넘치는 기합과 함께 김인준이 왼쪽으로 몸을 숙였다. 팔이 잠시 뒤로 젖혀졌다 반원을 그리며 앞으로 뻗었다.

옅은 파공이 일더니, 격구 채가 공을 때리는 작은 소리가 울렸다.

딱.

공은 사선으로 떠오르며 정면 허공으로 날아갔다. 무지개가 연상되는 포물선이 공중에 그려졌다.

김인준은 안장에 바로 앉았다.

그 사이 최양백과 수하인 한 가병이 말을 몰아, 김인준에게 바짝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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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날아오는 공을 보며 해심을 향해 소리쳤다.

“스님.”

“알았네. 차핫.”

해심은 발로 말의 배를 차자, 말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히힝.

말이 울며 말발굽으로 땅을 찍듯이 밟았다.

나는 해심과 엇비슷하게 말을 몰았다.

날아오는 공이 떨어질 곳을 예상하고 연방 발로 탄 말의 배를 찼다.

“하앗.”

말은 내가 의도하는 바대로 충실히 움직여주었다.

2 장

서가의 세 가병.

종칠, 방조, 적두.

그들은 이민호와 해심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대화했다.

“우리가 이렇게 있어도 돼.”

“난 모르겠어.”

“왠지 들러리가 된 기분이야.”

기분이…… 뭐랄까?

딱 이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런 기분이었다. 우군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남남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것이 굳이 표현하자면 껄쩍지근하다고나 할까?

적극적으로 도와주기에도, 그렇다고 모른 척하기에도…….

세 가병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기승한 채 우두커니 이민호와 해심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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