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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병들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조의는 말머리를 옆으로 돌리며 고함쳤다.
“어서 부중으로 가자. 내 부사에게 직접 이 사실을 알려 조정에 급보를 전하도록 해야겠다. 이럇.”
조의는 발로 말의 배를 찼다.
히히힝.
말은 울며 네 발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발굽이 배 아래로 모였다가 삽시간에 앞뒤로 뻗었다.
발굽이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두두두두.
그 사이 조의의 명을 받은 가병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신속하게 말을 몰아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무사장은 고삐를 왼쪽으로 젖히며 남은 가병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는 나를 따라와라.”
“네에.”
가병들은 말을 몰기 시작하는 무사장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앞서 말을 내달리는 조의를 뒤따랐다. 그 사이 조의는 속도를 내어 저만치 앞쪽에서 내달렸다.
두두두두.
다수의 말이 내달리는 소리가 어두컴컴한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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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이 팔뚝만한 초가 자신을 태우며 방을 밝혔다. 흘러내리는 촛농이 초 밑에 그득 쌓였다.
“끄으응.”
난 앓는 신음을 흘렸다.
발치에는 구겨진 종이뭉치들이 나뒹굴었다. 손에 쥔 붓을 옆에 있는 벼루에 내려놓고, 양손을 들어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우우우. 정말. 내가 21세기에서도 안 써본 연애편지를 12세기 고려에 와서 써 봐요. 망할. 젠장. 우라질, 염병.”
21세기에서는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연애 편지질인데, 그 짓을 하지 않으면 도통 최송이와 선을 이를 수가 없다.
후원에서의 일로 최송이가 은연중에 날 피하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크게 실수한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분명 나중에 김약선과 결혼하긴 해. 그리고 김약선은 최송이와의 혼인을 통해 일약 최우의 후계자가 된단 말씀이야.”
내가 지금 최송이를 가로채버린다면 나는 장래에 최우의 후계자가 된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몽고와의 일전을.”
눈을 반짝였다.
이왕 고려 시대로 떨어진 이상 나도 뭔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이왕 목표로 삼을 거. 사내자식이라면 원대한 포부를 가져야지. 아암.”
고개를 들어 힐긋 천장을 보았다.
“boys be ambitious! 크크크크. 까짓 거. 내 생각대로만 풀린다면 나도 칭기즈 칸처럼 대제국을 건설할 수도 있어. 전무후무한 위대한 제국을 창업한 건국 황제가 되어, 수십 수백여 명의 미인으로 칼리프나 술탄처럼 할렘을 만드는 거야. 아니지 이왕에 하는 거. 화악 이참에 세계정복을 해버려. 전 세계를 하나로 통일한 고금 최강 최고의 영웅. 캬아아. 좋다. 플루타크 영웅전 제일 첫 장에 내 이름이 떡하니 척 적히는 거지. 역사상 최고의 영웅 이! 민! 호! 좋잖아. 굿이잖아. 안 그래. 음하하하하핫1”
고개를 바로 하며 난 미친 놈처럼 키득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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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시 열린, 손가락 하나 어림의 틈이 벌어진 방문 바깥에 묵이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이민호를 훔쳐보았다.
‘실성하시고 말았어.’
묵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안에 있는 원탁에 앉은 이민호가 천장을 보며 헛소리를 해댔다.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을 분명하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자신에게 시켜, 이만저만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밑도 끝도 없이 연서를 써서는 자신더러 최송이에게 전하라고 시켰다.
“어떻게요. 나리. 그 분은 최우 어른의 천금입니다. 외동따님이라고요. 자칫 하다가는 목 날아갑니다.”
반대했다.
어디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최송이를 건드린단 말인가? 여차하는 날에는 이민호는 꼼짝없이 죽는다.
무례도 이만저만한 무례가 아니다.
더욱이.
“마! 연안가 뭔가 하는 애 있잖아. 최송이 시비 같은데. 가서 꼬셔.”
“예에에?”
기겁했다.
생전 본 적이 없는 연아라는 시비를 꾀라니. 이민호가 제정신인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어디 남자가, 무슨 난봉꾼이라면 몰라도 자신처럼 반듯한 서동 출신이 어찌 시비를 유혹할 수 있단 말인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고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저러다 큰일 나지.’
묵은 불안했다.
이민호가 하려는 행동을 보며 조마조마 짝이 없다.
‘에휴.’
어쩌다가 자신이 이민호의 시중을 들게 되었는지 매우 답답했다.
‘장자 어른의 명만 아니었으면.’
묵은 서양헌을 생각했다.
‘이민호의 곁에서 잘 지켜보도록 해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심중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등등. 알아낼 수 있는 건 모두 다 알아내도록 해라.’
서양헌은 자신을 일종의 감시자로서 이민호의 곁에 붙여두었다.
어려 조실부모한 자신을 지금까지 키워준 은인이 서양헌이라, 묵에게 서양헌은 절대적인 존재다. 그런 이유로 서양헌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휴우우.’
묵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쉬었다.
머릿속에서 개경으로 올 때가 생각났다. 이민호는 자신에게 무척이나 잘해 주었다.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 자신을 태웠고, 자신이 끌고 가던 짐이 실린 말들을 이민호가 대신 걸으며 끌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가책을 느낀다.
자신에게 잘해준 이민호를 배신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장자님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어.’
이민호에게 미안하지만, 자신에게 서양헌은 이민호보다 위에 있다.
묵은 얼굴빛을 흐리며 풀 죽은 듯 살며시 머리를 숙였다.
자신이 무슨 세작이 된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서 죄책감이란 작은 감정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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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에 와 최우의 집에 묵으면서 내가 가장 신경을 쓴 것이 바로 말을 타는 승마였다.
만만한 것이 땡중 해심이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해심을 데리고 말을 타고 밖으로 나가 기마술을 닦았다.
말을 타는 승마와 전투를 염두에 둔 기마술은 염연히 달라, 적잖은 차이가 있다.
내가 사학과 출신이라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군에 있을 때 주특기가 일종의 군사 고문단이었다.
적 후방에 침투, 적에게 대항하는 반문들을 훈련 및 지휘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그런 관계로 꽤 많은 군사학 관련 서적들을 독파해야 했다. 서적들 중에서 지금 내게 가장 유용한 것이 바로 무예도보통지였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어 있는 몇몇 마상 무예.
나는 부단히 기마술을 익히고 닦는 한편 땡중 해심과 함께 무예도보통지의 마상 무예들을 수련했다.
해심은 신기해했다.
“이게 다 뭡니까? 내 생전에 보도 듣도 못한 무예 같은데.”
“아, 네. 제가 돌아가신 아버님께 배운 겁니다.”
졸지에 아버지를 돌아가신 분으로 만들어버렸다.
암튼 해심과 함께 마상 무예를 수련한 덕분에 급격히 사이가 가까워졌다. 이전과 달리 매우 친해져 종종 함께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해심은 땡중답게 술고래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며 최양백을 집중 공략,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관계를 조금씩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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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는 유달리 격구를 좋아했다.
현대로 따지면 몇 만 평에 이르는 격구장을 만들기 위해 수백여 채에 이르는 양민들의 집을 강제로 허물었다.
1미터 조금 넘을 것 같은 멀 경冂자의 구멍에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공을 넣으면 점수가 난다.
일정 시간을 정해 점수를 내고, 점수를 많이 넣으면 이긴다는 점.
서양 귀족층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려 상류층들이 즐긴다는 점.
두 점을 감안하면 유럽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인 폴로와 격구는 매우 유사하다.
최양백과 김인준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내 마음과 달리 잘되지 않았다.
최우가 격구를 좋아하는 탓에 가병들 역시 격구를 좋아했다. 격구를 보다 잘하기 위해 최우의 가병들은 수시로 격구를 연습하는 것에 착안했다.
최우의 동생 최향이 거느린 가병들과 최우의 가병들이 자주 격구 시합을 하는 탓에, 번번이 지는 바람에 최우의 심기가 몹시 불편해 최양백과 김인준은 가병들을 심하게 몰아세웠다.
“언제까지 지기만 할 거야.”
“이젠 이겨봐야 할 거 아냐?”
“부사 어른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알아.”
“이번에도 지면 너희들은 다 죽었어. 알겠어.”
최양백과 김인준은 가병들을 강하게 단련시키려했다.
무엇보다도 최향의 가병들에게 연패한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섬기는 주군인 최우가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속은 그렇지 않을 것이기에 어떻게든 통쾌하게 최향의 가병들에게 설욕하고자 하였다.
난 5명의 서가 가병과 해심, 그들과 편을 먹으며 최양백에게 격구 시합을 제안했다.
격구를 통해 최양백에게 다가가 내 편으로 만들고, 최양백을 발판으로 김인준 역시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 나름 머리를 굴렀다.